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산 로드로 가는 조금 이상한 방법

태국 방콕 딸랏 노이, 짜오프라야 강, 카오산 로드

by 전윤혜


커다랗고 하얀 파이프 아치가 받치고 선 후알람퐁 역사는 굉장히 넓었다. 플랫폼 끝에서 바로 대합실이 이어졌다. 통유리로부터 쏟아지는 빛이 회색빛 역사를 한가득 채우는 우리나라의 기차역과 달리, 오래된 천장 꼭대기의 유리길로부터 말간 빛이 내려오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다. 빛은 어두운 벽과 색유리창에 부딪혀 이리저리 굽어졌다.


12시간 기차를 타고 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방콕(1,569㎢). 서울(605㎢)의 약 2.6배 되는 크기, 조금 삐뚤한 나비넥타이처럼 생긴 도시. 구불구불한 짜오프라야 강이 넥타이 매듭처럼 좌우를 나눈다. 이름난 관광지들은 짜오프라야 강 오른 변을 따라 형성된 구시가에 모여 있다. 후알람퐁 역은 중간쯤 위치하고 그 위쪽으로 강 한 굽이쯤 올라간 지점에 카오산 로드가 있다. 걸어서 40~50분, 용산역에서 이태원 정도 정도 되겠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지만, 카오산 로드 근처에 지하철역이 없어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조금 까다롭다. 주로 택시를 탄다고 들었다.


“보트를 타자!”


우리 여행에서 지양하는 것 중 하나가 차를 타는 것이다. 차에 타면 풍경보다 차 안의 분위기에 좌우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로 걷거나 시야가 트인 것들을 탔다. 카오산 로드 멀지 않은 곳에 보트 선착장Tha Phra Arthit이 있었다. 후알람퐁 역 남쪽으로 15분 정도 거리에도 선착장Marine Dept.이 있어 보트를 타 보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짜오프라야 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좋은 기회였다. 태국 국왕 사진이 커다랗게 세워진 역 앞 광장을 지나 강 쪽으로 향했다. 파스텔색을 입은 주택 상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Yoonhye Jeon

후알람퐁 역 남쪽 지대Talat Noi에는 공업소들이 모여 있었다. 자동차, 모터바이크, 배터리, 기계 부품, 도료... 취급하는 종류도 다양했다. 대부분 기계 한두 대씩 들인 가내 공업소처럼 보였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한산했다. 셔터로 열고 닫는 1층 안에는 주인의 스쿠터나 모터바이크가 대어져 있었고 서너 명이 일했다. 아빠가 공단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잘 안다. 1층의 작은 상가마다 밀링(금속 깎기), 웰딩(용접), 날리는 철가루와 불꽃, 기름때, 기계 깎는 굉음이 들리는 곳.


골목 한편에는 폐철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이상하게 싱그러웠다. 요즘 식물plant로 인테리어interior를 하는 ‘플랜테리어planterior’가 유행이라는데, 여기 아저씨들은 그 오래전부터 식물들을 가꿔온 것 같았다. 셔터 틈과 조명 아래 매달린 덩굴 식물들은 요즘 힙한 카페에서 보던 행잉 플랜트나 다름없었다. 물이 새 페인트칠이 부식된 천장과 그 아래 걸린 전깃줄도 힙한 카페가 일부러 만든 노출콘크리트와 노출 천장처럼 멋졌다. 과장이 아니다. 을지로를 친환경적으로 가꾼다면 이런 모습일까. 충격적이었다. 그저 선착장에 가려던 것이었는데 이런 멋진 곳을 발견하다니... 이 커다란 도시엔 얼마나 더 멋진 골목들이 숨어 있을까. 흥분한 우리는 배낭 무게도 잊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쏘다녔다. 아저씨들은 청소도 열심히 했다. 가게 앞도 거리도 참 단정했는데, 가로수마다 같은 위치에 감싼 식물들과 쓰레기통 대신 놓인 화분을 보니 이들뿐 아니라 시에서 함께 가꾸는 듯했다. 식물 하나 척척 걸어놓는 게 이다지도 멋질 일인가. 빨강 노랑 핑크 심어 놓은 커다랗고 화려한 꽃화분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도시를 가꾸는 방법이다.

ⓒ Yoonhye Jeon
ⓒ Yoonhye Jeon

시골 마을에서 갓 상경한 우리는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았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대형 세단을 보았다. 이런 작은 도로까지 벤츠와 아우디가 들어오다니, 수도의 위엄이 여기서 느껴진다. 이에 질세라 니콜라스는 할리 데이비슨을 세 대나 발견했다. 알고 보니 탈랏 노이는 18세기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인들이 방콕에 처음 자리 잡은 지역이자 이후로도 크메르인, 중국인 등 여러 이민자들이 모여 산 유서 깊은 동네였다. 골목골목 기웃거리다 보니 동네는 어느새 중국풍이 되어 있었다. 후알람퐁 역 왼쪽으로 큰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있는데, 한참 아래인 이곳까지 영향이 미친 것 같았다. 중국인 주민들이 슬렁슬렁 걸어 다니는 진짜 주택가는 이름나기 전 익선동 골목의 느낌을 주었다. 자전거 투어 관광객들이 일렬로 우릴 지나쳤다. 이런, 이미 이름이 나 있나 보다.


선착장 입구를 찾아 헤맸다. 해양청 건물 주차장을 통해야만 접근할 수 있었던 탓이다. 직원은 야외에 탁자 하나 내놓고 표를 팔았다. 방콕의 해상 대중교통인 보트는 깃발로 구분된다. 깃발이 없는 보트는 모든 선착장에 서는 로컬 보트며, 옐로와 그린 라인이 급행, 오렌지가 반급행 정도 된다. (블루도 있지만 관광용이라 대중교통이라 보기 어렵다.) 여행객들은 오렌지 보트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카오산 로드와 가까운 프라 아팃 선착장을 포함한 왕궁과 왓 포, 왓 아룬과 같은 사원, 아시아티크 같은 쇼핑몰 등 주요 선착장에 모두 서고 요금도 15밧(약 350원)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노부부 한 쌍만이 배를 기다렸다. 강바람에 태국 국기와 태국을 상징하는 노란 기가 흔들렸다. 크지 않은 이 강에 얼마나 많은 보트가 지나다니는지. 깃발 보트 외에도 개인 관광용 보트, 단체 관광용 보트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보트는 대개 좁고 길었고 속도도 빨랐다. 이 많은 보트들과 함께 강을 거슬러야 하니 그럴 법도 했다. 멀리서 휘익-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오렌지 깃발을 꽂은 보트가 들어왔다. 슬리퍼를 신은 승무원이 채 닿지도 않은 선착장에 훌쩍 뛰어내려 밧줄을 맸다. 속력을 미처 줄이지 못한 보트는 선착장에 덧대 놓은 충격 방지용 타이어에 부딪혀 세게 흔들렸다. 승무원은 개의치 않고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간이 판자를 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새 판자는 걷혔고 밧줄을 걷은 직원이 미처 타기도 전에 배는 속력을 올렸다. ‘이 사람들 뭔가에 쫓기는가?’ 이 배의 목표는 최대한 신속하게 더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인 듯했고 그들의 바람대로 사람으로 가득했다. 좌석 구역까지 들어갈 수 없어 입구 계단에 겨우 섰다.


ⓒ Yoonhye Jeon

강은 흙빛이었다. 강변에는 빼곡히 집이 들어서 있었다. 땅 위에 세운 게 아니라 땅에 가까스로 터를 걸친 뒤 강 쪽으로 나무나 시멘트 기둥을 박아 세운 집이었다. 깎이고 굽고 부서진 기둥에서 범람의 흔적이 느껴졌다. 언제 강이 집을 삼켜도 이상하지 않을 구조였다. 기둥 위에 괸 들보도 비뚤배뚤, 불안해서 어찌 사나 싶었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 위에 화분도 놓고 빨래도 널고, 나무판이 떨어지면 새 나무로 기워가면서 잘만 살아가고 있었다. 사이사이 좁은 틈엔 쓰레기가 밀려 들어가 출렁였다. 오래된 구역일수록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 어려운 법. 그들은 짜오프라야 강변에서 몇십 년 몇 백 년 이런 방식으로 집을 짓고 살았을 것이고, 살 만하기 때문에 아직도 그대로 살고 있겠지. 방콕의 새로운 주택가 개발은 강에서 벗어난 외곽에 신도시 개념으로 이뤄졌다.


이따금 발코니가 있는 레스토랑이나 커다란 빌딩을 지나쳤다. 빌딩 옆이든, 집 옆이든 플라스틱 부표를 띄우고 타이어를 붙인 선착장 모습은 비슷했다. 다른 보트들이 지날 때면 큰 물결이 일었다. 물결은 떠다니는 쓰레기와 죽은 물고기들을 싣고 왔다. 짜오프라야 강의 물고기는 정말로 컸다. 팔꿈치를 넘어서는 크기의 물고기들은 허옇게 배를 뒤집고 입을 벌린 채 물살에 흔들렸다. 우리는 물고기들이 보트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거라 확신했다. 이상하게도 더럽거나 역하지 않았다. 그저 이 커다란 도시의 한 모습일 뿐이었다. 추정 1,000만에 가까운 인구가 사는 도시, 게다가 4년째 전 세계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2019년 마스터카드Mastercard 결제 인원만 2,200만 명)인 이 거대 도시는 언제나 북적일 수밖에. 북적이는 만큼 쓰레기는 늘어나고 관리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왼쪽으로 우뚝한 왓 아룬Wat Arun 사원이 다가왔다. 오른쪽에는 루프탑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고 뒤로 뾰족한 첨탑이 이어졌다. 방콕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사원, 왓 포Wat Pho다. 왓 포 너머 태국 왕궁의 커다란 지붕이 보였다. 들썩들썩, 보트는 여전히 여기저기 철썩이며 강을 달렸다.


ⓒ Yoonhye Jeon

프라 아팃 선착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좁은 상가 골목으로 줄을 지어 들어갔다. 그쪽에 출구가 있나 보다. 우리는 한 커플을 따라갔다. 여자는 베이지색 리넨 슬리브리스와 와이드 팬츠에 굵은 띠 가죽 슬리퍼, 조그마한 에나멜 가방을 멨고 남자는 투블럭 파마머리에 금색 철테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을 반바지에 찔러 넣고선 팔자걸음을 걸었다. 아... 한국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난 거다. 곧 여기저기 한국인이 보이자 방콕에 온 것이 완연하게 실감이 났다.


라탄 장식을 한 카페와 테이블을 내놓은 레스토랑, 티셔츠 다이어리 코끼리 지갑 따위를 파는 가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카오산 로드 옆 람부뜨리Rambuttri 지역이었다. 후다닥 근처 숙소에 여장을 풀고 다시 길을 나섰다. 로드는 역시 걸어야 제맛이지. 길 건너 커다란 돌출 간판들이 보였다. 온통 영어 간판이다. 카오산 로드. 늦은 오후 검은 머리 노란 머리 흰머리 갈색 머리 핑크 머리 바이킹 수염에 민머리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앉아 먹고 마시고 무언갈 샀다. 우리도 길거리 망고로 배를 채웠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간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빨갛고 파랗고 초록 불빛 아래 가게마다 쿵쿵 비트가 울렸다. 밤의 시작. 윗 골목 람부뜨리 골목엔 노란 등 아래 사이먼 앤 가펑클 음악이 흘러나왔고 여기저기 가족끼리 친구끼리 작은 테이블에서 맥주를 기울였다. 오늘은 람부뜨리 앨리에 앉았다. 라이브 가수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lience>를 이어 부른다.


람부뜨리 골목에서. ⓒ Yoonhye Jeon

방콕의 첫날이 간다. 푸른 공업소들과 죽은 강과 저너머 역사 속의 정교한 탑을 지나 온 우리는 산 사람의 거리에서 밤을 보낸다. 모로 가도 카오산 로드로 가자, 해서 정말 모로-조금 이상하게 돌아 돌아- 왔다. 우리는 방콕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이곳을 즐길 우리의 더 이상한 방법들을 기대하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