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칸에서 난까지, 10시간의 기록
“난Nan으로 가자.”
태국 중북부 치앙칸에서 서북부 치앙라이까지는 600km, 고속도로로 9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동안은 호기롭게 7시간씩 달려왔지만 매번 그럴 순 없다. 피로는 쌓일 대로 쌓였고 이곳에서 이틀 연속으로 일출을 보며 무리하기도 했다. “그럼 어디서 쉬면 좋을까?” 우리는 지금 태국 치앙칸에 있다. 태국 동북부와 라오스 서부를 사이에 두고 동남쪽으로 장장 750km를 둘러 흐르는 메콩강 국경의 시작점이다. 문득 치앙칸으로부터 서쪽 국경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좋아, 어차피 그 방향으로 갈 거 국경을 따라가 보자. 그리고 라오스 북서쪽 국경과 접한 유일한 도시 ‘난Nan’에 가 보자.
난. 사원의 도시. 왕국의 도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동쪽과 북쪽으로 라오스와 접하고 서쪽으로 태국 산간 도시 빠야오Payao와 프래Phrae를 낀다. 난은 수세기 동안 독자적인 자치 왕국을 영유해 왔는데, 프랑스인들이 들어쳐 어지럽던 개화 시절까지 잘 버티다 1931년에서야 태국에 완전히 편입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국가를 세우기 위한 갖춰야 할 기본 요소는 첫째 안전과 둘째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다. 짐작컨대 험준한 산이 외세의 침략을 막고 북쪽 산에서 흐른 난 강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천혜의 자연을 입은 도시. 여기까지. 처음부터 너무 많이 알아 버리면 재미가 덜하다. 가 보면 절로 알게 되겠지. 치앙칸에서 난까지 약 400km. 오늘도 한나절은 달릴 것 같다.
“윤혜,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6시간 30분짜리 산길이랑, 7시간 30분 걸리지만 페리를 탈 수 있는 길. 난 남쪽 큰 호수Sirikit에서 자동차, 모터바이크 페리를 운행한대. 국경 따라 4시간 간 다음 갈림길에서 선택하면 돼. 한 시간 정도 더 타는 것 괜찮겠어?”
나는 안다. 구글 맵이 알려주는 시간에서 최소한 1시간 30분을 더해야 한다는 걸. 잠시 쉬거나 기름을 넣거나, 밥을 먹어야 하니까. 특히나 모터바이크 초보인 나는 정기적으로 엉덩이를 쉬어야 한다. 아니면 엉덩이가 안장에 눌려 네 쪽이 날 거다. 그러므로 페리 타는 길을 간다면 9시간이다. 9시간이라. 그 정도면 치앙라이도 갈 시간인데... 물론 고속도로를 탔을 때. 고민하는 사이 “제발, 제발!” 올망한 그의 눈빛에 못 이겨 승낙하고 만다. 피곤하긴 하지만… “한 시간. 까짓것 가 보지 뭐!” 그때까진 몰랐다. 이 결정이 오늘 얼마나 위험한 길을 가게 만들지.
10시. 지도를 보니 호수까지 커다란 산을 네 개나 넘어야 한다. 구글은 자꾸 빠른 길을 안내해 주고 싶어 도로를 바꾸려 든다. 우리는 avoid 항목에 ‘toll’ ‘highway’를 체크하고 중간 기점을 찍는다. 첫 기점은 태국-라오스 국경 검문소, 두 번째는 국립공원Phu Suan Sai National Park, 그다음이 호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다. 이런 길에서 모터바이크를 타다가 배가 고프면 서글프니까.
밤새 비가 와 메콩강 수위가 올라서 있다. 먹구름 낀 날씨에 약간의 안개, 수위 오른 강이 지척이니 은근히 무섭기도 하다. 흙빛 강물이 뻑뻑하게 앞선 강물을 밀어낸다. 메콩강은 치앙칸 서쪽으로 20km가 미처 되지 않아 라오스로 올라가 버린다. 국경은 그 지류인 후에앙Hueang 천을 따라간다. 작은 천 양편으로 언덕들이 봉긋하다. 사람들이 나무들 풀들을 조금씩 깎아내어 밭을 맨다. 연둣빛 사이사이 붉은 흙들이 드러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렇게나 비슷한데 이 조그만 천 하나로 나라가, 언어가, 사상이 나뉜다니 놀랍다. 강에선 사람들이 무언갈 잡는다. 마음만 먹으면 라오스로 건너갈 수도 있겠다. 휴대폰으로 로밍 안내 문자가 10분마다 하나씩 온다. ‘라오스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태국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라오스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간간히 화물차가 오고 갈 뿐인 조용한 국경 검문소를 지나 세 시간쯤을 내려온다. 푸수안사이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푸수안사이는 태국 북부 국경의 한가운데 있는 산으로 산맥 대부분은 라오스에 있고 그 꼬리만 태국에 있다. 가운데 있는 폭포를 보려고 굳이 국립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폭포 앞에 덩그마니 식당이 있다. 여덟 살쯤 되는 꼬마 숙녀가 나와 주문을 받는다. 메뉴가 없어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다 결국 아주머니들이 우리를 주방으로 데리고 가 재료를 보여준다. 고기를 가리키자 나는 엄지를 내민다. 밥, 엄지, 계란, 엄지. 나는 니콜라스를 가리키고 혓바닥에 격렬한 손 부채질, 그리고 엑스. ‘매운 것 못 먹어요!’의 확실한 바디랭귀지다. 나는 손 부채질, 엄지. 마지막으로 니콜라스는 환타를 가리키고 엄지. 그렇게 내게 나온 메뉴가 팟 끄라파오 무쌉Pat krapow moo sab이다. 양념에 볶은 돼지고기와 바질, 고추. 중국 스타일 고기볶음 같기도 한 것이 맵싸하니 맛있다. 니콜라스는 하나밖에 없다는 안 매운 메뉴 계란 볶음밥을 받는다. 얼음 넣은 환타로 더위를 식힌다.
국립공원은 비가 많이 왔는지 후덥지근한 정글이 되어 있었다.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가듯 배배 꼬인 덩굴 식물들을 지난다. 이제는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갈 차례다. 갈림길에서 시리낏 댐이 있는 왼쪽으로 튼다. 구름이 멋들어지게 끼었다. 아주 낮게, 두꺼운 솜을 뜯어놓은 것 같다. 평지에는 자그만 논, 야트막한 뒷 언덕엔 밭이 이어진다. 화전을 일구나 보다. 태국인들은 예로부터 계절 사이에 밭을 태우곤 했다. 옥수수 밭은 이곳의 골짜기에도 잠식해 있다. 태국인들이 이다지도 옥수수를 많이 먹었던가? 도종환이 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와 같은 일은 태국 북부에서는 있을 수 없지 싶다. 옥수수밭이 너무 많아서 당신을 찾을 수가 없는 더욱 슬픈 이야기가 되고 말 테니까. 밭이 이어지는 단조로운 풍경에 졸음이 몰려온다. 모터바이크 뒷좌석에서 졸리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운전자가 운전을 잘한다는 뜻이다.
배 위에 모터바이크를 태우고 건너보겠다는 일념으로 한 시간여 깊은 골짜기로 향한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도로가 험하다. 커브 길에 차선이 없기도 하고, 울퉁불퉁 땜질된 도로를 지나니 온통 붉은 도로가 시작된다. 밭에서 일하는 트랙터들 이 길로 출퇴근한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포장된 이 2차선 도로가 주변 색을 닮아 간다. 붉은 땅. 붉은 땅의 나라 태국.
시리낏 호수는 댐으로 막은 인공 호수다. 짜오프라야 강으로 흘러드는 주요 지류인 난 강 수위를 조절하기에 짜오프라야 강의 연간 유출량을 1/5나 조절하는 대단한 댐이다. 댐은 남쪽 끝에, 페리 선착장은 북쪽 끄트머리에 있다. 직선거리만 20km가 넘는 거대한 호수다. 기대를 안고 도착한 호수에는 웬걸, 아무도 없다. 대신 황량한 모래바닥이 기다릴 뿐이다. 호수의 수위는 족히 3m는 내려가 있었다. 이상하고도 드라마틱한 풍경에 말을 잃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많이 가물었던 걸까? 흙이 축축하고 풀이 채 자라지 않은 걸 보아 물이 빠진 지 며칠 안 된 듯하다. 우리 뒤로 현지인들이 따라온 것으로 보아 페리를 멈춘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휑덩히 꽂힌 표지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본다. “물 없어서 운행 못합니다.”
페리를 탄다면 10분도 채 안 되어 호수를 건너고 그로부터 1시간 뒤면 난에 도착한다. 그런데 온 길로 다시 돌아가 또 산을 넘어야 한다고? 계산하니 4시간은 족히 돌아가야 한다. 이미 여기까지 5시간이나 타고 왔다. 체력이 떨어진다. 간절하게 쉬고 싶다. 이 컨디션으로 더 가다 보면 큰일 날지도 모른다.
“니코, 나 못 해. 못 가. 못 가겠어.”
호수가 깊지 않아 보이니 차라리 걸어서 건너가 보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본다. 니콜라스는 여기까지 와서 죽고 싶냐고 묻는다. 그런데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더 싫다. 작열하는 해 아래 서 있을 힘이 없어 주저앉는다. 아까 갈림길에서 호수를 선택한 나를 저주한다. 선택지가 없다. 시계는 4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일분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윤혜, 아 유 오케이?”
자칫 정신을 놓으면 고개가 까딱 넘어갔다. 니콜라스는 운전하랴, 나를 챙기랴 정신이 없다. 더 이상 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허벅지를 꼬집고 혀도 깨물어 본다. 그새 산 아랫마을까지 내려왔다. 길의 끝에서 고개 두 개를 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난이 왜 독자적인 왕국을 세울 수 있었는지 이해한다.
고개에 오르기도 전인데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해 질 녘 주홍빛이 도로에 아련한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즐길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 아름답다. 바흐J.S. Bach의 건반악기를 위한 코랄 BWV639 <주여 당신을 소리쳐 부르나이다>의 조용한 멜로디가 머릿속에 흐른다. 모든 소음이 멈추고 움직임이 슬로 모션으로 일어난다. 나무를 지날 때마다 눈이 부셨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 아름다운 순간이다.
순간은 금세 지난다. 구불구불 고도를 올라간다. 가로등이 사라진 산길에 어둠이 엄습한다. 니콜라스가 바짝 긴장한다. 어둠, 초행길, 위험한 커브, 관리 안 된 도로, 야생동물.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들이 한꺼번에 닥친다. 설상가상 내비게이션까지 끊겨 버린다. 모터바이크 속도를 줄인다. 지금부턴 천천하더라도 안전히 가야 한다. 쌍라이트를 켜고 커브 주의 표지판을 주시한다. 처음엔 정신을 바짝 차리다가 어둠이 계속되자 다시 고개가 내려간다. 꾸벅, 꾸벅. 다시 출발한 지 3시간째다. 노래를 불러본다. 왜 갑자기 윤상의 <달리기>가 생각났나 모르겠다.
“지겨운가요. 끝인 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돼 버린 것을….”
안 되겠다. 노래 부르다 우울해져서 그만둔다. 대신 머릿속으로 리스트F. Liszt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상상을 한다. 옥타브를 꽝꽝 내리쳐야 하는 도입부를 피아노를 다 때려 부술 듯이 내려쳐 본다.
“딸랑, 딸랑딸랑…”
잠을 깨운 건 <달리기>도 아니고, 리스트도 아닌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종소리였다. 소가 도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수풀 속엔 더 많은 소들이 있다. 모터바이크를 세우고 헤드라이트를 낮춘다. 소들이 충분히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다가 천천히 사이사이를 지난다. 속도를 낮춘 게 천만다행이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도로 한가운데 앉아 있는 소를 피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잠시 쉬는 사이 반대편에서 헤드라이트가 가까워 온다. 그도 차를 세우고 기다린다. 다 같이 소가 움직이길 기다린다. 경이로운 장면이다.
아들이 대학 갈 때 팔 만큼 귀한 소 아닌가. 한밤중에 아무 데나 돌아다니게 두다니. 하긴, 첩첩산중에선 이 소들을 어찌 훔쳐가겠소. 주인도 그저 다음날 아침 잘 있나 휘- 둘러보고 끝낼지도 모른다. 목에 단 종이 없었다면 주인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간간히 또 다른 소 떼를 만난다. 그들의 평화로운 밤을 시끄러운 엔진 소리로 방해한 것은 아닐는지. 덕분에 달아난 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드디어 불빛이 보인다. 우리는 원시에서 문명으로 갓 뛰쳐나온 사람들처럼 전기가 주는 풍요를 만끽한다. 도로도 넓어진다. 불빛 없는 산길이, 우리가 만난 소가, 그 느릿한 움직임이, 종소리가... 모든 것이 꿈처럼 몽롱하다. 주저앉아 저주하던 마른 호수가 결국 우리를 소 떼로, 내 인생에 몇 없을 그 존엄한 장면으로 데려왔다. 마른 호수는 1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에서 왔고, 가뭄은 인도양 해풍이 심술을 부리며 불지 않은 탓에 왔다. 여행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조금 신비로운 건 사실이다.
30분 후면 숙소에 도착한다. 맘씨 좋은 숙소 주인은 늦은 시간까지 오지 않고 연락도 안 되니 혹시 우리가 길을 잃었을까 봐 넓은 앞길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스쿠터를 따라 논 가운데 조그만 나무집으로 들어간다. 아. 오늘 10시간을 달렸다. 치앙라이 가고도 남을 시간에 겨우 절반을 왔다. 노랗고 어두운 전구 아래, 고생한 니콜라스를 안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한다.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샤워를 한다. 머리도 채 말리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