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의 자유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

by 전윤혜

카오산을 거쳐 간 사람은 누구나 카오산을 그리워한다. 처음 카오산에 도착한 사람들은 카오산 로드의 강렬한 무엇인가에 압도된다. 그 '무엇'이란, 카오산 로드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에 대한 뜨거운 에너지다.

- 박준 지음,『온 더 로드』 (2006) 중



2000년대 중반, 『온 더 로드』란 책이 한창 인기를 끌었다. 배낭여행자의 성지라 불렸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나눈 인터뷰집이었다. 그 안의 카오산 로드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법한 낭만이 있었다. 골목마다 싼 쪽방이 들어서 있고 밤이 되면 맥주 한 잔, 길거리 노래에 자유로이 춤추는 곳.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말을 걸고, 주로 책을 읽고, 한 나라에 오래 머물며 인생이 뭘까 생각하는 사람들. 바람 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들의 생각과 여행 방식은 자유로웠다. “모든 걸 그만두고 여행을 다녀와도 세상이 두쪽 나지 않는다”며 “왜 꿈만 꾸는가. 한 번은 떠나야 한다”라고 북돋우며 끝난 이 책은 당시 많은 이들에 카오산 앓이를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고등학생이던 나와 동생도 어른이 되면 제일 먼저 카오산 로드부터 갈 거라 다짐했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왔다. 그동안 강산이 바뀌었다. 여행하는 방식과 여행하는 세대가 바뀐 만큼 카오산 로드도 그렇게 바뀌었다. 돈이 도는 곳엔 으레 동네 특유의 무드를 고려하지 않은 상업 시설이 하나둘 들어서며 서서히 바뀌게 마련이다. 이 길에선 그 기점을 2000년대 초 1,000밧이 넘는 숙소들과 고급 바, 스타벅스가 들어오던 때로 삼는다. 그 뒤로 20년이 흘렀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정보를 공유하던 카오산 로드는 술과 클럽 음악의 거리로 변했다. 원래도 술과 음악의 거리였지만, 이제는 그 구심 역할을 하던 ‘정보’나 ‘삶의 이야기’가 빠지고 ‘술’만 남은 것이다. 휴대폰이 사람의 영역을 대신하면서 카오산의 여행사들이 알선하던 버스, 기차 예약과 비자 대행은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카오산 로드에서 치앙 마이로 캄보디아로 떠나는 버스는 많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오기 보단 방콕에 왔으니 카오산 로드에는 들려야지, 하는 마음에 친구끼리 와서 한탕 즐기고 떠나는 느낌이 강하다. 낮에 밥 장사를 하는 점포들은 밤 장사 임대를 따로 놓는다. 밤이 되면 길거리에 포장마차가 나오고 술집마다 디제이들이 힙합, 케이팝과 빌보드 차트를 믹싱하며 온 거리를 커다란 클럽으로 만든다. 호주에서 일하던 클럽의 디제이도 돈 벌러 방콕으로 갔으니 말 다했다. 음악에 호객에 환호성... 카오산 로드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건너편 람부뜨리 골목은 조금은 덜하지만 이미 배낭여행자가 주머니를 열 가격이 아니다. 이제 카오산 로드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되어 버렸다.


배낭 하나 메고 호스텔을 마다 않는 여행자들에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카오산 로드였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손을 털고 빠이로 미얀마로 떠났다. 마치 홍대에서 자기 영역을 지켜가며 살던 예술가들이 월세가 오르고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서는 것을 참지 못해 합정으로, 망원동으로, 성산동으로 점점 넘어가는 것처럼, 터줏대감이던 장기 여행자들 대신 관광객이 빈자리를 대신해 준다. 상인들은 깐깐하게 1밧까지 세는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100밧, 200밧 숭덩숭덩 써 주는 지금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전부터 인기가 많았던 한 술집은 하늘 높이 천장을 덮고 럭셔리하게 재단장해 가격을 훌쩍 올려 버렸다. 그리고 예상 가능하듯 힙 플레이스가 되었다.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이곳이 여전히 다 잊고 춤출 수 있는 곳이란 것. 추구하는 결은 조금 달라졌지만, 현실과 떨어져 맘껏 하고픈대로 발산하는 에너지들은 그대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과 술은 무언가에 지친 사람들의 해소 창구니까. 인류는 역사적으로 힘들여 일한 다음이나, 무언가를 이겨내야 할 때, 뜻을 모아야 할 때 적당한 시기를 빌어 축제를 열어 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의식부터 우리나라의 마을 잔치, 한 달이 넘게 열리는 우루과이의 카니발, 진흙에 뒹굴어도 즐거운 글래스톤베리의 음악 페스티벌까지 그 자리들엔 술과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을 지치게 만들던 것이 주로 노동이던 과거와 달리 공부, 정치, 과제, 일, 진로, 인간관계 등으로 더욱 세분화되었을 뿐이다.


카오산 로드는 매일이 축제다. 반복되는 비트는 흥을 올리고 술이 보조한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밤 골목의 화려한 네온이 말한다. 이 거리 안에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생각 없이 춤추고 마시고 놀아도 된다고. 미래의 걱정을 잊게 해 주는 도피처. 상점들이 일찍 닫고 늦게까지 술을 마실 곳이 없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는 ‘거리 클럽’은 더없는 천국일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젊은 서양인 비율이 특히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는 많다. 작은 버켓(양동이)에 에너지 음료와 함께 담아주는 싸구려 위스키 역시 여전히 카오산 로드의 상징이다. 한 버켓 150밧(5,700원)부터. 어떤 술이 얼마나 섞었는지 믿을 길이 없지만, 싼 맛에 마신다. 말만 잘하면 조금 넣을 술도 많이 넣어준다. 얼음이 반인 이 버켓을 너도나도 들고 다니며 춤을 춘다.


ⓒ Yoonhye Jeon

우리도 밤마다 나가 놀았다. 어떤 날은 한국인은 세상의 모든 매운맛을 먹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가 핵폭탄급 매운 꼬치를 먹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고, 심심하면 팟타이를 먹고, 마사지를 받고 나른해진 몸으로 술을 마셨다. 매일 같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손목을 잡아대던 성매매 알선 아저씨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낮엔 동네 이발소에 가서 100밧을 내고 니콜라스의 머리와 수염을 다듬고, 태국이 왁싱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왁싱까지 했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고객이 많아 왁싱 기술이 발달했다는 설이 있다.) 밤은 여전히 습하고 더웠지만 세븐일레븐에서 맥주나 사 길바닥에 앉아 시원하게 먹으면 됐다. 좋은 음악이 나오면 개의치 않고 춤을 췄다. 어쩌다 <마카레나Macarena> 같은 고전이라도 나오는 날엔 동네방네가 모여 플래시몹을 방불케 놀았다. 독일에서 온 단체 여행객이든, 폴란드에서 온 어린 절친들이든 잘 추든 못 추든 신나게 춤추다 보면 없던 친근감도 생긴다. 한국에서는 무릇 춤이란 멋지게 잘 춰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여기선 자기 멋대로 추니 상관없다. 그냥 한 양동이 마시고 춤추면 되는 거다. 포장마차 사장님이랑도 춤을 추고 사장님은 친절히 플래카드로 땀도 식혀준다. 누가 뭘 해도 제지하지 않는 이곳은 전과는 또 다른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 세대의 자유는 전쟁과 평화라는 거창한 명제로부터 비롯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개척해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 편하게 자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스마트폰이 정보까지 떠먹여 주는 우리에게 자유란, 그리고 여행이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 잠시의 일탈일 뿐일지도 모른다. 여행조차 네모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하는 세대. 일상이든 네모든 잊어버리고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 이것이 아마 슬프게도 우리 세대가 자유를 즐기는 모습일지도.


그것이 비록 여행에 대한 뜨거운 에너지는 아닐지라도,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는 카오산 로드의 활기찬 에너지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여전히 가난한 곳은 가난하고 더러운 곳은 더럽고 시끄러운 곳은 시끄럽다. 그러니 이곳이 여전히 천국일지 아닐지는 즐기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렸다. 20년 전 카오산 로드를 찾은 사람들이 이전의 비포장길에다 시장통 만물상이었던 그때의 카오산로드를 그리워하듯, 10년 전 카오산 로드를 찾은 이들은 지금의 모습을 보며 옛 모습을 그리워하듯, 이제 처음 카오산 로드를 찾는 새로운 세대들은 이 모습에 매료되어 10년 후, 20년 후 오늘의 카오산 로드를 그리워할 거다. 장기 여행자도 관광객도 아닌 애매한 우리는 이곳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충분히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찾을지는 모르겠다. 잊고 마시고 춤추는 것도 좋지만 역시 인류의 미래나 걱정하며 조촐하게 맥주 한 병 마시는 게 더 좋다.

ⓒ Yoonhye Jeon

자유로운 여행을 갈망하는 사람은 빠이에 가도 여행자 뒤의 검은 그림자를 본다. 아니, 이미 그곳에도 자본은 잠식한 지 오래다. 여행자로서 정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조금은 비관적이 되어본다. 시대가 바뀌었다. 서양의 부모님 세대(우리 부모님 세대가 젊을 때는 해외여행이 금지였다.)가 반전을 외치며 인도로, 태국으로 떠나던 그 무렵. 그들이 골목골목 모험가이자 여행가로서 개척했던 인도의 빠하르간즈,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네팔의 타멜 로드, 태국의 카오산 로드를 1990년대 뒷세대가 물려받았고, 국가 정세가 안정되고 해외여행이 편안해지기 시작하며 아시아 마을 곳곳에 관광 산업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제는 그 후세대의 차례다. 윗세대가 살던 시절처럼 배낭여행을 하기에 이제 ‘여행’은 너무나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렸다. 상업망은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자칫하면 많은 것을 휴대폰에, 여행사에 의존하게 되어버린다. 따라다니며 소비만 하기에도 벅찬 세대. 정보를 과감하게 놓지 않는 이상 자유로운 여행이 어려워져 버린 시대, 그 거미줄 같은 정보와 리뷰와 교묘한 영업 사이사이 우리의 여행을 얼마나 귀중하고 ‘오롯한’ 것으로 남길 수 있을까.


우리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험을 하고자 한다. 푸껫과 카오락을 거쳐 방콕까지 올라오며 우리는 태국 남부와 수도를 어렴풋이 경험했다. 막연하게 남겨둔 커다란 하나의 도시가 남았다. 태국 북부, 치앙 마이. 치앙 마이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태국은 산업화가 비교적 잘 이루어진 나라라 교통 인프라 역시 잘 마련돼 있다. 우리는 그 쭉 뻗은 고속도로를 타고 편안히 가고 싶지는 않다. 관광객들과 함께 좋은 버스로 여섯 시간 만에 가고 싶지 않고, 비행기로 한 시간 만에 떨어지고 싶지도 않다. 대신 이 나라 곳곳을 누비고 싶은데 어떡할까. 우리는 다시 모터바이크를 빌리기로 했다. 우리의 짐을 다 싣고 장거리를 달려도 덜 불편한 더 크고 무거운 모터바이크를. 진짜 모험이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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