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계에게 배운 것

물러날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중입니다.

by AVE

지난봄, 나는 홀로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 편 비행기를 기다리며 만만장야한 이 비행은 도대체 끝나긴 할 건가, 속절없이 감겨오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였다. 최종 목적지는 프랑스 리옹. 조카의 탄생 예정일에 맞춰 우리 가족 대표로 내가 그 역사적 사건에 참석하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사실 영광이라 하기엔 대단히 찝찝한 구석이 없진 않았다. 부모님 두 분은 출근하셔야 했고, 긴 휴가를 낼 수 없었다.


“가보긴 해야 하는데, 어떡하냐. 먼 타지에서 걔 혼자 잘할 수 있겠지?”


공부가 끝나면 금방 귀국하리라 여겼던 동생은, 지금의 프랑스 제부를 만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의 걱정 어린 그 한마디에 나는 척이면 척이었다. 그 말은 즉,


‘네가 대신 가볼 순 없겠니?’


라는 뜻이라는 것을. 육아하는 언니보다도 더 바쁜 막냇동생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기엔 K 장녀의 자존심은 허락하질 않았다(우리는 세 자매이다). 그렇게 허울 좋은 프리랜서인 내가 남편에게 두 아이를 맡겨둔 채 약 2주간의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늦봄에 나는 배우자의 파견에 동행하여 미국으로 가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되려 그랬나. 한집에 살지만 - 특히 막내는 아빠는 주말마다 만나는 주말 가족의 개념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 남편은 매우 바빴다. 하지만 파견 준비 기간으로 받은 꿀 같은 휴가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운을 띄어야 하나 며칠 눈치를 보던 중에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니가 가봐야지 누가 가보겠어. 처제도 말은 괜찮다 해도 내심 무서울 거야.”

“미안해서 어떡하냐. 잘 다녀올게.”


이 말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감출 수가 없었다.

떠나는 날 아침,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작별 인사를 고한 뒤 아이들은 엄마에게 등을 돌려 씩씩하게 각자 학교와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첫 긴 이별이었다.

비행기 좌석에 착석한 후 얼마나 지났을까.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기울어졌다. 그 굉음 때문이었을까. 울렁해진 기분 탓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서였을까. 신혼여행 이후 유럽행이 이리 오래 걸릴 줄 몰랐다는 소회 때문이었던 걸까. 결혼 10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 걸까. 약 10년간의 결혼생활과 꿈 많던 어린 시절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출국 일주일 전 갑작스레 결정된 프랑스행은 내 결혼생활에 나름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처음 가본 프랑스 리옹은 마치 나를 중세 시대로 초대하는 듯한 도시였다. 기원전에는 로마였던 곳, 성상 파괴 운동에 반발이 일어났던 곳, 종교 회의인 공의회가 두 번이나 열렸던 곳. 내가 배운 리옹은 그런 파란만장한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었다.

신식 건물들이 쭈뼛쭈뼛 올라와 있지만 도시의 큰 실루엣은, 군데군데 회색빛의 거대한 성당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회색빛 강과 교량들. 중세 그 자체였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푸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였다. 성당이 지어진 1800년대부터 마치 그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처럼 단단하고 꼿꼿해 보였다.


“며칠 뒤에 애기 올 거니까 그냥 집 깨끗하게 청소하고, 고양이들 돌보고 있을게.”

“언니, 지금 3일째 청소만 하고 있잖아! 고양이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해!”


동생과 제부는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고, 보호자 포지션에서 밀린 나는 동생부부의 성화에 못 이겨 홀로 구시가지로 구경을 떠났다. 혼자 오면 마냥 좋을 것만 같던 프랑스행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나를 어딘가에 묶어 놓았다.


‘왜 이래 촌스럽게.’


큰마음을 먹고 씩씩하게 리옹 미술관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지하철 카드를 찍기까지 3일이 걸렸다. 리옹 미술관은 17세기에 궁정 예배당으로 사용됐던 웅장한 건물이었다. 그에 걸맞게 입구에서부터 페루지오의 대형 제단화가 나를 맞이해 줬다.

나는 중세 미술을 연구하는 사람이면서 그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새하얀 칼크판에 달걀노른자를 섞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신생아의 새끼손톱보다도 가느다란 세필로 한올 한올 쌓아 올리는 기법을 쓴다. 중세 시대에는 유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이런 기법으로 힘겹게 그림을 그렸다. 그렇기에 우아한 예술가라기보다는 힘겨운 노동자나 다름없었다. 나는 어쩌면 나에게는 대선배 격인 작가들의 그림을 보고 그리기도, 또 그 도상을 분석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미술관이라면 온종일 밥을 안 먹고 지켜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르고, 흐뭇하다.


오기 전 미술관을 공부하고 온 것이 아니라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많은 그림들을 가까이서 보며 마치 짝사랑이라도 하는 소녀인 듯, 한 작품 한 작품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중에서도 나를 사로잡은 그림이 있었다. 제라드 다비드라는 화가가 그린 <성 안나의 계보>라는 16세기 그림이었다. ‘성모 마리아’와 그의 어머니인 ‘성 안나’, 그리고 ‘아기 예수’가 함께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주변에 다른 인물들도 많이 그려져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 그리고 그런 성모 마리아 모자를 바라보는 어머니 성 안나만 눈에 들어왔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image (2).png 제라드 다비드, <성 안나의 계보>, c.1500, 88cm x69.5cm, 리옹미술관, 리옹, 프랑스

성모 마리아는 붉은 카펫 위에 앉아서 두 손으로 자신의 아들인 아기 예수를 잘 받쳐 안고 있다. 눈을 내리깔고 아기를 바라본다. 그런 성모 마리아를 아기 예수의 외할머니 격인 성 안나가 바라본다. 대리석 의자에 앉아 무릎에는 책을 편 채로 의자 아래 앉아 있는 자신의 딸인 마리아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머릿속에 갑자기 엄마 얼굴과 딸아이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사실 이 도상은 ‘신앙의 계보’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그리고 어머니 성 안나가 딸인 성모 마리아에게 지식과 신앙을 직접 책을 읽어주며 알려줬다는 의미이다.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가. 어머니에게서 아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가르침이 내려온다. 그러나 이 장면을 오래 바라볼수록, 나는 이 질서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도상 속에서 가장 작고, 가장 연약한 존재는 아기 예수다. 하지만 이 아기는 단순한 양육 대상자가 아니다. 이미 완성된 구원의 의미를 몸에 지닌 채, 어른들의 세계 한가운데 앉아 있다.

성 안나는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책이 아니라 손주에게로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 역시 배우는 딸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는 보호자다. 이 장면에는 분명한 세대 질서가 존재하지만, 의미의 무게는 오히려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진다. 가르치는 자가 중심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모두가 한 아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도상을 보며 나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누가 누구를 키우고 있는 것일까. 누가 배우고, 누가 가르치는 것일까.'


성 안나는 책을 들고 있지만, 그녀가 전하려는 것은 글자 그 자체가 아니다. 마리아는 배우는 몸짓을 하고 있지만, 이미 곧 세상을 향해 아이를 내어놓아야 할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존재 자체로 어른들의 자세를 바꾸어 놓는다. 이 그림에서 교육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작은 존재가 주변의 모든 존재를 재배치한다.


나는 한동안 내가 아이들을 키운다고 믿으며 살았다. 무엇을 먹일지,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하며 아이의 작은 세계를 나의 큰 세계로 채워주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이가 물웅덩이를 피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나는 내가 왜 물웅덩이를 두려워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했고, 아이의 질문 속에서 질문을 잃어버린 나의 침묵을 발견했다. 아이는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내가 아이를 이끄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내 세계의 빈틈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성 안나의 계보> 도상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선명한 문장이 되었다. 이 도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가르침이 아니라 ‘물러남’이다. 안나는 책을 쥐고 있지만, 마리아와 아이 사이로 끼어들지 않는다. 그녀는 한 발짝 뒤에 서 있다. ‘내리사랑’은 여기서 완성된다. 모든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중심에 서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될 때.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어쩌면, 아이의 세상에서 엄마 자신이 점점 덜 중요해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성 안나는 책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책은 끝내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기꺼이 덮어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 안나의 계보> 도상을 나는 이제 이렇게 읽는다. 아이를 키운다고 믿었던 그 10년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씩 중심에서 비켜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고. 그리고 배움의 완성은, 언젠가 조용히 뒤로 물러날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