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와 아이들, 그날의 진실은?

엘리사의 저주 : 하느님은 잔인하신 분인가?

by 아반

대머리의 비애


삼십 대 초반부터 머리숱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눈에 띄게 비어 보인다.

머리가 빠져서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또 머리가 빠진다.

머리를 두드려도 보고 샴푸도 바꿔 보지만 별 소득이 없다.


신문 기사에 포장마차에서 칼부림이 났고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원인은 친구를 '대머리'라고 놀리는데서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인을...)


"그럴 수 있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왜 이게 나만 이해되지?)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들렀다.

거울에 비친 머리숱이 참 겸손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미용실에 가서 예쁜 미용사 언니의 보살핌을 받던 내 머리,

이제 이발소는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런데 머리를 깎고 잠시 이발의자에 앉아 있는데

이발소 문을 열고 젊은 남자가 들어온다.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들어 오는 모습은 이십 대 청년이었고

심지어 앳돼 보이기까지 하다.


이발사가 바로 내 옆 자리 이발의자에 앉으라고 말하자

남자는 모자와 겉옷을 벗는다.

눈이 부시다.

민둥산이다.


의자에 앉은 젊은 이십 대,

아니 저주받은 이십 대...


이발사, 나, 젊은 남자,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심으면 되지)

모든 탈모인들의 염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르는 어린것들이 대머리를 조롱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천인공노(天人共怒) 할 것들...




대머리야 올라가라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가던 중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그를 조롱하기 시작하는데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하고 아이들이 소리쳤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고

때마침 암곰 두 마리가 나타나 모두 42명의 아이들을 찢어발겼다.


천만 탈모인들이 보면 대머리를 놀리는 것에 대한 이보다 더 통쾌한 처벌은 없을 테지만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은 성경에서 이 부분이 제일 이해가 안 된다고 하신다.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께서 어린이들이 철없이 하는 말을 두고서

어떻게 이토록 잔인한 처벌을 내리실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탈모인으로서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일견 수긍이 간다.

그래서 엘리사와 아이들의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2290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lA9PF%2BfXfJxBazly92d1UWPiIFU%3D 엘리사를 조롱하는 아이들과 암곰의 습격 성경 삽화




잘못된 가르침


이 점에 대해 설교가들과 성경 출판물들에서는 하나같이 하느님을 대표하는 자들에 대해

무례하게 구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에 대해서 가르치며


[하느님께서는 그분이 임명하신 종에 대한 여하한 불경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비행 소년들이 하느님의 예언자인 엘리사를 조롱했을 때 그분은 즉각적인 보응을 하셨다.]라고 설명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에 더해 42명의 아이들이 실제로 어린이들이 아니라 청소년쯤 되었고 42명이 무리 지어 다니는 조폭이나 건달들이었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들에 대한 처벌의 정당함을 애써 설명하고자 하기도 한다.


성경의 기록을 해석하면서 해설을 덧붙인 것이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가르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올바른 이해는 무엇인가?


그러면 이제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먼저 아이들이 예언자인 엘리사에게 불경을 저지른 것도 하느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행동이라는 점도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성경을 잘 살펴보면 엘리사는 아이들을 죽이라거나 암곰이 나와서 그들을 멸해달라고 하거나 하는 그런 구체적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사건의 발단] 엘리사는 그곳을 떠나 베델로 향했습니다. 그가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을 때, 도시에서 몰려나온 어린 소년들이 그를 에워싸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대머리야, 어서 꺼져라! 하늘로 올라가 버려라!"라고 멈추지 않고 조롱을 퍼부었습니다.

[사건의 전개] 엘리사는 뒤를 돌아 그들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다.

[사건의 결말] 그 순간, 숲 속에서 굶주린 암곰 두 마리가 튀어나와 아비규환의 현장을 만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소년들 중 마흔두 명이 곰의 발톱에 갈기갈기 찢겨 처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엘리사는 그 참혹한 현장을 뒤로하고 갈멜 산을 거쳐 다시 사마리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열왕기하 2:23~25


엘리사는 단지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저주했다.


이것은 엘리야가 그를 잡으러 온 50명의 군인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불태워 달라고 탄원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엘리사는 분명 구체적으로 아이들에 대해 저주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의 저주는 일반적인 저주였는데 그것은 악인들에게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한 저주였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의로운 사람들이 잘 될 거라는 축복도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저주와 축복은 우리가 빌어서 그렇게 된다기보다는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공의의 원칙에 따라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에는 우리가 연로자들 부모들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합당한 존경심을 가지도록 가르치는데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심각한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주고 있다.


특히 나는 어렸을 때 부모 말을 듣지 않으면 까마귀가 눈을 쪼아 먹을 것이라는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다.(잠언 30:17)


엘리야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성정과 감정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의 말대로 3년 6개월 동안 그 땅에는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야고보 5:17


엘리야는 예언자이기도 하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그가 기도하자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았다.

이것은 엘리야가 기도했기 때문에 그의 힘으로 또는 그의 기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엘리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저주를 알고 있었고 불충실한 백성들에게 닥칠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엘리사도 하느님의 대표자에게 의도적으로 나타내는 불경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주했을 것이다.




하느님께 책임이 있는가?


하느님께서 아이들을 벌하려고 하셨다면 손쉬운 방법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벙어리로 만들거나 그들의 눈이 멀게 하거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때마침 암곰 두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곰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며 소란스럽거나 자극을 받아 놀랄 경우 그 자리를 피한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새끼를 가진 곰은 매우 사납게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


새끼를 빼앗겨 미쳐버린 어미 곰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이,
어리석음에 빠져 자기 고집만 피우는 미련한 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

잠언 17:12


성경에서도 여러 차례 새끼 잃은 곰이 얼마나 사나운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삼하 17:8, 호세아 13:8)

42명의 아이들이 떼 지어 엘리사를 조롱하고 떠드는 것은 분명 새끼를 데리고 있을 시기의 암곰들에게 몹시 자극이 되었을 것이며


그들이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으므로 암곰의 공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수 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2290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G7GePe%2FqzHo8NmvGs7jjXgaLlPA%3D 새끼곰들과 함께 있는 어미곰


하느님께서 인위적으로 개입하신 것인가?


물론 이것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말한다면 믿음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겠지만

하느님께서 이것을 가져오셨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학대하는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초래한 재난적 결과


그보다는 누군가를 조롱하고 학대하는 그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초래한 재난적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은 분명히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었다.(잠언 22:15)

특히 주위에 새끼를 가진 곰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는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로 인해 하느님이 무자비하다거나 사랑 많은 하느님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고 슬퍼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 분명 안타깝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분명 대머리의 슬픔도 안타깝게 생각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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