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떤 별을 쫓고 있나요?
중세는 종교 그 자체였다. 건물도, 삶도, 의상도 모두 종교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 시대의 중심에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 '성탄'이 있었다.
어릴 적 나는 크리스마스가 왜 그토록 유난스러운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온 세상이 반짝이고, 산타와 루돌프가 등장하며,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지 말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기 예수의 생일이라 서로 선물을 나누는구나'라고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 아이의 탄생은, 이제 종교를 넘어 전 세계의 축제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탄생의 순간은 전혀 축제답지 않았다.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헤로데 왕의 살해 위협을 피해 도망치듯 찾아든 곳은 여관에 딸린 마구간이었다. 말똥 냄새, 소똥 냄새가 진동하고 지푸라기가 깔린 그 허름한 곳에서 인류의 구원자가 태어난 것이다.
이 초라한 풍경 속에 대조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바로 동방박사들이다. 밤하늘을 관측하던 중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발견한 그들은, 그것이 '유다인의 왕'이 태어난 징표임을 직감하고 긴 여정을 떠난다. 마침내 마구간에 도착한 그들은 자신들이 준비해 온 귀한 선물을 아기 앞에 내려놓는다.
도상학적으로 이 세 명의 박사는 매우 흥미로운 상징을 지닌다. 노인인 멜키오르는 아시아를, 청년 가스파르는 유럽을, 아프리카계인 발타사르는 아프리카를 상징한다. 즉, 동방박사의 경배는 특정 지역의 사건이 아니라 전 인류가 무릎을 꿇은 보편적인 경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이 가져온 선물인 황금(권위), 유향(신성), 몰약(죽음과 부활) 역시 한 인간의 일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림 속 동방박사들은 화려한 장신구와 이국적인 복장을 한 엘리트 학자의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며칠 전 SNS에서 "동방박사들의 연구비는 어디서 나왔을까"라는 유머 섞인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과는 달리 연구자가 시대의 귀빈으로 대접받던 그 시절이 문득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연구비'가 아니라 그들의 '확신'이다. 그들은 단지 반짝이는 별 하나를 보고 어떻게 그 먼 길을 떠날 수 있었을까? 수천 킬로미터의 낯선 땅과 위험을 무릅쓰고, 초라한 마구간에 누운 아기 앞에서 어떻게 주저 없이 무릎을 꿇었을까. 아마도 그 확신은 눈으로 포착한 빛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해석과 선택, 그리고 용기가 응축된 '믿음'의 결과였다. 자신이 믿기로 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움직인 행위였다.
오늘, 우리가 쫓는 별은 무엇일까.
성공일까,
정의일까,
혹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 자신일까.
동방박사들은 단 하나의 별을 보고 인생을 건 길을 떠났다. 우리는 지금 어떤 별을 보고 있으며, 어떤 믿음을 선택하며 길 위에 서 있는가. 비록 우리의 눈앞에 마주한 현실이 허름한 마구간처럼 초라할지라도, 내가 선택한 별이 나를 이끌고 있다면 그 여정 자체는 이미 숭고한 경배가 된다.
지금, 나는 어떤 별 앞에 무릎을 굽힐 준비를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