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인턴일기 최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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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다시 로컬병원에 취직했다.
병원에서 점심은 미용사들과 함께 배달 음식을 주로 먹는다.
미용사는 둘인데 둘 다 '조혜련'스럽고 '허안나'스러운 개그우먼들이다.
점심은 레고놀이 박스에 담겨 도착했다.
된장찌개가 뚝배기에 담겨있고 콩자반에 계란말이 메추리알, 밑반찬,
꽁치 한 마리가 구워져 있다.
허기져 있었던 나는
열심히(?) 일해서라기보다
그냥 시간이 시간인지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보자
밥부터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갓 지은 밥알들이
아밀라아제에 분해되어
달콤한 당분으로
녹아들어 가는
그런 순간이었다.
"선생님 막내죠?"
"네???
어떻게 아셨나요?"
"으이그 내 그럴 줄 알았다.
반찬 그릇 랩을 좀 벗기란 말이다."
미용사 둘이서 열심히 반찬 위에 씌운 랩을 벗기고 있었다.
나도 멋쩍은 듯
반찬 그릇 하나를 집어 랩을 벗겼다.
나는 미용사 둘 앞에서
새색시 마냥 아니 기죽은 며느리 마냥
조용히 밥을 먹는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여자 둘이서 접시가 요동쳐 깨지기 일보 직전이다.
밥알이 튀는지 아밀라아제가 튀는지
둘이서 재미있어서 주거니 받거니
시동을 걸고 있다.
그러다가 대화가 타블로이드판 일요신문 수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공부만 할 것 같은 수의사 선배가
사실은 연상의 미용사와 그렇고 그런 사이었다던가
미용사가 병원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늦은 밤에 병원에 갔다가
원장과 미모의 여자 손님이
수술실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수위 조절로 자체 검열)
문틈 사이로 원장과 눈이 마주쳤다는 충격 실화.
미용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병원을 나왔는데
원장은 얼마 전 결혼한 새신랑이었고
미용사를 사건의 은폐를 위해 해고했었다는 얘기.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머릿속으로 수술실을 그려가며 열심히 듣고 있는데
"선생님 안 해봤죠?"
"네???"
이 분이 자꾸 아까부터 나를 꿰뚫어 투시하고 있는데
나는 정작 이 분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내가 숫총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미용사들이 나를 놀리려는 듯 수위를 높여간다.
한 분은 남자 친구가 조폭같이 생겼는데 아니 실제로 조폭이었다.
남자 친구가 오래가는 배터리이면서 저돌적이고 공격적이라고
자랑 아닌듯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다른 한 분은
Position에 대한 자신 만의 감상을 이야기하면서
특정 position은 무릎이 아프다고
무릎에 멍이 든다고 말한다.
다른 한 분이 ‘맞아’, ‘맞아’ 해가며
나만 모르는 얘기를 둘이서 하고 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안 듣는 척하며 귀동냥을 하면서도
막내의 기질을 발휘하여
계란말이, 메추리알, 콩자반, 꽁치구이등
단백질 위주로 반찬들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동안
어느덧 그릇들이 비워져
다시 레고놀이 박스에 담기고
나는 또다시 막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거드는 시늉을 한다.
미용사들이 "하하", "호호"하면서
미용실로 들어가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고
나는 믹스 커피를 마시며
병원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은 귀와 관심이
온통 미용실 안을 향하고 있다.
마침 두 남녀가 다정하게 팔짱을 하고
병원 앞을 지나가는데
여자가 남자 쪽으로
60도 정도 허리가 기울어
척추 측만증에 걸려 있다.
남자는 여자를 부축해
정형외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정형외과 뒤에 있는 모텔로 갈 것인가?
점심을 먹은 후로
남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 있다.
점심을 먹었지만,
고독한 젊은 늑대의 허기는
밥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