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사란롬 공원, 왓 포
첫 숙소는 개인 화장실과 에어컨 딸린 방으로 조식 포함 540밧(약 20,000원) 짜리. 빵 두 쪽과 햄 두 장, 계란 하나, 봉지 커피를 조식으로 내는 걸 보니 이 일대 숙소들의 서비스가 대략 짐작된다. 우리는 조식을 포기하고 방만 주는 350밧(약 13,000원) 짜리 숙소로 옮긴다. 조식 값으로 차라리 근처 식당에서 먹자며. 카오산 로드의 레스토랑들은 아침마다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조식을 100밧(3,800원) 언저리에 판다. 아침, 점심, 해피아워, 밤 장사까지 하루 종일 돌릴 수 있으니 돈은 엄청 벌 거다. 새 숙소는 커다랗고 붉은 간판으로 유명한 럭키 비어 맞은편 골목에 있다. 그늘진 작은 방, 창문 밖으로 남의 벽이 보인다. 사진으론 해가 잘 드는 방이었는데. 싼 가격이니 별 수 있나. 허름함을 낭만으로 포장할 수밖에.
해를 받은 도로는 낡고 우중충하다. 상점들이 밤 영업을 하는 술집과 공간을 나누어 쓰는 탓에 제대로 된 인테리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들 임시 레스토랑, 임시 옷집처럼 쓰다 해가 질 무렵이나 되어야, 그리고 시원해질 무렵이어야 그 앞으로 과일 리어카와 팟타이 포장마차들이 들어서고, 간판 불이 들어오고 활기차질 거다.
그동안은 뭘 할까? 방콕의 주요 관광지는 왕궁과 왓 포, 왓 아룬. 왕궁은 카오산 로드에서 왼쪽 아래 세 블록쯤 떨어져 있고, 왕궁 옆엔 왓 포가, 강 건너에 왓 아룬이 있다. 숙소에서는 왕궁까지 걸어서 15분이 걸린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입장료 500밧(19,000원)에다 단체 관광객의 필수 코스라는 말에 순순히 접는다. 물론 그만큼 아름답겠지만, 이 더운 날 돈 쓰면서 사람에 치이고 싶지 않아. 대신 그 옆에 있는 왓 포를 가기로 한다.
카오산 로드의 왼쪽 끝,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툭툭 아저씨들을 지나 내려가다 보면 커다란 오거리를 만난다. 오거리는 왕복 차선이 아니라서 도로마다 출구와 P턴이 얽히고설켜 있다. 남쪽 두 도로 가운데 오른쪽 큰 운동장 길을 따라 돌면 바로 왕궁과 왓포가 나오지만, 우리는 왼쪽의 작은 하천Rop Krung을 따라가기로 한다. 이 더운 날 공터와 도로가 이어지는 건조한 풍경을 따라가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 하천가에는 작은 사원과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청계천변 작은 상가들처럼 한 칸 한 칸 입주한 상점들은 희한하게도 악기와 군용품을 주로 판다. 건너편엔 최고 법원과, 이어 각종 정부 부처가 들어서 있다. 흰 페인트에 금각 장식 기둥과 지붕이 얹힌, 역시 노란 바탕의 태국 국왕 사진이 내걸린 곳.
도시 탐험은 언제나 신이 난다. 방콕의 구시가지는 구불구불 자연 발생한 모습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도시 계획이 되어 있다. 직선 도로도 많고 블록도 대략 네모 반듯하게 나뉜다. 직선 정비가 된 하천 주변도 단정하고. 덕분에 오래된 시가지의 느낌은 덜하지만 관광객이 길 찾기에 아주 좋다. 아마 광화문부터 종로, 을지로, 청계천 일대가 잘 닦인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잘 깔린 보도블록과 깨끗한 정부 건물들은 카오산 로드의 허름함을 잊게 해 준다.
이대로 신나게 왓 포까지 갈 줄 알았는데, 길에서 예기지 못한 언쟁이 시작된다. 시작은 늘 그렇듯 굉장히 사소하게. 니콜라스가 “어, 저 사람 바지 네 거랑 똑같다!” 하길래 고개를 돌렸더니, 흰색 천에 남색 코끼리 패턴 그려진 전형적인 코끼리 바지가 보이는 거다. 뭐가 같다는 거지? 파란 바탕에 노란 페이즐리 무늬가 들어간 내 바지와 완전히 다른데. 바로 “아닌데.” 쌀쌀맞게 대답한다. 그동안 감각에 대해 일반화하는 니콜라스의 행동에 조금 지쳐 있던 터였다. 니콜라스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내 태도에, 나는 흰색 바탕과 파란 바탕, 전혀 다른 바지를 ‘파란색’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똑같다’고 표현한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습관처럼 ‘exactly same’(완전 똑같아)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니콜라스의 ‘퉁치는’ 듯한 그런 말투도 그 순간은 왜 그렇게 거슬리던지. 니콜라스는 “보기는 했냐”며, “내가 분명히 파란색을 봤다는데 왜 믿지 않느냐” 묻는다. 그는 은연중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내 말투에 신경이 거슬린 거다. 나는 개의치 않고 그에게 두 바지가 무엇이 다른지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한다. 사실 그가 본 것은 중요치 않다. 어쩌면 코끼리 바지가 아니었을 수도. 그렇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너의 방식은 틀렸다고.
그냥 내가 “그래, 비슷하네.”했으면 될 일이다. 그도 지나가며 한 말이고, 그 바지가 얼마나 다른지가 우리 삶을 결정짓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일이 내게는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터뜨리는 도화선이 되어 버렸다. 명색이 디자인에 죽고 살던 출판사 출신인 내가, 새빨간색, 짙은 빨간색, 버건디, 다홍색, 붉은색 모두 빨간색이라 받아들이는, 감각에 무딘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 거다. 감각에 무딘 사람을 만났으면 내가 그의 감각을 깨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원하지 않았다. 더 얘기하면 화가 날 것 같으니 그만하라고 했다.
“윤혜. 왜 자꾸 나를 바꾸려고 해?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내가 좋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너는 있는 그대로의 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그건 사랑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야. 점점 알게 되면 네가 나아지는 거라고.”
부탁하지도 않은 계몽을 시키려는 꼴이었다. 미와 감각에 관한 한 내가 보는 방식이 철저하게 ‘옳다’ 믿고 살았으므로, 내 딴에 ‘합리적인’ 주장을 계속하면 그가 스스로 꼬리를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몇 걸음 걷다 잔소리는 다시 시작됐다.
“아니, 그걸 어떻게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 정말 이해가 안 돼.”
“퓨탕Putin!”
화가 난 그는 욕을 뱉으며 쓰레기통에 플라스틱 주스 컵을 팽개친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퓨탕은 프랑스인들이 말끝마다 붙이는 흔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엄연한 욕이기에 한 번도 내 앞에서 쓴 적이 없고, 나에게도 절대 따라하지 말라고 한 단어였다. 그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나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 걸어간다. 발길 닿는 대로 한참을 걸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유심 없는 그와 연락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쨌든 왓 포를 가기로 했으니 혼자라도 갈 거다. 아뿔싸, 모든 현금과 카드가 그에게 있다. 일단 눈앞에 공원이 보여 들어간다. 태국 왕실의 정원이었던 곳이다. 날은 덥고 화가 나니 땀이 비 오듯 한다. 다리를 건너 연못 중앙 정자에 철퍼덕 앉는다.
이 모든 건 사실, 그를 사랑한다지만 결국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는 못한다는 증거였다. 사람은 제각기 관심사가 다르고 그만큼 능력치가 다르다. 머리로는 항상 그렇다고 믿어 오고 존중한다고 생각지만 결국 나의 행동은 전혀 그를 존중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감각에 예민했기 때문에 이 계통의 일을 한 것처럼, 그는 탈 것과 운동 신경에 뛰어나고 그래서 차를 모는 일을 하고 취미로 모터바이크를 타 왔다. 그리고 언제나 유머가 넘치는데, 예민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재료로 웃길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스펙트럼에 이것저것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다움과 그 세분화된 근거에 매달려서 진지한 나와, 보이는 것과 그것의 직관적인 인상을 우선하는 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장점 때문에 덮고 지냈던 우리의 다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 울컥하고 올라오는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자기의 방식대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방식을 깨기도 참 어렵다. 아니, 그걸 ‘깨야 한다’는 발상 자체도 내 것이다. 아직도 그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한 번씩 좌절하는 거다. 그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사랑하고,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바뀌길 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있다면. 내가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둥에 기대 연못을 한참 바라본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저 멀리 달려오는 사람이 물에 비친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옷이 흠뻑 젖어 있다. 개의치 않고 나를 꼭 안는다.
“윤혜, 미안해. 화 내서, 그런 행동을 보여서 미안해.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사과하고 싶었는데 고개를 돌려 보니까 네가 사라지고 없었어. 혹시 네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나를 자책했어. 이 동네를 다 뛰어다녔어. 1초라도 더 빨리 사과하고 싶어서...” 떨리는 목소리. 그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나도 심했어. 서로 상냥하게 대답하고 넘어가면 될 걸, 불쑥 짜증내고 고집부렸어. 하지 말란 데도 내 얘기만 계속했지. 생각해 봤는데... 내가 솔직하지 못했어. 너를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내가 바꿀 수 있다 생각했어. 내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어. 내 거만한 태도가 널 더 힘들게 한 것 같아. 천천히 서로 맞춰 가야 하는 건데, 내가 너무 급했고 나만 생각했어. 미안해.”
그전까지 곱씹던 생각들을 그에게 풀어간다. 우리는 우리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각자 ‘안 된다’ 생각했던 벽들을 조금씩 허물어 보기로 한다. 니콜라스는 쉽게 일반화하지 않기, 나는 싫다는 걸 강요하지 않기. 그리고 함께- 서로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은 상대가 받아들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기. 마지막으로, ‘캄 다운(Calm down, 진정해).’ 우리는 화가 나도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다투다 보니 완곡해야 할 표현들이 직설적이 되어 버린 탓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한순간에 잘하게 될 수는 없으니 천천히 말하는 게 최선이다.
마침 눈 앞으로 커다란 도마뱀이 지나간다. 잔디를 엉금엉금 기던 도마뱀은 어느새 커다란 연못에 들어가 헤엄친다. “도마뱀이 수영하는 건 처음 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못가로 뛰어간다. 뱀처럼 꼬리를 흔들며 수영하는 도마뱀. 물속에선 뚱뚱한 몸에 달린 짧은 네 발을 열심히 휘젓고 있겠지. 앞에선 갈라진 혀를 연신 날름대는 걸 보니, 도마뱀도 뱀은 뱀이다. 그 요상한 모습이 멋쩍은 우리의 분위기를 풀어준다.
“윤혜, 이제 같이 왓 포로 가는 거지?”
사란롬Saranrom 공원을 가로지른다. 이 공원은 1874년 라마 5세가 왕자들의 거처로 지은 사란롬 궁의 정원이었고 1960년 대중에게 개방됐다. 둘러보니 곳곳에 유럽풍이 물씬 난다.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유럽의 문화를 선망하던 라마 5세가 집권 후 처음 세운 궁이자, 건축 역시 영국 외교관Henry Alabaster에게 위임했기에 그렇다. 우리가 앉았던 정자도, 나팔 부는 아기 천사들이 조각된 황금 분수도, 가는 창살로 유려한 곡선을 그린 입구도 근대기 태국의 분위기가 풍긴다.
공원 맞은편에 왓 포가 보인다. 15분 걸린다는 길을 한 시간 반이 걸려 왔다. 1인당 200밧(약 7,600원)을 내고 입장한다. 우리나라 절의 흙바닥과 다르게 보도블록이 깔린 사원은 조금 건조한 느낌이다. 멀리서 보던 어둡고 오묘한 색감을 가까이에서 보고 놀란다. 거대한 지붕을 덮은 진주황(혹은 노랑), 빨강, 진초록의 이중 기와들과 크고 작은 석탑(쩨디)들의 미색, 진보라, 어두운 빨강과 에메랄드색, 푸른색, 진한 개나리색 도기 장식들. 주황 승려복을 두른 멋진 스님들.
하늘을 찌를 듯 뾰족이 오른 수십 쩨디의 고고한 직선과 지붕의 무거운 수평이 기하학적 미를 이루고 이 모든 색과 형태가 두꺼운 흰 기둥과 벽에 부딪혀 오히려 미래적인 느낌을 준다. 문마다 장식된 금세공과 추녀 끝에서 하늘로 구부려 올린 금색 초파Chofah들이 그래도 이 건물은 고적古跡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파는 반인 반조 신 가루다Garuda의 날개에서 비롯한 것인데, 흔히 알고 있듯 힌두의 비슈누Vishnu가 타고 다니던 새다. 불교에서도 신성한 동물로 추앙받으며 태국의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내가 처마를 바라볼 때 그는 사원을 지키는 중국식 석상을 찾아 자기 키와 대 본다. 뚱뚱하고 작아 보이는 석상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수호 석상답게 제법 몸집이 크다. 뜬금없이 왜 중국식 석상이 불교 사원을 지킬까? 옛날 옛적 태국과 무역하던 중국 상인들은 뱃머리의 선수상이나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배 바닥에 싣고 온 석상들을 종종 이곳에 남겨두고 갔다고 한다. 무언가를 지켜달란 믿음으로 만든 것이니, 배든 사원이든 의미는 어울린다. 니콜라스 덕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다.
태국에서 가장 큰 46m짜리 와불상Reclining Buddha을 보러 가서도 나는 벽화가 뭘 이야기하는지, 문에 덧칠한 페인트들은 새로 보수한 건지, 들어선 샹들리에는 어떻게 매단 건지, 부처님 발에 장식된 자개들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고, 그는 이 거대한 불상을 감싸려 얼마나 많은 금이 들어갔을까, 과연 이 금은 진짜일까, 왜 부처님이 누워 있는 걸까, 부처를 먼저 만들고 건물을 지었을까, 건물을 짓고 부처를 조립한 걸까 재미난 상상을 한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원 안은 한가하다. 희고 육중한 네모 기둥이 대법전 회랑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늘어선 부처상들은 아유타야~수코타이 왕국(13~18C) 시대 절에 남겨진 유물을 라마 1세가 한데 모은 것이다. 황동에 금을 입힌 부처들이 은은하게 빛난다. 법전 앞 작은 석탑에 고양이가 앉아 쉬고 커다란 지붕 위로는 다람쥐가 뛰어다닌다. 대법전 안에는 커다란 금빛 부처님이 높이 앉아 신자들을 굽어본다. 니콜라스는 한껏 경건해진다. 동서를 막론하고 정교하고 숭고한 종교 작품은 누구든 엄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부처님 뒤의 탱화와 기둥과 천장을 감싼 벽지를 본다. 기둥마다 왕조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무릎 꿇고 오래 버티지도 못하는 니콜라스는 연신 몸을 배배 꼰다. 지는 해에 처마를 따라 두른 금빛 람용lamyong이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는 손을 잡고 문을 나선다. 멀리 불어오는 강바람이 느껴진다.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 우리, 강변을 걷자.
나여서 보이는 것들이 있고, 너여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예민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게 있고 예민하지 않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찍은 사진마저 이리 다른데 미처 말하지 못한 서로의 감상은 오죽할까. 왓 포를 함께 돌아보고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너와 함께여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보게 된다고. 너와 함께여서 나는 넓어진다고. 내 좁은 취향에 맞춰 네가 억지로 깊어지도록 강요하지 않겠다고. 너와 함께 넓어지는 것에 행복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