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운 태국 치앙라이
날이 밝자 니콜라스는 기다렸다는 듯 “트라이엄프에 가자!” 한다. 어제 치앙라이로 들어오는 길에 커다란 샵을 본 뒤로 마치 장난감 가게에 가길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그다. 공교롭게도 다음 모터바이크 여행에 탈 기종을 트라이엄프로 점찍었던 터였다.
트라이엄프는 세련된 클래식 스타일로 이름난 영국의 모터바이크 브랜드다. 2002년 방콕 아래 촌부리Chonburi에 공장을 세우며 태국을 아시아 진출 거점으로 삼은 트라이엄프는 큰 도시에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태국을 달려보니 이해가 된다. 도로들이 깨끗하고 잘 정비돼 있는 데다 산길엔 터널 대신 커브가 가득하니, 빅 바이크 수요가 꾸준할 수밖에. 신축한 건물이 반짝반짝하다. 우리는 타이거 시리즈를 살펴본다. 홈페이지에서 몇 번이나 커스텀해 보던 모델인데 실제로 보니 정말 호랑이만큼 육중하고도 날렵하다. 매장을 둘러볼 동안 미국의 시리즈 <썬즈 오브 아나키Sons of Anarchy>에 나올 것만 같은 긴 머리와 수염, 청재킷을 걸친 아저씨들이 차례로 들어온다. 이곳에 오래 머무르는 듯한 서양인들이다. 은퇴해 태국에 살며 풍경 좋은 곳을 달리고 싶은 로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치앙라이에 매장을 세운 것은 이 때문일까.
니콜라스가 프랑스를 떠나기 전까지 몰던 기종도 트라이엄프 것이다. 3실린더가 주는 배기음 특유의 불규칙하고 부드러운 사운드가 좋단다. 그는 여행을 하며 이따금 모터바이크가 지날 때면 소리를 듣고 실린더가 몇 개인지, 행정(Stroke, 피스톤이 최고점에서 최저점으로 움직이는 거리)이 몇 행정인지 문제를 내곤 한다. 어떤 날은 유튜브를 틀어 맞추기도 하고. 덕분에 모터바이크계 귀명창이 되어가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선 3실린더 소리를 들을 일이 없었는데 마침 출차하는 모터바이크가 있어 들어 본다. 여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터바이크는 배기음 때문에 ‘시끄러운 종’이란 편견이 강했는데, 그건 이상하게 튜닝을 한 혹은 몰상식하게 바이크를 몰던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듣다 보니 브랜드마다 바이크마다 사운드가 참 매력적이다.
내친김에 근교 드라이브를 한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집과 오두막이 자리하고 마을마다 귀엽고 작은 사원들이 있다. 치앙라이에 오면 필수로 들린다는 백색 사원Wat Rong Khun, 청색 사원Wat Rong Seu Ten, 검은집Baan Dam Museum을 들리기로 한다. 컬러로 콘셉트를 잡은 것이 독특하다. 뭘까? 가까운 검은 집을 먼저 가 본다. 예술가가 살던 집이자 개인 컬렉션이자 뮤지엄이다. 북쪽 지방 집 스타일에 하늘 뾰족이 지붕을 올린 검은 집. 기괴하기도 하고 스산하다. 고고한 검은 집이 우리를 맞이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다. 박물관 앞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두리안을 파는 슈퍼와 뜬금없는 망고 디저트 카페로 문전성시. 봉고차의 향연. 관광차가 한 대 들어오면 한 대가 나가는 관광 성지였던 것이다. 검은 집엔 빨갛고 노란 양산이 지나다닌다. 들어가기도 전에 기를 빼앗긴 우리는 멀찍이 떨어진 식당에서 점심부터 먹는다.
뮤지엄에 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는데 세상에나, 세상 다양하게 변주한 나무 남근이 변기와 세면대, 문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오래된 유원지에 가면 꼭 하나씩 있는 막걸릿집 같았다. 옛 음악이 흐르고 낭만을 포장하며 불륜 커플이 자주 가던 그런 곳. 밖에서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는 니콜라스의 표정도 심상찮다. 작품 판매용 갤러리에는 악마를 형상화한 음울하고 기괴한, 그리고 성적인 도착까지 느껴지는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뮤지엄 안에는 작품과 더불어 죽은 동물의 가죽과 뿔을 전시한다고 한다.
“이해하지 못하겠어. 예술이 이런 거야? 만약 이런 작품을 봐야 한다면 들어가지 않을래.”
이따금 현대예술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들며 관대하게 방어를 하곤 한다. 정신병을 앓는다거나 알코올 중독 등 맨 정신에서 나오지 못하는 작품에 대한 허용치도 높다. 그러나 이 예술가의 일생은 모르지만 이곳은, 언뜻 보아 나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성과 죽음에 대한 광기가 있던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니코. 네가 받은 인상을 이해해. 우리가 실제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힘든 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기 어려워서야. 이해를 못 하겠다 말하면 사람들은 ‘이해할 필요 없어.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돼’ 하거든. 그걸 빌미로 안 풀리는 문제를 감상자에게 책임을 던지는 작품도 있고. 어찌 되었든 작품엔 예술가와 감상자 개인의 교감만 있을 뿐이야. 누구도 예술을 정의할 수 없고, 누구도 그 형태를 몰라. 그런데 어쩌면... 보편적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있을지도 몰라. 예술적 상상력과 교감에 제한을 두면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그것이 부적절한 도착에서 온 것이라면... 나도 동의하기 어렵거든. 예술과 도착은 다른 거야.”
제한하지 말자던 나도 모르게 제한을 두고 있다. 자신이 불 지른 담뱃집을 보며 영감이 떠오르던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 속 작곡가 백성수를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재미로 헛간을 태운다는 영화 <버닝> 속 연에는 분노하지만 불을 질러 만약 불멸의 작품이 나온다면. 실제로 정신 이상을 겪은 사람이 많았고, 정당화될 순 없지만 아름다운 작품들이 나오곤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곳에 들어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끝내 이곳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날 찾은 백색 사원은 치앙라이 출신의 예술가 찰름차이 코싯피팟Chalermchai Kositpipat이 버려진 사원을 1997년 자신만의 란나 스타일로 리노베이션 한 곳이다. 란나 양식은 13세기 말 시작된 치앙마이, 치앙라이 중심의 란나 왕국의 건축 스타일로, 3겹으로 쌓은 지붕과 건물 안팎을 화려하게 조각한 뒤 금으로 덧꾸미는 게 특징이다. 찰름차이는 하얀 칠과 은빛 세공으로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냈다. 오래된 사원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함은 없지만 얼마나 공을 들여서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지는 알 수 있다. 백색 사원의 성공 후 그의 제자가 또 다른 버려진 사원을 디자인해 청색 사원을 세웠다.
“태국 사람들은 대범한 것 같아. 이런 시도는 ‘보존’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프랑스에선 불가능한 일이야. 예술가가 새로 성당을 지을 수는 있겠지만, 오래된 성당을 개인의 스타일로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거든.”
비단 프랑스뿐이랴. 많은 나라들이 ‘보호’라는 명목 아래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삶과 분리를 한다. 어떻게 보면 치앙라이는 그런 점에서 현재에 충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프랑스도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전에는 복원이나 증축을 할 때 그 시절의 스타일대로 하곤 했으니까. 불탄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도 프랑스혁명 때 파괴된 것을 19세기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꾼 것이다. 벽에 균열이 생겼을 때는 그 시대 발명한 벽 날개를 붙였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은, 성당의 중심이 되는 본체는 언제든 변함없이 그 모습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모양대로 복원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을 우선으로 한다. 복원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으니까. 반면 이곳은 용들이 화려하게 머리를 든 모습이 옛 양식을 덮고 말았다.
“사원을 화려하게 짓는다고 해서 부처님이 기뻐하실까?”
또 다른 주제다. 노트르담의 성상을 파괴하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부순 16세기의 위그노(개신교도)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종교적 공간. 영혼의 집. 치앙라이의 사원들이 노트르담만큼의 대규모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동안 태국인들의 기도와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소박하더라도 신을 향한 믿음이 머무는 곳 말이다. 새로 태어난 장식들은 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역사를 아우르긴 어렵다. 스파이더맨과 포켓몬스터가 그려진 벽화와 캡틴 아메리카의 머리가 걸린 나무. 그리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이 장소를 소비하는 방식이 말해준다. 이곳은 사원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작품일 뿐이라고. 예술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심을 표현한 작품. 태국 삶의 신앙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고.
치앙라이 중심가의 금색 시계탑과 가로등들도 그의 작품이다. 사원부터 시계탑, 가로등 모두 확실히 눈을 끄는 작품들이라 치앙라이의 명물이 되기는 했지만 화려함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동대문이라 하면 우리는 동대문운동장도, 동대문도 아닌 자하 하디드의 미래적인 DDP을 먼저 먼저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명소’를 쫓다 보면 가끔 이런 허무함이 남는다. 어쩌면 아편의 온상이었던 이 일대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치앙라이가 문화 예술이란 코드로 새로운 관광 포인트를 만들고자 단행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공이고.
치앙라의의 새로운 시도는 흐른 뒤에야 재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눈으로 따라갈 빛만 있고 특유의 냄새는 없는 도시. 필수로 들린다는 명소들이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도시. 자꾸만 “~라면”이라는 가정이 붙는, 아쉬움이 남는 도시. 유색무취한 도시. 작은 도로에 우뚝 선 커다란 딜러샵들과 철저히 여행자 기준으로 바뀌어버린 구시가, 특히 시계탑 남쪽의 서양인 겨냥 유흥가와 스포츠바, 음식점, 마사지샵. 개성 없고 어두운 밤거리. 오른쪽의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야외 테이블 구역과 현지인들이 술 한 잔 마시러 오는 노란 테이블 구역으로 나뉜 야시장. 밀려드는 새로움에 정체성을 잃은 상태. 이 모호한 상태. 안타깝지만 주변 도시처럼 강력한 역사가 없는, 교통의 요지로 발전한 도시의 운명 같다. 여행 가이드북으로 유명한 돌링 킨더슬리 사의 태국 편도 이렇게 말한다. 치앙라이는 “모던 타운” “건축, 생활양식의 매력은 덜한 곳”이라고. 흠, 앞으로 이들이 모던을 어떻게 취할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