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수상한 회사

다시 쓰는 인턴일기

by 아반


처음엔 회사에 다니는 게 신기했다.


내 책상이 있고 내 컴퓨터가 있고

내 명함이 있다.


주말이 있고 휴일이 있다.

매년 새해 1월 1일을 그리고 설날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런데 이 회사는 조금 수상하다.

분명 큰 회사인데 전임자들이 없고 전부 물갈이된 상태다.


부장은 구매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이사 승진이 탈락된 후에 이곳으로 좌천되었다.


들은 얘기로는, 그 부장이 좌천되어 동물약품 부서로 옮기던 날에 "꺼이,꺼이" 울었다고 한다.


분기별로 이사진 앞에서 경영 보고를 하는데

A 부서 매출 1000억, B 부서 매출 1500억, C부서 매출 3000억, 동물약품 부서 매출 20억.


부장이 울 만도 하다.


부장에게 보고를 하러 가서,


"부장님" 하고 부르니 부장이 깜짝 놀란다.


옆으로 얼핏 보니

모니터 화면에 고스톱이 떠 있는 게 보인다.

부장은 동물 약품에 대해 아는 것도 하는 일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상적인 주간 회의와 아침 미팅이 습관적으로 있었다.

부장이 자신도 일을 한다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다.


회의는 대체로 화기애애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동물 약품 시장의 치열한 전투에서 살짝 뒤로 빠져 있는 관계로

시장의 치열한 전투는 언제나 1,2위 기업 지화자와 메리쫑의 몫이었고

우리는 떨어진 콩고물이 있는지 바닥을 살피는 수준이었다.


한 번은 아는 형에게


"형, 우리 회사는 회의를 정말 많이 해"라고 했더니


"원래 그래, 일 안 하는 회사는 회의를 엄청 많이 해"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회의가 길어지면 이 얘기 저 얘기가 나오고 그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더러 걸리기도 하는 데 애견 밥그릇 얘기에 부장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부장은 애견 자동 밥그릇에 관심을 가지더니

급기야 나를 대동하고 시장 조사를 위한 출장길을 나선다.


출장은 회사 바로 앞에 있는 동문 동물병원


바쁘게 일하는 병원에 후배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 부장님을 후배에게 소개한다.


부장은 후배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는

고개를 들어 진열장에 밥그릇들만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부장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사업과 구매 센스로 퇴직 후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업 아이템이 확정되자 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해 버렸다.


CC카메라가 도입되기 전에 자동 밥그릇과 CC카메라가 결합한 형태의 밥그릇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던 부장이 그 뒤로 어떻게 자동 밥그릇 시장에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부서의 부장은 공석이었고 부서의 결제는 이사가 직접 하는 걸로 바뀌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부장이 왜 침묵의 지원자를 합격시켰는지...


부장은 자신을 버린 조직에 소심한 복수를 하기 위해 X-맨을 심은 것일까?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볼 때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고 그러하다고 상당히 여겨지지만~~~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깁니다.



그래! 나의 포텐은 아직 터지지 않은 것뿐이다.




14화 [인턴일기 14] 노을 빛 고된 하루







이전 12화12 면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