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 왓 체디 루앙
한여름의 치앙마이. 뜨겁고 축축한 날들이 계속된다. 에어컨 없는 방에선 밤새 선풍기가 덜덜 돌아갔고 바닥에선 이따금 습한 내음이 끼쳤다. 두꺼운 금빛 커튼 사이로 빛이 미어져 들어온다. 어두운 복도엔 고양이들이 차가운 바닥을 찾아 드러눕는다. 작은 정원에 마련된 마지막 남은 조식을 먹고선, 골목을 빠져나와 치앙마이 중심의 왓 체디 루앙으로 향한다.
점심시간에 맞춰 왔음에도 매표소 앞 줄이 길다. 입장료는 40밧(약 1,500원). 이번 여행에선 줄을 서 본 기억이 없는데, 큰 관광지에 섞이는 걸 피했던 이유도 있을 테고 치앙마이가 그만큼 큰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원 입구로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와 고동색 지붕의 작은 사당, 그 오른쪽으로 화려한 금박 장식의 법당이 보인다. 두 건물 사이로 빼꼼, 보이는 것이 거대하다는 체디(탑)다. 오죽 컸으면 사원 이름을 ‘큰 탑의 사원’이라 했다.(사원 ‘왓’, 탑 ‘체디’, 큰 ‘루앙’) 높이가 82m에 달했다고 하며 이는 아파트 25층쯤 된다. 상상 속 신라의 황룡사 9층 목탑과 맞먹는다. 란나 왕국의 샌 무앙마Saen Muang Ma 왕이 아버지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만들었다 한다. 16세기 지진이 일어나 탑의 상부를 잃었고 그 모습이 지금까지 내려온다.
사당부터 천천히 돌아보려는데 이곳도 여성 출입 금지다. 니콜라스 혼자 다녀오고선 화려한 벽화가 있고 가운데 금기둥 안에 작은 부처님 입상Sao Inthakin이 있더라 전해준다. 태국에선 도시를 지을 때 도시의 영혼이 되는 ‘기둥Lak Muang’을 도시 중심에 세운다. 치앙마이의 기둥이 여기 있구나. 그러나 우리는 기둥보다 더 묵직하게 솟은 고무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태국 사람들이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양 나(Yang Na, 학명 Dipterocarpus alatus)라고 불리는 고무나무다. 기둥은 도시를 지키고, 나무는 다시 기둥을 지키며 겹겹이 도시를 보호하고 있다. 사당과 나무는 란나 왕국이 버마에 정복당하고 버려진 뒤, 1800년 톤부리 왕국(태국의 전 왕조)에 흡수되며 독립적인 자치권을 인정받은 것을 기념해 이곳에 세운 것이라 한다. 이렇게라도 란나를, 치앙마이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신발을 벗고 대법전으로 들어간다. 높은 천고에 세로로 길게 뻗은 법당. 바닥엔 빨간 카펫이 깔려 있고 카펫 끝에는 키 큰 부처님이 서 있다. 우리나라의 사원이 가로로 길어 문밖에서도 부처님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태국의 큰 사원 속 부처님은 높이 그리고 멀리 있다. 금빛 몸과 붉은 후광을 가진 부처님처럼,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과 천장에 드리운 붉은 실크는 아래 위로 대칭을 이루며 그를 이어주는 기둥과 창문, 샹들리에의 금빛과 조화를 이룬다. 카펫을 따라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금부처님은 손바닥을 보이며 두 명의 작은 부처님과 함께 온화하게 서 있다. 현지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한다. 금기둥과 벽 사이로 소원 조각들이 팔랑거린다.
“어, 윤혜. 너는 화요일에 태어났나 봐!”
니콜라스가 키득대며 가리킨 벽에는 ‘요일 부처님’이 조로롬 늘어서 있다. 태국 사원에서 자주 보이는 불상이다. 태국 사람들은 태어난 날에 따라 모시는 불상이 다르다. 각 불상은 요일마다 탁발을 하거나(수요일 오전) 명상을 하는(목요일) 등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한다. 부처님의 행적에 따라서다. 화요일 부처님은 뭘 하고 계시길래? 찾아보니 누워 계신다. “월요일 밤에 파티가 있으셨나...” 얄미운 그를 꽁 쥐어박으려 하자 그는 월요일 부처님처럼 손바닥을 내밀며 워워, 한다. 태국에서 요일 부처님은 믿음 이상의 친숙한 존재다. 요일별로 사람의 성격과 직업군, 행운의 색까지 알려준다니... 우리는 부처님이 별자리 같다며 웃는다. 종교가 이토록 친근하니 사람의 삶 속에 배어들지 않을 수 없겠다. 사람들은 입구에서 산 얇은 금종이를 자신의 요일 불상에 붙이고 기도를 드린다. 흥미로운 시주다.
밖으로 나와 법당 뒤로 간다. 거대한 체디와 그 너른 공간에 기분이 탁 트인다. 좁은 골목길이 얽힌 치앙마이 구시가에서 이런 공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아유타야에서 본 왓 프라 람의 탑은 높지만 가녀려서 위태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체디는 지름부터 54m, 그 육중함이 다르다. 커다란 기단만 세 단으로 10m는 족히 되도록 쌓은 높이에 입구를 만들었다. 동서남북으로 입구가 네 개, 그곳까지 오르는 가파른 계단. 커다란 용이 계단 앞을 지키고 코끼리 상이 기단을 장식한다. 입구 안에는 금부처님이 앉아 있다.
쩨디에는 울타리를 쳐 놓았다. 그 앞에 십이지신에 따른 사원 모형이 진열돼 있다. 태국인들은 여전히 음력을 사용하고, 십이지신을 믿는다. 이 동물들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사원을 세우는 연도의 신에 따라 사원 모양이 바뀔 정도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연도를 찾아 기도하고 헌금한다.
왓 체디 루앙은 어떠한 상징의 사원 같다. 불교적 상징과 더불어 도시를 지키는 기둥 락 무앙, 요일의 부처님과 십이지신 등 기복의 색채가 강한 민간 신앙의 상징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 소원을 비는 종이와 몸을 낫길 바라며 붙이는 금종이, 십이지신(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의 수호신들)까지 말이다. 아, 5월에는 기둥 앞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도 한다.
무너진 탑엔 새가 풀을 물어다 둥지를 짓고 있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린다. 쩨디 주변을 슬슬 걷는다. 그런데 계단의 모양이 이상하다. 법당 쪽 입구만 벽돌이고 나머지 세 군데는 시멘트로 덮여 있다. 코끼리도 새로 만들었고, 깨진 벽돌 사이도 시멘트로 이어 붙여 놓았다. 왜, 언제 이렇게 된 것일까? 체디의 복원은 1990년대 시도하다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복원을 얼마나 한 것인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모습을 보니 1910년대 일제가 보수공사를 한다며 석굴암에 시멘트를 발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습기와 온도를 자연 조절하던 자갈과 수로 위에 시멘트를 부어 버려 화강암 조각들이 점점 삭게 되었다는 이야기. 한 번 굳은 시멘트를 떼어낼 수 없어 이제는 인공 조절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졌다는 슬픈 결말. 이곳도 무너진 탑을 굳이 시멘트로 이어 붙여야 했을까.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풍화하도록 둘 수는 없었을까.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어(Let it be)….”
니콜라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체디가 복원을 할 정도로 중요한 건물이라면-그 중요함이 역사적으로든, 지역 사회를 위해서든, 관광을 위해서든, 종교를 위해서든- 오래도록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조사하고 고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느껴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일. “자신이 없다면 깨끗이 쓸고 닦고 그저 그대로,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는 말끝을 흐린다. 우리는 말없이 체디를 몇 바퀴 돌았다.
태양이 가장 높을 시간, 습한 공기에 치이던 우리는 체디 뒤로 카페를 발견한다. “살았다!” 왓 쩨디 루앙은 따로 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이 담 역할을 한다. 이 카페도 그 일부다. 사원의 일부는 아니지만 사원으로 문을 내어, 또 하나의 사당처럼 조용히 서 있다. 흰 벽에 연붉은 꽃 타일이 깔린 카페. 라임 에이드를 시켜 해갈한다. 마주 보이는 바깥 벤치에는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 쉬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도 있다. 니콜라스가 입을 뗀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일 년 정도 함께 여행하고 싶어. 여덟 살쯤, 너무 어리지도 않고, 자기만의 확고한 영역이 생기기도 전일 때 말이야. 세상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 곳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 아이가 생각과 경험의 폭이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니콜라스에게 6년 전 인도의 야간 기차에서 만났던 프랑스인 가족 이야기를 해 줬다. 연년생처럼 보이는 개구쟁이 꼬마 둘과 피부가 그을린 젊은 엄마 아빠. 서로의 가방에는 그동안 여행한 국가의 국기들이 붙어 있었다. 누구의 것보다 커다랗던 아빠의 배낭. 꼬질꼬질한 기차 침대에서 장난치다 잠들던 아이들. 새벽녘 멈춰 선 역에서 창문 밖 짜이 소년과 서로 눈을 마주치던 모습. 일개 옆자리에 앉은 내게도 지금껏 떠오르는 장면들… 아이들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부모님은 어땠을까. 안정적인 벌이와 편안함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챙기며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책에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자신들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겠지.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많은 것을 ‘직접’ 보고 들었을 것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니콜라스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다. 스스로 하기, 스스로 깨닫기. 비록 그는 그의 부모님과 여행은 하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아이와 이루고 싶어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자녀 교육으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처음부터 새 것을 사 주지 않을 거야. 중고를 사서 바퀴와 체인, 안장을 떼낸 뒤에 직접 조립해 보라고 할 거야. 자기가 타고 싶은 자전거라는 물건이 내 발에서부터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아내면, 타기는 훨씬 쉬워지거든. 그때 자전거를 타게 해 줄 거야.”
“음, 니코. 그런데 요즘에는 모든 것이 편하게 잘 되어 있는 걸? 설명서는 조금만 뒤져봐도 다 나오잖아. 나는 직접 하는 것도 좋지만, 궁금한 게 생기면 상황에 적절한 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기르게 하고 싶어.” (오마이갓, 돌이켜 보니 완전한 주입식 교육에 의해 주입된 의견이다.)
“음, 누군가가 알려주는 걸 따라한다면 자신만의 방식이 없어지잖아. 요즘은 모두가 이케아 테이블을 써. 똑같은 설명서를 보고 똑같이 만들지. 자기 것이 없어. 나는 며칠을 땀 흘리더라도 나만의 가구를 만들고 싶어. 음, 다른 예로 프랑스에선 배관공을 부르는 게 엄청 비싸. 사람들이 배관공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공급은 줄어드는데, 수요는 그대로거든. 그런데 이런 작은 문제들은 경험하다 보면 고칠 수 있는 거잖아. 이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사라지면,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해결할 능력도 사라지는 거야.”
나는 이케아에 대해 “나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사고 감각을 사는 거지.” 배관공에 대해선 “아저씨를 부르는 것보다 시행착오 비용이 더 들 걸.” 맞받아친다. 그러나 그의 원론이고도 아름다운 생각에 수긍하고 만다. 나의 말은 결국 ‘시간이 돈’이라는 계산법에서 나오는 건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발견하고 만들어낸다면 그만큼 더 값진 일이 없을 테고, 경험이 쌓이는 만큼 다음 시도도 더 수월해질 테니까. 결국 인내다. 빨리 알아내어 끝내는 것보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알아가는 것. 그만큼 삶은 풍부해질 것이다. 우리가 여행하며 얻는 경험이 인터넷으로 얻는 정보보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새겨지는 것처럼.
끝없는 이야기에 커피까지 마시고 몇 시간을 보낸다. 말 많은 날엔 해가 빨리 지는 법이다. 우리는 알프레도 아저씨가 직접 만든 리몬첼로 맛을 잊지 못해 오늘도 까사 레스토랑에 간다. 저녁을 먹고선 해자를 따라 드라이브를 한다. 그 옛날 용맹히 구시가를 지키던 5m 깊이의 해자는 이제 내 키 만한 얕은 물길이 되었다. 치앙마이 성벽이 노란 조명을 받고 서 있다. 오랜 시간 치앙마이를 요새로 만들어 주었던 이 성벽은 일부 구간만이 남아 무너진 채로 서 있다. 성벽에서 나온 벽돌은 집과 도로를 만드는 데 썼다고 한다. 과거의 흔적은 위용을 떨치는 대신 점점이 흩어져 치앙마이 시민들의 크고 작은 집을 받치고 서 있다. 타패 게이트Tha Phae Gate 주변으로 여행자들이 오고 간다. 졸졸 흐르는 물에 노란 불빛과, 차들의 불빛과, 상점의 불빛이 어른거린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일 줄로만 알았는데… 모터바이크가 조금 이상하다. 단단하게 달리지 못하고 자꾸만 울렁울렁한다.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짧은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