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인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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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들어왔는데 전임자가 없다.
들은 바로는 한 명의 수의사 과장과 한 명의 여자 수의사가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그들을 본 적이 없었으나,
캐비닛 안에 무수히 쌓인 서류들과 기록들, 그리고 논문과 서적들에 공부했던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 자리를 지키던 수의사들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노고가 존경스러웠다.
남아있는 경리 여직원은 수의사 언니가 참 착했다고 말한다.
남아있는 기록들을 살펴볼 때면 언제나 적은 인원과 회사의 홀대 속에 늦은 시간까지 격무에 시달렸을 어린 여자 수의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쨌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요령껏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우선 간단하게 약품 이름을 변경해 본다.
아목시실린이 주성분인 돼지용 '아-목살'을 '슈퍼-목살'로 변경해 본다.
변경 사유는 '플래시보 효과에 인한 효력 증진'.
일주일 만에 사무실로 새 약품 등록증이 도착한다.
제품명: 슈퍼-목살
왠지 매출 증대가 뒤따를 것만 같다.
이제 연습 삼아 용량을 한 번 바꿔 본다.
서류를 대충 꾸며 검역원으로 가져간다.
용량: 한 숟가락에서 대충 2~3숟가락으로 바꿨다.
검역원 사무실은 좀 어둡고 칙칙하다.
흡사 70년대 대공부 수사실 같은 분위기도 약간 난다.
'음 ~ 나만 그런가...'
어쨌든 표정들이 밝지 않은 건 분명하다.
뇌물이라도 먹여야 하나.
이건 왠지 그런 선입견이 좀 있다.
담당 수의사 공무원이 용량 변경의 근거를 묻는다.
'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우물쭈물 동물병원에서, 그러니까 현장에서는
한 숟가락 쓸 거 두 숟가락도 쓰고 그런다고 말한다.
공무원이 어이없어한다.
분위기가 좀 심각하다.
나는 근거를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사무실을 나온다.
바로 그날
안양에서 강남까지 전철을 타고 사무실에 와서는
수의 약전 용량 부분을 복사해
서류에 첨부해서
바로 안양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2시간 만에
I CAME BACK
다시 서류를 들이민다.
공무원이 다시 서류를 꼼꼼히 살핀다.
유난히 꼼꼼히 살핀다는 느낌이 약간 있다.
그러더니 틀린 글자를 지적한다.
(우~쒸~)
(아까 얘기할 것이지)
"네네 죄송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다시 안양에서 강남으로...
사무실에 와서 틀린 글자를 수정하자마자
다시 안양으로
과장이 보기에 저 친구 참 열심히야 했을 것이다.
지하철은 참 편리하다.
어쨌든 역에서 사무실까지는 숨이 차게 뛰고 또 뛰고
지하철에 타면 일단 숨을 돌릴 수 있다.
원래 무식한 놈이 우직한 면은 있다.
다시
I CAME BACK
공무원에게 오늘만 3번째로 서류를 들이민다.
공무원은 서류를 받아서 결재 책상 위에 툭 던진다.
그래 어쨌든 나는 이렇게 배워가는 수밖에 없다.
검역원을 나와 육교를 건너는데
석양의 노을이 고되게 붉은빛이다.
사무실에 여기서 퇴근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집으로 가는 전철에 오른다.
오늘도 차~암~ 열심히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