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와 21세기 일상 어디쯤

태국 난

by 전윤혜


십 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태국 뉴스는 ‘우기에 비가 안 내린다’보다 ‘건기가 예상보다 길어졌다’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 그동안 우리가 우기임에도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감사하다고 생각할 때 북부 지방은 말라가고 있었다. 상당히 여행자적 관점이 아닐 수 없다. 르이 호수의 수위가 낮았던 것도 이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부로 올라온 뒤 몇 번의 비를 보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큰 비가 필요한 모양이다. 길에서 본 논밭도 아직 건재했다. 아마 댐의 물로 버틴지도 모른다. 실제로 태국 댐들의 수위가 30% 아래로 내려갔다 한다. 어제 시리낏 댐 호수가 바닥을 드러낸 것을 보고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특히 물 사용량의 70%가 농업 용수로 쓰이는 태국, 그중에서도 농사가 주업인 동부, 북부 지방은 그래서 더 타격이다.


눈을 뜨니 창문 밖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비다, 비! 어찌 이런 타이밍이 다 있을까. 평소에는 입 비죽 나오게 만들 빗소리가 오늘은 그저 기쁠 따름이다. 문을 열고 나가니 푸르른 논이 멀리 산까지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논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바지런히 쭉정이를 솎는다. 비의 기쁨. 오늘의 숙소는 은퇴한 듯 보이는 노부부의 집이다. 본채는 큰 차고와 정원을 가진 제법 번듯한 집이고, 나무로 지은 별채는 2층에서 논을 마주 보게 지어져 있다. 논 옆에 지은 노부부의 집이라니, 가뭄을 해갈해 줄 비의 생명력을 느끼기엔 이만한 곳이 없겠다. 테이블 위에는 볶음밥이 밥상보에 덮여 있다. 어슷 썬 오이로 해바라기 장식을 해 놓았다. 자꾸만 부모님 생각이 난다.


Nan View Farmmer Lumduan Homestay. ⓒ Yoonhye Jeon

따뜻한 핫초코를 한 잔 마시고 잠을 조금 더 청한 뒤 친구들에게 엽서를 쓴다. 여독이 조금 풀린 듯하다. 오늘은 사원을 몇 군데 가볼까 한다. 난은 2만 명 정도가 사는 작은 도시다. 이 작은 지역에 사원만 무려 50개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읍내쯤 되는 중심가는 국립 박물관 반경 500m 정도로, 9개쯤 되는 주요 사원과 카페, 가게들이 모여 있다. 시가는 아유타야나 치앙마이처럼 구획이 잘 나뉜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한 골목을 그대로 살렸고 집들 또한 어떠한 규칙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다. 난 강의 곡류성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소싯적 난 강이 마음껏 곡류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걸 보니 꽤나 범람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강줄기가 퇴적물에 의해 막혀 소뿔 모양의 연못이 된 우각호牛角湖나 강 속의 섬인 하중도河中島 같은 것 말이다. 어쨌거나 범람하는 강 주변은 물이 운반한 유기물을 먹어 비옥했을 테고, 농업이 번성했을 것이다.




101번 도로를 타고 중심가로 간다. 어젯밤엔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도로 옆에 강이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언덕 위의 커다란 금부처가 난 시내를 내려다보는 왓 프라 탓 카오 노이Wat Phra That Khao Noi, 벽화 속 속삭이는 연인으로 난의 상징이 된 왓 푸민Wat Phumin을 가 보기로 한다. 마침 비가 개었다.


갑자기 니콜라스가 멈춰 선다. 모터바이크가 불안정하다며 바퀴를 체크한다. 뒷바퀴 타이어의 홈이 닳아 있다. 많이 타서 닳은 게 아니라 강한 열에 홈이 녹은 형상이다. 워낙 단기간에 장거리 (고속) 주행을 하다 보니 그렇다. 양 옆 곡면의 홈까지 조금씩 녹은 걸 본 그는 슬몃 미소를 짓는다. 왜 웃는 거지? 타이어가 얼마나 고르게 마모됐냐에 따라 라이더의 주행력이 입증되기 때문이란다. 바퀴를 잘 기울이면서 탔다는 뜻이라나. 어쨌거나 홈이 닳으면 노면과 마찰이 줄어 쉽게 미끄러질뿐더러 빗길엔 물을 내보내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훨씬 위험해진다. 축축한 산길에서는 천국 가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근처 정비소를 찾아간다. 타이어 교체 비용은 7,000밧(약 266,000원).


마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진과 정비소 주소를 보낸다. 마크는 치앙라이에서 해결해도 괜찮냐고 물어왔지만, 우리는 최대한 빨리 바꾸는 게 낫겠다고 의견을 낸다. 그는 쿨하게 자기가 정비소와 통화하겠다고선 10분 뒤, 내일 아침 타이어를 바꾸러 가며 된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오는 길에 영수증만 챙겨 오라면서. 그제야 안심이 된다. 사원으로 올라간다.


IMG_2973.JPG 주여. ⓒ Yoonhye Jeon

고행에 가까울 정도의 가파른 계단이 우리를 맞이한다. 타이어 홈이고 뭐고 여기서 천국을 보게 생겼다. 강렬한 빨강 노랑 초록 색 조합에 잠시 눈이 혼란하다. 운동복을 입고 뛰어 올라가는 부자父子를 구경한다. 아버지가 중도에 포기하고 한 손은 허리에, 한 손은 난간을 잡은 채 올라간다. 우리도 출발한다. 고통을 잊기 위해 가위바위보 게임을 시작하지만 이런 속도라면 해가 지고 도착할 것아 그만둔다. 올라갈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고개가 숙여진다. 자금성에 온 사신들이 뙤약볕에 커다란 문들을 하나하나 지나쳐 가장 높은 곳에 앉은 황제를 마주했을 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는데. 그들처럼 나도 이대로 부처님 앞에 선다면 겸손할 수밖에 없겠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경사가 가팔라진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게 체력이 다해서인지 무서워서인지.


왓 프라 탓 카오 노이는 정말 작다. 현지인들이 조용히 불공을 드리는 법당과 하얀 쩨디, 금부처님이 다일 정도로. 금부처님은 키가 9m나 된다. 1999년 왕의 6주년 즉위 기념에 맞추어 세워진 것이라 한다. 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왼쪽(지도상 북쪽)의 공항과 가운데의 사원들, 오른쪽의 강과 논. 높지 않은 산속에 폭 둘러싸인 모습.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작은 도시. 드문드문 사원의 솟은 겹지붕이 보인다. 동쪽 산을 관망하는 작은 탑에는 ‘DO NOT WOMAN UP THE STAIRS’ 사인이 붙어 있다. 니콜라스가 메롱하고 올라간다. 태국 북부의 절에서 이따금 ‘No Woman’ 사인을 볼 수 있다. 수도승이 여성의 몸과 접촉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라거나, 불교 교리에 따른 관습이라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니콜라스가 올라가 있는 동안 할 게 없어 물통을 머리에 이고 놀았다. 그가 내려오며 자기가 찍은 동영상을 건넨다. 언젠가 혼자 있을 때 틀어보라고 한다. 그런데 동쪽에 주차장이 있다. 그 말은 차도가 있단 뜻이잖아. 늦었다. 다시 계단을 후들후들 떨며 내려간다.


난 전경.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부럽지 않은 난의 금부처님. ⓒ Yoonhye Jeon

왓 푸민의 벽화를 보러 간다. 벽화 중에서도 얄쌍한 남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속삭이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난 기념품엔 으레 이 커플이 빠지지 않는다. 1596년 지어진 사원은 독특하게도 사방으로 뚫린 문 안으로 사방을 보는 네 부처님이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사원 안쪽 벽에는 부처의 일생을 그린 자까따Jakata가 펼쳐진다. 부처님에겐 죄송하지만 사이사이 재미난 등장인물들에 더욱 눈길이 간다. 19세기 #난 #난일상’ 정도 될까. 담배 피우는 사람, 구슬 치는 아이들, 물고기 잡는 사람들, 수행하는 스님들, 불륜 커플, 뱀에 잡혀 먹는 사람들, 진하게 사랑을 나누는 연인(에다 훔쳐보는 소년)까지... 중절모 쓴 백인들이 증기선에 타고 나타나는 장면도 있다. 이 그림을 미루어 벽화가 그려진 연대를 189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한다. 1893년 난 왕국이 프랑스에게 영토 일부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다니다 보면 프랑스 입김이 안 든 곳이 없다. 제국주의의 활약이 새삼 놀랍다. 이 먼 나라 땅에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뒤엉켜 있다. 태국은 주로 프랑스다. 태국 북부는 미얀마와 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미얀마(버마)를 점령했던 영국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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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Phumin. ⓒ Yoonhye Jeon

속삭임도 그 특이한 사람들 중 하나다. 남자의 차림이 너무나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피어싱을 방불케 하는 넓은 귓구멍과 살바도르 달리도 울고 갈 콧수염, 상의 탈의와 붉은 문신, 하늘한 하의 사이로 내민 한쪽 다리와 검은 문신. 거기엔 여인의 손이 살짝 닿아 있다. 연인인지 썸인지 모르겠다만... 재미난 벽화 덕에 조그만 사원 안이 생기가 넘친다.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니 이보다 더 귀한 자료가 없다. 감칠맛 나는 우리네 조선 후기 풍속화처럼. 병아리를 물어가는 고양이를 쫓는 김득신의 <파적도(破寂圖)>나 훈장님에게 매 맞고 우는 김홍도의 <서당>, 단옷날 그네 타고 머리 감는 여인들과 훔쳐보는 스님이 재미난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처럼 말이다. 150년 전 난의 모습은 이랬구나. 이러한 인간군상을 부처님이 사방으로 지켜보는 모습이 흥미롭다.




커피를 한 잔 할까 휘 돌아본다. 요즘 들어 감성 카페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카페는 6시면 땡, 하고 문을 닫는다. 시장도 거의 닫았다. ‘저녁이 있는 삶’이 있는 도시다. 중심가를 몇 바퀴나 돈 덕에 난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 도시, 뭐랄까. 단정하고 참하다. 거리가 깨끗하고 건물과 시설들이 일관성 있다. 가로등 위에는 용 모양의 배 장식이 얹혀 있다. 왓 푸민의 입구에도 기다란 용이 지키고, 왓 프라 탓 카오 노이의 기다란 계단 역시 초록색 용으로 장식돼 있었다. 곳곳에 용이 지키고 섰다.


난은 조급하거나 붐비지 않는다. 공원에선 아주머니들이 태국 트로트에 맞춰 체조를 한다. 강가를 달린다. 10대들이 배에 탄 친구들을 따라 우르르 강변을 걸어간다. 가을이면 이곳에서 전통배 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21세기 난의 벽화를 그린다면 이런 풍경들이 그려지지 않을까.


ⓒ Yoonhye Jeon

커피는 마시지 못했다. 대신 저녁을 먹으러 야시장에 들렀다.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지다 곧 장대비로 변한다. 포장마차가 다들 비슷해 보여 아무 집이나 들어간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니콜라스가 프랑스에서 왔다고 하니 갑자기 프랑스어를 하는 게 아닌가. 관광객에게 배운 프랑스어가 아니었다. ‘yes’를 뜻하는 ‘Oui(위)’를 ‘Ouai(우애)’, 한 번도 아니고 우애 우애, 자연스럽게 두 번 대답하는 것이 영락없이 현지에서 산 느낌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포장마차 안에서 아저씨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스위스 대사관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어떤 연유로 태국 시골 마을에서 포장마차를 하는지 물어보진 않았다. 아저씨는 오랜만에 프랑스어를 쓸 수 있어 즐거워 보인다. 짬짬이 테이블에 들른 아저씨에게서 이야기를 이어 듣는다. 비가 기칠 그미가 없어 맥주를 한 병 더 시킨다. 밤이 길어진다. 난의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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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비에 일찍 마감한 야시장.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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