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면 돼

태국 치앙칸

by 전윤혜


얼마 만에 혼자 만의 시간을 가져보는지 모르겠다.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강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가신다. 아침 7시. 스님들의 탁발 소리가 들린다. 꿈같았던 푸른 새벽이 지나고 어느새 해가 완연히 떠올랐음에도 나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 달 반을 꼬박 니콜라스와 붙어 있었다. 누군가와 이렇게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참 익숙지 않은 일들. 혼자 해오던 일들을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먹고 사든 함께 결정해야 하는 것. 사소한 의견 차이로 몇 시간을 다투기도, 서로 뚱한 날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함께여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더 많았다. 혼자였다면 이 아름다운 치앙칸에 올 일도 없었겠지. 그와 여행을 하길 참 잘했다, 생각한다. 새벽 5시 30분께 나와 그렇게 네 시간이 넘도록 치앙칸을 걷고, 보고, 머무르고서야 숙소로 돌아온다. 그렇게 잠귀 밝은 니콜라스가 오늘은 세상모르고 쿨쿨 자고 있다. 아무렴, 피곤했겠지. 어영부영 깨워 발코니로 보내 놓고 아래층에 차려진 쌀죽과 과일, 토스트를 조금씩 덜어 꽃쟁반에 받쳐 들고 올라간다. 일출 영상을 보여주며 내일은 꼭 함께 가자 약속한다.


ⓒ Yoonhye Jeon

치앙칸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일출이 아름다워서뿐만이 아니다. 전통 가옥과 강이 어우러진 경치는 두말할 것 없고. 강변 뒷골목인 차이 콩Chai Kong의 아기자기한 카페와 상점들이 정겹다. 주황색 가사를 두른 스님들의 아침 탁발 행렬도 장관이다. 사실 솔직하게, 서양인 여행자가 없어서 좋다. 대신 젊고 나이 든 태국 여행객들이 섞인 모습이 매력적이다. 소비보다 쉬어가는 모습. 치앙칸에는 전통적으로 가족, 친구끼리 일출을 보러 오거나 연인들이 하루 이틀 바람을 쐬러 온다. 조용히 다녀가는, 그들이 머무는 방식이 좋다. 우리나라도 왜 가족이나 연인끼리 1박으로 여행을 가면 그렇지 않나. 제주도나 강원도 산속 펜션에 가서 도란도란 바비큐 해 먹고, 별 보고 오롯하게 즐기다 오는 것처럼. 펫차분도 그래서 좋았다.


펫차분이 가족적인 휴양지라면 치앙칸은 보다 젊다. 숙소 주인장이나 동네 주민들, 특히 숙소의 퀄리티를 보면 분명 오래된 관광지임에 틀림없는데, 지나다 보니 부쩍 노출 콘크리트라든지, 레일 조명을 깔았다든지 무언가 꾸며 놓은 상점이 많다. 갤러리도 있고 작은 액세서리 샵도 있고, 조그만 카페도 여럿이다. 그런 샵의 주인들은 대개 전기 킥보드를 탄다거나, 나름의 감성적인 옷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닌다. 치앙칸을 찾았다가 그 평화로움에 반해 눌러앉은 사람들이다. 어제 슬로다운 바의 청년 사장님도 그랬다. 제주도에 카페를 열거나 고성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2018년에 태국의 한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된 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한다. 우리도 슬렁슬렁 2km 남짓 되는 차이콩과 강변 데크를 걸어 다니며 커피도 마시고, 엽서도 쓰며 여유롭게 보낸다.




치앙칸엔 왜 외국인 여행객들이 드물까? 나라 곳곳 외국인 여행객이 없는 곳이 없는 태국인데. 일단 방콕에서 멀어서 그렇다. 버스로 10시간. 라오스와 접경이긴 하지만 국경 검문소와 거리가 있어 실제 여행자 유입이 적다. 라오스를 오가는 여행자들은 수도 비엔티안과 마주한 도시 농카이에 머무른다. 같은 메콩강을 끼고 있지만 조금 더 도시화된 농카이는 실제로 은퇴한 서양인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치앙칸에는 강을 보는 것 외엔 액티비티가 없다. 코앞의 메콩강은 엄연히 나라를 나누는 국경이므로 함부로 이용할 수 없다. 오래도록 강 건너 마을과 교역하며 살아오던 주민들조차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된 뒤 자유롭게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 강마을 치앙칸에서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딱히 없을 수밖에. 아, 밤에 다니는 보트가 있긴 한데... 어르신들을 위한 디스코 유람선...


그렇지만 치앙칸은 풍경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니까 상관없다. 해가 질 때가 되어 다시 강변으로 나간다. 어제는 티격태격한 데다 구름까지 낀 탓에 일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동안 비는 실컷 맞았으니, 오늘은 꼭 예쁜 일몰을 보게 해 주세요.’ 심지어 니콜라스는 일출도 못 봤단 말이에요!’ 빌어본다.


ⓒ Yoonhye Jeon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낮게 물들기 시작한다. 멀리서부터 슬며시 다가오는 노을. 차마 빛을 놓지 못한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이 일출과 또 다른 연분홍빛으로 감싸여온다. 개나리빛에서부터 점점 주홍빛으로, 다홍빛으로 내려앉는다. 라오스의 낮은 언덕들이 검게 이어진다. 강물은 산과 해와 빛깔을 반사하며 천천히 흘러간다. 데크 난간에 팔을 괴고 한참을 바라본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야.”

ⓒ Yoonhye Jeon

좀체 사진을 찍지 않는 니콜라스도 오늘은 휴대폰을 꺼낸다. 멋진 파노라마. 해가 지는 서쪽은 노란데 멀리 강 동쪽은 한참 붉다. 나는 니콜라스가 내게 고백하던 날 천문대에서 이야기해준, 지기 직전의 해가 타는 듯 붉은 이유를 떠올린다. 공기. 공기 중의 먼지.


“머리 위에 있던 해가 내려갈수록 빛이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도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야. 파장이 짧은 파란빛들은 그 사이 먼지의 방해 속에 흩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 계열만이 살아남거든. 그래서 일몰이 시작될 무렵 노랗던 빛이 주홍빛으로 변하고, 사라지기 직전에 붉게 타올라.”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눈으로 본다. 마침 알맞게 낀 구름들이 저마다 빛을 산란하며 서로 다른 색깔을 띠게 만든다. 방해를 받는 정도에 따라 울긋불긋 다양한 빛이 쏟아진다. 돌아 돌아 잃는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지다니. 방해라는 게 이렇게 멋질 일이려나. 언제나 샛길에 골목에 방해받는 우리의 여행도 나름대로 아름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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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궁금한 꼬마들. 치앙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서양 여행객이다. 이 꼬마 아가씨는 태국인 보모와 함께 다녔다. ⓒ Yoonhye Jeon

토요일 저녁이다. 노을을 입은 골목은 이국적인 나무들과 겹쳐 거리를 더욱 황홀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부르는 태국 트로트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이고, 액세서리를 잘 하지 않는 나도 오늘만큼은 가판을 기웃거려본다. 비즈가 주렁주렁 늘어진 커다란 귀걸이를 하나 산다. 금세 깜깜한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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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마룻장을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던 집들처럼 마루와 벽에 반짝반짝 니스를 칠했다. 달각, 스위치를 올려 발코니 등을 켠다. 니콜라스 머리 옆에 전봇대 머리가 나란하다. 칭칭 동여맨 전선 뒤로 흰 가로등이 거리를 비춘다. 산속 노점 아저씨에게 산 ‘타이 위스키’를 꺼낸다. 발효주가 아니라 쌀로 만든 증류주니 ‘타이 보드카’라 부르는 게 맞겠다. 태국 사람들은 위스키를 좋아하는지, 술에 여기저기 위스키를 붙이는 모양이다. 많은 이들이 타이 위스키라 알고 있는 상솜Sangsom 역시 위스키가 아닌 럼이다! (대반전) 여전히 맛은 다음날 숙취각이지만 태국 문화 체험이라 생각하련다. 과일 주스를 넣어도, 콜라를 넣어도 맛이 없는 이 술을 밤 정취 삼아 들이켠다.


밤이 푸르다. 구름이 낀 밤은 완전히 어둡지 않다. 번개가 번쩍, 치더니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린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젖은 풀 냄새가 끼친다. 비가 올 모양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천둥과 번개의 상관관계부터 시작해 아시아의 태풍과 마이애미의 허리케인, 재해를 대비해 튼튼하게 짓는 일본 집과 어차피 잃을 것이니 효율적으로 빨리 다시 짓는 마이애미의 집들, 그들의 집보험, 미국의 자본주의로 넘어간다. 우리의 이야기는 대개 자연의 위대함으로 시작해 아등바등한 사람의 모습으로, 역사로, 문화 차이로, 그리고 결국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로 끝을 맺는다. 빨리빨리의 한국과 불편해도 세상 느긋한 프랑스, 대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한국과 오늘 나의 자유와 기분이 중요한 프랑스. 미국의 방식이 이해가 되는 나와 어차피 보험회사가 내줄 거니까 수많은 집을 아무렇지 않게 지어내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우리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효율, 경쟁, 자본으로 꼽아 본다. 그런데 나에게 효율과 경쟁과 자본은 생각보다 끔찍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러려고 노력한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경험을 더 하려고 노력한다.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 않았을 때 자책하고, 마냥 쉬기만 할 때 불안하다. 회의적인 니콜라스를 위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하며 좋은 예를 들어 본다. 글도 마감이 있어야 써지고 마라톤 주자도 페이스 러너가 있어야 기록이 잘 나온다. 개인의 이익의 공공의 이익을 만든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도 들먹인다. 그를 납득시키려 열변을 토하다가 갑자기 깨닫는다. 나는 왜 이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사실 그의 말이 맞다. ‘발전’이란 멋진 단어 아래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있다. 함께 사는 사람들, 바다 건너 나라들, 위기에 처한 동물들. 내 주변만 보아도 야근에 지친 친구, 카페 옆에 새로 문을 연 카페, 싼 계란을 위해 닭장에서 평생 알만 낳는 닭들. 찾으라면 하루 종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도처에 벌어지는 이 나쁜 일들에 나는 분노하지만, 내게 중요한 일이 생길 때면 잊어 버린다. 나에 집중할수록私有 남과 더불어 살기共有 어렵다. 그렇다. 애덤 스미스의 논리를 ‘눈 감으며’ 이율배반적으로 쓰는 순간, 니콜라스가 혐오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다. 애덤 스미스도 이익은 이익을 만든다고 하지만 자기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맞물리지 않을 때 타락이 일어난다고 했지 않았나.


ⓒ Yoonhye Jeon

“솔직하면 돼.”


그는 모든 문제가 ‘솔직하지 않은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물건이 얼마면 나는 얼마에 팔고, 얼마의 마진을 남기는데 이 만큼이 오늘 내게 필요한 양이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근데 더 많이 가지려면 그 이유가 투명하지 않으니까 솔직해질 수 없지. 연애도 그렇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말하고, 서운한 것이 있으면 얘기하고,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솔직하게 말 못 하면 오해만 쌓인다. 서로 믿음이 있으면 어디에 누구와 가는지 무얼 했는지, 주렁주렁 얘기할 필요가 없다.


솔직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질수록 더욱 솔직하게 어렵게 된다. 작은 일조차. 나만 손해볼까 봐,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을 시인하고 싶지 않아서, 다가올 후환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정당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 나 자신을 위한 ‘변명’일 때가 많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합리화. ‘합리’가 아니라 합리‘화’.


모두가 솔직하면 된다는 그의 생각은 유토피아적이다. 물론 나는 ‘세상은 그렇게 될 수 없어’ 대답한다. 사람 생각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걸. 그러나 사실 그의 말이 옳다. 일을 할 때도, 물건을 살 때도, 집을 지을 때도, 사랑을 할 때도, 친구에게도 모두가 솔직히 얘기하면 된다. 내 평생을 뒤집는 그의 단순한 논리. 세상을 믿으면 바보가 되는 지금, 그런 가운데서 솔직하려면 바보를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바보’라고 손가락질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된다. 니콜라스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못했다. 합리화의 왕. 지금껏 쌓아온,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변명(혹은 포장)의 탑은 그에겐 아슬아슬한 바벨탑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오늘 나의 바벨탑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솔직하지 못한 채로 짧고 굵게 사는 게 아니라, 바보 같아도 솔직하게 함께 오래도록 갈 수 있는 삶이 더 멋지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던가?


“고마워. 니코. 오늘 득도했어. 마이애미가 나를 일깨울 줄이야.”


“윤혜. 나도 그래. 너랑 얘기하다 보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돼. 어려운 고백인데... 넌 내 마음가짐을 바꿨어. 알다시피 난 사람에 회의적이었잖아. 그런데 불 끄고 누웠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짓는지 알아? 저절로 미소가 나. 아무도 보지 못하지만 말이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네 웃는 모습이 아름다워. 그 모습을 보면 또 미소가 지어져. 그렇게 매일 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걸 느껴. 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너와 함께라면.”


사랑. 사랑이다. 사랑은 효율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은 설득 없이도 사람 마음을 바꾸어 준다. 사랑은 용기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북돋아 준다. 그래. 해 보는 거야. 니콜라스처럼. 우리는 사이좋게 팔 배게를 하고 잠이 들었다가 함께 일출을 보려고 3시간 만에 다시 일어난다. 어둠 속 그의 미소는 놓쳤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가 웃고 있음을. 해는 조금 뜨다가 구름 속으로 부옇게 사라져 버린다. 스님들이 탁발하며 시주 그릇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을은 다시금 조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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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곳을 유명해지기 전의 빠이 같다고 한다. 북쪽 전통 가옥과 한가한 분위기, 평화로워서 모든 근심을 달래줄 것만 같은 풍경들. 그 말인즉 유명해진 빠이는 이미 이 모습을 잃었단 뜻이겠지. 태국 많은 도시들이 서양인 여행객들에 의해 변한 모습을 보아 왔고 앞으로 갈 도시들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치앙칸만큼은 그냥 태국인들 휴양 마을로 남았으면 좋겠다. 돈 된다고 허름한 집을 부수고 콘크리트 건물을 높다랗게 짓고는, 풍경도 망치고 돈도 올려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히 와서 해 뜨고 지는 거나 보며 소소하게 맥주 기울이는 그런 호젓한 도시로 남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그저 살아온 모습대로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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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 사실 오늘 이야기는 진짜 진짜 아름다운 치앙칸의 일몰에 대해서만 쓰려했어요. 그런데 이날 밤 니콜라스와 장장 네 시간 동안 이야기했거든요. 쓰다 보니 이 주제가 더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이 이야기로 언젠가 글을 하나 더 써 볼까 봐요. 모든 존재를 회의고서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진실임을 깨달은 데카르트처럼, 저도 내 모든 삶이 변명은 아니었을까 회의하게 됐거든요! 회의와 반성. 지금도 -ing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짧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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