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사진을 찍나요?

태국 방콕 왓 아룬

by 전윤혜

뉘엿뉘엿 해가 내려간다. 언제나 그렇듯 걷고, 싸우고, 화해하고, 늦게서야 구경하느라 하루가 다 갔다. 왓 포는 원껏 보았지만 강 건너 왓 아룬은 닫을 시간.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대리 만족할 공간을 찾아 머리를 굴려본다.


“니코, 왜, 우리 오렌지 보트를 타고 오면서 강변 레스토랑들 봤잖아. 거기서 왓 아룬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왓 포에서 나와 강변(서쪽) 방향으로 걷는다. 이차선 도로 건너 강 쪽으로 골목들이 나 있다. 그 끝 건물들이 그제 보트를 타면서 본, 물속에 기둥을 내린 수상가옥들일 테다. 레스토랑도 있겠지. 제일 먼저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역시나 끝엔 레스토랑이 있는데, 루프탑 바가 있단 말에 솔깃해 메뉴판도 보지 않고 들어선다. 1층엔 실내와 야외로 구분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보인다. 수상 건물답게 건너편 사원을 앉은 눈높이에서 볼 수 있다. 우린 좁은 초록색 철제 계단을 빙 둘러 올라간다. ‘유리잔을 올리지 마세요.’ ‘머리 위를 조심하세요.’ 등의 주의 문구가 붙어 있다. 좁은 계단에서 발이 아닌 머리 위를 조심하라니, 의아하다.


“와….”


들어서는 순간 느껴진다. 아 여기가 사진 맛집이라는 곳인가. 여행을 시작할 무렵 ‘인생샷 맛집’ ‘선셋 맛집’ ‘이 집 잘하네’와 같은 유행어들이 돌기 시작했는데, 그 실체를 드디어 만난 거다.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 여기까지 왔다 생각했는데 한 테이블을 빼고 모두 한국인. 커플티를 맞춰 입고 온 가족도 있고, 원피스에 피케 셔츠를 맞춘 신혼부부도 있고, 발목 길이 꽃 원피스를 맞춰 입은 친구들도 있다. 어째 방콕까지 와서 한국 식당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원래 가장 예쁜 곳, 뷰 좋은 곳,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되어야 만족하는 ‘사진 찍기 좋은 곳’에는 한국인이 많게 마련이니, 한편으론 여기가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라 안심이 되기도 한다. (우연히 남은 한 테이블마저 프랑스인이라 우린 서로 한국인 프랑스인 그리워서 여기 온 거 같다고 농담했다.) 하나 남은 자리에는 누군가가 의자를 당겨갔는지 테이블이 덩그렇다. 멀리서 의자를 꾸어 왓 아룬이 보이도록 어설프게 자리 잡는다. 해는 점점 구름에 가리며 분홍빛으로 변해 간다. 바람이 잔잔히 분다. 하루 종일 볕 아래 걷느라 힘들었는데, 루프탑에서 강바람을 쐬니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


오늘도 감이 온다. 돈을 좀 써야겠구나. 이 뷰를 두고 가난하게 굴면 너무 슬프잖아. 단맛이 당기는 늦오후, 마티니를 좋아하는 나는 올리브 대신 리치를 넣어준다는 ‘리치’ 마티니를 시켜 보고, 니콜라스는 ‘스트로베리’ 다이키리를 주문한다. 다이키리Daiquiri는 쿠바의 새콤달콤한 칵테일로, 럼에 라임주스, 설탕을 넣고 때론 과일을 섞기도 한다. 당뇨를 앓았음에도 다이키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헤밍웨이는 설탕을 빼는 대신 럼을 더 넣어 마셨다고 한다. 여기선 시럽을 듬뿍 넣어 얼음을 함께 간 프로즌 스타일로 내줬다. 한 잔에 10% 봉사료에 7% 부가가치세가 붙어 330밧(약 12,500원). 방값과 맞먹는 가격. 궁상떨지 말자 해 놓곤 궁상맞게 방값을 생각한다. 한국 물가로는 까짓것, 이겠지만 태국 최저 일급이 330밧, 하루 일해 칵테일 한 잔 사 먹을 수 있으니 너무한 건 맞다.


안타깝게도 칵테일은 끈적한 음료수에 가까웠다. 알코올을 적게 넣은 대신 시럽으로 양을 채운 탓이다. 아무리 뷰가 좋아도 그렇지... 이걸 어떻게 마실까... 애초에 리치 마티니라는 이상한 조합을 시킨 내가 잘못이다. 그의 칵테일 마찬가지. 웨이터에게 한 샷이 얼마나 들어가냐고 물었는데 잘 모른다. 도저히 정량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엑스트라를 요청해 진과 럼을 받는다. 사람들이 칵테일 사진을 찍는다. 난간에 올려놓고 왓 아룬도 같이 찍는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칵테일에 강렬한 색을 내려고 알코올 대신 시럽을 더 넣었구나. 사진 찍기 좋게. 아, 계단에서는 그래서 머리 위를 조심하라고 했구나. 사람들이 난간에서 사진을 찍으니까.


해가 내려와 어스름해질 무렵. 강 위의 보트들이 하나둘 등을 켜기 시작하고 왓 아룬 오른쪽 너머 태양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다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왓 아룬에 불이 켜진다. 여기저기 탄성이 난다.


“와, 너무 아름답다….


분위기에 취할 무렵, 드르륵-, 드르륵, 사람들이 의자를 밀고 일어선다. 사진 전쟁이 시작된 거다. 약속한 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왓 아룬이 잘 보이는 중앙에 자리 잡은 사람들과, 그 옆에 자리 잡은 후발 주자들, 그 뒤로는 엉덩이를 떼었다 붙였다 앞사람이 찍고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들. 정말 놀라운 건, 왓 아룬을 앞에 두고 뒷모습을 찍는 그 모습이 민망할 정도로 같은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인스타그램을 보는 느낌이었다. 찰칵, 찰칵, 한국 휴대폰에는 촬영음도 나니 한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찍는지 알 수 있다. 사진 찍고는 친구와 화면을 체크하는 모습마저 비슷하다. 이렇게 찍어봐, 저쪽으로 가봐, 옷 바지에 넣어봐, 찰칵. 불 들어온 왓 아룬은 결국 앞으로 나가야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주홍빛 불에 싸인 왓 아룬을 본다. 꼬질한 행색에 사람들 사진에 방해될까 봐 오래 서 있기도 민망하다. 옆에선 ‘앞머리 이상하다고 왜 말 안 했어~ 다시 찍자.’ 한다. 자리로 들어간 이들은 휴대폰으로 방금 찍은 사진들을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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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조금 슬펐다. 어두운 강 위, 불 켜진 왓 아룬이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왜 다들 휴대폰 속의 왓 아룬을 보고 있는지. 해는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 속엔 붉은 왓 아룬만이 우뚝 서 있다. 사진을 다 찍은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하나의 거대한 순환을 체험한 느낌이다. 해가 지고, 왓 아룬에 불이 켜지고, 사진 타임이 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 텅 빈 루프탑이 꿈결 같다.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니콜라스에게는 이것이 굉장한 경험이었는데, 그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귀엽단다. 신기하기도 하고. 즐기는 방식이 다른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궁금증.


“윤혜, 근데 사람들이 정말 사진만 찍고 갔어.”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잖아. 다들 밥 먹으러 갔겠지.”


시계를 보니 7시. “그렇긴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할 때 ‘맛집’이 정말 중요하거든. 어디가 맛있는지, 분위기가 좋은지 인터넷으로 많이들 공유해. 다른 사람 일정이나 추천 장소를 보고 각자 일정을 짜는 거지. 아마 여기까지 사진 찍으러 온 걸 보면, 이 사람들은 저녁 식사까지 언제 어디로 갈지 다 짜 뒀을걸? 유명한 집은 빨리 가서 자리 잡아야 하니까 타이밍도 중요하거든.”


“사람들이 되게 부지런하다.”


“그런 편이야. 사실 시간이 부족해서 그래. 우리도 프랑스처럼 30일 휴가 받아서 쓰고 싶을 때마다 쓰면 더 여유롭겠지. 우린 길어야 일주일, 아니면 주말 끼워서 4박 5일씩 겨우 짬 내서 올 수 있으니까,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보고 가려는 거야. 아쉬워서. 요즘 쓰는 말 중에 ‘부순다’는 말이 있어. 무술 고수들이 하나하나 도장 깨듯이, 우리도 좋다고 알려진 곳, 맛있는 곳, 예쁜 곳을 들러서 보고 떠나고, 보고 떠나는 거야.”


“음. 한국의 휴가 제도에 대해선 몇 번 들어봤어. 타이트하더라. 하긴, 우린 휴가가 길어서인지 여행이라 하면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거든.”


“꼭 시간의 문제만은 아닌 거 같아. 휴가를 길게 받아도 보통 도시 하나만 가지 않고 가는 김에 푸껫이나 치앙마이까지 들르는 게 보통이니까. 그냥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더 하고 싶은 마음의 차이인 듯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해.”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아쉽다. 이런저런 한국의 상황을 얘기하면서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사진만 찍고 간다는 것이. 그리고 “왜 다들 똑같은 포즈로 찍는지 그건 좀 신기하다.”하는 니콜라스의 말엔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곳에 가서도 비슷한 포즈로 찍을 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쁜 사진을 남기는 건 좋지만 사진만 찍다가 떠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과거의 나도 그랬다. 어느 성당 앞에 가면 기념사진을 찍고 싶고, 길거리 음식, 유명하다는 카페, 동영상으로 만들 3초짜리 영상도 찍고. 자전거 투어를 할 때는 셀카봉까지 들고 찍기도 했다. 돌려보니 남는 건 비슷하게 많이도 찍은 셀카와 멋진 유적과 함께 다리를 길게 나오게 찍은 전신샷, 영상 속엔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카메라에 비춘 얼굴을 신경 쓰느라 어색하게 흔드는 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이 찍었냐고 묻는다면, 별생각 없이… 사진이 남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왓 아룬. 왓Wat은 사원, 아룬Arun은 새벽. 새벽 사원이란 뜻이다. 새벽 햇빛에 탑 도자기 장식이 강 건너까지 빛난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 Yoonhye Jeon

노란 조명 아래 둘만 남은 루프탑. 마음껏 왓 아룬을 바라본다. 가끔 강 위의 보트만이 검은 물을 헤치며 정적을 깬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2019년 1월 1일 새벽, 새해 불꽃놀이가 끝난 다음이었다. 우리는 각자 친구와 불꽃놀이를 구경하다 서로 근처에 있는 걸 알고선 끝난 뒤에 만나 함께 새해를 축하했다. 그날 그가 한 말이 오늘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 새해 불꽃놀이는 그런 거잖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카운트 다운을 하고, 커다란 불꽃을 보고, 서로 축복하면서 새 해를 희망하는 거. 근데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 아이러니했어. 머리 위로 멋진 불꽃들이 터지는데 다들 그걸 휴대폰 액정으로 보고 있더라고… 가장 멋진 뷰는 내 눈으로 보는 것인데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해. 사람들은 왜 자꾸 기계에 저장을 하려 할까? 머릿속에 저장하지 않고. 휴대폰 저장에 의지할수록 내 머리의 능력을 잃게 돼. 기억하는 능력, 떠올리는 능력. 기억력Memory 말이야.”


“그래도 사진이 훗날 멋진 장면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많이 찍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 한두 장이어도 충분해. 사진을 적게 찍는다고 해서 손해 보는 건 아니야. 정말 멋진 그림은 내 머릿속에 있거든.”


아쉬움인 것 같다. 놓치기 아쉬운 멋진 장면을 언제든 열어볼 수 있는 내 것으로 만들고픈 마음. 안 찍으면 다 기억할 수 없을 거란 불안함. 놓칠까 봐, 더 잘 나올 사진이 있을까 봐 집착하며 찍는 마음. 그래서 일단 많이 찍고 고르는 데 시간을 보낸다. 언제부터 현재는 기록을 위한 시간이 되었나. 필름 카메라 시절을 돌이켜 보면, 엄마나 아빠가 여기 봐봐, 사진 찍자, 하고 나면 카메라는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어쩌겠어. 눈 감아도, 흔들려도, 이상하게 찍혀도 인화해야만 알 수 있으니까. 필름을 사는 데도, 인화를 하는 데도 돈과 품이 들었으니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겠답시고 여러 장 찍는 열망도 덜했다. 사진은 기념으로 한 장 찍었으니 됐고, 나머지는 가족과 친구와 즐기는 데 시간을 보냈다. 결국 기계가 발전하면서부터다. 카메라의 화소는 점점 높아지고 저장 용량도 커졌다. 기계는 내가 찍는 대로 한없이 받아들이기만 할 테니, 이제는 나의 절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니콜라스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사진에 대한 개념이 많이 변했다. 멋진 곳에 가면 휴대폰부터 꺼내는 나와 달리 그는 분위기를 한껏 즐긴다.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 내게 그는 언제든 ‘하고 싶은 대로’ ‘찍고 싶은 만큼’ 하라지만, 종종 중요한 순간엔 나를 제지하며 머릿속에 담아둬.” 말하곤 한다. 그래도 아직은 놓치는 듯한 기분 때문에 카메라 없이 다니는 게 어색하다. 특히 모터바이크를 타고 달릴 때면 풍경들이 너무 멋져서 그냥 지나치기엔 눈물이 날 정도였다. 흙빛 불어난 물을 야자수가 빼곡히 감싸고 있던 필리핀의 작은 하천과, 파란 바다 해변가에 홀로 남아 쓸쓸하던 방갈로, 나무 판잣집 거리에서 열리던 밤의 로컬 시장... 그럼에도 기억하려 노력했던 풍경들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왓 아룬 사진도 하나둘이면 충분한 걸. 우리가 기억하는 건 이날의 바람, 물살을 가르며 지나다니던 배들, 설탕 맛 칵테일, 머리를 조심하라던 계단, 찰칵이던 카메라, 텅 빈 루프탑의 허무함, 우리 목소리만이 두런두런 울리는, 사진과 기록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 남는 게 사진이란 내 말에 니콜라스가 한 대답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니, 사진은 습관이야. 자꾸 찍을수록 더 찍게 될 거야. 네 기억력을 믿어. 잊지 못할 순간은 생각보다 강렬하게 새겨지기 마련이니까.”


IMG_5741.JPG 어둔 골목 사이로 살금 보이던 왓 아룬. 내겐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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