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2막, 여긴 일본인가 한국인가? (10화)
내가 함께 일했던 중국의 지사는 홍콩 바로 위 쪽의 중국 남부의 광동성 (广东省) 에 위치한 선전 (深圳) 지사, 그리고 한국에서 조금 더 밑에 위치한 상해 (上海) 지사 두 곳이었는데, 선전 지사 영업 담당자는 새로 온지 얼마 안된 직원이었고, 상해 지사 영업 담당자는 한국말이 유창한 조선족 직원이었다.
다른 지역의 지사와 메일을 주고 받을 때에는 100% 일본어로 써진 편안한 메일을 받았었지만,
중국 지사와 메일을 주고 받을 때에는, 때때로 100% 순수 중국어로만 메일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일본어 쓰기가 귀찮은건가?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중국 지사에는 일본어를 못하는 직원들이 꽤나 많았다라는 것이었다.
중국어 한번으로 이렇게?
나는 선전 지사의 영업 담당자와 생산관리 쪽 담당자와 주로 일을 했었는데, 생산관리 담당자는 나보다 연상이었던 사람이었다. 처음 그녀에게 샘플 시제작 요청서를 작성하여 메일로 넣었을 때, 이렇게 답장이 왔다.
"こちらのところに図面の線がちょっとおかしいです。修正してください。
(이쪽 도면 부분에 선이 좀 이상해요. 수정해주세요.)"
다시 요청서를 수정하여 메일로 보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굉장히 차가운 말투로 이렇게 못을 박았다.
"生産キャパが足りないので生産できません。
(생산 캐파가 딸려서 안되요.)"
이건 뭐지? 처음부터 생산 캐파가 딸렸다고 얘기해줬으면 좋을텐데.
나는 가장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지만, 그녀는 답이 없었고, 내가 하루 뒤에 Teams로 다시 물어볼 때 그제서야 대답을 했다.
때로는 처음에는 '가능하다'라고 대답을 받았지만, 막상 납기 일정이 다 되어서 '안된다'라고 배째라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답장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그녀의 상사인 과장급 관리자에게 Teams로 연락을 넣어 해결하곤 했다.
그렇게 업무가 협조적으로 진행되지 않은지 몇 달이 지났을까.
지금까지 일본어로만 메일과 Teams를 보냈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중국말로 말을 걸어보았다.
“你好OO。你是哪里人啊。
(안녕하세요 OO씨. 어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평소 업무 답장이 늦게 왔던 그녀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다.
“哦哦,你会说中文啊!
(오, 너 중국말 할 줄 알아?)”
나는 그렇다고 얘기했고, 본인은 중부지방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언제 회사에 입사했는지, 거기 지사 일은 어떤지, 한국 지사쪽 말고 다른 거점이랑도 일하는지 등등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 이후 나는 문의 사항이 있거나, 시제작 요청을 하곤 할 때면, 중국어로 보내기 시작했고 현장 관계자들도 제작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즉각 조율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연관된 다른 관계자들이 함께 메일을 보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은 일본어로 작성하고, 중국 현장에서 처리해야 할 짜잘한 내용들에 관해서 중국어를 혼용해서 사용했다.)
중국말 한번 썼다고 이렇게 태도가 달라진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중국어를 쓸걸 그랬다.
위에서 썼던 것과 같이 상해 지사 영업 담당자는 한국말이 유창한 (북한 말투이지만) 조선족의 40대 아저씨였고, Teams 메시지보다는 전화 통화를 선호하는 분이었다.
처음 전화 통화를 했을때는 억양이 센 북한 말투에 조금 놀라긴 했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이 분이랑은 전화할 때 주로 한국어를 사용했었는데, 조선족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한국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서로 다른 경우도 있어 가끔 그 분께서 못 알아들으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 중국어로 얘기를 해주니, 그 분이 놀라셨다.
"유빈씨, 중국말 할 줄 알아요?
好厉害!你的中文很好!"
그 이후로, 한국말로만 얘기를 하던 아저씨는 나에게 전화를 걸 때면 가끔은 “哈哈,你好(하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하고 먼저 중국말로 말을 걸기도 했었다.
이러한 것들 때문일까?
평소 대응이 개판이었던 중국 지사에서 완벽하게 일정에 100% 맞춰주진 못하더라도, 답장을 빠르게 넣어주고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에 명확하게 얘기를 해주어, 우리 쪽에서도 고객사에 사정을 얘기하고 납기를 미루거나 무상으로 재고를 내보내는 등의 플랜B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감사하다. 그 쪽은 중국 거래처부터 시작해서 처리해야 할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100%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외국인에게 굉장한 호감을 갖고 잘 해준다고 하던데, 사실이었다.
나는 업무가 한가하거나 조금 짬이 날 때면,
그들에게 Teams로 연락을 먼저 걸어,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부분들도 물어보며, 그들과 한 발자국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광동어를 배우게 된 계기
나는 지금도 광동어(粤语, Cantonese)라는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
광동어란 영화에서는 홍콩 영화에서 주로 나오는 언어로 유명한데,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 전역에서 쓰이는 표준 중국어(普通话)와는 완전 다르고, 중국 내에서는 광동성을 비롯한 중국 남부 지방과 홍콩, 마카오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또한 미국, 캐나다, 동남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언어이기도 하다.
표준 중국어만 구사하는 사람이 광동어만 구사하는 사람과 만나면 서로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문법도 다르고 쓰는 단어, 발음 또한 다르다.
내가 이 광동어를 배워보려고 시작했던 계기도 사실 중국 지사 사람들 덕이었다.
선전 지사의 사람들이 얘기했었다. 본인들은 두 가지 말을 쓴다고. 광동어랑 표준 중국어.
공식적인 업무에서는 표준 중국어로 메일과 문서를 작성하지만, 편하게 대화할 때는 광동어로 얘기한다고 했었다.
처음에는 그렇구나 하고 그냥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만 했었는데, 이 광동어를 실제로 들어보니 마치 노래하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꽤 매력적이게 들렸다. (표준 중국어는 성조가 4성이지만, 광동말은 9성이다.)
그들과 친해지다 보니, 그들이 살고 있는 광동성이라는 동네 자체에도 관심이 생겨버렸고, 그게 광동어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배워볼 시도조차 안했겠지.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