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수원으로 방을 옮기다.

인생 제2막, 여긴 일본인가 한국인가? (11화)

by 임유빈
송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다.


2023년.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을 맞이하는 시즌이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회사를 향할 때마다 보였던 넓은 논밭에는 어느덧 벼가 거의 다 자라 농부들이 수확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또 다른 푸른 들판에는 빌딩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평택 송탄에서 생활 중이었던 나는 길고 긴 2년간의 월세 생활을 마치고, 방을 빼게 되었다.

(계약 기간은 1년이었지만, 사는 것이 나쁘진 않았기에 1년 더 연장을 했었고, 2년 지난 시점에서 해지했다.)


짐이 꽤나 많았지만 쓰지 못하는 옷들과, 버려야 할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니 5박스 정도로 충분했다.

처음 평택에 왔을 때 혹시나 나중에 또 이사갈지 몰라서 처음에 접이식 의자와 책상을 사뒀었는데, 이게 참 잘한 선택이다 싶었다.


송탄에서 살던 방을 정리하고 이사했던 날 (2023년)



곱분이 곱창


방을 빼면서, 송탄의 다른 곳을 알아볼까 했었는데, 사정이 있었기에 조금 더 위쪽인 수원으로 방을 알아보기로 했다. 수원쪽에서도 회사까지 연결되어 있는 고속도로까지 그렇게 멀지 않았던 곳인 병점역, 세류역 근처를 알아보게 되었다.


병점역 근처의 부동산 쪽에 연락해보니, 당시 S전자 쪽 대규모 공사로 인해, 인부들이 대거 몰려 있는 상황이어서 빈 방이 없을 정도였고 들어가더라도 몇 개월은 기다려야 했었다.


세류역 근처에는 ‘곡반정동’이라고 하는 비교적 조용한 거주 단지가 있었고, 마침 원룸 단지에 비어 있는 방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 곡반정동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뭐 이런 우스꽝스러운 지명이 다 있나 싶었다.

들을 때마다 곱분이 곱창이 자꾸만 생각나는 동네이다.)


공과금까지 다 해서 월세 38만원의 저렴한 방이었는데,

딱 혼자서 살 수 있는 방이었고,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2층에 있는 방이었기에 이사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기에, 여기에서 생활하면서는 에어컨을 튼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온돌 보일러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수원에서의 첫 생활이었다.


당시 이사 왔던 수원 곡반정동 원룸 (2023년)



피곤한 애벌레들의 출격


수원으로 이사온 뒤로는, 차를 타고 출퇴근 했었다.

'회사 출근 시간이 8시니까, 6시 20분 정도에 나가면 괜찮겠지.'


이사 다음 날, 나는 6시 20분에 나와서 회사로 향했다.

당시 평택화성 고속도로는 아침 출근 시간때마다 차들이 몰리는 곳이었고, 정확히 7시 시점부터는 향남IC부근부터 극심한 정체가 일어나 모든 차들이 10km/h 수준으로 서행하고 있었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치 애벌레들이 뽈뽈뽈 기어다니는 장면이 따로 없다.

저 사람들도 많이 피곤하겠지? 이게 적응되서 그냥 다니는건가?


그 날은 7시 55분이 되서야 회사에 도착했었고, 간당간당하게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거리가 30km도 안되는 이 구간이 1시간 35분이나 걸리다니.. 여기가 서울인가?..

밤에 차를 끌고 가볼 때는 30분도 안걸리는 곳이었고, 시속 100km/h로 쭉 달려도 될 정도로 차가 없었지만,

출퇴근 시간 대에는 정말 지옥이 다름 없었다.

거기다가 안개라도 낀다면, 그 날은 백퍼 지각 당첨이었다. 이 곳은 안개가 짙게 껴 바로 앞 차도 잘 보이지 않는 날이 많았었다.


당시 평택화성고속도로의 정체와 극심한 안개 (2023년)


나는 그 다음 날부터, 5시 30분에 일어나서 집에서는 무조건 6시를 넘기지 않게 출발했고,

다행스럽게도 그 시간 대에는 교통량이 굉장히 적었기에 회사에는 6시 30분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5시~6시 시간대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애벌레들이 너무 많았기에, 회사 근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7시 반에서 8시 정도에 출발하곤 했다.

도로에서 막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할 일을 좀 하면서 정체가 뚫리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하는게 역시 마음 편하다.


6시 40분 회사에는 교대 근무를 하는 생산직군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헌데, 마침 나와 똑같은 상황이었던 파트장님 (이 분도 나랑 같은 고속도로를 타고 왔었다.)이 한 분 계셨었고, 그 분도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하셨기에, 항상 그 분과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송탄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다닐 때와 비교해보면, 조금 더 빨리 일어나는 탓에 피곤하긴 했었다.

하지만 셔틀을 타고 출근할 때 사내 식당에서 5~10분 이내 초치기로 식사를 해야 했던 그 때와는 다르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에 밥을 먹으면서 오늘의 업무 계획을 곰곰히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제 하루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당시 나의 발이 되어 주었던 아이 (2023년)



오래간만에 만난 모교


그렇게 수원으로 이사를 온지 얼마 안되어, 나는 차를 타고 금방 갈 수 있었던 모교 대학교에 놀러 갔었고,

마침 졸업을 앞둔 대학교 후배들이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치킨을 사다 줬다.

다들 취업을 선택할지, 대학원에 진학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온 캠퍼스의 밤은 적막함 그 자체였지만, 당시 시험 기간이었기에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4년간 공부했던 강의실 건물에 들어가 봤는데, 의자며 책상, 그리고 건물 내부의 냄새까지. 내가 다녔던 그 때와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옛날 생각이 나서 의자에 앉아서 잠시 생각해봤다.

'내가 만약 대학생 때로 다시 돌아갔다면, 인생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다음 화에서.


당시 후배들에게 사줬던 치킨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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