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출

태국 치앙칸

by 전윤혜


강 건너 라오스가 지척인 곳. 메콩강을 따라 생겨난 작은 마을, 치앙칸. 치앙마이, 치앙라이로 익숙한 ‘치앙’Chiang은 ‘도시’라는 뜻이다. 칸의 도시. 메콩강을 따라 흥했던 라오스의 첫 통일 왕조 란쌍Lanxang 왕국의 왕 ‘칸’ 이름을 땄다. 우리는 메콩강에 닿는 201번 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다. 시원한 4차선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치앙칸이 가까울수록 나무집들이 많아진다. 짙은 고동색 나무로 지은 북부 특유의 이층집. 넓고 오픈된 현관과 1층의 공용 공간, 2층의 방, 발코니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전통 가옥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이 치앙칸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운치 있는 나무 발코니에서 메콩강 너머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방값이 꽤 나간다. 에어컨 없고 화장실 공용인 방도 1,000밧부터. 강변 집 뒷골목에 있는 숙소들은 700밧부터. 오래된 집이라 방음과 방충, 화장실 등 시설이 열악한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태국 북부의 나무집. ⓒ Yoonhye Jeon

우리도 아침에 발코니 딸린 방을 예약했다. 짐을 풀고 강변으로 가면 딱 해가 질 시간. 그런데 위치가 이상하다. 분명 애플리케이션 지도에선 강 바로 앞 숙소라 표시돼 있는데, 구글 지도는 뒷골목으로 가라는 거다. 설상가상 숙소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가 방이 다 나갔다면서 1층 방문을 열어 보여준다. 남은 방은 여기뿐이라고. 발코니는커녕, 현관 바로 옆, 창문을 열면 남의 집 벽이 보이는 눅눅한 방. 이 방에서는 못 잘 것 같다. 주인아주머니가 영어를 못해서 근처 젊은 학생이 도와준다. 우리 예약이 ‘발코니 방’인 것을 확인시켜주자 괜찮으면 취소를 도와주겠다 한다. 당연히 취소해 달라고 한다. 이미 발코니든 아니든, 강 앞 숙소도 아닌 걸... 그동안은 이렇게 방을 내어줘도 그동안 먹혔거나, 아주머니가 인터넷 예약에 익숙하지 않거나. 후자이길 빈다. 일몰을 보고 싶은 니콜라스는 내가 방에 집착하고 있으니 안절부절이다. 일단 일몰은 봐야 할 것 같으니 숙소에 양해를 구하고 잠시 모터바이크를 주차해 놓기로 한다.


“윤혜. 지금 방을 취소하면 어디 가서 새 방을 구하겠다는 거야?”


“그럼 거기서 잘 거야? 나는 발코니에서 일출을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이 숙소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거고. 그 숙소에서 머물 거면 왜 치앙칸에 온 건데?”


“그래서 네 계획이 뭔데? 나는 무턱대고 취소부터 한 네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이미 해가 지고 있다고. 나 오늘 8시간을 운전했어. 하루 종일 달려서 온몸에서 냄새가 나. 우리 오늘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잖아. 도착하면 일몰 보고 푹 쉴 줄 알았는데, 말도 없이 네가 취소하는 바람에 또다시 이 짐을 이고 지고 모터바이크를 끌고 찾아다녀야 하잖아. 잘 곳이 없는데 어떻게 일몰이 눈에 들어와? 윤혜. 나 정말, 너무 피곤해.”


강가 데크에 가 앉는다. 해는 어느새 많이 떨어져 있다. 내 생각에 취해 니콜라스에게 의견을 묻지조차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는 푸껫 첫날 숙소의 잘못으로 취소한 숙박비를 이제야 환불받은 터라, 이미 결제한 이 숙소에 대해 또다시 환불을 받는 것에도 회의적이다.


“알았어. 시간을 줘. 혼자 동네 돌아보면서 방을 구해볼게. 나는 배가 안 고프니까 그 시간에 너는 식당에 가도 좋고.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듯, 나도 나대로 제대로 하고 싶은 게 있어. 우린 우선순위가 다른 거야. 환불도 내가 책임질 테니까 걱정 마.”


일단 눈앞의 것을 즐기고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나, 문제가 있으면 눈앞의 것을 즐기지 못하는 그. 지는 해의 주홍빛을 “예쁘다” 넋 놓고 보는 나와 달리 샤워, 밥, 환불, 일몰, 예약, 많은 것들이 그를 괴롭힌다. 기대했던 일몰은 구름에 가려 부옇게 사라진다. 느릿한 강물 위 나룻배는 평화롭게 떠다니는데 우리 마음은 도통 평화롭지 못하다. 얘기를 나누는 내내 우리는 해가 사라진 서쪽 강만을 바라볼 뿐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늘 함께였던 우리, 니콜라스에게 ‘혼자’란 말은 ‘나 알아서 할 테니 방해하지 마’로 들린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30분을 달라고 했다. 그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깨끗하고 좋은 방을 구해서 푹 쉬게 하는 것이다. 그를 많이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다. 데크를 따라 뛰기 시작한다.


ⓒ Yoonhye Jeon

치앙칸은 현지인들이 찾는 관광지다. 그래서 주인아주머니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 거다. 숙소마다 뭐라고 써져 있는데 해석할 수가 없다. 번역기를 돌리니 방 있음/없음이다. 주로 ‘없음’ 임에 마음이 철렁한다. 오늘은... 그렇지. 금요일이었다. 일단 강변을 따라 ‘있음’ 표시된 곳들을 무작정 들어간다. 저녁 시간이라 프런트가 빈 곳도 있고, 방을 허름한 가판으로 나눈 숙소도 있고 각양각색이다. 말 하나 안 통하는 할아버지가 안내해 준 방은 이불을 안 빤 지 오래된 것 같다. 이미 깨끗하고 좋은 방은 다 나간 듯하다. 남은 방은 아주 안 좋거나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하는 수 없이 뒷골목으로 가 본다. 취소한 숙소를 지나 ‘있음’ 중 깨끗해 보이는 집에 들어간다. 700밧. 한 사람 겨우 들어가는 화장실과 남의 지붕 보이는 창문 뷰 방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도 넓은 공용 발코니가 있으니 괜찮겠다 싶다. 약속한 30분이 다 되어간다. 흥정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다시 오겠다 하고 방을 막아달라 한다. 다시 그에게로 뛰어간다.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나를 본 니콜라스는 배고프고 뚱한 표정이다. 그럼에도 결국 나를 꼭 안아준다.


“방, 구했어. 우리가 꿈꾸던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 거야.”


치앙칸 밤 산책. 강가 발코니 집들과 니콜라스 시선을 잡아끈 모터바이크들. 가와사키, 두카티, 혼다. ⓒ Yoonhye Jeon

드디어 샤워하며 산길 먼지를 씻어낸다. 강에 왔으니 흰 살 생선이 들어간 맑은 국 똠얌 쁠라 남싸이Tom Yam Pla Nam Sai를 먹어본다.(생선=쁠라, 남싸이=코코넛 밀크를 넣지 않은 국물) 풀 향도 강하거니와 제법 맵싹해 니콜라스는 손부채질을 하며 추가로 오므라이스를 시킨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한다.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슬리퍼를 끌고서. 밤의 치앙칸은 낮보다 더 조용하다. 건너 라오스의 숲은 깜깜하고 머리 위로 오리온자리가 크게 빛난다. 알전구를 매단 펍이 두어 개 있다. 작은 벙커 스타일의 펍은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다. 더 걸어가 조금 더 소박한 펍을 발견한다. 들어갈 것도 없이, 야외에 의자를 끌어다 앉으면 그게 자리다. 한 잔 하던 청년들은 우리가 앉을 의자가 없으니 자기 의자를 빼서 건넨다. 숙소 겸 펍을 운영하는 젊은 태국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인수했다. 외국인이 집이나 땅을 살 수 없는 태국 법상, 집을 구하려면 태국인 관리자가 꼭 필요하다. 각종 서류처리와 지분을 태국인 명의로 나눠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유권을 가진다 하더라도 기간은 99년까지 유효하다. 즉 집을 사도 길어 봤자 딸 아들까지만 쓸 수 있다. 그녀는 소유권을 포기하고 돌아간 서양인에게 이 집을 저렴하게 받았다. 다른 집들보다 작고 허름하지만 정취 있게 꾸며놓았다. B&B(bed and breakfast)를 bar and bed로 바꾸어 놓은 위트도 귀엽다. 대학에서 영어를 배웠다는 그녀는 꽤 영어를 잘한다.


만세! 서양 여행객이 없는 태국의 펍을 발견했다! (니콜라스 제외) ⓒ Yoonhye Jeon

니콜라스는 새로 구한 이층 방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뒷골목 숙소라 강가 일출을 보러 나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발코니 방이 좋은 것이었는데... 눈뜨자마자 해를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니코, 내일 일출 보러 갈 거야?”


“미안해. 사실 나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야 할 것 같아.”


충분히 이해한다. 오늘 하루 참 강행군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곯아떨어진다. 일출은 6시께. 새벽 5시 20분 정신력으로 일어난다. 살금살금 나간다.


니콜라스 대신 치앙칸 마스코트와 함께 일출을 보았다. ⓒ Yoonhye Jeon

하늘엔 아직 초승달이 떠 있다. 골목 끝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막 감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시간부터 탁발하는 스님을 맞으러 자리를 깔고, 시주를 준비한다. 강가 데크로 한 발짝, 다가서는 순간 눈을 비빈다. 형언할 수 없는 색채가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직 해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낮게 솟은 능선 뒤로 그 빛이 붉게 반사되며 곧 동쪽으로 커다란 해가 뜰 것을 알린다. 강물은 여전히 밤처럼 고요히 흐른다. 닭이 울고 라오스에서 날아온 새들이 찌삐삐 지저귄다. 평화로운 풀벌레 소리... 마을로부터 아침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발코니 문을 열기 시작한다. 빛이 옅은 분홍빛으로, 노란빛으로 천천히 그러데이션 된다. 강 끄트머리에서 흰 빛이 뻗어 나오기 시작한다. 해가 뜬다.


ⓒ Yoonhye Jeon

강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해가 다 떠오를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긴 긴 강과 산, 커다란 하늘빛 캔버스에 옅게 퍼지던 붉은 빛깔들. 한적한 데크. 강변을 따라 선 나무집들. 새와 풀벌레 소리... 이런 일출이라면 이곳에 살며 매일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치앙칸에 오는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나 보다.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밖에 할 것이 없는 이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시간이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머문다고 한다. 강 건너 라오스 사람들도 이 멋진 풍경으로 하루를 시작할 거다. 이 멋진 광경을 니콜라스와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치앙칸에 조금 더 머물러야겠다. 일몰이 기다려진다.


ⓒ Yoonhye Jeon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짧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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