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나아갈 기회인지, 멈춰야 할 순간인지 판단하기

by 헤스티아

지난 포스트에서 영화 스픽 노 이블(Speak No Evil)을 리듬이 엉킨 지점을 살펴볼 수 있는 의사 결정 훈련 기회로 소개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어가 보려 한다. 리듬정렬™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많은 선택의 순간 판단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리듬정렬™이 판단의 길잡이로 쓰이려면 그 이전에 먼저 우리가 판단 기준에 대해 리프레이밍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어떤 기회를 마주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기회들은 좀 애매하다.

딱히 이거다 싶지도 않고,

그런데 또 확실하게 아니다 싶지도 않다.

그런 순간에 우린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진짜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마음을 열고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멈춰야 할 순간일까.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만큼, 세상에는 의사결정에 대한 수많은 조언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조언들 역시 또 다른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 조언을 적용해야 할 ‘적절한 순간’과 ‘적절한 상황’을 우리는 과연 구분할 수 있는가?


계속 눈앞의 문제와 그 속에서 해답 혹은 결정을 내리려고만 하면 생각이 뱅뱅 돈다. 이럴 때는 잠깐 관점을 더 큰 시야로 넓히는 것이 좋다. 메타적인 사고를 하고, 지금 문제 지점에 대해 리프레이밍을 하는 것이다.



1. ‘좋은 결정’에 대한 관점 다시 생각하기


먼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 있다. 의사 결정의 순간에는 그 결정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다는 것. 당연한 말 같지만, 이걸 전제로 해야 '좋다, 나쁘다'의 평가를 다르게 내릴 수 있다. 좋다 나쁘다는 결국 시간이 흐르고 결과가 드러난 이후에 가능한 평가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는 결정의 순간에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결정 순간에 '결과'에 전전긍긍하면서 고민을 한다.


그러면 결정의 순간에 우리가 바꿔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좋은 결정’을 정의하는 방식을 다시 바꿔야 한다. 사실 우리가 좋다고 평가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저 나의 에고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을 때를 일컫는다. 우리는 많은 순간 좀 아이 같고 단순하기에 에고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다, 에고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싫다, 나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삶을 조금 더 긴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좋다 나쁘다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의 무의식이 이 끄는 다른 길이 결국 더 큰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길은 보통 처음에는 불편하거나 원치 않은 형태를 띠곤 한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정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훨씬 나중에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2. '나쁜 결정'에는 신호가 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좋은 결정은 미리 알아볼 수 없는 거라고 정의를 리프레이밍하고 나서도 기준은 남는다는 거다. 바로 좋은 건 알기 어려워도 나쁜 결정은 곧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쁜 결정의 신호는 곧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나쁜 결정'은 나의 고유한 리듬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리듬이란 말을 여기서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고유한 패턴 (자질, 재능, 구조적 환경, 구조적 환경, 흥미, 취향 등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 나의 고유 리듬에서 멀어지면 우리의 상태는 보통 이렇게 변한다.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내면에 대한 확신이 점점 더 줄어든다

몸과 정신의 건강이 조금씩 갉아먹히기 시작한다


3. 판단 기준을 다시 프레이밍 하기


그런데, 앞서 말하는 상태 변화는, 성장을 위한 스트레스와 어떻게 구분하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태도가 세 번째 리프레이밍 지점이다.


우리는 '구분 기준'을 자꾸 외적인 조언으로 찾으려고 한다.

세상에는 더 나은 결정을 위한 조언이 넘쳐난다.

영화 〈스픽 노 이블〉에서도 상담사의 조언을 주인공이 인용한다.

“완벽한 것을 추구하다가 좋은 것을 놓치지 마라.”


맞다. 좋은 조언이고, 실제로 이런 태도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도 많다.

문제는, 지금이 과연 이 조언을 적용해야 할 순간인가? 자체는 어떻게 구분하나?


만약 '이걸 구분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라고 내가 답을 주길 바란다면, 그 지점을 리프레이밍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도 유튜브 숏츠에는 '이러이러한 상황 구분하는 법/ 지표'가 어마어마하게 떠다닌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부에서 정답처럼 몇 가지 지표들을 보면 이런 결론을 내리라는 접근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이런 쇼츠나 조언들을 보면 각자 경험에서 엄청난 반론도 떠오를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언제나 맥락이 달라지면 유용할 수도, 어긋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판단의 기준을 다시 프레이밍 할 필요가 있다.

판단의 기준을 외부의 기준, 지표가 아니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나의 존재 상태’로 옮겨보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분이 '상태'란 단어를 눈여겨봤을지 모르겠다.

'상태'는 내가 삶의 기준으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프레임이어서 리듬정렬™에서도 계속해서 강조하는 중이다.


4. 리듬이 엉키는 순간


영화 <스픽 노 이블>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나쁜 결정으로 향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본인이 에고의 욕망에 끌려서 판단을 내리니,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그 결과 계속해서 가족 모두에게 상황은 악화된다.

본인의 인식 범위가 좁아지니, 자기보다 약자의 위치를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기준과 잣대로 통제하려 하거나 행동을 요구한다.

본인이 에고의 욕망에 끌려 불안하고 작아진 상태에서 판단을 내리지 경계를 그어야 할 순간을 계속 놓치고, 엉뚱한 순간에 조언을 받아들인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순간의 상태가 계속해서 나쁜 결정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들 부부가 불화로 대화를 하는 지점만 보면, 그 순간의 '말'로는 서로 잘잘못이 있는 것 같고, 그럼에도 서로 노력하고 이해하고 또 잘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꽤 흥미로운 대화인 것이다. 그 상황에 들어가서 '말'과 문제상황만으로 풀려면 잘 안 보이는 것들이 한발 떨어져 메타적인 시선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의사결정 순간의 존재 '상태'가 리듬이 엉켜있는 것을 집중하면,

의사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대한 연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난 계속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요한 상태에 들라고 권유한다.

나의 상태가 가장 확실한 기준이다.

고요하기 전에 결정을 멈출 줄 아는 것...

그게 리듬정렬™ 과정이기도 하고, 언제 멈추고 나아가야 할지 가장 믿을만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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