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문학 박사 이호창 작가님의 글을 읽고
처음 이호창 박사님의 글을 읽은 것은 화두(話頭)에 대한 것이었다.
아! 화두라는 게 그런 거구나.
우리가 사물과 현상을 단어로 한정하면 그 사물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잠재적 의미가 단어에 갇히고 만다.
컵 모양의 용기가 장난감일 수도 있고 보물상자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선물 받은 사랑의 의미도 될 수 있는데 컵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용기는 물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래서 관념과 단어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생각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기 위해서 불가에서는 승려들이 화두를 던졌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기 이전의 너의 존재는 무엇이더냐?
그 의미를 곱씹고 곱씹어도 알 수 없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하얀 도화지 같은 무념무상의 단계에 이르고
그때에 비로소 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재밌다.
그런데 이쯤 읽으니까 스크롤의 압박이...
아직 한 참 남았다.
갑자기 글자의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갑갑함이 나를 내리누른다.
이쯤 해서 '라이크잇'을 누르고 도망칠까?
아니지. 그건 예의가 아니지.
내가 언제 명문 대학인 한국외국어 대학교 강의실에 앉아서 이런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겠어.
다시 집중해야지.
그런데 지금부터는 글을 읽는 중에 자꾸 잡생각이 끼어든다.
혈기 왕성한 젊은 수도승들을 사찰에 모아 놓고
하루 종일 수도를 시키니 이 분들이 온갖 잡념에 시달리지 않겠어.
그러니 화두란 걸 던져놓고
끊임없이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생각 속에 가두는 거지.
지금 나에게도 화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은 것이 바로 '숨, 하늘과 통하는 탯줄'이다.
단학, 선도에서 말하는 조식(調息)과 태식(胎息), 소주전(小周天), 대주전(大周天), 처음 들어 보는 말들이지만 그 개념은 참으로 흥미롭다.
숨쉬는 것은 곧 살아 있는 것이고 생명이다.
인간은 호흡을 통해 우주의 기,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단전에 모아
기혈을 통해 온 몸에 순환시킬 때 비로소 소우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氣)가 막히면 안되는거지.
캬~ 기가 막히다.
본문에 언급되어 있듯이 성경에서는 살아있는 생명, 곧 영혼을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네페쉬(Nephesh) 인데
이것은 '호흡하는'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명을 '움직이는 것', '생각하는 것', '먹고 싸는 것', 뭐 이렇게 하지 않고 왜 호흡하는 것이라고 했을까?
숨 쉬니까 살아 있는거지 숨 안 쉬어봐 죽은거지.
크~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이 단순한 것을...
그런데 사실 인간은 음식을 먹어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호흡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 산소가 세포내의 미토콘드리아에서 ATP (Adenosine Tri-Phosphate) 라는 에너지를 만들어야
생화학적 전기가 발생하고 바로 그 전기로 구동하는 것이 인간이다.
꾸역꾸역 탄소 화합물을 먹고 똥과 가스를 배출하는 증기기관차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인간은 태생부터 전기차, 그것도 산소가 반응해서 전기를 만드는 수소전기차였던 것이다.
실제로 산소가 있을 때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는 포도당 한 분자당 약 32~38개의 ATP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산소가 없을 때 일어나는 무산소 호흡에서는 포도당 한 분자당 고작 2개의 ATP밖에 만들지 못한다.
사람은 결국 호흡을 통해 전기를 만들고 생체 전기가 우리의 심장과 근육과 뇌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음식을 통한 에너지는 전기적 신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료로 사용되는 에너지 이므로
사람의 호흡은 그 자체가 전기를 발생시키는 충전 과정이다.
우리가 죽을 때 숨이 멎으면서, 마치 배터리가 방전되는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생체적 전기 에너지는 신체 내에서 활성 세포막의 이온 통로와 이온 펌프를 통해 만들어지는 Na+과 K-, 양이온과 음이온의 전위차에 의해 발생하는 Action Potential, 활성 전기를 만들고 이 전기는 마치 경기장의 관객들이 파도타기 응원을 하는 것처럼 세포의 막을 따라 연쇄적으로 물결치듯이 신체로 퍼져 나간다.
Na+과 K-가 활성 세포막을 사이에 두고 교차되면서 그 전위차가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것이다.
이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
그러니 고대에 단학과 선도에서 이 원리를 조식, 태식, 기, 단전, 소주전, 대주전으로 표현한 것은 어쩌면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사실 생명의 전기, 생명의 영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단학에서는 그것을 우주의 에너지, 우주의 기운으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본다.
하느님이 흙의 원소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영을 불어 넣으시니 그가 산 영혼 즉 네페쉬,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도도 단학도 모르지만 인체의 원리를 생각해 보면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자의 감옥에서 누가 나 좀 꺼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