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트레킹에서 일출을 놓치다

발리 바투르 산 2 함께 헤쳐 나와주어 고마워

by 전윤혜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가이드 연합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 네 명이 입구를 막아선다. 그냥 지나치려던 우리를 “헤이, 헤이 헤이!” 부르더니 가이드 없는 입산을 불허한다며 80달러를 내라고 한다. 반복되는 실랑이. 그러나 지금껏 잘 빠져나온 우리도 아저씨 네 명은 무리다. 아저씨들은 스쿠터 시동을 끄고 따라오라며 우리를 인포메이션 센터(처럼 꾸민 건물)로 데려간다. 입산 신청서(처럼 꾸민 가이드비 청구서)를 내밀며 싸인하란다. 신청서엔 이미 날짜와 가격 그리고 가이드 싸인까지 다 되어 있다.


“어디 소속이세요?” “증명서 있나요?” 물으니 자기들은 공적으로 일하는 가이드 연합 소속이고 증명사진이 들어간 가이드 연합 플라스틱 카드를 보여준다. 사진이 다 번져서 본인인지 알 수도 없지만 중요치 않다. 아저씨는 이미 공무원이 아니니까. 자기들은 한사코 법을 준수한다는 아저씨 넷에 둘러싸여 꼼짝없이 입산 신청서를 쓸 판이다. 거의 포기한 니콜라스는 주섬주섬 돈을 찾는다. “니코, 잠깐 기다려 봐.” 신청서에 프린트된 주소를 구글맵에 쳐 본다. 하. 투어 에이전시 주소다. 끝없는 투어 에이전시의 덫. 가이드의 늪. 이렇게 돈을 벌고 싶을까?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고 대꾸할 힘도 없다. 몸이 떨린다. “더이상 우리한테 말 걸지 마세요.” 아저씨들이 뒤에서 뭐라든 그냥 다 무시하고 주차장으로 오른다.


The Association of Mt.Batur Trekking Guide. 바투르 산 트레킹 가이드 연합. 주소는 투어 에이전시. 왓더. © Yoonhye Jeon




6시. 곧 동이 틀 시간인데 트레킹은 시작조차 못했다. 주차장엔 표지판도 없고 옆으론 사원을 짓는지 온통 공사판이다. 덜 완성된 신상과 거대한 돌들 사이에서 헤매던 우리는 결국 어스름이 걷힐 때까지 진짜 ‘스타팅 포인트’를 찾지 못한다. 공사판 언저리에 앉는다. 가이드들을 떨치느라 다 써 버린 에너지, 어둠, 어디서 누가 또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스트레스, 높은 고도 탓에 추운 공기. 몸이 떨린다. 눈물도 조금 난다. 지금까지 정신으로 버티느라 몸도 힘들었나 보다. 이제야 패닉이 온다. 세차게 떠는 몸을 니콜라스는 가만히 잡아주고, 자기 경량 패딩을 벗어 입혀준다. 눈앞으로 해가 떠오른다.


1,300m. 바투르 산 주차장. © Yoonhye Jeon


“일출을 놓쳤어. 내일 다시 올까?” 다시 일출을 보러 올지, 이 지긋지긋한 산을 포기할지, 아니면 온 김에 트레킹이라도 할지. 묻는 내게


“산 꼭대기에서 보는 일출은 얼마나 멋질까. 물론 아쉽지만, 난 여기도 너무 아름다워. 우리가 같이 어려운 순간을 헤쳐 나왔기 때문에 맞을 수 있는 순간이잖아. 사실 일출은 어디서든 볼 수 있어. 나는 그냥 함께 헤쳐 나온 사람이 너이고, 함께 일출을 보는 사람이 너여서 행복해.”


우리는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로 결심한다.





7시 15분. 등산객들이 하나 둘 내려온다. 그들이 어디서 오는지 거슬러 올라가 드디어 진짜 ‘스타팅 포인트’를 찾는다. 공사판 한쪽 벽 옆으로 난 자그맣게 난 길. (혼자 오는 이는 절대 못 찾으리. 깜깜할 땐 열 명 와도 못 찾으리.) 다른 등산객을 에스코트하던 가이드들은 여전히 너희 가이드는 어디에 있냐고 우리를 탐문한다.


“우리 가이드는 먼저 올라갔어요. 우리가 늦었거든요.”


내려오는 수백 명의 등산객 중 가이드를 끼지 않은 이는 우리뿐이다. 아, 그래서 그들이 필사적으로 난리를 쳤구나. 이 모습을 다른 관광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예외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구나. 오고 싶은 사람들은 돈을 내야만 올 수 있도록. 사람의 욕심은 그렇게도 끝이 없는 거구나.


마주치는 가이드마다 우리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처음엔 순수한 관심인 줄 알고 한국, 프랑스라고 대답했는데 하나같이 물으니 그것도 이상하다. 그다음부터는 중국, 독일에서 왔다고 바꾸어 말한다.



혼자 온 사람들이 어떻게 이 입구를 찾을까? = 모두가 가이드와 함께. © Yoonhye Jeon


8시 20분. 해가 다 뜨고서 일출 포인트에 도착한다. 하나 있는 자그만 슈퍼엔 먼지 앉은 스니커즈, 봉지 과자, 콜라들을 놓고 판다. 산이라 배가 넘는 물가. 고민하다 오레오와 커피 한 잔(6,000원)을 시키고 나눠 먹기로 한다. 아르바이트하는 젊은 청년이 묻는다. “배고프세요?” 끄덕끄덕하자, “빵이랑 계란 있는데 좀 드릴까요?” 순간 여기까지 덤터기를 씌우는 거 아닌가 나쁜 생각을 한 나에게 “마침 조식을 안 먹고 간 손님들이 있어요. 어차피 저도 안 먹을 것 같아서요. 커피랑 같이 드세요.” 하도 호되게 당해서인지 이젠 조그만 호의에도 눈물이 찔끔 난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은색 쟁반에 조촐한 아침을 담아 벤치에 앉는다. 눈에 담기지 않는 멋진 풍경. 해는 중천이지만 그렇기에 볼 수 있는 진짜 분화구의 모습. 용암이 굳은 대지, 그 위로 뚫고 나온 작은 나무들, 옅은 구름이 덮인 호수, 구름 위로 아스라이 솟은 세 개의 봉우리- 신성한 아궁산. 넋을 놓고 보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내려가던 한 등산객이 묻는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두 분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꼭 찍어 드리고 싶어요.”



9시 30분. 거짓말처럼 한 사람도 산에 남아 있지 않다. 여기까지 온 김에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자, 하며 패기롭게 올라간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가파른 현무암 길을 네 발로 기어서. 좁은 능선을 따라 걷다 조그만 바위를 발견하곤 걸터앉는다. 고요한 산. 어둠이 걷히며 함께 사라진 끔찍한 시간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운 풍경. 야생 원숭이들이 나무를 흔들고, 곳곳의 작은 구멍에선 연기가 피어오른다. 산이 숨 쉬고 있구나. 우리처럼 숨 쉬고 있구나.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뭔가 모를 뭉클함에 가슴이 찌르르 울린다. 우리가 신성한 산에 앉아 있구나.


“윤혜.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오르기까지 겪은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때때로 힘든 순간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잖아. 당시엔 정말 끔찍했지만 나는 이 경험이 우리를 더 단단하고, 가까워지고, 끈끈해지게 만들었다 생각해. 이제 우린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아. 어떠한 상황이 와도 나는 너를 믿을 거거든.”


“나도 잊지 못할 하루였어. 고마워. 함께 헤쳐 나와주어 고마워.”


내려가는 길, 홀연 하얀 개가 나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이드가 되어준다. 길어지는 이야기 탓에 우리가 늦으면 그늘 밑에서 졸기도 하면서.



멀리 구름 위로 솟은 세 봉우리.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모습. 발리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아궁산을 신성히 여기는지 알 것만 같다.
고마워요 우리 가이드. © Yoonhye Jeon


* 다행히 스쿠터는 불에 타지 않았다!




저희 경험을 바탕으로 팁을 만들었습니다. 혹여라도 가실 분들을 위해. 널리 알리기 위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