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어디에

생애 첫 모터바이크 여행, 엘 니도 가는 길

by 전윤혜


팔라완 섬 남부는 한국인 철수 권고 지역이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팔라완 여행을 계획했고 동생은 우리를 걱정하며 필리핀 상황, 한인 동정과 같은 기사 링크들을 보내왔다.


"니코, 남부가 정말 아름답긴 할 텐데...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아. 철수 권고면 여행 경보 중에서도 굉장히 강력하거든. 북부만 도는 건 어때?


니콜라스는 국가가 개인이 갈 여행 지역을 금지, 철수 등을 지정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할 테다. 국가는 국제 정세를 잘 살펴서 국민이 방문할 때 위험할 국가들을 미리 알려 줄 의무가 있다, 정도로. 누구를 주체로 둘 것이냐. 관점의 차이다. 그는 위험한 것을 알기 때문에 조심하면 된다며, 지역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걸 강요하거나, 일상에 피해를 주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된다며 나를 설득했지만 선뜻 가겠다고 할 수 없었다.


동생이 보내온 2019년 6월 필리핀 여행 경보 상황.


니콜라스가 오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팔라완 남부 마을들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남은 곳이라면 북쪽의 엘 니도El Nido. 팔라완 섬에 온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혹자는 위쪽의 코롱Coron 섬과 더불에 천국이라고도 부른다. 다녀온 친구들은 ‘이미 관광지화 되어 많이 망가졌지만, 그래도 섬들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했다.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차로 5~6시간. 돈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로 간다던데. 우린 당연히 차로 가겠지. 인터넷에서 로컬 버스는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며 겁을 준다(실제로 다 닳은 타이어로 운행한다). 여행객들을 위한 버스는 편도 17달러(약 860페소, 20,000원). 두 명 왕복이면 68달러(약 3,500페소, 80,000원). 에어컨 딸린 방에서 네 밤을 잘 수 있는 돈이다.


“모터바이크로 가는 건 어때?”


뜻밖의 제안이다. 태어나서 모터바이크라곤 대학교 새내기 시절 집 가는 길이 같은 동아리 선배 뒤에 타고 성수대교를 건넜던 단 한 번의 기억뿐. 굉음과 속도, 위험하니 다리 위에선 움직이지 말라던 선배의 단호한 모습. 흙먼지 이는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모터바이크라니, 불안한 나와 달리 니콜라스는 벌써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다. 그는 15살 스쿠터를 시작으로 쭉 모터바이크를 몰아 온 마니아다.


“우리 하루 400페소에 스쿠터를 빌렸어. 모터바이크는 내 생각엔 정말 비싸도 800페소 안이야. 한 명이 버스 탈 돈으로 둘이 갈 수 있는 거지. 아, 돈이 문제가 아니지. 윤혜, 만약 차를 탄다면 이동하는 동안 뭘 할 거야?”


“아마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겠지?”


“자, 모터바이크를 탔다고 상상해 봐. 온 세상 풍경이 내 거야. 시야가 트여 있어. 위로 옆으로 막힌 데가 없잖아. 바람도 느끼고, 냄새도 맡고. 가장 중요한 건 원하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거야. 어때? 돌아오는 길엔 바로 내려오지 말고 북쪽 마을들을 한 바퀴 돌고 올 수도 있어."


꽤 매력적이다. 니콜라스에게 ‘이동’이란 어딘가로 움직이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여행의 일부다. 알았어, 그에게 설득당한 나는 편안한 이동보다 불편한 모험을 택한다. 얼마나 엉덩이가 아플지 가늠이 안 되지만 온몸으로 섬을 느끼는 것도 좋겠다, 생각한다.


그동안 마신 맥주병을 반납하러 간 니콜라스가 한참이 되어도 안 돌아온다. 알고 보니 그새 현지 아저씨들이랑 흥정을 해서 다음 날 모터바이크 샵까지 타고 갈 트라이시클을 예약해 놓고 오셨다. 못 말려. 다음날 짐을 싸고 트라이시클을 탄다. 빵집에 들러 늘 그래 왔듯 빵을 20개 산다.


트라이시클에 붙은 여행 상품 전단. 엘 니도는 섬 투어로만 A, B, C, D 옵션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과 라군이 많다. © Yoonhye Jeon


우리를 알아보는 렌트 샵들은 도착하자마자 앞다투어 마이 브라더, 한다. 모터바이크가 필요하다 하니 현란하지만 실속 없는 기종들을 보여주며 못해도 하루 900페소를 부른다. 렌트 샵들은 공항 앞에 천막을 치고 장사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손님을 받는지 멀리서도 다 보인다. 둘러보는 집들이 늘어나자 근처 샵 아저씨들이 다 몰려온다. 800페소, 700페소 부르는 아저씨들에 당당히 “그때 당신 동료가 500페소라고 했어요.” 눈 하나 깜짝 않고 꽤 근사한 트레일러(오프로드용 모터바이크)를 하루 500페소(약 11,000원)에 빌린다. 아저씨는 손님을 놓칠 수 없어 받긴 했지만, 뭔가 묘하게 당한 듯한 표정이다. 시동을 걸고 상태를 체크한다. 와, 스쿠터보다 훨씬 크다! 아저씨가 고무줄로 백팩 두 개를 칭칭 동여매 준다.


핸드폰 거치대가 없는 탓에 내비게이션을 보지 못한다. 에어팟을 하나씩 나눠 끼고 음성 안내를 시작한다. 구글 목소리에만 의지해 가는 거다. 영화에서 보던 멋은 없다. 익어 죽지 않기 위해선 긴팔에 긴바지, 목엔 수건까지 둘렀다. 긴팔이 없는 니콜라스는 비치에서 덧입으려 가져온 내 리넨 셔츠를 입는다. 헬멧이 숨 막힐 듯 조여 온다. 해는 사납고 도로는 이미 뜨겁다.


“윤혜, 이건 스쿠터가 아냐. 앞으론 모터바이크 위에서 사진 찍으면 안 돼. ”


출발 전 니콜라스가 주의를 준다. 동아리 선배만큼 무섭진 않지만 긴장되기는 매한가지. 10시. 주유소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출발한다.



팔라완엔 푸에르토 프린세사부터 엘 니도까지 단 하나의 고속도로가 주요 도시들을 연결한다. 내가 탔을지 모를 관광버스도, 여행사 투어를 떠나는 미니 버스도 이 길을 같이 가고 있을 거다. 한적한 도로엔 강렬한 해, 흙먼지, 이따금 화물 트럭들이 내뿜는 매연. 여행사 버스들과 분기점에서 헤어진다. 동쪽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오도카니 바다를 바라보는 허름한 방갈로, 커피색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늘어선 야자수 사이로 지나는 다리... 사진 찍고 싶은 욕구가 하늘을 찌른다. 니콜라스가 귀신 같이 알고 말한다.


“앞으론 눈으로만 보는 거야. 사진을 찍다 보면 자꾸 사진에 의지하게 돼. 스스로 기억하려 노력해 봐.”


잡지 기자 시절 인터뷰를 하면 녹음은 필수였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녹음을 하지만 ‘역시’ 글은 녹취를 푼대로 써진다. 편집장이거나 오래 일한 선배(선생님)들은 주요 키워드들, 그리고 받은 인상들을 간단히 메모하고선 한참이 지나도 잊지 않고 기사를 썼다. 내용은 더 풍부했다. 물론 관록이 도왔겠지만. 내 글은 한 구절 한 구절 놓치지 않으려다 외려 용량 초과되는 모양새였다. 욕심 많은 글. 사진도 그랬다. 좋은 풍경이 나올 때마다 눈으로 감상하기보단 카메라를 켰다. 세상에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내 눈으로 먼저 담아야지, 하면서도 극복하기 어렵다. 이 모터바이크 여행이 좋은 연습이 될 것 같다.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니코! 니코! 나 더 이상 못 타겠어. 제발 어디라도 세워 줘!”


조금만 참아. 미안해. 도로에서 세우기가 너무 애매해. 나중에 마을 나타나는 대로 설게.”


엉덩이는 아픈데 이리저리 움직일 순 없고, 고무줄로 묶인 백팩이 빠질까 봐 불안하고, 에어팟도 귀에서 떨어진 것 같지만 일단은 참고 간다. 설상가상으로 니콜라스 헬멧이 커서 자꾸 뒤로 벗겨진다. 위험하다. 마을은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나타난다. 록사스Roxas.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에 있을 법한 마을 이름. 학교 운동장 어귀에 모터바이크를 세운다. 여전히 푸르른 학교. 알록달록 깃발들이 나부끼고 커다란 나무가 아이들을 굽어살핀다. 니콜라스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빵을 먹는다. 사실 나는 앉진 못하고 서 있다. 목이 막힌다. 조금 남은 물을 나눠 먹는다.


© Yoonhye Jeon


“기분이 어때?”


“니코, 진짜 힘들다 이거. 엉덩이가 네 쪽이 될 것 같아.”


“으, 그 느낌 알아. 나도 처음 탈 때 너무 끔찍했거든. 지금은 움직이기조차 무섭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움직일 수 있게 될 거야. 그럼 풍경을 즐기는 데도 좀 더 여유가 생길 거고. 특히 이 기종이 좁은 안장이어서 더 그래. 나는 오랜만에 타니까 너무 즐겁다. 이런 도로와 모터바이크 컨디션은 처음이라 모험 같기도 하고. 나만 즐겨서 미안해. 나중엔 정말 좋은 모터바이크로 같이 여행하고 싶다.”


니코는 헬멧을 가방 위에 묶는다. 몇 번이나 뒤로 벗겨진 헬멧을 쓰고 간다는 건, 안 쓰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란다.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자. 다리에 힘이 풀려 자꾸 벌어지는 무릎을 모터바이크에 붙이려 노력한다. 고행. 두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작전 타임. 이젠 엉덩이가 여덟 쪽이 될 것 같다.


“더는 못 갈 것 같아. 나를 두고가....”


타이타이Taytay에 도착한다. 팔라완의 고속도로는 타이타이를 기점으로 두 갈래로 나뉘고, 북쪽을 둥그렇게 돌아 다시 타이타이로 돌아온다. 교통의 요지라기엔 너무나도 작은 라운드어바웃이 동과 서, 남을 나눈다. 벌써 5시간을 달리고 있다. 한국에서 우등버스를 타도 힘들 시간. 어느 순간 체념하곤 내가 백팩인지 헬멧인지 사람인지, 그저 흔들리며 간다. 땀은 땀대로 흘리고 매연은 매연대로 마신다. 화장실도 가고 싶어. 목이 탄다. 탄산 생각이 간절하다. 라운드어바웃을 지나 첫 번째 보이는 가게에 선다. 어린 소녀가 보는 간이 가게. 오래된 나무 가판대 위로 빛바랜 과자들이 조롬 늘어서 있다. 그냥, 어서 스프라이트, 스프라이트를 주세요.



© Nicolas Riou




“와...”


서쪽으로 바다가 나타난다.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 잔잔한 파도. 커브를 돌 때마다 탄성이 나온다. 엘 니도가 가까워지고 있단 뜻이다. 홀로 선 나무를 보곤 니콜라스에게 부탁한다.


“여기서 서자. 나 이 사진은 꼭 찍고 싶어.”


죽어가는 나무. 잎을 다 떨군 마른 나뭇가지들이 바닷바람에 굽어 있다. 허리춤까지 파고든 잡초들. 그 모양새가 퍽 쓸쓸하다. 점점 힘을 잃어가다 검어지고 말라가며 언젠간 쓰러지겠지. 우리는 그저 고요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 Yoonhye Jeon


공사 중인 호텔들이 하나둘 보인다. 우리를 맞는 커다란 석회 절벽. 약간은 무섭기도 한 웅장함. 엘 니도다.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우리의 목적지. 얼굴이 매연으로 시커멓다. 니콜라스는 헬멧도 없이 햇빛 바람 다 맞았다. 선글라스를 벗으니 영락없는 빨간 판다. 머리는 또 어떻고. 온 머리카락이 넘어가 꼭 곱게 머리 빗은 할머니 같다. 너무 웃겨. 킥킥대며 사진을 남긴다.


팔간 판다와 탄광 소녀.


“웰 던(Well done, 잘했어)! 웰 던! 윤혜, 아임 쏘 프라우드 오브 유(I’m so proud of you, 나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쓰러질 것 같다. 모터바이크 여행이라... 낭만은 무슨, 극기 훈련이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보던 넘어지고 고장나고 떨고 고생하던 일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니콜라스와 농담한다. 천국 오려다 진짜 천국 갈 뻔했다고. 그러나 그 길에서 만난 풍경들, 순간 지나치며 눈에 담은 멋진 풍경들이 좀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오는 길에서 천국을 살짝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낭만을 본 것 같기도 하고.



Welcome to El Nido!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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