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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집을 구하면서 알게 된 것들

프랑스 부동산 시장, 비아제 계약, 임대아파트 쿼터제

지금으로선 몇 년 된 일이다. 2014년 나는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한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입학 초기 알게 된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운좋게 파리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구역이라는 우리 학교 근처에 아주 저렴한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며 흡족해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집에 책을 가지러 가야 해 잠시 그녀가 구한 아파트에 같이 들어가 볼 수가 있었다. 물을 마시려 물컵을 씻으러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보니, 그곳은 화장실이자 싱크대와 핫플레이트가 있는 주방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내가 놀라 “주방이 화장실이고 화장실이 주방이네”라고 외치자, 그녀가 “그렇지, 뭐 파리가 워낙 비싸다보니 이정도 구한것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서 돈을 아끼며 열심히 공부하고 당찬 꿈을 꾸는 삶을 사는 친구였다. 나는 아직도 파리 생활 초반, 석사 생활 초반에 봤던 이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가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파리의 아파트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막연히 파리에 살면 흔히 보는 유럽여행 사진 뒤에 보이는 배경이 그렇듯, 창문에 검은 그리드가 쳐져 있는 아파트에서 색색가지 꽃이 만발한 화분을 걸어놓고 사는 모습을 그렸던 기억은 난다. 한 7년 전, 남편이 먼저 파리에 정착을 하기로 하고 아파트를 보러다니던 때, 남편이 처음으로 보러 간 아파트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저렴해 혹시나하고 방문해 본 케이스였다. 어느 한국인 유학생이 살다가 한국에 들어가려고 내놓은 방이었다. 너무도 낡고 개보수가 안된데다가 고층임에도 엘리베이터까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유학생 분은 그곳에 오랜 기간 거주해 왔을 것이다. 워낙 파리의 거주비와 물가가 높다보니 유학생들은 생활비를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협소한 공간에 살며 꿈을 위해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어디든 청춘의 모습은 왠지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은 우리 부부 둘이 살기에는 여의치 않아 다른 곳을 계속 알아보다가 지금 있는 아파트 매물을 보러오게 되었다. 그동안 본 아파트 중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구비된 아파트였다. 원룸이기는 하지만 화장실과 부엌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가격도 시내 중심가에 비하면 저렴했다. 순수 월세만으로는 850유로이며 각종 세금을 내고나면 매달 950 유로(약 130만원) 정도 소비되는 아파트였다. 마레지구에서 이만한 월세가 나오기 힘들다며 부동산 중개인이 얼른 계약을 해야 한다고 떠밀었다. 남편도 이미 몇달 간 파리 근교의 지인 집에 머물며 파리 시내로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상황이라, 그날 결정을 하고 계약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현지인이 부동산을 통해 월세로 집을 렌트할 경우, 최소한 월세의 약 3 배 이상은 매달 월급으로 벌고 있어야 월세 계약이 가능하다. 단순화 시켜서 예로 들면, 매달 300만원을 버는 사람은 정식으로 부동산을 통해 구할 경우, 100만원 월세가 그 사람이 구할 수 있는 월세 상한선이다. 또 연봉 액수가 적거나 직업이 없는 경우, 기준액을 자산으로 가진 다른 프랑스인이 보증을 해주지 않으면 집을 계약할 수 없다. 프랑스인도 부동산을 구할 때 녹록치 않은데, 하물며 단신으로 유학오는 외국인 학생들은 부동산을 통해 개별적으로 집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파리의 아파트를 구할 때, 몇 가지 옵션을 선택하면 가격은 더 뛴다. 가령 엘리베이터 유무, 아파트 건물 내 주차장 유무, 자전거나 와인 등을 보관하는 지하 보관소 꺄브(cave) 사용 유무에 따라서 다르다. 한국의 아파트 대단지에는 공용 주차장이 많이 있다. 반면 파리 시내 건축년도가 오래된 아파트들은 새로 짓기가 어려워 주차장이 구비되지 않은 곳이 많다. 그런 경우 근처의 다른 주차장을 렌트해 월별로 몇 십만원씩 추가 지출하게 된다. 파리 중심가 아파트에는 주차장 딸린 곳이 많이 없고, 있어도 비싸다 보니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15분 이동해야 하는 파리 근교 길거리에 무료로 주차해 놓고 있는 것으로 해결을 본 상태다. 차가 집 건물에 주차된 게 아니다보니 자가용을 타고 어디를 이동하는 게 대중교통을 타는 것보다 더 번거롭다. 길거리 주차를 하니 최근에는 차문이 따여져 있어 경찰에 신고하고 오기도 했다. 이렇게 파리의 주차난은 파리의 주거난과도 연결되어 있는 면이 있다.

파리 시테섬의 길에 주차된 차량들. 이 거리는 그나마 주차공간이 있어 나은 상황이다.


흔히 파리라고 하면, 근교를 제외하고 20개 구(arrondissement)로 이루어진 파리를 의미한다. 정확한 아파트 가격대는 구마다 다르지만, 월세의 경우 파리에서 1-2인 거주 원룸은 평균 1,000유로(약130만원) 선이다. 그렇다면 파리의 아파트 매매 가격은 어떨까. 프랑스 대형 부동산 사이트 중의 하나인 스로제의 자료(Le baromètre LPI – Se Loger)에 따르면 평방미터m2당 파리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10,000유로(약 1300만원)라고 한다. 파리 6구는 평방미터당 매매가가 13,626유로에 달해 가장 비싼 지역으로 등극했고, 7구와 샹제리제가 있는 8구는 평방미터 매매가가 10,971유로에 달해 3위를 기록했다. 13구, 19구, 20구는 아직 평방미터당 구매가격이 7,000유로 선이었다. 파리 내에서도 이렇게 부동산 가격 차이가 많이 나고 있다. 그리고 파리의 집 값은 연평균 7.3%의 상승세로 올랐다고 한다. (참고: edito.seloger.com)


© edito.seloger.com/actualites/barometre-lpi-seloger/paris-le-prix-immobilier-depasse-les-10



집주인이 죽어야 내 것이 되는 집,
프랑스의 비아제(Viager) 제도

 

우리 부부가 방을 하나 늘려 이사하기 위해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를 뒤적거리던 때였다. 나는  너무 예쁘고 고풍스럽게 꾸민 집의 사진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여기다”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남편이 그런 좋은 아파트가 그런 가격에 올라올 리가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디보자…”하고 꼼꼼하게 읽어내려간다. 그러더니, “아....비아제네”라며 아쉬워한다.


프랑스에는 비아제(viager)라는 제도가 있다. 최소 65세 이상으로 나이가 든 노인이 부동산을 통해 자신이 죽으면 집을 물려받을 사람을 구한다. 이때 매수자는 집 책정가의 최대 40%에 해당하는 금액을 우선 선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평균기대수명까지 노인이 산다는 가정하에 매달 분납해서 내기로 종신정기금계약을 하는 방식이다.


가령 80세 노인이 자신의 10억 짜리 집을 비아제로 내놓는 경우, 이 매도자가 죽기 전까지 집에 머무르는 기간을 고려해 공제해주는 금액은 40%로 책정된다. 즉 매수자는 정상가 집 가격인 10억에서 공제액인 4억을 뺀 6억을 지불하면 된다. 6억 중 약30%인 2억은 선금으로 내고, 나머지 4억에 대해서는 노인이 평균기대수명 나이에 죽는다는 가정하에 지불하면 된다. 프랑스 여성 평균 기대 수명은 89세이므로 9년으로 나누면 (매년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달라지긴 하지만) 대략 월별 분납액은 약 370만원이 된다. 매수자가 기대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매도자가 일찍 죽을수록, 총 월별분납금액이 적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렴한 집값으로 사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노인이 89세 이상 살게 될 경우 분납총액은 총 4억을 넘어가게 된다. (참고: https://edito.seloger.com)


프랑스 영화 'Le Viager'


이를 풍자한 프랑스의 코미디 영화도 있다. 1972년에 나온 르 비아제(Le Viager)라는 영화다. 때는 1930년, 파리의 의사 레옹은 자신의 환자인 59세의 루이를 진찰하게 된다. 레옹은 아무리봐도 루이가 최대 2년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자신의 형 에밀에게 루이의 집을 비아제로 구매하라는 조언을 한다. 에밀은 루이와 비아제 계약을 하는데, 이상하게 매년 루이의 건강은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다. 몸도 더 건강해지고 정신도 점점 또렷해지고... 비아제 가격도 해마다 오르고 이에 참지 못한 레옹과 에밀 가족은 루이를 제거하려는 각종 시도를 하는데… 이러한 모든 시도가 우습게 실패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나가는 영화다.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1875년에 태어나 1997년에 12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잔 칼멍(Jeanne Calment)이라는 한 프랑스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무려 90세 때 앙드레 프랑소와라는 47세 변호사와 비아제 계약을 맺었다. 앙드레 프랑소와는 매달 약 380유로를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을 했는데, 잔이 장수하는 바람에 결국 애초 계약금액의 두 배가 되는 금액을 지불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간에 앙드레 프랑소와가 암에 걸려 잔보다 일찍 죽게 되자, 그의 가족이 계속해서 돈을 납입해야 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비아제를 얘기할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프랑스 여성 잔 칼멍의 일화를 많이 떠올린다고 한다. 실제로 남편이 어릴 적 들었던 라디오에서는 마담 잔 칼멍이 도대체 언제 돌아가실까가 매년 화제였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는 비아제에서 아주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는 한다.


www.20minutes.fr / GEORGES GOBET / AFP


프랑스에서 비아제 계약의 매도자는 주로 독거 노인이다. 집 한 채만 있는 채로 나이든 노인으로서는 매수자에게서 매달 들어오는 정기금을 생활비에 보태 쓸 수 있어서 좋다. 매수자 역시 미래에 살 만한 집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의 수명을 예측할 수 없으니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의 장점에 투자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주인이 빨리 죽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므로 이 제도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내가 비아제 집을 찾아냈을 때 남편이 비아제인 것을 알고 아쉬워한 이유는, 단지 우리는 바로 입주해 머물 곳을 찾고 있지만, 비아제 집은 일반적으로 바로 입주해 살 수 있는 매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아제라는 제도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현재 거주지는 있으나, 은퇴 후에 살 집 마련을 원한다면 장기적으로 투자해볼 만하다. 아마 도덕적인 비판은 있을지라도,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의 집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맞춰보려는 프랑스 정부의 시도였을 것이다. 파리의 한 부동산 업체인 뱅파리(Vingt Paris, vingtparis.com)에 따르면 비아제 계약 건수는 프랑스 전체 부동간 계약 건수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임대 아파트(사회적 빌딩 HLM),
그리고 살기 좋은 도시의 기준

 

우리 부부는 파리 시내를 벗어나 집을 옮기기로 했다. 엄청난 온라인 서치를 하던 중, 프랑스 도시들에 대해 전.현 거주자들이 환경, 교통, 치안, 건강, 여가생활, 문화, 교육, 상권 등에 대한 접근성을 토대로 별점을 매기고 리뷰를 남겨 살기 좋은 도시를 가려내 순위를 매겨주는 ‘마을 평점 사이트’를 발견했다. 대충 여러 마을에 대한 리뷰들을 읽어보니, 거의 모든 점을 만족하는 마을을 찾기가 힘들었다. 파리 근교이면, 상권이 부족하거나, 파리와 접근성이 부족하거나, 혹은 치안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등 여러 이유로 별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프랑스 사람들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은 ‘파리’여야 하는데 말이다. 상권, 숲, 공원, 여가생활, 치안, 교통, 건강 등 모든 걸 만족하는 곳은 파리일 텐데, 또 의외로 살기 좋은 도시 탑 10위 안에 파리의 1~20구는 없었다. 여러 면에서 발전되고 다 만족되는 곳을 찾으면서도,  녹음이 울창해 힐링이 가능한 도시는 없기 때문이다.


이사 대상지로 물색되는 곳들에 실제로 살아본 거주자들의 리뷰는 정보를 하나라도 더 찾는 사람들에게 샘물과도 같다. 그런데 파리에서 멀지 않은 근교인 베르사유(Versailles)에 대한 리뷰를 읽던 중, 두 가지 다른 상반된 리뷰에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외국인이나 이민자를 차별해 동네가 별로다. 보보(부르주아틱한 사람들을 일컫는 구어)가 많다.”는 리뷰를 봤다. 나는 그 리뷰를 읽고는, 동네가 사람 차별을 한다니 안 좋은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리뷰를 읽으니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임대 아파트(logements sociaux) 비율이 아주 적어 파리 근교 중에서도 치안이 안전한 부촌이다. 만족한다.”는 리뷰다. 이 두 가지 상반된 리뷰 속에서 나는 베르사유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잘 사는 사람이 많으나 외국인에 대한 시선은 보수적인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부촌에 살고 싶으면 베르사유는 살기 좋은 곳이 되는 것이고, 이민자 입장에서 베르사유는 졸부들이 많은 깐깐한 동네가 되는 것이다. 마을 평점 사이트를 통해 이사갈 동네에 대한 평판을 알아보다 아차 싶었다. 자신이 누구냐에 따라 해당 마을은 살기 좋을 수도, 안 좋은 곳일 수도 있다.


또 우리가 자주 가서 정보를 찾는 프랑스의 한 부동산 사이트에는, 꼭 말미에 그 매물이 위치한 ‘마을’을 짤막하게 소개하는 공간이 있다. 주로 거주 인구 수, 직업군, 특징적인 사실들, 집과 아파트 거주형태 비율, 임대아파트 비율, 거주세 등 세금 비율 등이 주로 소개되어 있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임대아파트 비율도 제공하는 걸 보니, 프랑스에서도 사회적 빌딩(HLM)에 대한 이면적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부부가 이사가려고 염두에 두고 있던 파리 근교 한 마을의 정보를 보니 임대아파트(HLM) 비율이 무려 38%에 달했다. 프랑스 공산당(파티 커뮤니스트; parti communiste) 소속인 시장이 연임한 동네라 그간 도시에 임대 아파트를 많이 세운 것이다. 이렇다 보니 마을 평점 사이트에서 좋은 평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분위기가 안 좋아 떠난다, 크고 작은 범죄가 많다, 사람들이 모여 있어 치안상 불안함이 느껴진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리뷰에 적힌 사례들은 실제로 리뷰자들이 겪은 경험일 것이다. 평점과 리뷰를 보고 나니, 이사갈 집에서 장래 아이를 키우려는 계획을 세웠던 우리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차라리 그 마을을 실제로 방문해 보기로 했다. 낮에도 방문하고 밤에도 방문했다. 마을을 2시간 동안 천천히 걸어다녀보았다. 마을은 깔끔했고, 조용했으며, 파리와의 접근성 때문인지 신축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아파트보다는 집(maison)이 많아 이웃 간 오래 알고 지내는 스타일의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이었다. 예상한 대로 임대 아파트들도 많이 보였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안 좋은 평을 보고 놀랐던 우리는 실제로 이 마을을 보고 생각보다는 살 만하지 않나 느꼈다. 알고보니 남편의 동료 중의 한 명도 이곳에 몇 년 전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도 마을 평점 사이트를 보고 이사를 고민했는데 가서 보니 마을이 깔끔하고 괜찮다고 느껴 이사를 했다고 한다.



어쩌면 프랑스에서 사회적 건물의 비율 자체는 좋은 동네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완전한 잣대가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프랑스에서는 어차피 정책적으로 도시마다 특정 비율의 건물을 사회적 빌딩(임대아파트 HLM)으로 짓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법을 한마디로 말하면, 일례로 파리가 속한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여러 동네를 묶었을 때 50,000명의 거주자가 넘는 동네라면 그 지역들의 임대 아파트 총 비율을 2025년까지 25%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 임대아파트 설립을 강화하는 법령(la loi n°2013-61 du 18 janvier 2013)이다.


임대 아파트를 해당 비율만큼 짓기 싫은 동네는 매년 벌금을 내는 것으로 제재를 받게 된다. 파리소식 전문 일간지 르파리지앵(www.leparisien.fr)은 프랑스 전체의 269곳의 동네에서 임대 아파트 비율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프랑스의 한 뉴스매체인 뤼마니떼(www.humanite.fr)의 2012년자 뉴스를 보면,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1983년부터 2002년까지 19년 간 시장으로 있었던 파리 근교 동네인 너이-쉬-센느(Neuilly-sur-Seine)에서는, 임대 아파트 건설 비율을 지키지 않아 매년 350만 유로(약 45억 원)의 패널티 벌금을 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의 지역에서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 차라리 세금을 더 내더라도 임대 아파트의 비율을 적게 유지하고 싶어한다. 반대로, 우리가 이사가기를 고민했던 지역은 정치적으로 공산당(parti communiste) 출신의 시장이 연임하여 임대 아파트 건설 비율을 크게 오버하여 임대아파트를 많이 세운 지역이다. (딱히 어떠한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음을 밝혀둔다.)


집 하나를 알아보면서 프랑스의 주거 사회 정책들과 그 안에 대립되는 정치적 이해관계의 존재에 대해 한층 더 알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정리하기 위해, 프랑스인 남편의 의견을 물어봤다. 솔직히 프랑스인으로서 사회적 빌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내 질문에 그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사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이미 슬럼화된 지역들이 있는데 그건 과거 경제적 하위계층을 근교로 몰아 넣었던 고립 정책에서 기인했고, 지금 그런 지역들은 일반 사람들은 잘 가지 않는 우범 지역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때 그들을 한 군데 몰아놓고 그 지역을 총체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을 펴기보다는, 프랑스 전반에 걸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안고가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남편 주변의 동료들을 보니 아이까지 있는 가족 단위의 기혼 동료들은 거의 파리 근교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이 파리 시내(1~20구)에서 방을 여러 개 보유한 집의 주거비를 감당하며 버티기 어려워 하는 걸 보니, 이곳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 도시에서의 삶의 질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파리지앵들은 오히려 파리 근교에 살면서 파리로 출퇴근하는 삶을 선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곳도 아무래도 근교로 나가면 같은 가격에 조금 더 여유있는 크기의 집을 구할 수 있으니 한결 마음은 편한 것이다.


 파리와 맞닿은 근교도 이미 파리에 견줄 만큼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부동산을 알아보니, 파리 근교로 이동하는 파리지앵들이 많아지고 또 지하철 연결 사업으로 파리 중심가와의 접근성도 보장되다 보니, 이미 치솟을 대로 치솟은 지역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근교에서 살기를 선택한다면 여전히 선택지는 남아 있는 편이라 우리도 아마 더 늦기 전에 파리 근교로 이동해 살게 될 것 같다. 파리의 녹록치 않은 집 사정부터 시작해, 집을 알아보다 접한 프랑스의 부동산 관련 특이한 정책들(비아제 제도, 임대아파트 쿼터제 등)을 소개하고 싶었다.


살다보니 그간 파리는 참 신기한 공간이었다.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 기거하며 살아가는 많은 1인 가구 유학생들이든, 근교로 이동을 꿈꾸는 신혼부부나 가족단위의 집들이든, 모두 제각각 다른 기준과 가치를 가지고, 같지만 다른 파리의 모습을 마주하며 파리에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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