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왜?'라는 질문, 긍정적인 의심

인생 제2막, 여긴 일본인가 한국인가? (7화)

by 임유빈

내가 있었던 부서는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파트 별로 일본인 파트장 2명, 한국인 파트장 2명, 일본인 팀장 겸 부장 1명이 지휘하는 형태였다.


부서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전마다 주간 부서 회의를 진행했었는데,

주로 신제품 개발 현황에 대한 보고 사항, 부서 내 스터디 및 멘토링,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진행 방향에 대해서 논의가 오가곤 했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란 자사와 경쟁사의 디스플레이 소재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PC와 같은 완제품을 분해하여 소재 물성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기법으로, 내가 있었던 부서에서는 후배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선배들이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왜?"라는 의문


어느 월요일이었다. 부장님께서 주간 회의가 끝나고 잠시 이야기를 하셨던게 기억난다.

"여러분, '왜?'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부장님께서는 말을 이어 가셨다.

"예를 들어, 한동안 비가 전혀 오지 않다가 오늘 갑자기 일기예보에 비가 올 확률이 60%다라고 나왔다면,
왜 강수 확률이 60%일까, 왜 하필 갑자기 오늘 비가 올까? 라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역시 모두가 정적이 흘렀고,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조용했다.

그도 그럴것이, 뉴스 일기예보에서 기상 캐스터가 '오늘 비 올 확률이 60%입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 누가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겠는가?

아 오늘 비오네, 우산 챙겨야겠다 라고 밖에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부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몰라, 이어 하시는 말씀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갑자기 비가 오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가령 비구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이동하였다던지,
장마 시즌 때에는 장마 전선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던지."


이제야 그 의도를 서서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말씀하시는 '의문'과 '왜'라는 의미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부장님께서는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그렇다면, 왜 비구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을까,
왜 장마 전선이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을까?

비구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예상보다 빨리 움직인 원인이 바다에서 발생한 강력한 태풍이었다고 한다면,
그 강력한 태풍이 발생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식으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보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위의 이야기에서 강력한 태풍이 발생했던 원인이 '인공 강우로 인한 기류 불안정'이라고 가정해본다면, 그 인공 강우를 내리게 한 목적은 무엇인지까지 생각해보는 것이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위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결론적으로

1. (근본 원인) 인공 강우로 인한 기류 불안정 → 2. 바다에서 강력한 태풍이 발생함. → 3. 비구름이 예상보다 빨리 움직임 → 4. (최종 결론) 갑자기 비가 오게 됨.

이런 식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이러한 부분은 일본 회사의 품질 관리 및 품질 보증 부서에서 사용하는 방식과 일맥상통하다.

불량품이 나왔다면, 해당 공정을 스탑시켜 근본적 원인을 찾고 개선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알고 지냈던 동생과 같이 갔던 평택항 (서평택) 바다의 모습 (2022년)


예전 일본 현지 회사에서 일할 때가 생각났다.

내가 일하던 부서의 과장님과 부장님은 나를 비롯한 주임급, 사원급 직원들에게 항상 '왜 이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셨고, 직원들의 생각을 들어보곤 하셨다.


가령 설비 내부의 벨트 풀리를 교환하는 시기가 와서, 고객사에 방문하여 교환하였다고 치자.

일반 사람들은 고객사에 가서 벨트 풀리를 교체해주고 돌아올 것이다.


벨트와 풀리 생김새 (인터넷 발췌)


하지면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단순히 벨트 풀리를 교체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벨트 풀리의 상태'를 보게 된다면 어떨까?


이 벨트는 오른쪽 부분만 마모가 심하네. 편마모가 발생한 이유가 뭘까?

벨트를 풀리에 걸어 설비를 재작동 시켜보니, 풀리와 연결된 부위의 수평이 맞춰지지 않아 뒤틀리며 돌고 있네?

결국 근본적 원인은 수평이 맞지 않음이고, 그로 인해 한쪽 부분만 마모가 심해지게 된게 결과이다.

만약 이 수평이 맞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벨트 풀리를 몇백번이고 교체해도 금방 마모될게 뻔하다.


여기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수평을 맞춰주는 작업까지 한다면,

다음부터는 편마모는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고객사와의 신뢰 또한 쌓이게 될 것이다.



발생한 결과가 아닌 '원인'에 초점을 맞추기


기시미 이치로 저자의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미움받을 용기'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내용이 등장한다.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때 수 많은 사람들은 그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기 바쁘다. 그 누구도 '이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쉽게 하진 않는다.


가령 A라는 이에게 잘 대해주던 B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A가 B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던 중, 차선 변경할 때마다 깜빡이를 켜지 않았고,

B는 조수석에서 이것을 보고 A에게 심한 화를 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B를 보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예민한거야? 심지어 사소한 일이잖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움받을 용기'에서 등장인물은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행동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즉 위의 예시에서 '이 사람이 깜빡이를 켜지 않은 것에 대해 심하게 화를 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원인은 정말 다양하다.

이 사람이 이전에 운전하다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온 차와 크게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던지,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질색인 스타일이라던지, 운전 트라우마가 있다던지.


그 근본적 원인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사람이 심하게 화를 냈다는 '그 결과' 하나만 본다면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일본 주재원들이 극찬했던 일본식 라멘 가게 (2022년, 송탄)


'왜?' 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라는 말 자체가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는 뉘앙스가 강하게 자리잡아서 그런걸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말 철저하게 객관적으로만 보자면,

의문을 품음으로써, 내가 생각치도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긍정적인 의문을 가지고, 항상 '왜'라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며, 그 원인을 찾아보기 위해 시간을 내어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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