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미친 사람이나 오는 거야

태국 치앙마이-빠이-매홍손

by 전윤혜


“언제 이렇게 된 거지?”


뒷바퀴의 휠이 들려 있었다. 거기서 타이어 바람이 새는 것 같다. 바이크의 승차감이 말랑말랑해질수록 우리의 기분은 경직되어간다. 니콜라스 말론 이 휠을 고치는 데 5,000밧(190,000원)은 들 거란다. 일주일 전 타이어 마모로 이미 7,000밧(약 266,000원)이나 쓴 상태여서 마크가 이 상처에까지 관대할지 모르겠다. 늦은 밤이다. 지금은 별도리가 없으니 주유소에 들러 타이어 압을 맞추어 놓고 숙소로 들어간다. 바람이 얼마나 빠지는지 내일 아침 다시 체크해 보기로 한다. 짐을 싼다.


우리의 모터바이크 여행은 치앙마이를 오기 위해 시작됐다. 그런데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치앙마이 서북쪽의 매홍손에 가 보고 싶어졌다. 태국 북부의 매홍손 루프Maehongson Loop가 전 세계 바이커들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치앙마이(해발 약 310m)부터 북서쪽으로 빠이(570m)를 거쳐 매홍손(240m), 그 남쪽의 매사리앙(190m)을 찍고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오는 경로. 도시 사이사이 해발 1,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야만 갈 수 있는, 무려 1864개의 커브를 돌아야 하는 길이다.


찾는 곳마다 여유롭게 머무르고 싶지만 곧 니콜라스의 30일짜리 무비자 기간이 만료되고 그전에 방콕으로 돌아가 모터바이크를 반납하고 떠나야 한다. 국적이 다르니 비자와 같은 생각지 못했던 고충이 생긴다. 아쉽지만 매홍손에서 하루만 묵고 미얀마 국경을 달려 내려가 미얀마의 관문 매솥에서 이틀을 쉬고 방콕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치앙마이~매홍손 270km, 매홍손~매솥 380km, 매솥~방콕 530km. 매홍손 루프보다 더 강력한 일정. 강행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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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준비. 엉덩이가 젖고 싶지 않아서 우비를 안에 넣었다나 뭐라나... 나는 가방을 앞으로 메고 우비 안에 가뒀다. ⓒ Yoonhye Jeon

타이어는 그새 바람이 빠져 있다. 문제는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문을 연 정비소가 없다는 것이다. 구시가 근방의 정비소를 일일이 찾아보다 겨우 작은 차고에 닿는다. 그러나 이곳은 자동차 공업소여서 모터바이크를 고칠 순 없었다. “남문 근처 타이어 집이 열었을 수도 있다.”는 말에 핸들을 돌린다. 타이어 집은 다행히 열려 있었지만 용접공이 없어 휠을 복원할 수는 없단다. 대신 타이어와 휠이 만나는 안쪽 면에 다른 타이어 조각을 덧대어 바람이 새는 부위를 막아볼 수는 있겠다고 한다. 불안하지만 최선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작업할 사람들을 모은다. 그러고선 기다리는 우리에게 아침은 먹었냐며, 찰밥과 닭튀김을 내어준다. 매일 아침 직원들을 주려고 부러 시장에 들러 아침을 사 온단다. 중국에서 온 아주머니는 이 타이어 집을 열어서 사촌 조카들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가격이 조금 비싼 듯 느껴졌음에도 니콜라스는 부르는 대로 드리고 나온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며, 다들 일요일에 엄하게 출근하게 됐는데도 성의껏 작업해 주었다고.


IMG_1345.JPG ⓒ Yoonhye Jeon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그렇게 된 것 같아. 큰 크랙에 걸려서 덜컥, 하던 소리 들었거든.”


지난번 논두렁 웅덩이에 빠졌을 때 망가진 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랬다면 정말 마음이 불편했을 거다. 아침 내 공업소를 찾아 헤매며 몸과 머리가 많이 젖었지만 별 수 없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우비를 덮어 잠근다. 치앙마이는 팔방으로 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고속도로 제외’ 옵션을 켠 터라 길은 치앙마이 남쪽에서 시작해 반시계 방향으로 빙 둘러간다. 북쪽 근교에서 그 유명한 1095 도로를 만난다. 지금부터 우리는 서북쪽의 험산으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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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1095번 도로는 치앙마이~빠이~매홍손을 잇는다. 가파른 산길을 단시간에 올라서야 하기 때문에 실핀의 머리처럼 180도 구부러진 헤어핀 커브(hairpin curve)가 산재해 있다. 커브를 돌 때마다 2m, 3m씩 훌쩍 올라가는 무서운 도로. 이 길을 차로 간다면... 생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린다. 모터바이크로 가는 이들에게는 운전 실력을, 차로 가는 이들에게는 멀미에 대한 저항력을 시험하는 도로임에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빠이가 오랫동안 히피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아무나 오기 어려운 산속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빠이와 매홍손이 속한 매홍손 주와 치앙마이 주의 경계가 다가올수록 고도가 높아진다. 비구름이 짙어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희뿌연 안개가 키 큰 나무들을 하나둘 잡아먹는다. 때론 그 기운이 신령하기까지 하다. 이내 1,400m를 마주한다. 비가 거세어진다. 산 위라 구름이 오래 머무는 걸까? 하늘이 하루에 한 차례씩은 꼭 큰 비를 뿌리는 걸로 보아 진짜 우기가 시작된 모양이다. 오늘은 긴 옷, 긴 바지, 두꺼운 양말, 우비로 무장했다. 그러나 물기가 바지를 타고 올라 속옷과 윗옷을 적신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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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미끄럼과 사투하며 산길을 내려온다. 내리막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의 형상이 보인다. 빠이다. 비 오는 낮의 빠이는 조용하다. 잠시 설까, 했지만 시간이 지체될 것이 뻔하다.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한다. 관광화된 이곳을 직접 보는 대신 윗세대가 그려놓은 자유로웠던 빠이의 모습을 기억하기로 한다. 구름 낀 배경을 뒤로 그렇게 빠이를 지나친다. “빠이-빠이!”


아주 가끔 마주치던 차들마저 빠이를 지나자 약속이나 한 듯 사라진다. 평소에는 많이 보인다던 라이더들도 없다. 텅 빈 도로에서 퀸의 노래를 튼다. “Don’t stop me now!” 입으로 비가 들이치든 말든 시원하게 소리를 질러본다. 다시 한번 1,400m 능선을 따라간다. 그러나 주변이 험한 산골짜기일 때도, 밭일 때도, 사람 사는 마을일 때도 있을 텐데 우리는 구름 뒤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전깃줄이 나타날 때 그저 마을이 가깝구나, 짐작할 뿐이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내리막들이 매홍손이 가까워옴을 알린다. 동네는 죽은 듯 고요하다. 6시간 30분을 걸려, 762개의 커브를 돌아 돌아 고되게 달려온 우리에게 환영을 바란 건 아니지만 닫은 상점들과 빈 거리... 적적하기도 하고. 하긴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일요일 저녁에 누가 여기까지 오겠나 싶다. 우리 같이 미친 사람이나 오는 거야.


ⓒ Yoonhye Jeon

매홍손은 태국의 최북단이자 미얀마와 국경을 둔 매홍손 주의 주도다. 좁은 계곡에 숨겨진 보루랄까. 이 도시의 읍내가 얼마나 작냐면, 국내선만 뜨는 작은 공항 활주로가 마을을 반으로 뚝 갈라놓을 정도다. 왼쪽 아래로 오아시스 같은 쫑캄Chong Kham 호수와 꼭대기에 사원을 둔 자그만 언덕이 있고 그 사이에 여행사, 레스토랑, 마사지 집, 세븐일레븐까지, 여행자들을 위한 상점들이 콤팩트하게 늘어서 있다. 우리는 호숫가의 나무집에 방을 얻는다. 2층 공용 테라스에서 주인아줌마가 동네 사람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해 먹는다. 커다란 곰솥에서 맑은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호수가 보이는 창가 자리엔 커플들이 호젓하게 야경을 즐긴다. 어느 그룹이든 끼고 싶지만 샤워부터 해야 예의다 싶다.


우리 방은 테라스로 가는 계단 바로 앞의 1층 방이다. 300밧(약 11,500원). 예상치 못한 모터바이크 렌트로 예산이 아슬아슬해져 이미 아끼던 숙박비를 더 줄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에어컨은 없고 샤워기 물은 졸졸 나온다. 거울에 비친 꼴을 보니 물에 푹 젖은 패잔병이나 다름없다. 습한 우비 안에 몸을 가둬놨더니 온 옷과 신발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 행거가 없어 벽에 걸린 못에 젖은 옷을 건다. 짐은 풀지 않을 거다. 가방에서 새 옷과 슬리퍼만 꺼내고 다시 닫는다.


매홍손 거리는 생각보다 더 아기자기했다. 여행객들은 주로 빠이나 치앙마이에서 넘어온다. 프랑스인들은 여기저기 안 오는 곳이 없는지 이 구석 마을 여행사까지 ‘NOUS PARLONS FRANÇAIS(우리는 프랑스어를 합니다)’ 간판을 걸어 놓았다. 잘 꾸며놓은 액세서리 집도 있다. 기념품을 잘 사지 않지만 오늘만은 사 본다. 1095 도로와 1864 커브 마그넷. 그동안 고생했고 앞으로도 고생하잔 의미에서 오랜만에 마사지도 받는다. 비록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사지사의 무성의한 마사지를 얻었지만 말이다. 밤이 되자 다시 비가 퍼붓는다. 낡은 슬레이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우뢰만큼 컸다. 다음번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정식 지붕을 갖춘 방을 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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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hye Jeon


아침이 되자 마음이 바빠진다. 이곳에서 매솥까지는 7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서둘러야 한다. 잘못하다간 다시 소떼와 밤골짜기를 넘는 일이 생길 것이다. 테라스에서 아침을 들며 호수를 본다. 비가 톡톡 떨어지는 호수와 건너 사원의 옥빛이 참 오묘하다. 치앙마이도, 치앙라이도, 심지어 들리지 않은 빠이에도 아쉬움이 없는데 매홍손은 여력이 된다면 다시 한 번 오고 싶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긴 옷 여벌이 없어 어제 입던 옷을 다시 걸친다. 끔찍한 일이다. 축축한 옷에 팔을 넣을 때 들러붙는 차갑고 찝찝한 느낌. 냄새는 덤이다. 이렇게 비가 오니 마를 리가 없지. 밖에 걸어 놓은 우비에서도 지하실 냄새가 난다. 니콜라스야 앞에서 신선한 바람을 맡겠지만 뒤에서 그를 안고 가는 나는 고역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홍손에 냄새를 남기고 떠난다.


매홍손 밖으로 나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어제 타고 온 북쪽의 1095번 도로와 남쪽으로 나가는 108번 도로.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간다. 지금껏 그래왔듯 산맥을 가로지르는 게 아니라, 능선을 타고 갈 거다. 지대는 높지 않지만 마을과 마을 사이 얕은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작은 커브들이 멈추지 않아 속력을 낼 수가 없다. 비 탓인지 가끔씩 자갈과 흙들이 도로에 흘러나와 있기도 하다. 사실 이 구간은 무얼 했는지, 무얼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몸이 힘들어서, 비 오는 도로가 다 그게 그거 같아서, 구름 뒤 풍경을 긍정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에 지쳐서, 서로의 쉰내에 서글퍼서... 그냥 서글펐다. 등산이라곤 모르던 내가 대학교 동아리 훈련이랍시고 하루만에 설악산에 올라가던 것보다 더 힘들고 서글펐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우리는 왜 이렇게 가고 있을까... 간간이 괜찮냐고 묻는 그에게 “Perfect!”라고 가짜 대답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승객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주변이 환해진다. 눈에 보이던 검은 산들이 사라졌다. 정글에 들어온 것처럼 머리 위로 웃자란 풀들이 하늘거린다. 노란 우비를 입은 우리는 나비처럼 풀섶으로 커다란 커브를 돌아나간다.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길, 온통 푸른 세상에 둘만 고립된 듯한 기분이 꽤나 환상적이다. 생명이 내뿜는 에너지들이 눈에 보일 듯 떠다닌다. 니콜라스에게 잠시만 쉬었다 가자고 제안한다. 나는 엉덩이를 두드리는 체하다 그에게 묻는다. “우리 사진 찍을까?” 우비를 벗어 바닥에 놓고 카메라를 받친다. 길 건너까지 카메라를 세우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헬멧 때문에 에일리언 같을 따름이다. 머쓱하게 에이, 생각만큼 안 나오네, 하고 그만둬 버린다. 대신 연둣빛에 둘러싸여 마음껏 공기를 들이마신다.


ⓒ Yoonhye Jeon


그러나 생명을 나누는 비는 여기까지였다. 산 위로부터 내려오는 비들은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아랫마을에 무서운 속도로 모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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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좋은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던데... 어쨌거나 둘이 멋진 사진 찍기는 포기. ⓒ Yoonhye Jeon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짧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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