이세벨은 왜 화장을 했을까?
"자네, 내가 누군지 아나?"
"아, 네~"
얼마 전 소개로 만난 여자의 어머니가 불시에 나를 찾아왔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는데,
"아, 제가 지금 지갑이 없는데..."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까운 커피숍에 앉았다.
자기 귀한 딸을 병원 원장의 소개로 만난다 하니 직접 면접을 보러 온 것이다.
"자네는 목표가 뭔가?"
"저는 목표가 없습니다."
마침 지난 일요일에 감명 깊게 들은 설교가 떠오른 것이었다.
로마서 13:14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미리 계획(목표 설정) 하지 말라.'
(아니 그걸 왜 여기다 갖다 붙여? 그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 같은데)
아무튼 그때 나는 순수하게 '아! 목표를 세우지 말아야지.' 하고 감화되어 있었다.
동물병원을 개원해서 훌륭한, 아니 돈 많이 버는 수의사가 되겠다는 그런 대답을 기대했을 그녀는 커피값도 자기 돈으로 내고 돌아오는 길에 집안 수준이 맞아야 결혼도 할 수 있다고 혼자서 떠들어 댔다.
(고위 공직자 집안이고 강남에 건물주였던 그녀, 그리고 홀어머니 가정에 변두리 외곽을 전전하던 우리 집.)
아니 내가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고 결혼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야.
딸은 그냥 처음엔 내가 좋단다.
그래서 한두 번 더 만났는데 이후 그 여자의 어머니는 가까운 곳에 와 있다며
내가 일하는 동물병원에 한번 와보고 싶다고 했다.
아마 지난번 커피값 낸 거 돌려받으러 오려나 보다.
그런데 나는 전화로 안된다고 거절했다.
이 병원은 내 병원도 아니고 여기는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사적인 방문은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그녀는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르는 화를 애써 눌러 참아야 했다.
(네까짓게 거절을 해?)
두 번씩이나 무언가에 맞은 듯한 그녀,
그래도 고위 공직자 사모님이고 나름 교양 있는 여자인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인 부인들과도 친분이 있는 여자인데,
쥐새끼 같은 내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그런데 한 번은 딸과 데이트를 하는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바깥에 두기는 불안하고 식사 초대를 핑계로 가까이 두려는 수작이다.
나는 잘 차려진 식탁,
그것도 자기가 얼마나 수준 있고 요리 잘하는 부잣집 사모님인지를 과시하려는 듯한 식탁을 받고
2차 면접을 당해야 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나?"
"저의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암은 유전이라는데..."
"........."
자기 딸만 귀한 줄 알고
남의 아들은 하찮게 여기던 그 여자
저 높은 망루에서 내리깔고 쳐다보던 그 눈빛이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래 바로 이세벨이 현대에 살았으면 딱 그 눈빛이었을 거야.
이세벨은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악한 왕비이다.
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내이며 이교도인 그녀는 하느님의 나라에 바알과 아스다롯 숭배를 퍼뜨렸으며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무고한 나봇에게서 포도원을 빼앗고 그를 죽인 일화로 유명하다.
또 그녀는 그녀가 숭배하는 남근과 여근으로 상징되는 성숭배가 그러하듯 매춘과 음행으로 악명이 높은 왕비였다.
그녀의 영향으로 이스라엘 성전에는 성전 매춘부와 남창, 즉 동성애를 하기 위한 어린 미소년들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이교 의식으로 매춘과 동성애 행위가 성행했다.
계시록에도 이세벨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교회 내에서 반항과 음행을 조장하는 여자, 또는 여자들을 지칭해 이세벨이라고 부른다.
이세벨이 음행과 반항의 상징처럼 사용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세벨의 악행에 대한 심판의 날을 정해놓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하기 위해 예후를 임명하셨으며 예후는 지체 없이 반란군을 조직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의 수도, 이스르엘 성으로 진격한다.
그는 아합이 죽은 후 왕이 된 이세벨의 아들 여호람과 그의 조카 아하시야마저 죽이고 이세벨을 잡기 위해 이스르엘 성으로 들어온다.
여호람이 예후를 보고 "예후여, 평화로이 오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예후가 대답했다. "그대의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마술이 이토록 가득한데, 무슨 평화가 있겠소?"
열왕기하 9:22
그런데 자신을 죽이려고 반란군들이 쳐들어 오는데 이세벨은 공들여 화장을 하고 머리 치장까지 한다.
그리고 창가에 걸터앉아 예후를 맞이한다.
얼핏 보면 반란군의 군대 대장 예후의 연인이라도 되는 줄 착각할 만한 행동을 이세벨이 하는 것이다.
예후가 이스르엘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세벨은 보란 듯이 눈가에 짙은 안료를 덧칠하고 머리를 치장했다.
그러고는 망루 창가에 기대어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열왕기하 9:30
상식적으로 보면 그녀는 서둘러 피신 채비를 하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있던 화장도 지우고 하녀 복장을 하고 서둘러 성 밖으로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의 행동을 한다.
그녀의 나이는 당시 59세였을 것이다.
왕실에서 치장하고 관리를 받았다면 아직도 충분히 관능적이었을 것이다.
성서학자 Bromiley는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왕비로서 위엄을 갖추기 위한 것보다는 유혹의 시도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세벨이 예후를 유혹해 그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세벨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왜 화장을 했을까?
조사해 본 바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그녀가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는 장수의 심정으로 화장을 했을 거라는 해석이다.
패배를 눈앞에 둔 장수는 물러서지 않으며 오히려 전투를 위해 자신의 모든 의복을 갖추고 최후의 항전을 준비한다.
설사 그것이 자신의 죽음이 될지언정 장수는 비굴하게 도망가지 않는다.
바로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다는 해석이다.
그녀에게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무릎을 꿇었으며 그녀는 남자들을 자신에게 굴복시키고 원하는 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녀의 무기는 그녀의 몸이며 그녀의 전투는 SEX 다.
그녀는 남자들과 SEX를 하기 전에 숱하게 화장과 치장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요염하게 때로는 도도하게 남자들을 상대했고 대부분 그녀의 음탕한 유혹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녀는 SEX를 통해 남자들을 이겼으며 남자들을 지배해 왔다.
그녀는 그렇게 화장과 머리 치장을 하고 망루 창가 높은 곳에서 예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걸터앉았다.
그것이 그녀가 남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고 남자들을 지배하려는 그녀의 욕망을 드러내 주는 위치였다.
여자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은 힘이자 권력이다.
이세벨은 아름다움으로 치장했기 때문에 그런 힘을 갖추고서 오만하게 예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예후가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이세벨은 망루 위에서 그를 지긋이 내려다보며 낮고 느글거리는 음성으로 비아냥거렸다.
"제 주인을 죽인 지므리여, 그래... 평안하신가?"
열왕기하 9:31
이세벨은 예후를 '지므리'라고 칭하는데,
지므리는 모반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지만 7일 만에 실패하고 죽은 이스라엘 왕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미디안 여자 고스비의 유혹에 넘어가 진영가운데서 음행을 범한 어리섞은 이스라엘 남자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녀가 예후를 가리켜 '지므리'라고 말한 데에는
"너도 별수 없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갈 그렇고 그런 남자일 뿐"이라는 조롱과 함께,
너의 모반도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저주가 서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그녀가 해왔던 방식대로 도도하게 남자를 상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예후가 외쳤다.
"그 여자를 내던져라!"
열왕기하 9:33
예후의 외침에 환관(宦官)들이 그녀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담벼락과 말들의 몸뚱이에 그녀의 피가 튀었다.
예후는 그 위로 말을 몰아 그녀를 짓밟고 지나갔다.
성 안으로 들어간 예후가 먹고 마시다가 문득 말했다.
"가서 이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지내 주어라. 그래도 왕의 딸이 아니더냐."
사람들이 시신을 치우러 나갔으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그녀의 해골과 발, 그리고 손바닥뿐이었다.
열왕기하 9:33~35
여호와께서 그분의 종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개들이 이스르엘의 그 땅에서 이세벨의 살을 먹을 것이다.
이세벨의 시체가 이스르엘의 그 땅에서 들판의 거름같이 되어 아무도 ‘이것이 이세벨이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세벨은 창 밖으로 내던져진 후 말에 짓밟혔으며, 그녀의 시체는 개들이 먹어버렸다.
마침내 여호와의 심판이 악한 이세벨에게 임한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이세벨의 죽음을 보고 통쾌하다고 말하면서
서두에서 언급한 그녀가 '이세벨'이라고 지금 뒤에서 욕하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그녀의 권위적이고 상대를 얕잡아 보는 그 눈빛을 보면 '이세벨'이 떠오른다는 거지...
여자들이여, 나이가 들수록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착하게 살자.
진정으로 아름다운 화장은 내면의 화장이니까...
PS: 허황된 꿈을 꾸지 않고 묵묵히 살아온 내 인생은 목표가 없는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은 브런치 작가가 되어 작은 책을 꾸며보려는 소박한 목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