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2막, 여긴 일본인가 한국인가? (8화)
한국 속 작은 미국
회사를 다니며 내가 지냈던 곳은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1호선 송탄역 철길 바로 옆이었다.
1호선 전철과 디젤기관차가 끄는 무궁화호, 새벽에는 화물 열차와 선로 유지 보수 열차로 인해 집은 항상 시끄러웠지만, 그나마 월세 50만원에 넓은 곳에서 지낼 수 있는 곳이었기에, 나름 만족하고 지냈다.
내 보금자리였던 오피스텔에서 5분 정도 걸어서 가면, 오산 미군 공군 기지가 있었는데,
그 앞에는 미군을 비롯한 서양 외국인들이 사는 '송탄관광특구'라는 마을이 있었다.
예전 미군기지가 생겼을 때부터 만들어진 이 곳은 미국식 수제 버거, 부대찌개, 멕시칸 타코, 브라질 스테이크, 베트남식 쌀국수, 태국과 인도네시아식 볶음면, 터키 아이스크림, 페루를 비롯한 남미 음식, 한국식 BBQ 등,
전 세계의 수많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유명하다는 송탄 부대찌개집 본점도 여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여러 음식점 중에서 '로키즈버거'라고 하는 미국식 햄버거집을 좋아했었기에 자주 즐겨 먹었는데,
내부 인테리어는 옛날 미국 레스토랑을 연상시킬 정도로 빈티지함이 묻어났고, 가게에는 흑인 직원이 주문을 받고 있었기에, 해외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인들이 우리 집에서 머물고 갈 때면, 식사를 하러 갈 때 거의 항상 저 동네를 가곤 했었다.
그만큼 다양한 요리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맛은 잘 모르겠다.)
거리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들로 북적거렸고, 동네가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강아지 분양소와 펫 샵이 있었고, 나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항상 귀여운 강아지들을 구경하곤 했었다.
(귀여운 시바견과 골든 리트리버가 마스코트였는데, 둘다 애기라 그런지 잠이 많았다.)
밤에는 술 먹은 외국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었고, 미군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다보니,
길거리에는 미군 헌병들이 총을 차고 순찰을 돌고 다녔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 곳의 맥도날드는 24시간 운영하고 있었는데,
새벽에만 되면 술에 취한 외국인들이 빨간 얼굴로 들어와서는 햄버거를 사먹고 들어가는 진풍경이 펼쳐졌었다.
(서양 쪽에서는 치즈 버거로 해장을 한다던데 그게 사실이었나보다.)
길거리에는 태국, 베트남, 대만, 중국, 러시아 식자재를 파는 아시안 마켓이 있었고,
구하기 어렵다는 러시안 보드카도 이곳에서는 정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미군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버스들과 미국 현지 번호판이 달린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밤에는 전차들이 지나다니는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송탄에 이사오고 얼마 되지 않아,
나와 같이 캡스톤디자인을 했던 동기가 송탄에 있는 한 회사에 합격하여, 이곳으로 이사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고, 2년 반 동안 그 친구와 시간을 정말 많이 보냈다.
둘 다 입맛도 비슷하고, 양꼬치와 족발, 전을 좋아했었기에 함께 맛있는 집들을 찾아 다니곤 했었다.
송탄출장소라는 곳이 있었는데, 내가 살던 곳에서부터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그 앞쪽 거리가 술집과 음식점이 모여 있는 거리였다.
때때로 그곳에서 족발이나 갈비와 함께 술을 먹고 돌아올 때에는 그 친구와 함께 밤 공기를 마시며 걸어 돌아오곤 했는데, 그 때의 선선하고 바람이 살살 부는 밤공기는 정말 좋았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친해지기 시작하여, 벌써 근 8년 째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가끔씩 꿈에서 이 친구가 나오곤 한다.
송탄 생활에 있어서 정말 큰 도움을 받았던 친구였기에, 같이 보냈던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외 대학교 때 같은 사업단 활동을 했었던 후배들이 평택에 살고 있었고, 조금 더 밑에 떨어진 천안에 살고 있는 후배가 있었기에, 때때로 만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만날 때마다 지겨울 정도로 대학교 때의 얘기도 하고, 현재 직장 생활은 어떤지 얘기했었는데,
때로는 힘들어하는 후배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기도 하고, 다양한 직종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박살나 있는 자동차들
송탄에서 2년 반동안 생활하며, 참 신기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중에 어디가 하나 박살나 있거나, 깨져있는 차량들이 참 많이 보였다는 점이었는데, 주로 미군들이 타고 다니던 차였다.
이곳의 미군들은 새 차보다는 100~300만원 정도하는 토스카, SM5 같은 중고차량을 주로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쭉 그냥 편하게 타고 다니는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차라는게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편하게 걱정 없이 타고 다니면 장땡이다.
삐까뻔쩍하게 세차도 되어 있고, 기스 하나도 잘 보이지 않는 자동차들이 많은 일반 한국의 아파트 주차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접했던 2년 동안의 작은 미국.
낮에는 사람하나 다니지 않는 조용했던 거리가,
저녁이 되자마자 화려한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지고, 시끌벅적한 팝송과 댄스 뮤직, 힙합 뮤직이 거리에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식당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맥주를 한잔 시작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이 곳은, 내가 지냈던 일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