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 정말로 아무도 모를 거라 장담할 수 있다 - 비엔나 중앙역 근처에는 어마어마한 맛집이 있다. 뭘 파는 곳이냐 하면… (비엔나 기차역: Wien Hauptbahnhof)
지난여름, 유럽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언제쯤 가능할까 싶었던 가족 유럽 여행을 비행기 할인 티켓 덕분에 실행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 시작하여 클림트가 있는 비엔나를 찍고 헝가리 야경으로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다. 어차피 유럽 안에서는 기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나 혼자 보고 좋았던 곳들을 가족과 공유하고 싶었다. 클림트의 빛나는 키스, 한 세기 넘게 변함없이 달콤한 핫 초콜릿,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국립도서관 등 모든 일정 중 비엔나는 가족 모두가 가장 기대하는 곳이었다.
비엔나 숙소는 중앙역에서 가까웠다. 집주인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불안했던 숙소 찾기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결됬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건물은 맞는데 도무지 아파트 현관문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럽의 에어비앤비는 대부분 셀프 체크인이어서 건물 어딘가에 달려있는 열쇠통에서 열쇠를 찾은 후 숙소에 들어갈 수 있다. 헤매지 않고 열쇠를 찾았고, 건물도 찾았다. 그런데 입구를 몰라서 들어갈 수가 없다니! 1층이라고 했는데 유럽은 로비가 0층이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건가? 아니, 호수는 왜 안 적혀 있는 거지? 한 층에 집이 하나뿐인가?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 올라가 문구멍에 열쇠를 쑤셔 넣었다. 열쇠는 맞지 않았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한 층 더 올라가야 하나?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는데 내가 열려고 했던 문이 열리고 집주인이 나왔다. 그의 입장에선 누군가 무단으로 침입하려 했던 것 일터. 미안하고 놀라고 무서워서 호들갑을 떠는 나와 우리 엄마를 바라보는 남자는 의외로 침착했다.
‘아니 내가 여기에 숙소를 잡았는데 어딘지 몰라서 진짜 진짜 미안해. 절대 침입하려던 거 아니야!’
온갖 불쌍한 표정을 지어가며 사과를 하자 남자는 웃으며 에어비앤비를 찾아온 거냐며 이 건물에 에어비엔비가 꽤 많다고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켰다. 이런 경우가 빈번한 듯했다.
도와줄까?
‘아니야 괜찮아 하하’
사실 남자가 신고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못 찾으면 도와줄 테니 다시 올라오라던 친절한 비엔나 남자가 들어가고 다시 로비로 내려온 우리는 안뜰까지 들어가서 보이는 문을 죄다 두드려보는 만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저 구석 어둠 속에 숨어있던 문을 발견했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열쇠를 넣고 돌렸다! ‘어? 열쇠 돌아가는데?!’ 우리 가족은 마치 2002년 폴란드전에서 첫 골이 들어갔을 때와 맞먹는 환희를 느꼈다. 수트케이스도 버려두고 원으로 모여 승리를 자축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족 여행은 호텔로 가세요)
저녁 7시 정도 되었을까? 어둠이 내려앉은 비엔나의 여름이 낯설었다. 보통 여름에는 해가 길어 한밤에도 환한데 왜 이렇게 어둡지? 서둘러 저녁을 먹으러 나섰지만 주위는 주택가였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아래서 또다시 음식점 찾겠다고 헤맬 순 없었다.
‘우리… 중국집이라도 갈까?’
역에서 택시를 타고 오던 중 주택가에 쌩뚱맞게 자리잡은 중국집을 발견했고 우리끼리 ‘와 이런데도 중국집이 있구나. 누가 가?’ 웃어 넘겼던 곳이다. 숙소에서 도보 5분, 중앙역에선 15분 거리에 위치한 그곳엔 중국집을 포함하여 총 3개의 레스토랑이 모여 있었다. 중국집, 그 맞은편 피자&파스타 집 그리고 그 옆의 또 다른 정체 모를 음식점. 비엔나까지 와서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싶은 짜장면이 웬 말이냐 싶었지만 국물이 먹고 싶다는 엄마를 아무 생각이 없는 나머지 3명이 순순히 따라갔다.
중국 기와가 얹힌 새빨간 문은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중국집인 게 분명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약 3초가량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다시 나갈까?’ 그도 그럴 것이 식당 규모가 꽤큰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저녁시간에. 어색하게 어기적 거리며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자리에 앉아 주문을 시도했다. 사장님은 중국인이셨는데 우리 가족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중국어로 자리를 안내했고 메뉴판에는 처음 보는 요리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사진조차 없어 어떤 요리일지 짐작해야 했다. 당연히 짜장면과 짬뽕은 없었다. 짜장면과 짬뽕이 중국요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한국이 아닌 곳에서 중국 음식점은 처음이었던지라 메뉴가 낯설었다.
마파두부를 제외한 요리 이름을 여전히 모르겠다...
쓰촨 지역 대표 요리라는 돼지고기 볶음, 마파두부, 탕수육 비슷한 요리, 그리고 굴짬뽕과 유사해 보이는 해물면을 주문했다. 하나 둘 음식이 나왔고 기대 이상의 비주얼에 작은 탄성을 내쉬며 돼지고기 볶음을 한 젓가락 크게 한입 먹은 순간 우리가 아주 잘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쓰촨 돼지볶음은 맛있었다. 좀 매우니 조심해야 한다던 사장님의 우려는 기우였다. 살짝 매콤함이 감돌면서 불향이 나는 볶음 요리였는데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하나도 안 매운데 겨우 이 정도로? 하하 우습군.) 해물이 가득 들어간 면요리는 주인공인 면이 스파게티 면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완벽했다. 시원한 국물 한 숟가락에 현관문 찾느라 빠진 기가 보충되는 듯했다. 이상하게 식탁은 요리로만 채워졌다. 밥도둑 돼지볶음에 쌀밥이 빠진 것이다. 마파두부를 시키면 당연히 밥이 나올 줄 알았는데 쌀 한 톨을 구경할 수 없었다. 소통을 담당한 동생이 말하기로는 사장님이 ‘너네 밥은 안 시키니?’라고 물어봤다는데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시킨 건 덮밥이 아니라 그냥 마파두부였어. 서둘러 공깃밥을 주문해 마파두부도 비벼먹고 쓰촨 돼지볶음도 올려 먹었다. 그 날 먹은 것 중 최고봉은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탕수육과 비슷한 요리였다. 소스가 부어져 나온 처참함에 찍먹파인 나와 엄마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접시를 노려보며 최대한 소스가 덜 묻은 걸 골라 먹었는데 이게 웬걸, 새콤달콤한 소스 아래 바삭한 식감이 느껴졌다. 정말 맛있었다.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니 팽팽했던 긴장이 풀어졌고 술을 못 마시는 동생까지도 무알콜 맥주를 시켜 비엔나의 저녁을 축하했다.
다음날 우리는 중국집 맞은 편의 옆집, 정체 모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피자와 파스타를 팔던 곳 옆집 말이다.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을 옮기며 오늘도 성공하리라 굳게 믿었다. 전날의 성공과 더불어 야외 좌석 가득한 현지인들을 보자 확신이 들었다. 맛집이로구나! <Abbazia>는 지중해식 요리 전문점이었는데 주 1회 해산물 뷔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사실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뷔페는 무리였다. 가벼운 요리로 몇 개 시켜서 나눠 먹으려는데 역시나 사진 없이 비문학 지문처럼 설명만 줄줄 쓰여 있는 메뉴판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때 눈에 띈 게 테이블마다 자리 잡은 까만 홍합 뭉텅이.
저건 어떤 요리예요? 인기 메뉴인 가요?
홍합 스튜예요. (인기 메뉴라는 물음에 답하지 않음)
무뚝뚝해 보였던 직원은 최대한의 친절을 베푸려는 듯 인기 메뉴를 묻는 우리에게 메뉴판의 메뉴를 하나씩 가리키며 더듬더듬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해 줄 필요는 없는데...
메뉴를 설명하는 직원과 그냥 홍합 덩어리가 뭔지 궁금했던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럴 땐 그냥 감으로 시켜야 해!
저기 다들 시키는 홍합 하나랑 (...)
결국 생선 수프, 오징어 튀김 샐러드 그리고 홍합 스튜를 시켰다. 본디 표정만 무뚝뚝했던 듯 그는 테이블 옆을 지나다니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름의) 미소를 보냈고 가게 이름이 특이하다는 물음에 유래를 설명하며 안내 책자까지 갖다 주었다. 가게 이름 Abbazia는 크로아티아의 소도시 opatija라는 곳에서 따왔고 그곳에서 요리를 배운 후에 비엔나에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이 구역이 맛집촌인가 싶을 정도였다. 비린내 나는 생선 수프를 왜 시켰냐고 동생을 타박했는데 그마저도 맛있었다. 비엔나는 우리에게 선물을 주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배가 안 고프다는 말이 무색하게 빵 리필까지 해가며 아주 천천히 식사를 하며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저녁을 먹으며 부모님과 어색한 주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연거푸 마신 맥주 때문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종종 깊은 대화는 내용보다는 대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더 의미 있기도 하다. 특히나 부모님과의 대화라면. 밤이 깊어질 때까지 먹고 마시고 떠들던 우리는 두둑한 팁을 포함한 금액을 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겨우 두 번째 밤이었지만 가로등이 드문 그 어두운 길이 익숙했다. (외국의 팁 문화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제나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배부르고 기분 좋을 때면 후해진다.)
비엔나에서의 이틀 연속 완벽한 저녁은 낯선 도시에서 집도 아닌 현관문을 찾아 헤매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Abbazia Restaurant
2019년 여름, 비엔나에서 먹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중국 요리는 그 해 내가 먹은 것을 통틀어 최고였다.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탕수육과 비슷했던 그 요리는 우리 가족 전원이 인정하는 유럽 여행 6박 7일 일정 중 넘버원이다. 지금도 유럽여행 얘기를 할 때면 벨베데레 궁전의 클림트도,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도, 프라하 카를교도 아닌 비엔나의 중국집이 제일 먼저 언급된다. 비엔나 주거 밀집 구역에 있는 중국집에서 행복을 찾을 줄 누가 알았을까?
ㅡ 에필로그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고 도하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우리 가족은 단체로 오프로드를 당했고 강제로 도하 탐방을 해야 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새벽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니면 언제 또 도하 관광을 해봤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