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 참다 터뜨린 것

태국 매홍손-매솥

by 전윤혜


길을 가다 작은 마을Mae La Noi에 장이 서 있기에 멈춘다. 사람들은 비에도 아랑곳 않고 차 트렁크에 싣고 온 호박이며 배추 같은 것들을 판다. 둘러멘 앞치마만큼이나 예쁘게 과일을 깎는 아저씨에게서 수박과 파인애플을 산다. 간판 없는 식당에 앉아 카오팟Khao Phat을 시킨다. 계란을 넣은 태국식 볶음밥은 니콜라스의 제2의 나시고렝이 되었다. 처마 끝으로 빗방울이 토독 떨어진다. 오랜만에 느끼는 향수다. 주인이 직접 살면서 음식도 파는 시골 식당. 넉살 좋은 니콜라스는 아줌마 셋과 통하지도 않는 태국어로 안부를 묻는다. 필름 카메라가 어울리는 따뜻한 순간들. 그동안 모터바이크로 여행하며 만난 작은 가게들이 떠오른다. 말은 일절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알 것만 같은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 아름답다.


ⓒ Nicolas Riou


우리는 치앙마이(동쪽)로 가는 108번 도로와 헤어지고 매솥(남쪽)까지 가는 105번 도로로 갈아탄다. 길은 어렵지 않다. 단지 비가 많이 내릴 뿐이다. 도로는 유암Yuam 강을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유암 강은 중부 미얀마와 태국을 가르는 강으로, 때때로 산에서 내려온 작은 천들이 이 주변에서 합류한다. 그중 하나를 건너다가 멈춰 선다. 상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흙빛 물에 하얀 시멘트 다리가 곧 침수될 것 같다. 간밤의 비가 만든 형상이다. 하천은 무거운 힘으로 주변을 삼키고 가까운 나무들은 이미 잠겨 잎만 보인다.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요동을 치며 떠내려온다. 물의 기세가 사나워 또렷이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궁금하기도 하니 실눈을 뜬다. 나도 모르게 니콜라스의 손을 꽉 잡는다.


ⓒ Yoonhye Jeon

그다음 다리는 이미 넘쳐 있다. 다행히 발목까지 찰박한 정도라 건너갈 수 있었지만, 조금만 더 늦었어도 꼼짝없이 되돌아갈 뻔했다. 지금부터 어려운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매솥이 속한 탁Tak주와 매홍손 주를 경계 짓는 매 므이Mae Moei 산이다. 반대편에서 소방차가 오는데 느낌이 좋지 않다. 초입의 흩어진 돌과 낙엽들은 산을 올라가며 나뭇가지로, 그러다 쓰러진 나무로 변한다. 약간 놀랐지만 도로 통제가 없고 무엇보다 반대편에서 차가 가끔씩 오고 있다는 사실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대신 최대한 긴장을 한다.


언제부터인가 도로 가장자리에 붉은 흙물이 흘러내린다. 도로를 닦느라 뎅겅 깎았던 사면이 빗물에 조금씩 쓸려나가는 것이다. 태국은 이런 비탈들에 웬만해선 안전장치를 씌우지 않는다. 풀과 나무들이 애처롭게 땅을 움켜쥐고 있다. 뻘건 산의 속살이 가까워질 때마다 흠칫 놀란다. 이곳도 지나쳐 온 나무들처럼 언젠가 쓰러질 것만 같아서. 어쩔 땐 위에서부터 콸콸 내려오는 빗물이 도로를 통과해 도로 아래로 작은 폭포를 만든다. 없던 계곡이 생겨나다니,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다.


지금까진 이 모든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러나 점점 뿌리 뽑힌 나무가 많아지며, 도로 한가운데 떨어진 바위들이 나타나며 상황이 심각함을 감지한다. 상상치 못했던 높이의 토사들이 쏟아져 훼방을 놓는다. 니콜라스는 그것들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드러난 흙 가운데 큰 바위라도 박혀 있을 때면 오금이 실끗실끗 저리는 거다. 우리 지나갈 때 구르진 않겠지, 제발. “오 마이 갓” 입밖으론 애꿎은 주님만 자꾸 튀어나온다. 이미 한참을 들어와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우리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이 자꾸만 짙어간다. 고도가 올라가며 커브를 돌 때마다 치명致命적인, 말 그대로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풍경들이 잦아진다. 니콜라스가 가까스로 바퀴를 욱여넣어 흙더미를 탈출하고 나니, 앞쪽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정말 그랬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시면 알 거예요! ⓒ Yoonhye Jeon

아, 산이 쏟아져 있었다. 쓰러진 나무와 흙들이 도로를 막고 있다. 주변이 깨끗한 것으로 미루어 무너진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불도저도 방금 도착한 듯했다. 현재 시각 4시 30분. 적어도 2시간은 더 가야 도착할 텐데, 그만 산에 갇혀버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처치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10분, 20분이 지나도 별 진척이 없는 게 아닌가. 인부들은 깨작깨작 흙을 펐다 내렸다. 그들이 야속하다는 내게 니콜라스는 “불도저가 한 번 밀면 다 해결된다.”며 “어차피 사람이 삽으로 열심히 펀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열 받지 말자.” 어른스레 대답한다. “그럼 왜 불도저는 가만히 있는 건데?” 그 이유는 모른다. 아무래도 떠나긴 그른 것 같아 현장 구경이라도 해 볼까, 하며 비탈에 다가간다. 순간 우지끈, 하며 나무들이 코앞에서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는 흙에 너무 놀라서 뒤로 나동그라진다. 쿠르릉, 돌들이 굴러내려 오는 소리는 땅에서 울리는 천둥 같았다. 그건 다큐멘터리에서 눈사태를 보여줄 때나 들어본 것이었지, 내 인생에 저장돼 있던 소리가 아니었다.


아, 복구해도 모자랄 판에 더 쏟아지다니... 절망적이다. 한편으론 산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서로를 지탱하던 일부가 사라졌으니 남은 땅들이 뒤이어 쏟아지는 건 순리다. 30분쯤 지났을까. 이제는 우리 뒤에도, 건너편에도 차가 줄지어 서 있다. 어떤 높으신 분이 도착한 것 같다. 옆에서 비서가 우산을 씌워주던 그분은 현장을 시찰하더니 이것저것을 물었고, 그제야 불도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쿵, 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흙을 몇 번 밀어내니 묻혀 있던 통나무들이 드러난다. 인부들은 통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강철 끈으로 불도저에 연결한다. 불도저가 안간힘을 쓰며 통나무를 당겨보지만 꿈쩍을 않는다. 나무가 이렇게 무거울 일인가? 몇 번의 사투 끝에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한 순간 흙이 머금고 있던 물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마치 물풍선이 터지듯, 장력을 모두 잃은 빨간 물들이 순식간에 도로를 덮어버린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통나무는 힘을 잃은 흙에서 그제야 빠져나온다. 1시간이 지난 뒤였다. 작업에 속도가 난다. 마음이 급해진 니콜라스는 높으신 분에게 우리가 최대한 빨리 떠나야 하는 상황임을 알린다. 인부들이 모터바이크가 지나갈 만한 길을 내어준다. 그렇게 고립된 도로를 탈출한다. 꼬리를 물고 기다리는 반대편 차들을 지나친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기다림이 곧 끝날 거라 기뻐할 것이다.


ⓒ Yoonhye Jeon

우리가 갇혔던 지역이 가장 높은 고개이자 마지막 복구 지역이었다. 그 후로도 무너진 상흔은 여기저기 나타났지만 반쯤 정리된 상태였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말이 없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산속에서 밤을 맞을 수는 없다는 무언의 긴장. 니콜라스는 평탄한 도로가 나올 때마다 주저 없이 액셀을 밟는다. 안개가 서서히 걷혀 가고, 붉은 산은 더 이상 처음 보았을 때의 무서움을 주지 않는다. 산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비는 무슨 말을, 물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쏟아지던 흙과 그 흙이 움켜쥐고 있던 물들이 터지던 순간을 떠올린다. 피와 같은 붉은 물이 온 도로를 덮고 아래로 밀려 밀려 내려가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어제 이맘쯤 며칠 빗속에서 고생하며 왜 이렇게 와야만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하루가 지나 다시 생각한다. 이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지금껏 달려온 건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당국이 도로 사면에 안전장치를 두지 않은 것을 조금 이해한다. 태국 북부의 산들은 바위산이기보다 흙산이고, 흙은 입자가 곱고 점성이 강한 붉은 흙이다. 즉 땅이 생각보다 많은 물을 움켜쥘 수 있으며, 바위 없이 빡빡하게 들어선 흙을 붙잡아 줄 수 있는 건 나무와 풀뿐이다. 게다가 이 나라에는 비를 몰아서 뿌리는 우기가 존재한다. 만약 비탈들을 시멘트나 그물로 덮었다가 폭우에 한계치를 넘어버린다면? 흙은 그동안 참은 만큼의 커다란 압으로 일대를 터뜨려버릴 거다. 작은 위험을 매번 안고 갈 것인가, 몇 번을 견디다 큰 위험을 부담할 것인가. 이는 이곳에 터널이 적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way to maesot.jpg ⓒ Nicolas Riou

북부 산간의 도로들은 그네들이 살아온 역사와 맥을 나란한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멀리 마을이 보이는 곳. 아무리 험산이어도 결국 끝에는 사람 사는 곳이 있는, 아스라한 풍경. 집이 10채뿐인 마을부터 800명 남짓 사는 국경 마을, 7,000명 정도 사는 읍내... 마을은 저마다의 삶을 꾸려간다. 어디에 가까웁냐에 따라 라오스 어와 미얀마 어를 하고, 중국인이 모여 살기도 하고, 화전을 일구거나 목에 금속 링을 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점점이 흩어진 마을들을 산간 도로가 둥그렇게 이어준다. 이곳에서는 산간 도로만 잘 따라가면 큰 마을들을 꼭 거치게 된다.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오랜 세월 가장 효율적이었을 이 길도 1,400m 고도를 찍는 마당이니 모두가 한 도로에서 만날 수밖에.


다행히 태국은 터널을 뚫거나 빠른 도로를 새로 닦는 대신 기존 도로를 잘 지키는 방식을 택했다.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수백 년 나그네와 나귀들이 오르던 길들을 우리도 달릴 수 있었고, 고개 뒤에 마을이 기다릴 거란 아스라한 희망으로 그들이 산을 넘었듯 우리도 고개 너머를 가늠할 수 있었다. 마을도 여전한 작은 입구로 우리와 같은 나그네를 맞이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말라가는 호수를 보면서 통탄했는데 그 모습을 비웃듯 요 며칠 하늘은 구멍을 낸 것처럼 비를 퍼부었다. 비 그림자가 개면 맑은 계곡과 숲들이 녹음 짙은 얼굴을 내밀 것이다. 산이 언제 피를 흘렸냐는 듯, 마음대로 폭포를 만들고 나무를 쓰러뜨렸냐는 듯 태연하게 빛날 것이다. 우린 사람들이 아름다워서 버킷 리스트로 꼽은 풍경 대신 대신, 비가 왔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들을 마음속 깊이 담는다.


매솥이 가까워온다. 미얀마와 맞닿은 가장 큰 도시. 교역의 도시. 도처에 미얀마 어 간판이 보인다. 넓은 도로에는 신식 레지던스들도 있다. 넓은 분지에 므이 강의 수많은 지류들이 얽혀 있다. 시내와 조금 떨어진 현지 리조트에 여장을 푼다. 오늘만은 몸이 푹 꺼지는 푹신한 침대에서 잠들고 싶다. 밤이 깊어간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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