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토 안젤리코의 <성모영보>
‘귀도 디 피에르(Guido di Piero, c.1395-1455)’는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며 산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자이다. 우리에게는 ‘천사 같은 수도자’라는 뜻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로 잘 알려져 있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복자품에 올라 ‘복자(福者)’를 뜻하는 베아토가 붙어 ‘베아토 안젤리코’라 불린다.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으며 마사초(Masaccio, 1401-1428)의 뒤를 잇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연결하는 피렌체 회화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이기도 하다.
안젤리코는 성모영보를 주제로 총 15점의 그림을 그렸다. '성모영보'는 루카 복음서에 출처를 둔 이야기로,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인하여 아기 예수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다.
오늘 살펴볼 그림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작품이다. 인물과 배경을 나누어 살펴보겠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로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성모 마리아이다.(천사도 인물로 간주하겠다) 대천사는 무지개를 연상캐하는 화려한 색감의 날개를 등에 가지고 있고, 파스텔톤의 분홍색 로브를 입고 있다. 목둘레와 소매, 치맛단과 가슴 쪽에는 황금색으로 패턴이 수놓아져 있다. 이러한 의상만 보더라도 평범한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얼굴 뒤편에도 황금색 패턴이 새겨진 후광을 확인할 수 있다. 가슴 앞쪽으로 양손을 모으고 있고, 한쪽 다리를 구부려 자신의 몸을 낮추고 있다.
가브리엘 맞은편에는 성모 마리아가 원형 나무 의자에 앉아있다. 천사의 옷과 같은 톤의 머리띠를 두르고 있고, 흰색 원피스에는 목둘레와 소매에 황금색 띠가 둘러져있다. 하지만 천사의 것만큼 화려한 패턴은 아니다. 무늬가 없는 하얀 원피스는 마리아의 검소함과 순결함을 나타내준다.
겉에 두르고 있는 푸른 망토자락에도 역시 황금색 띠가 둘러져있다. 망토의 푸른색은 신성함을 상징하는 색이지만, 안감의 초록색은 생명력을 상징하는 색이다. 마리아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 역시 가슴 앞으로 양손을 모으고 있고, 황금색의 후광을 가지고 있다.
천사와 마리아 모두 양손으로 가슴 앞에 모으고 있지만, 손의 위치는 다르다. 천사는 오른손을 앞으로, 마리아는 왼손을 앞으로 포개고 있다. 이러한 손 위치로도 안젤리코가 전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보통 가톨릭에서 오른손은 신의 메시지 전달, 축복, 권능 등을 의미한다. 신의 사자인 천사는 신을 대신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에 오른손을 앞으로 포개고 있다. 이러한 신의 메시지에 순종하는 의미로 마리아 역시 자신의 가슴 앞으로 양손을 포개고 있다.
다음으로 배경을 살펴보자. 대천사와 마리아는 건물 아래쪽에 있다. 기둥들로 둘러싸여 있는 로지아 공간이다. 이 그림이 위치한 곳을 다시 떠올리자면, 도미니코회의 수도원이다. 안젤리코는 수도원 내부에 벽화로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치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로 이 공간에서 성모영보가 일어난 것처럼 그렸다. 실재 수도원 로지아의 모습은 그림 속 공간과 유사한 구조이며 기둥의 모습과 아치 밑에 있는 검은색 철 기둥을 보면 알 수 있다.
로지아 밖으로는 정원이 보인다. 바닥에는 흰색과 붉은색의 작은 꽃들, 그리고 싱그러운 초록빛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림의 뒤편으로 가면 갈색 울타리가 있고, 그 뒤로는 푸른 나무들이 솟아나 있다. 로지아 밖의 푸른 배경은 구약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볼 수도 있고, 천상의 세계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정원은 성모 마리아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14-15세기에 성모영보 장면에 정원이 표현될 때는 "닫힌 정원"(호르투스 콘클루수스)의 의미로 울타리나 담장이 함께 그려진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마리아의 뒤편에 보이는 방 내부 창문을 보면 검은색 철조망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닫힌 정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정원은 단순하게 꽃과 나무가 있는 일반 정원으로만 볼 수는 없다.
울타리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푸르게 묘사되어 있고, 특히 눈에 띄는 키 큰 나무는 사이프러스 나무이다. 로마시대부터 무덤 주변에 심어졌다고 전해져 내려오며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에 영원성을 상징한다. 키가 큰 나무이기에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인 15세기 베아토 안젤리코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단순히 봤을 때에는 정원에 천사와 여인이 있는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가톨릭 세계관이 표현된 그림이다. 글보다는 그림, 즉 시각적인 것이 전달력이 뛰어나기에 당시 화가들은 이런 종류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제 이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천사와 여인이 있는 그림은 성모영보를 표현한 그림으로 이해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