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은 네가, 계획은 내가

태국 치앙라이 골든 트라이앵글, 논두렁 대참사의 날

by 전윤혜


우리나라의 첫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가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것처럼, 태국의 1번 고속도로Phahonyothin Road는 방콕과 치앙라이를 잇는다. 치앙마이가 아니라 치앙라이? ‘1번’이라는 상징성이 북부 대표 도시인 치앙마이를 이어 줄 것 같은데, 왜 치앙라이로 오는 걸까? 도시의 크기보다 교통의 편리를 고려한 처사다.(정확히는 치앙라이를 너머 미얀마 국경까지 간다.) 치앙마이의 미얀마 접경이 험한 산인데 비해 그 동북쪽에 위치한 치앙라이는 미얀마와 라오스 양 국경에 각각 접근하기 쉽다. 그 말은 중국과도 가깝다는 뜻이 된다. 태국 북부 마을은 이 중간 지대에서 중국과 미얀마, 라오스와 교역을 하며 살아왔다. 주요 교역품은 농수산물.


그러나 이들에게 불명예로운 농산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편이다. 아편은 이전까지 중국 산간의 소수 민족들의 생계 수단이었다. 그들이 2차 세계 대전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올 때 아편 씨앗도 함께 가져왔다고 한다. 냉전 시대 서방 세계와 분투하던 각 나라의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메콩강 주변 산간에 모여들게 되고, 이들은 아편을 팔아 무장 투쟁의 자금을 대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재배는 계속되었다. 외지인의 접근이 어려우며, 단속이 뜨면 다른 나라로 쉽게 숨을 수 있고, 판매선도 여러 가지 둘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한때 전 세계 아편의 70%를 생산했을 정도로 이 일대는 수십 년 동안 잃어버린 땅이라 간주돼 왔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가 메콩강을 두고 만나는 이 삼각 지대를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부른다. 황금의 삼각지대. 황금은 곧 아편. 태국은 그동안 단속에 힘을 쓰고 양귀비 대신 차나 커피 등의 대체 작물을 경작할 수 있도록 장려 운동을 했다. 치앙라이의 근교 싱하 파크의 우롱차 밭도, 추이퐁Choui Fong의 넓은 녹차밭도 그 결과 생겨났다. 미얀마와 라오스는 아편이 가난한 농가의 생계 수단이란 이유로 단속에 느슨했다. 국제적인 권고로 지금은 줄어드는 추세라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 라오스와 태국 곳곳 여행자 거리에서 만나는 ‘해피 벌룬’ ‘머쉬룸 피자’와 방콕, 푸껫, 파타야 유흥가의 마약이 여기서 시작되는 거다.




오늘은 내가 루트를 정하는 날이다. 치앙라이에서 북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골든 트라이앵글까지 콕 강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서쪽 미얀마의 산에서 발원한 콕 강은 태국 북부에 커다란 반원을 그리듯 내려와 치앙라이를 거쳐 오른 뒤, 골든 트라이앵글 근처에서 메콩강과 합류한다. 콕 강은 직선 정비를 하지 않아 구불구불하다. 아니, 이곳뿐 아니라 태국의 강들이 대개 그렇다. 강변엔 논이 이어지거나, 수상가옥이 있고. 콕 강은 대부분 논을 낀다. 지도엔 강둑길이 보이는데 자꾸만 돌아가라고 말하는 앱이 얄미워, 강변 중간중간에 여러 포인트를 찍어 나만의 루트를 만든다. 시작은 파란 표지판에 금색 글씨가 적힌 농촌 도로Rural Roads다. 그동안 봐왔던 흰 바탕에 검은 글씨 고속도로 표지판과는 조금 다르다. 닦은 지 얼마 안 된 새 것이다.


ⓒ Yoonhye Jeon

농촌 도로를 벗어나 좁은 논두렁 길로 들어선다. 덜컹덜컹, 오랜만에 맛보는 무심한 길이다. 옆으론 꽃핀 옥수수밭이 너르다. 길에는 풀이 무성하지만, 차가 지나간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 안심한다. 어느 순간 오른쪽으로 강이 나타난다. 낮게 흐르는 강과 건너편의 푸른 초지들. 날씨마저 쾌청해 모험 기분을 더욱 빛내준다. 앱이 유턴하라는 말에도 아랑곳 않는다. 이렇게 버젓이 도로가 있는데 뭘! 그런데 점점 풀이 우거지더니 멀리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된다. 발밑이 보이지 않으니 가늠하기 어렵다. 니콜라스의 운전도 덩달아 어려워진다. 결국 내가 내린 다음 그 혼자 조금 더 가서 살펴보기로 한다. 멀리 바나나 나무 사이에 서서 고민하던 그는 좁은 흙길에서 혼자 끙끙대며 모터바이크를 돌린다. 길이 끊겼단다. 오던 길을 돌아간다. 좋지 않은 길에 모터바이크까지 무거워 운전이 까다롭다. 갑자기 니콜라스가 일어서서 운전한다. 균형을 잡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괜히 내가 오기를 부려 여기까지 온 것이 미안하다. 일어선 그, 흔들리는 모터바이크, 새파란 하늘, 우거진 풀과 나무들. 이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긴다. 다시 흙길이 잘 보일 때쯤 오른쪽의 또 다른 논둑을 발견한다. 길 너비와 상태를 봐선 갈 수 있을 것 같다. 니콜라스가 묻는다. “이쪽으로 가 보지 않을래?”


ⓒ Yoonhye Jeon

돌아가는 것보다 다시 한번 모험하길 택한다. 그러나 복병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웅덩이였다. 얼마 전 비가 왔는지 자동차 바퀴 자국에 크고 작은 웅덩이가 생겨 있다. 흙은 질지만 그래도 시야가 트여 있어 괜찮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나 갈수록 웅덩이들이 더 커지고, 종국에는 니콜라스가 양 발을 진흙탕에 다 빠뜨리고서야 겨우 균형을 유지할 정도가 된다. 운전이 아니라 두 발로 걸어간다는 게 맞을 만큼. 진흙 때문에 바퀴가 헛돈다. 아아. 여기도 아니구나... 내가 내린 뒤 니콜라스는 또다시 낑낑대며 바이크를 돌린다. 나는 다시 타지 않고 따라간다. 또 다른 웅덩이를 건너려던 니콜라스가 몇 번을 휘청거린다. 나는 이 모습도 추억이다 싶어 동영상을 찍는다.


“윤혜, 뭐 하는 거야? 넌 리포터reporter가 아니라 서포터supporter야! 카메라 넣고 와서 좀 도와줘.”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아차 깨닫는다. ‘나 이 사람과 같이 여행하지....’ 운전은 그의 영역이니 해결도 그의 몫이라 생각했다. 뭐 변명하자면 걸리적거릴까 봐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실제 도움을 주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상황에 참여하는 태도를 바랐던 거다. “넌 리포터가 아니라 서포터야!” 그의 말이 맴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는 것과 내 일은 아니지만 같이 아등바등하며 힘을 내도록 신경 쓰는 건 다르다. 내겐 무엇이 우선이었을까?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는 것? 사실 니콜라스가 맞다. 작은 서포트만 있어도 해결될 일을 리포터처럼 사진이나 찍다가 모터바이크가 넘어져서 큰 사고라도 난다면, 얼마나 바보 같은 결말인가. 함께 여행하기로 한 이상 우리는 언제나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서로의 서포터가 되어. 이 당연한 걸. 머쓱해져 사과한다.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찍은 사진들을 보니 정말 리포터나 다름없었다. ⓒ Yoonhye Jeon

결국 모터바이크는 반쯤 쓰러지고 나서야 제자리를 찾는다. 니콜라스의 운동화는 진흙 범벅이 되었다. 우리는 오늘을 논두렁 대참사의 날로 명명한다. 다시 웅덩이를 넘고, 무성한 풀들을 지나 강변을 탈출한다. 내가 도운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딴 데 정신을 팔거나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그냥 온 마음 다해서 니콜라스가 잘 헤쳐나가길 빌었다. 내 마음도 편하다. 다리 위에 모터바이크를 세운다. 이 강이 내가 따라가고 싶었던 콕 강이구나.


“윤혜. 앞으로 목적지는 네가 정하고, 가는 길은 내가 정하면 어떨까? 지금껏 번갈아 해 왔잖아. 사실 나는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서 묵어도 돼. 모터바이크로 달리는 것 자체가 여행이거든. 그런데 넌 갈 곳을 정하는 데 항상 이유가 있어. 난 그걸 신뢰하고. 지금껏 가장 좋았던 곳이 치앙칸이랑 카오락인데 둘 다 네가 정한 곳이야. 특히 네겐 한국인 여행 커뮤니티라는 강력한 무기도 있잖아? 하하. 그런데 길을 찾는 건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아. 서로 잘하는 걸 하자.”


모터바이크 여행을 잘 즐기기 위해선 무엇보다 루트를 잘 짜야한다. 빠르게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좋은 풍경을 따라, 재미날 것 같은 커브를 쫓아야 하고, 쉴 곳도 거리마다 적절히 두어야 한다. 이것을 지도로만 가늠하는 건 모터바이크 경력이 한참은 되어야만 가능하다. 나는 감도 없이 재미난 길로 가고 싶은 욕심만 컸던 셈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묻지 않고 나의 장점을 먼저 이야기해 주는 그의 어법이 아름답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동의한다.


Kok River. ⓒ Yoonhye Jeon

골든 트라이앵글은 세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태국 땅엔 거대한 금부처님이 강을 바라보고, 화려한 조형물이 강가를 꾸며놓았다. 메콩강 오른편 라오스엔 커다랗고 못난 네모 건물들, 카지노들이 늘어서 있고, 왼편 미얀마엔 숲이 우거져 있다. 미얀마의 숲은 비밀이 많아 보인다. 그것이 아편이든, 무기 밀매든, 레지스탕스든. 겉으론 이따금 관광객이 탄 보트만이 오갈 뿐, 한없이 조용하다. 타일랜드, 미얀마, 라오스가 적힌 삼각 표지판 앞에서 나는 말한다.


“다음에 동남아시아를 온다면 미얀마에 가는 것이 좋겠어.”


ⓒ Yoonhye Jeon

우리는 해가 질 무렵 골든 트라이앵글을 떠난다. 니콜라스가 오는 길에 석양이 예쁠 만한 곳을 봐 두었다며 호숫가로 데려간다. 해 지는 서쪽 산 너머에는 미얀마가 있을 거다. 머리 위에 드리운 나무가 바람에 가늘게 흔들린다. 가두어진 호수의 물은 잔잔하다. 정자에 앉아 노을을 본다. 구름이 해를 덮어 동네를 찬찬히 회색빛으로 물들인다.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고, 아편이 재배되고, 검은 손들이 오고 갔던 것일까. 무언가를 생각하던 듯한 니콜라스가 입을 뗀다.


윤혜. 꼭 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우리 삶에 있어 큰 결정은 네가 하고, 나는 어떻게 그 길을 만들어갈지 계획했으면 좋겠어. 난 네 직감을 믿어.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 우리는 참 상호보완적인 사이라고. 이 여행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개인으로든, 함께로든. 우린 강한 커플이야.


이거 뭐야, 프로포즈야? 짐짓 태연한 척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도 너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들을 하는 중인 걸.


니콜라스가 호수를 기억했던 것처럼, 나도 떠오르는 곳이 있다. 묘한 분위기를 내던 전통 양식의 자그만 건물. 언뜻 지나친 바람에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일대 여기저기를 더듬는다. “찾았다!” 논 주변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건물. 옆 공터에 모터바이크를 댄다. 무슨 건물일까, 왜 이런 곳에 혼자 남겨져 있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달려가는 나를 위해, 니콜라스가 헤드라이트로 건물을 비춰준다. 이토록 작은 건물 사이즈, 입구를 향해 난 세 방향의 계단, 아치형 철문, 높게 뻗은 굴뚝까지.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스타일임에도, 건물은 이 땅의 오랜 일부인 양 풍경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천천히 다가간다. 철문 가까이로 그을음이 묻어 있다. 화장장이었다. 오로지 한 구만을 위한 작은 공간. 이 지역 사람들은 이렇게 화장을 하는구나. 아이러니하게 나는 이 곳에서야 사람 냄새를 느낀다. 백색 사원의 반짝임보다, 금색 시계탑보다, 아편을 극복해낸 태국의 역사보다, 광대한 메콩강도 주지 못했던 감동을 이 작디작은 화장장이 조용하게 전한다. 털털털털, 시동을 끄지 않은 모터바이크 소리. 모터의 규칙적인 움직임에 따라 불빛이 흔들린다. 어깨동무를 한 그에게 기대 오래도록 화장장을 바라본다.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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