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감을 즐길 줄 아나요?
“나 서울 가고 싶어. 화려한 불빛이 나는 너무 좋아!”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신혼 초. 나라를 위해 일하는 남편을 따라 난생처음 읍, 면, 리 중 ‘리’ 주민이 되었다. 리민 생활은 또 다른 차원의 삶이었다. 화려함의 극치인 서울 한복판, 그중에서도 광화문이 직장이었던 나는, 마치 세상의 끝 같은 새카만 시골에 산다는 이 사실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불편한 옷이면 벗어던지면 그만이지만 신혼집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꿔버릴 순 없지 않은가.
결혼 11년 차. 지금은 운 좋게 도시에 살고 있다. 밤이면 화려한 불빛이 내 발 아래 펼쳐지고, 택배를 시키면 현관 앞에, 잠들기 전에 주문하면 눈 뜨기 전에 이미 물건이 도착해 있는 이 편리한 삶.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속세라던가. 농번기면 시속 10km로 내 앞을 지나가는 트렉터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일도, 주문을 하면 차를 타고 택배보관소로 찾으러 가야 하는 그 번거로움도, 밤이면 고라니의 울음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던 일도 이제는 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왜 화려한 도시가 나를 좋을까. 곰곰이, 진지하게 고뇌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도태되었다는, 사회에 도움을 주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화려한 도시의 직장인에서 이제는 시골에 사는 그냥 엄마. 이 사실을 오랫동안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나. 과거의 내가 많이 가엽다.
생각을 바꿔보면 나 스스로에게 투자할 시간이 많았던 시간이었는데. 비록 육아와 살림에 찌들었을지언정, 지금처럼 글을 쓰면서 나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땠을까? 대단한 작가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시간을 들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틈틈이 세상에 돌아가는 날을 위해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써보는 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이제야 밀려든다.
일개 욕심은 한순간이다. 과거의 나는 남자 친구의 직업을 존중했고, 기꺼이 내 것을 포기하고 그의 반려자가 되었다. 그러면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했다. 아이를 키울 때면 좋은 엄마로, 손님을 초대할 때면 좋은 부인으로. 내가 선택한 것들과 포기하지 못한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필요가 없었다.
결혼 11년 차, 이제 발아래 도시의 불빛을 두고 살지만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그토록 원했던 화려함 속에 몸을 던지고 돌아온 밤이면, 이상하게도 시골의 그 새카만 어둠 속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짙은 무기력이 밀려오곤 한다. 내가 연구하는 중세미술의 도상들처럼, 나의 삶도 화려한 금박과 어두운 배경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 무기력의 끝에서 나는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앞의 막달라 마리아>를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마리아 역시 한때는 화려한 도심의 주인공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장신구를 바닥에 던져두고 고요한 어둠 속에 앉아 있다. 그가 무릎에 올린 해골은 어쩌면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사회적 쓸모'나 '과거의 화려했던 명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해골을 보지 않는다. 대신 눈앞의 작은 촛불 하나를 응시한다. 그 불빛은 도시의 네온사인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 여기'의 나를 비추는 유일한 진실이다. 과거의 내가 가여웠던 이유는, 발아래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데도 멀리 있는 도시의 서광만 바라보느라 나를 온전히 안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나는 안다. 화려한 도시로 나가는 발걸음도, 다시 고요한 적막으로 돌아오는 이 무기력도 모두 나를 만드는 과정임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연구자의 고독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고통도 결국 이 작은 등불 아래서 비로소 의미를 찾는다. 세상의 불빛이 나를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등불을 믿고 응시할 때 비로소 나는 도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