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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Jul 02. 2021

누구나 좋아하는 도시 리옹, 그리고 그곳의 춤

제19회 리옹 댄스 비엔날레-1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리옹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면적의 5배에 달하는 프랑스는 지역마다 그 색이 참 강하다. 자연에 순응하고 오래된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특유의 기질도 한몫할 것이다. 지역색이 강하다는 건 한편 도시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도 되는데, 프랑스인들과 그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리옹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리옹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기자기한 도시와 강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즐거운 경험담이 뒤를 잇는다.


강 양쪽으로 솟은 리옹의 상징적인 두 언덕에서. (좌) 크루아 루스에서 바라본 손 강, (우) 푸르비에르 성 근처의 공원에서 본 손 강과 프레스킬


리옹은 모든 것이 적당한 도시다. 파리와 적당히 가까우며, 리옹을 가로지르는 손과 론 강은 마음을 이곳을 풍요롭게 한다. 작은 언덕에 올라 강 사이에 낀 아담한 도심을 굽어보자면,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는 그 풍요가 무엇인지 절로 느끼게 된다. 서쪽의 평원과 동쪽 알프스에서 온 좋은 식재료는 이 도시를 대대로 ‘미식의 도시’로 만들기도 했다.


환경이 풍요로울수록 동시대 예술은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리옹은 새롭다. 도시가 젊기 때문이다. 이 말은 젊은 사람들을 충족시킬 만한 문화적 요인이 풍부하다는 뜻도 된다.


리옹에는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젊은이들은 로마 시대의 야외극장에서 콘서트를 즐기고, 밤이 되면 강가에서 춤을 추거나 파티를 한다. 기분을 내고 싶을 땐 무용을 본다. 서너 개의 메인 공간에서 매주 새로운 작품이 오르는데, 티켓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맥주 두어 잔 할 돈으로 공연을 보는 것이다.


리옹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부숑Les Bouchons의 모습들. (좌) 비유 리옹(Vieux-Lyon, 구시가)의 레스토랑 골목, (우) 벨쿠르 레스토랑 골목.


이러한 젊은 리옹 문화의 큰 축 중 하나가 바로 현대무용이다.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1,140석 규모의 춤 전용 극장 메종 드 라 당스가 있고, 파리에 있는 국립무용센터(CCD)의 하나뿐인 분원이 리옹에 있으며, 근교 릴리유 라 파프(Rillieux-la-Pape)에는 국립안무센터(CCN)도 있다. 명건축가 장 누벨이 증축한 리옹 오페라 극장의 현대적인 꼭대기층에서는 리옹 오페라 발레의 신작 연구가 이어진다. 1984년 시작된 리옹 댄스 비엔날레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무용 페스티벌 중 하나다. 비엔날레는 매년 현대미술 비엔날레와 댄스 비엔날레가 번갈아가며 열린다.


6월 1~16일 열린 올해 댄스 비엔날레는 100만 유로(약 13억 5천만 원, 전체의 1/8 가량)의 예산이 준 데다 방역 수칙, 오후 9시라는 야간 통금 때문에 아쉽게도 대규모 거리 행진이나 무료 프로그램, 공연 후 대화의 장은 예년만큼 마련되지 못했지만, 한편으론 보다 작품에 집중할 환경이 되기도 했다.


(좌) 메종 드 라 당스, (우) 꼭대기 층을 장 누벨이 돔 형태로 증축한 리옹 오페라 극장. 오페라 사진 © Stofleth/Opéra National de Lyon


하이브리드 아티스트, 파파이오아누

올해 가장 주목받은 무대는 단연 그리스 안무가 드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신작 ‘트랜스버스 오리엔테이션’(Transverse Orientation)의 초연이었다. 3~6일 오르는 그의 초연을 보러 본지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 등 외신과 프랑스 유력 일간지의 기자들이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빌뢰르반(Villeurbanne)의 TNP극장에 진을 쳤다. 트랜스버스 오리엔테이션’은 본 비엔날레와 아비뇽 페스티벌을 비롯해 10개가 넘는 국제 페스티벌과 공동 제작했고 또 그보다 많은 수의 극장들로부터 제작 지원을 받았다. 앞으로 프라하와 도쿄를 비롯한 3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도심 외곽에 지어진 국립대중극장(TNP/Théâtre National Populaire) 외관과 주변.  

파파이오아누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폐막식을 총감독한 그리스의 국민 예술가로, 시각예술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은 안무, 조명, 무대 디자인, 음악 모든 분야를 관할하는 멀티 아티스트다. 다양한 극적 요소를 결합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내는 그의 작품은 무용 작품이라기보다 총체적인 무언극에 가깝다. 따라서 언뜻 무용적인 요소가 옅은 피나 바우슈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피나 바우슈의 ‘카페 뮐러’는 10대이던 파파이오아누에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 파파이오아누는 리옹 초연 후, 다음 행선지 프라하 극장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의 능력은 무용도, 연극도 아닌 그 사이의 결합물(hybrid)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연극을 할 수 있다면 연극을 하거나, 안무를 할 수 있으면 안무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하이브리드 작품만 할 수 있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2004년 올림픽 개막식 장면들. © AP, Jamie Squire
2004년 올림픽 개막식 장면들. 소년이 종이배를 타고 나가는 모습은 88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Adam Pretty, Ian Waldie
(좌) 파파이오아누가 아테네 올림픽과 신작 안무를 비교한 사진. (우) 트랜스버스 오리엔테이션 중. 그의 상징과 같은 신체 결합. © Julian Mommert

지금까지 그의 작품 속 무용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을 능동적으로 출입하고, 변형하며, 재구성해왔다. 움직임을 분절하고 몸과 몸을 결합해 반인반수와 같은 새로운, 또는 신화적 형태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나, 또 예측할 수 없는 서사 속에서도 결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잃지 않는, 극과 회화 사이 어디쯤에 있는 그의 작품들은 파파이오아누의 ‘하이브리드’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보여준다.


* 본격적인 작품 리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월간객석 2021년 7월호에 실린 기사의 원문입니다.

* 크레딧이 없는 사진은 모두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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