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락-수랏타니-방콕 800km
리조트에 머무는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하필 그 기간이 불교 국가 태국의 큰 기념일인 석가 최초 설법 날, 승려 참선 입당일이라 모든 상점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되고, 자연히 동네의 펍도 문을 닫았다. 강제 리조트 격리가 된 셈이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보니 왜 카오락이 극단적으로 성수기를 기다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리조트 앞 푸른 낭통Nang Thong 비치는 그새 폭풍의 언덕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떠날 때. 지금껏 푹 쉬었으니 다시 모험할 차례였다.
태국은 하트 모양 풍선처럼 생겼다. 왼쪽으로 치앙 마이, 치앙 라이를 비롯한 북부 산간 지대와 미얀마를 국경으로 둔 서쪽 도시들, 오른쪽으로 라오스, 베트남과 접한 평야 지대가 있고, 풍선 매듭 자리엔 방콕이 자리한다. 길게 묶은 풍선 줄은 미얀마와 이웃하며 태국 만과 푸껫을 지나 남쪽의 말레이시아까지 뻗어 있다. 이 줄 덕에 태국의 남북 길이는 1,645㎞나 된다. 남한의 약 세 배. 우리는 지금 줄의 끄트머리 카오락에 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 답은 쉬웠다. 사람 모로 가도 서울로 가야 한다고, 일단 방콕으로 가 보자. 방콕까지 770km, 이 길고 가느다란 풍선 줄을 어떻게 타고 올라갈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태국 남부의 도로는 말레이시아 국경부터 시작해 끄라비, 카오락, 라농, 춤폰 곧 서쪽 해안을 거쳐 방콕으로 올라가는 4번 도로와, 4번 도로로부터 갈라져 수랏타니 곧 동쪽 해안을 거쳐 춤폰에 합류하는 41번 도로가 메인이다. 수랏타니와 춤폰은 국도와 철도를 비롯해 꼬 사무이, 꼬 따오로 가는 선착장이 있는 교통 요지다. 카오락에서 방콕 가는 버스를 타면 4번 도로로 13시간 정도 달려 한큐에 도착하지만, 버스로 4시간 걸리는 동쪽 수랏타니에 가면 긴긴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다. 사서 고생하는 우리는 기차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짐을 쌌다.
길가에 서서 기다리다 보면 수랏타니행 버스가 온다고 했다. 푸껫에서 출발한 버스가 카오락을 들리기 때문이다. 버스가 들어올 때 아무데서나 잘 알아보고 손을 흔들면 알아서 섰다. 정류장으로 추정되는 곳에 짐을 놓고 니콜라스와 교대로 망을 봤다. 멀리서 커다란 버스가 들어올 때마다 “왔다!”를 외치는 나는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버스에 그만 정류장에서 맥주를 까고 말았다. 리조트에서 미처 다 못 마신 맥주가 너무 무거운데, 이걸 어떻게 방콕까지 들고 가. 한 병을 다 비울 때쯤 오렌지색 버스가 들어온다. PHUKET-SHRAT THANI. “진짜 왔다!” 아차, 화장실은 언제 가지?
메르세데스-벤츠를 대문짝만 하게 새겨 놓은 버스는 나름대로 쾌적했다. 검표하는 청년은 “수랏타니요.”하는 우리에게 은빛 원통에서 가격만큼 돌돌 뽑아 위생 랩처럼 챡, 하고 종이 표를 끊어 주었다. 20밧짜리 표 5장, 10밧짜리 표 5장이니 1인당 150밧이었다. 좌석을 한껏 젖히고 누웠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카오락을 벗어날수록 물에 잠긴 도로가 많아졌고 버스는 물살을 크게 갈랐다.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타쿠아 파Takua Pa에 섰다. 푸껫에서 출발한 승객들을 감안하면 3시간, 휴게소에 들를 시간이었다. 화장실은 한 턱 높인 지대에 칸마다 화변기가 있는 90년대 시외버스 정류장의 것 같았다. 서양인 여성과 나는 멋쩍게 화장실을 썼다. 타쿠아 파는 카오락의 북쪽 끝 쓰나미 메모리얼 파크가 있는 동네다. 카오락 쓰나미를 다룬 영화 <더 임파서블>에 나온 실제 병원도 여기 있다. 여러 갈래의 커다란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 그래서인지 곳곳 도랑과 도로가 더 많이 잠겨 있었다.
4번 도로와 헤어져 동쪽으로 간다. 그 끝에 수랏타니가 있다. 지금부터는 꼬불꼬불한 국도를 따라 산을 지날 거다. 니콜라스는 그새 잠이 들었다. 나는 창밖으로 지나는 험준한 산들에 눈을 떼지 못했다. 카오속Khao Sok 국립공원. 산들은 안갯속에 어렴풋이 나타났다 금세 사라졌다. 거대한 실루엣으로 그 크기를 짐작했다. 우중충한 하늘과 달리 폭우에 급히 자란 새 잎들의 연둣빛 연초록빛이 싱그러웠다. 모두가 잠든 적막한 버스에서 혼자 우두커니 이를 바라봤다. 카오속 국립공원은 카오락에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이라 당일, 일박 여행으로 많이들 찾는다. 온전히 산에서 쉴 수 있는 마을. 운이 좋을 때면 길가다 코끼리들을 만날 수 있다고도 했다. 자는 니콜라스를 깨워 카오속에 내리고 싶다고 했다.
“안 돼. 비 와서 꼬 따오 안 가 놓고, 이제 와서 비 오는 산에 가자고?”
혼자였으면 분명 내렸다. 주절주절 카오속에서 할 수 있는 캠핑, 트레킹 등을 이야기하며 미련을 남겼다. 사실 아직도 우기가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다.(훗날 비 오는 산속에서 죽을 뻔하고선 깨달았다. 동남아 우기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아쉬움 뒤로 카오속이 멀어져 갔다.
“윤혜. 카오속도 분명 멋있을 거라 생각해. 네가 가자고 한 카오락이 너무 좋았던 것처럼. 다음에 꼬따오에 올 때 카오속에 들리는 건 어때?” 어느새 다음 태국 여행의 일정이 정해지고 있었다.
도로는 점차 넓어졌고 우리가 따라오던 강 또한 순식간에 넓어졌다. 카오속 근처의 태국 최대의 인공 댐 라차프라파Ratchaprapa로부터 시작된 품 두앙Phum Duang 강이 따삐Tapi 강에 합류한 것이다. 따삐 강은 저 아래쪽 루앙Luang 산에서 발원해 온 남부를 구불구불 돌아 적시는 큰 강이다. 우리는 수랏타니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이 강이 수랏타니를 먹여 살리겠구나. 그리고 넓은 강은 곧 바다와 만나겠구나.
수랏타니 역은 따삐 강변에 자리해 있었다. 다섯 시가 넘은 시간, 여기서 하루를 머물까 싶어 역 근처를 휘 둘러보았다. 제법 큰 도시의 모습이었다. 역 주변으로 2,3층짜리 상가 주택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맞은편 시장은 하나둘 저녁 불을 켜며 온갖 먹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하던 차에 야간열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밤 11시 30분께 출발해 다음날 오전 방콕에 닿는 열차였다.
“윤혜, 역 근처에 하루 머문다고 해서 많은 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아. 시장에서 저녁 사 먹고 놀다가 밤 열차 타고 올라가는 게 어때? 어차피 기차 타고 갈 거 숙박비도 아낄 겸.”
“근데 넌 시끄러운 데서 못 자잖아?”
“몸을 피곤하게 만들지 뭐. 곯아떨어지도록.”
니콜라스는 잠귀가 밝고 작은 불빛에도 번쩍 잠이 깨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잠드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잠이 들기 때문에 호스텔이나 버스, 야간 기차, 어디에서나 잘 수 있지만, 예민한 그 덕분에 호스텔 불가, 꼭 개인 화장실 딸린 숙소에 묵어야 했다. 그런데 열차라니? 니콜라스는 평생 타 보지 못한 야간열차 로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어쩌면 1883년부터 100여 년간 프랑스 사람들을 이스탄불로 실어 나르던 전설의 '오리엔트 특급'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니콜라스는 이왕 타는 김에 1등석으로 가고 싶다며 대뜸 표를 끊었다. 태국 기차의 야간 1등석은 두 사람이 독립된 한 방을 쓴다. 방에는 아래 위 침대와 간이 탁자, 세면대가 있다. 2등석은 열차 한 량에 양 창문 쪽으로 아래 위 침대가 이어진다. 방 형식은 아니지만 대신 커튼으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다. 1등석 표 두 장에 2,580밧(약 98,000원), 숙박비 아끼자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휴, 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콜라스는 연신 뭔지 모를 윙크를 날려왔다.
시장으로 가 길거리 음식을 샀다. 10밧짜리 고소한 건새우튀김, 해산물에 밀가루와 계란물을 묻혀 부쳐주는 전, 한 쟁반 만들어 놓고 그 자리에서 덜어 파는 팟타이와 팟씨유. 기름 팬에 찰진 반죽을 부쳐 누텔라를 슥슥 발라 말아주는 태국식 팬케이크 로띠까지. 다들 퇴근하고 들러서 주전부리를 사들고 가는 모양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이 사는 이 저마다 웃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우리도 이것저것 한아름 사 역 앞 평상에 앉았다. 세븐일레븐에 들러 태국 맥주 창Chang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덜거덕-척, 덜거덕-척, 기차가 들어왔다. 말레이시아 국경에서부터 출발한 열차였다. 1등석은 가격만큼 휘황하진 않았다. 손때 탄 흰 복도는 좁았고 창문과 문 프레임은 은빛 금속으로 마감돼 있었다. 손잡이를 끼익 내려 문을 열었다. 기차의 움직임에 덜컹덜컹 몸이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창밖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카드를 치며 노래를 듣다 어느새 같이 잠이 들었다. 그동안 기차는 춤폰과, 미얀마와 바다 사이 땅 너비가 12km밖에 되지 않는 프라추압 키리 칸Prachuap Khiri Khan을 지났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침이었다. 승무원이 침대를 접어 의자를 만들어 주었다. 창문 밖으로 평원이 펼쳐졌다. 햇살이 드는 모습이 마치 액자에 풍경화를 걸어놓은 것 같았다. 대충 세수를 하고 짐을 정리했다. 덜커덩-척, 덜커덩-척 기차는 속도를 줄이며 차오프라야 강의 작은 하천들을 건넜다. 하천에 수북 쌓인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차는 곧 후알람퐁 역에 섰다. 방콕행 야간열차는 정시 출발, (대략) 정시 도착해 기차의 소임을 다했다. 평온한 1등석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그것처럼 숨 막히는 밀실도 아니었고,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처럼 전혀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어주는 다리도 아니었다. 6시간 걸리는 길을 연착에 연착하며 12시간으로 늘리던 인도의 3등석 침대차 같지도 않았다. 시트는 깨끗했고 세면대는 귀여웠으며 반복되는 기차의 소음은 나름대로 화이트 노이즈를 일으켜 잠을 잘 오게 만들었다. 니콜라스는 어느 호텔보다 편안하게 잠들었다 했다.
기차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도시로 오니 모든 것이 크다. 기차역도 크고, 도로도 크고, 내걸린 태국 국왕의 사진도 크고, 신호등마저 크다. 모로 가도 서울에 오자, 해서 정말로 방콕에 왔다. 여기선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일단은 모로 가도 카오산 로드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