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일

보이지 않는 손길에 기대본 적 있나요

by AVE

2년 여가 지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2년간의 코스웍과 동시에 졸업논문을 쓰고 졸업했다는 사실이. 당시 나는 주말부부였고, 한창 논문을 쓰던 때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과 4살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무척이나 필요한 시기였다. 당시에는 미안한 마음이, 현실의 바쁨과 공부에 대한 다급함으로 삐져나올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자신들의 등 뒤에는 책을 펴고 공부하거나,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엄마였기에 덩달아 책을 손에 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이따금 찾아오는 고요함에 나는 바짝 집중할 수 있었고, 빨리 빨리라는 살림 스킬을 연마할 수 있었다.


3학기 차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논문 쓰기는, 사실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스트레스였다. 나는 엄마였고, 다른 동기들과는 비교했을 때, 출발선 저편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이도, 시간적 여유도 그 어느 하나도 경쟁력 있지 않았다. 나는 더욱 부단히 노력했고, 밀도 있는 시간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었다. 3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이했음에도 명확한 졸업논문 초안이 나오질 않았다.

다행히도 다급함이 약이 되었을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작성한 초록에 가속도가 붙어 그대로 졸업논문 심사까지 갈 수 있었다. 추가 학기에 학비를 더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실소가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아이들을 재우고 고요해진 거실.

불쑥불쑥 끼어드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규칙적으로 공원 건너편으로 지나가는 지하철 불빛을 위안 삼으며 타이핑을 쳤다.


나만 깨어있는 시간이 아니리라.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이 일은 분명 보람된 일이리라.

좋아서 하는 일이니,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야지.


당시에는 세상의 오만 고난과 걱정을 나만 지고 사는 것처럼 생활했다. 내 공부도, 아이들 키우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종종 들려오는 ‘돈 안 되는 짓’이라는 비난도 견뎌내기 힘든 장애물 중 하나였다.

당시 내 노트북 화면은 한 그림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와 천사>였다. 지금도 종종 이 그림을 보며 아주 옛날같이 느껴지는 그때로 돌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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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마태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주름진 이마와 투박한 손, 맨발의 노인은 성자라기보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평범한 인간에 가깝다.

마태오는 글을 몰랐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그를 돕는 천사가 있다. 천사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마태오가 가야 할 문장의 길을 일러주고, 마태오는 그 보이지 않는 영감을 붙잡으려 혼신의 힘을 다해 펜을 움직인다. 그렇게 인류 역사상 위대한 도서 중 하나인 성경의 한 부분을 완성한다.


당시의 나 역시 그랬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돈 안 되는 짓'이라는 비난과 부족한 시간뿐이었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내 안의 가능성을 믿어야만 했다.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거실, 공원 너머로 지나가던 지하철 불빛은 어쩌면 카라바조가 그려 넣은 천사의 날갯짓이었을지도 모른다.


"너의 일은 분명 보람된 일이야"


라고 속삭이며 내 멈춘 타이핑을 재촉하던 보이지 않는 손길 말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도움을 기꺼이 믿어내는 과정이다. 그때의 논문이 그러했듯, 지금 내가 써 내려가는 이 에세이 위에도 이름 모를 천사의 속삭임이 머물고 있음을 믿는다. 때로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 되는 게 아니라, 간절히 믿는 마음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길을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