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꽌씨의 중요성

인생 제2막, 여긴 일본인가 한국인가? (9화)

by 임유빈

회사에 들어오고 업무를 부여받은지 1년 반 된 시점이었다.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던 나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까지 함께 담당하게 되었고,

주요 생산 거점이 베트남이었기에 중국 법인과 함께 일을 하던 나는 베트남 담당자들과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조 메일에서만 보던 베트남인들과 처음으로 함께 Teams 회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당시 우리쪽 책임급 선배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셨다.

당시 예전에 배웠던 베트남어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었는데, 한국인이 갑자기 자기 나라 말로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인지 감탄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베트남 직원들은 다들 일본어를 꽤나 수준급으로 구사하였기에,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다.

Teams 회의가 끝날 무렵, 당시 현지 생산관리 담당자였던 베트남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유빈 상은 직급이 어떻게 되시나요? 대리이신건가요?"

나는 얼마 안된 일개 2년차 사원이라고 얘기를 하고 그 날의 회의가 끝났다.



베트남 현지 담당자들과의 업무 진행


지금까지 내가 담당했던 차량용 디스플레이 소재와는 다르게, 스마트폰 쪽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량이 제조 및 납품되고 있었고, 고객사의 다양한 기종에 맞추어 여러 사양으로 대응하고 있었기에, 그에 맞추어 소재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원자재 수급에 관해서도 꽤나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차량용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는 물량이 많지 않아, 기술 및 품질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었기에 주로 품질 보증 부서 담당자분들과 논의가 오고 갔었다면,

스마트폰 아이템은 반대로 현지 법인의 생산 관리 및 영업 담당자들과 논의를 진행하곤 했다.


베트남 법인의 영업 담당자들 중에는 나보다 조금 더 어린 신입 여직원 2명이 있었고, 타 고객사를 상대하던 남자 직원이 5~6명 정도 있었다.

한국 법인에서는 이들을 총괄 관리하기 위해 책임급 담당자와 수석급 담당자를 두 명 주재원으로 보냈던 상황이었다.


당시 현지 생산관리 담당자는 문의 및 조정 메일을 보내면 현지 법인 내에서 빨리 처리해서 회신을 주는 친구였다. 베트남 법인의 생산 계획을 거의 다 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친구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갈 수준이었다.

정말 급한 건에 대해서 밤에 전화를 걸거나, 주말에 전화를 걸어도 일부러 직장에 다시 출근해서 상황을 조율해줄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던 친구였다.

때로는 고객사에서 무리한 요구를 해서 진이 빠질 때에도, 이 친구가 발빠르게 대응해 줬던 덕에 힘이 났다.

그의 업무에 관한 열정은 항상 관계 팀원들을 모두 결집시키고 으쌰으쌰하게 해주었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 때마다 30분 정도 정기 회의를 진행하곤 했었는데,

주로 개발 샘플에 관한 일정 조율 및 물량 변동 사항 확인, 품질 이슈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고객사 한국 본사에서 변동 사항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베트남 쪽에 메일을 보내고는 하지만, 크로스체크의 목적으로 회의에서도 한번 더 언급을 하여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가본 하노이


어느 정도 업무가 적응되고, 담당자들과 말을 트게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당시 파트장이었던 수석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빈아, 나랑 같이 베트남 법인 출장 좀 다녀오자."


호치민은 여러번 가봤지만, 정작 북부 하노이쪽은 여행으로도 가본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었고, 회사에서는 한번도 해외 출장을 나가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이 첫 출장이었다. 고객사 베트남 법인과 논의해야 할 사항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베트남 법인 담당자들을 만나서 꽌씨 (신뢰 관계)를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인천공항에서 하노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형 비행기 (A321NEO)였는데, 예전 기종과 다르게 조종석 창문이 선글라스를 쓴것 같은 모습이라 별명이 '너구리'라고 한다.


만석의 승객들을 태운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굉음을 내며 이륙한 후, 중국 상해 상공을 지나 하노이를 향했다.

상해 인근의 바다는 정말 신기하게도 물이 서로 섞이지 않는 구간이 있는 것인걸까?

상공 10km에서 바라본 바다는 흙색과 남색의 경계가 보일 정도였다.


중국 상해 상공을 지날 때 (2023년 베트남 출장 당시)


그렇게 중국 상공을 지나 비행기는 무사히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고, 30여 분 정도의 입국 심사 대기가 끝나고, 공항 밖을 나오니 Teams로만 연락했던 한국인 주재원 분께서 마중 나와 계셨다.

이 분은 내가 입사하기 전에 이미 베트남에 가 계셨던 분으로, 내가 실제로 얼굴을 뵌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 법인은 한국과 다르게 영업 사무소가 하노이 시내 한 복판에 있었고, 실제 생산 관련된 사무실은 인근 외곽 공장에 있었다.


우리는 법인 의전용 차량을 타고 40분 정도를 달려 바로 외곽에 있는 공장으로 이동했다.

공장은 2층 건물로 구성되어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였다. 내부를 들어가보니 1층에는 회의실과 창고, 공장 시설이 있었고, 2층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들어가보니 약 40명 정도의 사무직 직원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는 Teams에서 프로필 사진으로만 봤던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이곳의 생산관리 및 품질관리 부장급은 한국에서 보낸 주재원 두 분이셨는데, 이 분들과 잠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생산관리 쪽 자리로 이동하여 낯 익은 베트남 현지 담당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시간 상 바로 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호텔 체크인을 위해 이동했다.


당시 머물렀던 호텔은 한국인 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 My dinh (미딩)이라는 곳에 위치한 Intercontinenal Hanoi Landmark 72라는 곳이었는데, 내가 배정받았던 방은 65층이었다.

짐을 풀고 숙소에 들어와서 창문 밖을 바라보니 하노이 시내의 전경이 쫙 보일 정도로 뷰가 좋았다.


현지 법인 영업 사무소도 호텔 건물에 같이 위치해 있었는데,

알고보니 12층부터 46층까지는 싹다 오피스이고, 61층부터 71층까지가 호텔이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만 한번 갈아타면 바로 사무소로 이동할 수 있어 정말 편했다.


당시 머물렀던 호텔 (2023년 5월)


바로 영업 사무소로 이동하여, 현지 영업 담당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영업부서의 부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저녁 식사를 먹으러 갔다.


회식 때에는 아까 공장에서 뵜던 한국인 주재원 2분과 영업 쪽 주재원 1분, 그리고 파트장님과 내가 참석했었는데, 한국식 소고기 구이집에서 소맥을 말아 먹었다.

역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 만큼, 한식집이 즐비하였다.


베트남 법인에 대한 현재 생산 상황, 품질 이슈, 고객사 한국 본사의 상황 등의 정보가 서로 오갔고, 그렇게 1차 회식이 끝나고, 호텔 내부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2차로 사적인 얘기를 주고 받았다.

경상도 출신이신 주재원 법인 부장님은 무뚝뚝해보이던 첫인상과 다르게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의리를 중요시하시는 분이었다. 직원들을 자기 식구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말에서 느껴졌다.

“유빈아, 베트남 오게되면 같이 잘 해보자!”

회사에서는 내가 진급하게 되면 차기 베트남 주재원으로 나를 보낼 생각이었고 당시 나도 빨리 주재원으로 나가고 싶었기에, 그 분께 주재원 생활에 대해 애로사항이나 장점, 현지 고객사 사정 등등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돈도 많이 주고, 베트남 사람들과 지낼 수 있는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호텔 레지던스에서 생활비 걱정없이 지낼 수 있다는게 컸다.)


당시 호텔 내부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노이 미딩 야경, 영업 사무소 빌딩 (2023년 5월)

두번째 날, 현지 고객사 담당자와의 만남


다음 날, 아침.

어제 먹었던 술이 아직 덜 깬건지, 지끈지끈함이 살짝 올라왔다.

파트장님도 아직 숙취가 깨지 않은 것인지, 피곤해 보이셨다.


조식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 주재원이 지내는 레지던스 호텔답게, 아침에는 식사를 하러 온 가족단위의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중국인 관광객들이거나 베트남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수많은 주재원 자녀들이 국제 학교를 가기 위해 셔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귀여운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을 뒤로 하고, 영업 사무소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현지 직원들은 다들 노트북을 바라보고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


오늘의 하루 일정은 고객사 방문 및 진척 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주였기에,

나 역시 있다가 고객사에서 있을 회의 내용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고객사로 이동했는데,

고객사는 시내에서부터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떨어진 공업 단지에 위치해 있었고,

해외 지사치고도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했다.

(이름 대면 알만한 그 곳 맞다.)

하긴, 스마트폰 기종 거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생산하니 규모가 큰 것도 이해된다.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고객사 현지 법인 구매 담당자 3명이 우리를 맞이했고,

명함을 주고 받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회의실에서 1시간 정도 소재 조달 상황, 품질 이슈 등을 논의하였는데, 이 분들은 예상 외로 한국어를 너무 잘하시기에 통역 걱정이 없을 수준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다시 차에 타고 사무실로 돌아오고, 어제와 같은 느낌으로 저녁 회식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베트남 현지 영업 과장님도 참석했는데, 이 분은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했기에,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호텔에 다시 돌아온 것은 새벽 2시 정도였는데,

꽤 술을 많이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날, 그리고 귀국


다음 날.

이상하게 오늘 아침은 숙취가 없다. 왜지?


오늘은 사실 상 특별한 일정이 없고 귀국 일정만 남아있었기에, 나는 법인 사무실로 출근한 후 읽지 못했던 메일들에 회신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베트남에 온 2일 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차량용 쪽에 이슈는 발생하지 않았는지 살펴 보기도 하고, 어제 고객사와 회의했던 내용을 메일로 정리하는 것으로 오전 일정을 마무리 했다.


점심 식사 때 오피스 빌딩 1층에 있는 피자, 파스타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탑승동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메일 업무를 진행하고, 마침내 귀국 편 항공기에 올랐다.


깜깜한 어둠이 찾아온 인천공항에서 리무진 막차를 타고 송탄으로 돌아왔다.


베트남 현지 법인 영업 사무소 모습과 귀국 날 점심 때 먹었던 파스타 (2023년 5월)

꽌씨(关系)


베트남 법인 담당자들을 직접 만나고 돌아온 뒤부터 이상하리만큼 업무가 잘 풀렸다.

생산 캐파가 부족함에도, 일부러 먼저 확보해주기도 하고,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되는 데까지 배려 해주려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확실히 얼굴이 익어야 되는 걸까?

업무라는 것도 결국 사람 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퇴사하고 꽤 지난 이 시점에서도 나와 함께 일했던 베트남 담당자들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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