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포도밭을 수확하는 중입니다.
중세.
암울하고 어두컴컴한, 페스트가 창궐하던 미개의 시대.
하지만 단지 지식이 없어서 혼란의 시대였을 뿐 중세인들은 고군분투했다.
세상을 더 잘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신과 다르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
시행착오의 시대.
중세는 실제적인 계급이 존재했다는 정도만 제외하고 지금과는 다를 바가 없는 시대였다. 몇 평의 집, 어느 동네의 집, 어떤 브랜드의 집.
가시적인 부의 과시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된 것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중세 시대의 지성에 비해 나아진 게 없을지도 모른다.
이름조차 고상한 <베리공의 호화로운 기도서>. 당시 프랑스의 국왕 샤를 5세의 동생이었던 ‘베리공’이 개인 신앙생활을 위해 제작을 의뢰했던 기도서이다. ‘랭부르 형제’라는 삼 형제는 뛰어난 필치로 아름다운 기도서를 제작했다.
하지만 시작은 창대했을지언정 그 끝은 비극이었다. 의뢰자와 제작자 모두 페스트로 삶을 마무리했다. 미완의 작품, 받아보지 못한 주문자.
시릴듯한 코발트블루가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기도서는 1월부터 12월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경에는 베리공이 소유했던 성들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자신의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노골적이고, 속물적인 그림이다.
어떤 달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족들이 연회를 즐기는 모습이, 어떤 달은 남루한 옷을 입은 농부들의 삶이 그려져 있다.
이외로 기도서에는 해당 달의 절기를 보여주는 천문학 지도가 같이 그려져 있는데, 다소 실용적인 부분도 보여준다는 점이 의아하다. 아마도 본인의 재물과 함께 관심 분야를 뽐내고 싶은 의도가 아닐까 싶다.
열두 개의 그림 중, 나를 사로잡는 달은 9월이다. <9월, 소뮈르 성>.
호화로운 궁전 앞뜰에서 농민들이 열심히 포도를 수확 중이다. 당나귀와 소들은 수확한 포도를 이고 지고, 소뮈르 성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내 눈은 성과 밭을 가르는 남루한 울타리에 유독 마음이 쓰인다. 발로 차면 금방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남루한 울타리. 화려한 소뮈르 성과 거친 포도밭을 가르는 건 높고, 견고한 성벽이 아니라, 고작 그 위태로운 나무 울타리뿐이다.
성안의 의뢰인 베리 공은 그 울타리 너머의 노동을 자신의 부를 증명하는 풍경으로 여겼겠지만, 진실은 다르다.
이 허름한 경계선은 사실 '향유하는 삶'과 '일구는 삶' 사이의 엄격한 갈림길이다. 연구자로서 문헌을 뒤지고, 작가로서 종이 위에 선을 긋는 일은, 화려한 성안의 연회가 아니라 뙤약볕 아래서 포도를 수확하는 농부의 고단함에 가깝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일은 결코 우아하기만 할 수 없다. 손에 흙을 묻히고 땀을 흘려야만 비로소 한 송이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포도밭처럼, 지식을 수확하고 형상을 빚어내는 일 또한 정직한 몸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나는 기꺼이 화려한 성보다 밖의 포도밭에 속하기를 택한다. 멀리서 보기에 그럴싸한 성벽 위의 권위 대신, 내 손으로 직접 일구고 땀 흘려 얻어낸 투박한 수확물의 무게를 믿기로 한다.
미완으로 남은 이 기도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이 있었기에, 비로소 이 시릴듯한 코발트블루의 미학도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보는 것 너머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화려한 성채의 위용이 아니라, 그 성을 지탱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내는 정직한 두 손의 가치를 긍정하는 일이다.
나는 문장들과 지식의 조각들을 수확하기 위해 오늘도 나만의 포도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