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가 하루 만에 마르는 겨울 발리에 도착했다. 필리핀에서부터 입고 온 축축한 옷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바다가 아닌 정돈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며칠을 논두렁에 앉아 한없이 얘기만 나누기도 했고 좋아하는 식당엔 하루 두 번씩 출근 도장을 찍곤 했다. 사람의 냄새, 돈의 냄새,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는 곳이자 섬기는 수많은 신들만큼이나 독특한 역사를 간직한 곳. 정글, 논, 바다, 산 모든 자연을 지척에서 느끼며 단꿈을 꾸었고 조그만 스쿠터로 탈탈거리며 부자 동네와 서퍼들의 해변, 불빛 없는 산속 가리지 않고 누볐다. 새벽녘 협박을 이겨내고 힘겹게 오른, 바투르 산 정상에서 바라본 발리의 산과 구름은 신성하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