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는 어떤 곳일까?

태국 난에서 치앙라이로

by 전윤혜


장기 배낭여행의 골치 중 하나는 짐이다. 배낭 하나에 입을 것 씻을 것 신을 것 때론 먹을 것까지 살림살이를 챙겨 다니며 풀고 싸고, 풀고 싸고. 우리에게도 올 것이 왔다. 가방이 잠기지 않는 것이다. 니콜라스가 산 35l짜리 작은 여행용 배낭은 250달러라는 가격에 부응이라도 하듯 놀라운 확장력을 보여줬지만, 내가 가져온 책가방은 조금만 더 넣어도 버클이 터질 듯하다. 니콜라스가 사준 바지 두 벌에다 필리핀과 발리에서 주워 담은 모래, 푸껫의 폴란드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돌멩이, 어디서 붙여야 할지도 모르는 국기 패치들, 숙소에서 남긴 샴푸와 비누 샘플들... 짐이 하나하나 늘어나 가득하다. 별생각 없이 들고 온 메이크업 파우치가 요망스럽다. 메이크업이라니? 에코백은 왜 세 개나 들고 온 건지. 출발 직전까지 이런 여행이 되리라 상상도 못 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설상가상 얼마 전 산 우비의 부피가 커서 케이스에도 남는 자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옷을 덧입는다. 레깅스 위에 니콜라스의 반바지, 티셔츠 위에 또 다른 티셔츠. 모양이 조금 괴상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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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olas Riou

치앙라이까지 둘러가지 않기로 한다. 고생은 할 만큼 했다. 작은 마을 파야오Payao, 그렇게 멋지다는 라오스 접경의 푸치파Phu Chi Fa 국립공원은 다음을 기약한다. 치앙라이에 오기로 한 이유가 모터바이크 샵 직원이 추천해 준 푸치파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대각선으로 질러 220km 산길 4시간. “이 정도 거리면 안 쉬어도 될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니콜라스가 웃으며 “꼬마 라이더가 진짜 라이더 다 됐네.” 한다. 이쯤이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모터바이크로 안 쉬고 달릴 수 있는 정도다. 그러게, 진짜 라이더 다 됐다. 타이어를 갈고, 점심을 먹고, 어제 못 마신 커피까지 마시고서 느긋히 출발한다. 저녁은 치앙라이에서 먹을 거라는 포부를 품고.


파야오 안녕. ⓒ Yoonhye Jeon

니콜라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낮은 산들이 펼쳐져 있다. 북동부의 낮은 산들은 가히 몇 번을 보아도 참 아름답다. 험준해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산마다 각자 조금씩 일궈 만든 언덕 밭엔 시기에 따라, 작물에 따라 색깔들이 달라진다. 조각 천들을 커다랗게 이어 붙인 듯, 샛연둣빛과 붉은색 밤색 땅이 교차하는 모습이 옆집 아줌마가 만들던 퀼팅 가방처럼 정겹기도 하고. 도로가엔 비 맞고 큰 풀들이 맑은 빛으로 반짝인다. 조금 전까지 맑던 하늘이 고개 하나 넘자 어두워진다. 구름이 산등성에 막히고, 비를 뿌리고 가벼워진 몸으로 그것을 넘는다. 넘은 곳에서 또 무거운 구름을 만날 테고, 다시 비를 뿌린 뒤 가벼이 넘을 것이다.


ⓒ Yoonhye Jeon

고개고개를 건너 춘Chun 마을로 내려온다. 멀찍이 주민들이 도로가에 서 있다. 마을은 온통 흙빛으로 덮여있다. 침수된 것이다. 어제 한참을 쏟아지던 비 때문인가 보다. 산간의 낮은 지대니 물이 모이는 건 당연하다만, 침수된 지역이 한참을 지나도 계속된다. 마을길은 물론이고 학교 운동장과 집들이 무릎 높이만큼 잠겨 있다. 도랑을 길가 화단의 꽃들이 쓰러져 맥을 못 춘다.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마을천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논이, 물로 가득한 논이 광대하게 뒤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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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고개를 넘고 마을을 만나기를 반복한다. 춘을 지난 후로는 평지가 이어진다. 핫핑크, 형광 하늘색으로 화려하게 칠하고 장식한 화물차들이 지난다. 견인차 행렬에 한없이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마을에서는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한다. 맘껏 소리도 질러본다. 온통 푸르른 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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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북부 농촌 풍경. ⓒ Yoonhye Jeon

마을 단위로 드문드문 모여 있던 건물들이 빼곡해지기 시작한다. 매달린 전깃줄과 차들이 많아진다. 오랜만에 느끼는 교통체증. 도시가 가까워오고 있다. 치앙라이로 들어서는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겼던 건 커다란 벤츠Mercedes Benz 딜러샵이었다. 아니 어째서 벤츠가 여기에? 치앙라이가 큰 도시여서 그렇다기엔 옆 도시와의 차이가 놀랍다. 실제로 치앙라이는 이름이 알려진 것에 비해 그리 큰 도시도 아니다. 인구가 약 8만 명, 2020년 기준 태국 70개 주 가운데 인구 순위 30위. 얼마 가지 않아 큰 모터바이크 샵이 보인다. 동남아시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혼다도, 스즈키도, 야마하도 아닌 트라이엄프Triumph. 영국 모터바이크. 이 북부 산간에서 트라이엄프를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로 지은 매장인지 반들반들하게 빛이 난다. 오 마이 갓, 시내로 조금 더 들어가니 포드Ford도 나온다. 치앙라이는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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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라이가 가까워온다. 태국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보았다. ⓒ Yoonhye Jeon

시계는 5시를 가리킨다. 4시간 걸린다는 길을 2시간 30분 만에 왔다. 늘 구글맵 예상 시간보다 1시간 정도는 빨리 도착하긴 하는데, 오늘은 더 빨랐다. 오랜만에 평지에서 부담 없이 밟았나 보다. 저녁 먹을 시간까지 넉넉하다. 걸어서 치앙라이를 만끽하기로 한다. 숙소는 치앙라이 중심가인 금색 시계탑 일대와 조금 떨어진 콕Kok 강가에 있다. 가는 길에 커다란 나무를 만난다. 우리나라 서낭당처럼 오색 띠를 매고 조그만 사당을 두었다. 오래된 나무는 어느 나라에나 신령한 기운을 주는 법이다. 길을 따라 심긴 플루메리아 향이 은은하다. 시계탑 즈음해서 갑작스레 늘어난 평균 신장에 놀란다. 서양인들이 정말 많다. 우리는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좁아서 아슬아슬한 루프탑 바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버거집에 왔다. 니콜라스에게 집밥이 그리운 시기가 또 찾아왔다. 치앙라이 대로에는 피자집과 버거집이 많다. 심지어 우리가 찾아간 곳은 ‘건강한 버거’를 만드는 곳이다. 서양인들이 오늘만 많은 게 아니라 사철 많다는 뜻이다. 아니, 치앙라이가 대체 어떤 곳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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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잘 모르겠다. 한나절만에 무엇을 알겠느냐만,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동안 도시를 처음 보았을 때 도시마다의 느낌이 있었다. 건물의 스타일이든 자연 풍광이든 사람이 사는 모습이든, 색과 형태와 냄새로 대변되는 그런 인상이. 그러나 치앙라이는 모르겠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구시가를 한참 배회해 본다. 어둔 밤 조명에 금시계탑의 찌를듯한 꼬리들이 현란하게 빛나지만, 여의주처럼 커다란 전구가 열여섯 개나 붙은 가로등 장식이 우리를 내려다보지만, 이곳에서 진짜 빛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음날이 되어 나는 깨달았다. 왜 이 도시가 무색무취인지.




IMG_5851.JPG 헬멧에 눌려 자갈치 머리가 됐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짧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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