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코리아 모터바이크 프로젝트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by 전윤혜


깜깜한 밤,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리셉션을 문을 한참 두드려 겨우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선다. 흰 침대보를 보니 비로소 다리에 힘이 풀린다. 냄새나는 몸, 저린 팔다리, 안쪽까지 젖어버린 헬멧. 스르르 주저앉는다. 물에 잠긴 다리들과 뻘건 산, 넘쳐흐르던 토사와 쓰러진 나무들이 선하다. 그럼에도 비는 계속해서 온다. 아니, 더 쏟아진다.


그동안 들른 나무집들은 낭만적이기보다는 서글펐다. 세탁되지 않은 이불과 눅눅한 벽, 방문 이음새가 헐거워 소음이 다 들어오는 방들. 덕분에 하얀 이불보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 번데기처럼 이불을 돌돌 말아 새 이불의 감촉을 만끽한다.


아침이 밝으니 빨랫거리가 걱정이다. 치앙라이에서부터 밀린 빨래는 에코백 속 땀과 비에 절어 쭈글쭈글 뭉쳐 있다. 주인집 세탁기를 빌려 쓴다. 어릴 적 집에 있던 것과 같은 초록 빛깔 통돌이 세탁기에 과거의 옷들을 집어넣는다. 빨랫줄에 넌 청바지와 긴 옷가지들이 잘 마르기를 기도한다. 세면대에 비누를 풀어 속옷을 담근다. 헬멧 안감도 분리해 조물조물. 의자와 테이블에 널고 에어컨을 제습으로 맞춘다.


IMG_8744.JPG ⓒ Yoonhye Jeon

점심을 먹으러 미얀마 식당으로 간다. 이름은 국경선(Borderline). 직접 만든 액세서리와 가방, 미얀마 전통차와 음식을 판 돈으로 태국-미얀마 국경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곳이다. 2004년 캐나다의 도움을 받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6년 후 자체 자금 조달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 젊은 여성들이 일하고, 만들고, 생계를 꾸린다.


니콜라스가 책장에 가더니 론리플래닛 『미얀마』편을 집어온다. 그가 영국의 침략과 독재로 얼룩진 미얀마의 역사를 읽는 사이 나는 돌링킨더슬리 사의 『태국』 편을 들고 앉는다. 지도를 세밀화로 그린 것이 퍽 마음에 든다. 우리가 돌아본 북부 지도를 펼치고 손으로 따라간다. 치앙칸, 난, 치앙라이, 치앙마이, 빠이, 매홍손, 매솥….


“윤혜, 날이 맑을 때 매홍손 루프에 다시 한번 오고 싶어. 그땐 미얀마를 거쳐서 올까?”


얼마 전 골든트라이앵글에서 미얀마의 숲을 보며, 꼭 가야겠다는 강렬한 느낌이 왔다. 라오스보다, 태국보다, 동남아시아의 그 어느 나라보다 궁금한 나라. 내가 했던 말을 니콜라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좋지. 근데 어디서 출발하길래 미얀마를 거쳐 와?”


“음,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훗날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모터바이크를 타고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고국과 정반대 나라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와 한국 여자. 프랑스와 한국이 얼마나 먼 나라인지,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다를 수밖에 없는지, 그 거리를 가늠하다 보면 우리가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육로로?”


“응. 프랑스부터 러시아까지 유럽을 순회하고,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내려와 동남아시아까지 오는 거지. 여기서 다시 중국까지 올라가서 배를 타는 거야. 한국까지 육로로 가면 더없이 좋겠지만….”


나는 답을 하지 못한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불현듯 어릴 적 읽은 책이 떠올라서, 지금껏 잊고 있었지만 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해 있었던, 아마 그렇기에 이 여행을 가능케 했을지도 모를 그 책의 여정이, 꿈으로만 느껴졌던 그것이 나의 삶에도 이루어질 것 같은 감정이 들어서. 그는 말을 잇는다.


“옛날 상인들이 교역하던 길이 있잖아. 거길 따라가는 거지. 후뜨 들 라 수아(Route de la Soie). 아 영어로 뭐라고 하더라….”


“실크로드(Silk Road)!”


옆자리에서 노트북을 두들기던 안나가 거든다. 프랑스 매체의 태국 통신원으로 있는 그녀는 지금 동남아에서 유행하는 말라리아가 얼마나 위험한지 쓰다가 언뜻 들리는 프랑스-한국의 여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지. 실크로드를 따라서.”


내가 떠올린 책은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 여행』이었다. 교복을 입고 피아노를 치던 고등학생 윤혜, 기숙사와 학교를 오가던 짧은 길이 전부였던 그 시절,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세상에 이런 여행도 다 있구나, 놀라기도 하고, 동경하기도 했다. 10년도 더 흘러, 나는 20대 후반이 되었고 열과 성을 다해 직장 생활을 했다. 여느 때처럼 밤새 마감을 하다 새벽녘 바깥공기를 쐬러 나왔는데, 바깥 책장에 꽂혀 있던 수천 권의 책 중 하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이 책일까. 그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유. 모험. 방랑. 나는 내 안에 이런 단어들이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과 시험, 직장과 이직, 커리어, 그 나이에 으레 해야 하는 일들을 따르며, 이 단어들을 마음 안에 억지로 구겨 넣었고 있었다.


나는 그 새벽, 2층이던 회사 바깥 발코니에 서서, 노란 불빛 아래 밤새 책을 읽었다. 결혼반지를 고비사막에 던져 묻고, 그래서 사막을 지날 때마다 소중한 것이 묻혀 있다는 사실에 가슴 뛰는 미애. 집과 가진 것을 팔아 산 중고 버스를 타고, 아이 둘에 아이 덩치만 한 개를 데리고, 말똥으로 불을 지피며, 때론 죽음을 무릅쓰며 대륙을 달리는, 루이와 미애와 같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껏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할 수 있을까, 되뇌었다. 할 수 있을까? 못 하겠지. 이미 늦은 걸. 나는 동이 틀 무렵 책을 덮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막 서른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니코, 할 수 있을까?”


“그럼. 할 수 있지. 할 수 있고 말고. 우린 함께잖아.”


접어 접어 구겨 넣은 단어들이 결국은 이렇게 튕겨져 나오는구나. 기어코 눈가가 붉어지고 만다. 옆에 앉은 안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니콜라스도 그랬다. 나는 여행이 끝날 때가 되어 감상에 젖었다며 에두른다. 그를 안는다. 덥다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오래도록 안는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불안함이 사라진다. 우리는 이다음에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또다시 한국에서 프랑스로 모터바이크를 타고 달릴 것이다.


주문을 한 것을 잊을 때쯤 밥이 나온다. 산(山) 사람들의 음식이다. 병아리콩 샐러드(Nam Bia Bae Biote)와 튀긴 땅콩에 버무린 찻잎 샐러드(Le Pa Thote), 간장으로 볶은 국수, 감자 커리와 전병. 더위를 이기기 위해 맵고 강한 향으로 간한 태국 음식을 먹다 오랜만에 삼삼한 채식을 한다. 한국의 나물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달고 새큼한 샐러드. 여러 가지 콩의 고소함이 감돈다. 음식을 먹고 나니 미얀마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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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음식 공부. ⓒ Yoonhye Jeon

식당을 떠나는 우리에게 안나는 미래 여행의 안녕을 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이름하여 프랑스-코리아 모터바이크 프로젝트(France-Korea Motorbike Project). 프로젝트는 10년 안에 이루는 걸로 한다. 니콜라스는 벌써 기대에 부풀어 바이크 기종을 살피고, 모터바이크 세계 일주 후기를 탐색한다. 파리에서 10,000km를 달려 세네갈의 수도 다카(Dakar)까지 가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자동차 경주, 그 길을 모터바이크로 가는 사람들, 몽골 아이들의 심장병 수술 후원금을 전하러 파리에서 몽골 울란바토르(Ulaanbaatar)까지 간 청년, 프랑스에서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일주하는 두 친구까지. 30년간 모터바이크 일주를 한 아저씨의 어드바이스를 깊이 새긴다. 모터바이크는 최대한 가벼울 것, 아날로그식일 것(전자 계기판 등 전기가 필요한 것은 고장이 잦고 수리가 어렵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브랜드일 것. 그동안 꿈꿔온 묵직하고도 황홀한 기종들은 뒤로 하고, 혼다나 야마하의 중고 트레일러를 사기로 한다.


나는 여행이 끝나면 계획대로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할 것이다. 대신 파리가 아닌 그가 있는 남프랑스로 갈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 남프랑스를 한 달간 여행하고, 여름과 겨울 시즌에 맞추어 일을 하는 니콜라스를 따라, 겨울 시즌에는 알프스에서 지내고 봄에는 파리를 여행한다. 여름을 칸에서 지내고 가을에는 프랑스 일주를 할 것이다. 나는 프리랜서 편집일을 하며, 우리의 여행을 따라 여행기를 연재할 계획이다.


“연재가 쌓이다 보면 책을 낼 수 있고, 책을 내다 보면 우리 프로젝트를 후원할 사람이 생길지도 몰라.”


인플루언서가 되기에는 너무나 소극적이고 자기 PR에 서툰 우리는 대신 느리고도 소소한 단꿈을 꾼다. 그가 보는 것과 내가 보는 것들, 그가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 그와 내가 함께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 서로 배우는 것들, 갈 곳과 쓸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미래를 두려워 말자.


걱정이 설렘으로 바뀐다. 빨래는 아직도 축축하고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내일 역시 덜 마른 옷을 입고 떠나야 한다. 허나 우리의 행색이 남루하더라도, 우리의 눈은 빛난다. 자애로운 대자연과 색색의 도시, 사람 사는 모습과 우리가 여행하며 얻은 수많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왔다. 우리는 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풍요로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래서 우리의 눈은 빛난다. 언젠가 그 꿈을 꼭 이루고 말 것임을 알기 때문에.


IMG_5124 2.JPG 니콜라스는 계산을 하며 돌링킨더슬리의 태국 책을 함께 사서 내게 선물해 주었다. 2004년판. 많은 이들을 거쳐 이곳으로 왔을 소중한 책.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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