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에서 칸까지, 비현실적 사흘
지난 토요일 경보 3단계 발령 후 프랑스의 온 호텔이 영업을 멈췄다. 모든 손님을 쫓아낸 일요일은 자연히 니콜라스의 마지막 근무 날이 되었다. 호텔 곳곳에 전시된 로스차일드 가의 멋진 컬렉션을 언젠가 꼭 보여주고 싶어 했던 그는 모두들 마지막 정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가운데 나를 초대해 호텔 투어까지 시켜 주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통나무 호텔.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해는 넓은 천장을 가까스로 채우고 있었다. 멋지게 세공된 가죽 의자들과 양털 덮개, 인도네시아 직물들, 도미니끄 뿌샹Dominique Pouchain의 이국적인 조각들, 안토니오 다 로스Antonio Da Ros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유리 꽃병들. 아무도 없는 로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서둘러 구경하고 그가 일했던 곳곳을 드라이브했다. 몽 다흐부아Mt D’Arbois와 꼬뜨 두미으Cote 2000. 아흐부아 산과 해발 2000미터. 온통 하얀 눈밭이던 이곳마저도 눈이 제법 녹아 나무들이 드러났다. 부자들을 연일 실어 나르던 커다란 헬리콥터 승차장은 흔적도 없이 조용했고 절벽 아래의 멋진 스키장들은 썰렁한 ‘금지 구역’이 되었다. 알프스의 스키 시즌인 3월이 그렇게 끝났다.
프랑스인들은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으니 빵과 와인을 들고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왔다. 마트에 가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데 마트 점원들이 아무도 마스크를 안 끼고 있어서 거리두기가 소용없었다. 마스크 자체가 없기도 하고. 빵집엔 한 번에 한 명의 손님만 들어갈 수 있다. 바깥에 조금씩 떨어져 줄을 섰다. 빵집에 빵이 떨어져 브라우니로 점심을 대신했다. 두터운 겨울 부츠와 퍼 코트, 화려한 스키복이 거리를 메우던 므제브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루 만에.
다음날인 월요일 오후 8시 마크롱이 전 국민 자가격리를 선포했다. 니콜라스의 겨울 시즌이 끝난 것을 조촐히 축하하며 럼콕이나 만들어 마시던 중이었다. 자그만 방 벽에 딸린 티비로 라 마르세예즈가 흘러나왔고 니콜라스는 장난스레 손을 가슴에 얹었다. 파란색 양복을 입고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마크롱은 또박또박 ‘누 쏨 장 게흐Nous sommes en guerre,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를 반복했다. 그 분위기는 자못 비현실적이었다. 우리는 다음날인 화요일 정오를 기점으로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니콜라스 할머니마저 인생 처음 겪는 강제 격리. 그제야 사람들이 코로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밤새 짐을 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가격리를 연고도 일도 없는 알프스에서 할 수 없었다. 칸의 그의 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낮 12시부터 경찰들이 밖에서 검문할 테니 서둘러 짐을 싸고 출발해야 했다. 위스키콕을 연거푸 들이키던 니콜라스는 때때로 이 얘기, 저 얘기를 꺼냈다. 마크롱의 대응이 너무 지나치다며, 독감에 그렇게 신경 쓸 거 나라가 사람 죽는 것이 그렇게 두려우면 전쟁은 왜 하고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거냐며,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를. 나는 생각했다. 그의 세대는 오래전 그들의 조상들이 벌여 온, 아니 지금도 벌이고 있는 만행들을 포장하는 데 질렸을지도 모른다. 프랑스가 망쳐 놓은 아프리카의 현실, 아메리카가 자기 나라인 양 살아가는 미국의 진짜 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이야기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마 호주에 살면서 약에 절은 애보리진들의 실상을 본 뒤로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다. 보수와 진보 모두에 질려버린 이 세대는, 등 뒤로는 그런 일들을 벌이는 마크롱이 갑작스레 독단적으로 국민의 안위를 염려하며 모든 생활을 멈춘 이 초유의 사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말에 일부 동의하지만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그렇게 가벼운 사안만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이미 한국의 가족들이 어떻게 버텨내 왔는지 알고 있으니까. 너희는 피크닉을 나가도 우리의 국민성으론 절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이니까. 어쩌면 이건 정말 비상사태일지도 모른다고. 곧 심각해질 거라고. 우리가 그전에 생각지 않았던,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끔찍한 일들을 눈 감은 것들에 대해서는 항상 사람은 그런 거야, 하고 대답했다. 원래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게 돼 있다고. 나쁜 일이 벌어지는 걸 알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게 다 사람이 가진 나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거고, 우리는 항상 그 나쁜 마음의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어쩔 땐 맘 편하려 그냥 나쁘기도 한다고. 모두가 네가 꿈꾸는 것 같은 성인군자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며. 우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 제국주의와 자급자족을 경쟁으로 내몬 자본주의를 이야기했고 잘도 모르면서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를 들먹였다. 언제나 나는 그래왔다. 싸늘해 보이겠지만 사람은 그런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라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 그가 몇 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현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하다 보니 시계는 자정을, 짐을 싸다 보니 4시를 가리켰다. 이대로 잠들었다간 영영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식기 세척기를 돌리고 청소를 했다.
두 시간 뒤인 6시 알프스를 떠났다. 입김이 났다. 아직 산등성에 반달이 걸려 있었다. 여긴 고도가 높아 달이 참 크고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보지 못하겠구나. 정든 빵집에 들러 갓 나온 크루아상과 빵 오 쇼콜라를 8개나 샀다. 불랑제(제빵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행운을 빌며 머랭 쿠키와 커피를 선물해 주었다. 이왕 떠나는 거 고속도로 말고 알프스에서 그르노블, 마르세유까지, 마르세유에서 칸까지 국도를 타고 달렸다. 그렇게 아름답다던 그르노블은 잿빛 유령 도시가 되었다. 사람들은 마트 앞에 일렬로 줄을 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난 다음 꼭 다시 이곳을 찾자고 약속했다. 굽이굽이 산을 따라 내려가며 멋진 경치들, 오래된 마을들을 구경했다. 프랑스는 참 큰 나라다. 설산부터 바위산들이 회색빛 집들과 침엽수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더니 남쪽으로 갈수록 포도밭이, 주황색 지붕의 벽돌집들이 나타났다. 곳곳엔 기괴한 바위와 겁 없이 융기한 절벽들이 그리고 탁한 에메랄드빛 하천과 평원이 펼쳐졌다. 1700년, 1800년대에 지은 집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덩달아 몇 백 년 되었을 종이 댕댕 울렸다.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프랑스의 멋짐은 그 이상한, 누가 뭐래도 피크닉 나가던 국민성이 한몫하는구나. 해가 좋으면 나가는, 누가 뭐래도 내 순간을 즐기는 마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함을 먼저 슬퍼하는 그들의 마음. 낡았다고 바꾸지 않는, 자기들의 늙은 멋진 집을 고수하는, 누가 억지로 시키든 뭐래든 내 멋대로, 하고픈 대로 두는 그것. 그러나 전염병엔 그 멋짐이 쥐약이구나. 니콜라스는 9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했다. 창문 열면 온몸이 얼 것 같았던 겨울밤이 하루 만에 온 창문을 열고 자는 여름밤이 되었다. 서늘한 바람에 흰 레이스 커튼이 흔들렸다. 갑작스레 겨울이 끝나고 봄마저 지났다. 사흘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