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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Dec 22. 2022

고로케의 맛

엄마, 짝꿍, 고로케

한파라 함은 무릇 한때 강렬하게 몰아붙였다가 끝나는 것 아니던가. 며칠째 동파를 예고하는 한파가 이어졌다. 사업소득자에게 한파는 맑은 날 하늘에 뜬 무지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밤낮없이 스튜디오로, 카페로, 사무실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디지털 노마드로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했고 결국 몸살감기를 얻었다.

"자기야, 7일 중 하루라도 바깥공기를 마시지 않는 날을 만들어야겠어."
"음.. 할 수 있겠어? 진짜 현관문도 열면 안되는 거야."

짝꿍의 미심쩍은 눈빛에도 이번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 밖에 나서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나 진짜로 이번 주말에는 집에만 있는다. 아무 데도 안 나갈 거야.”     


일요일 아침, 결심한 '실내 머무르기' 날이었다. 기분 좋게 눈을 떴고, 느긋하게 샤워를 즐겼다. 다만, 커피 중독자는 아침부터 뭔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뱃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쳤고, 손가락이 초조해졌다.

‘커피... 집에 커피가 없어.’

급한 대로 앞에 나가 커피를 닮은 갈색 액체라도 사 와야 했다. 차를 끌고 나가지 않아도 마실 수 있는 커피는 한정되어 있다. 베이커리 가게에 딸려있는 앙증맞은 가게에서 추출되는 커피 혹은 주스가게에서 구색 맞추려고 들여놓은 원두에서 탄생한 커피뿐이다. 당장 커피수혈이 필요한 마당에 가릴 게 있을까.


‘집 앞이니까, 외출은 아니지. 후딱 나가서 커피만 사 오자.'
'근데.. 입을 게 없네!! 추운데, 뭐 입고 나가지?’

일주일째 쌓여있는 세탁물은 대부분 세탁기에 들어가 찬물세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폴라티와 기모바지를 비롯한 따뜻한 겨울옷은 커다란 이삿집 박스에 켜켜이 쌓여 구석에 숨죽이고 대기 중이었다.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지만 (엄마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진짜 시간이 없었다. 사람 만날 일도 없는 요즘엔 단벌 신사다. 레깅스에 맨투맨을 입고 요가 수업을 하고, 카페 가서 번역도 하고, 저녁에 짝꿍이랑 외식도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요 앞에 입고 나갈 트레이닝복, 레깅스, 후드티 등 온갖 생활 필수복도 세탁기에 구겨져 있다. 그냥 되는대로 껴입고 찬바람을 뚫고 나섰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가장 가까운 베이커리로 향했다. 칼바람 탓에 오히려 답답했던 마스크가 감사할 지경이었다. 훈훈한 실내로 들어서자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가운데부터 서서히 길이 열리며 쟁반과 집게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커피를 사러 왔지만, 커피만 사가는 건 예의가 아니니 찬찬히 진열대를 구경하며 빵을 골랐다. 아직 나오지 않은 빵과 이미 팔려간 빵 사이에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매우 좁았다.

‘고로케를 사갈까?’      

요가 스튜디오가 있는 동네의 유일한 빵집이자, 전국 매출 상위 5등 안에 든다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 어쩌다가 식사 대용으로 급히 때울 빵을 사러 가는 날이면 짝꿍은 늘 고로케를 고른다.

“고로케가 그렇게 좋아?”
“아니, 나 안 좋아하는데?”
“근데 왜 고로케만 먹어?”
“가격대비 제일 낫잖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참, 있는 것 중에 제일 나은 걸 먹는다니, 어쩔 때 보면 미대가 아니라 이과를 나온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그럼 어떤 빵이 제일 좋은데?”
“나 빵 별로 안 좋아해”

... 뭐?

“아니, 나 자기 만나고 빵도 이렇게 먹는 거지 그 전에는 잘 안 먹었어. 난 아침부터 밥을 먹던 사람인 걸.”

빵순이를 만나 어쩔 수없이 빵의 세계에 들어선 짝꿍은 빵도, 쿠키도, 파이도, 케이크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와 나를 데리고 시간 날 때마다 투어를 다닌다. 내가 볼 땐 이제 빵이 좋아진 게 틀림없다. 다 내 덕이다.


버릇이 들었는지 무의식적으로 고로케를 집었고 커다란 시나몬 식빵을 곁다리로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도 같이 주세요.”     


고로케, 고로케... ! 고로케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나는 여름방학만 되면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으로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국악에 재능이 있던 것도, 흥미가 있던 것도 아니지만 뭐든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는 엄마의 철학하에 방학 때마다 온갖 것을 배우러 다녔다.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예를 들어 국립중앙박물관에 탁본 뜨는 수업이라든가 박물관에서 하는 곤충 수집 수업 등을 들으러 다녔다. 당시에 국립국악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장구, 단소, 판소리 등 다양한 국악 수업을 진행했는데 신청 경쟁률이 치열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어디서 그런 정보를 알아왔는지 엄마는 우리 자매를 위해 수업을 신청했고 평소 뽑기 운이 남달랐던지라 2회 연속 방학특별 과정에 넣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장구, 단소, 판소리를 어린 나이에 깨쳤고, 중학생 때 단소 과외를 받기도 했다. (아마 중학교 축제 발표회 준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국악엔 관심도 없었지만 가는 길은 늘 즐거웠다. 넓은 국악원 마당엔 온갖 민속놀이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 널뛰기,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투호놀이 등등. 그리고 게살 고로케.


당시 우리 가족은 경기도민이었는데, 지하철도 아직 뚫리기 전이라 무궁화호를 타고 청량리까지 나가곤 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우리 자매를 깨워 준비시켰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여러 차례 환승을 거친 후 내방역에 도달했다. 2시간 넘게 걸리는 험난한 길이었지만 즐거웠다. 내방역에 도착하면 9번 출구에 있는 빵집에서 내 손바닥보다 커다란 게맛살 고로케 3개와 오렌지 주스를 사서 마을버스를 타고 국립국악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국악원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고로케가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자꾸만 빵 봉지를 만지작거리면 엄마는 "도착하면 앉아서 먹자. 조금만 참아."라고 하셨다.


국악원 마당에 있는 파라솔 아래 앉아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맛있게 고로케를 먹었다. 일주일 내내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았다. 김밥에 들어가는 커다란 게맛살을 반으로 뚝 잘라서 한쪽 귀퉁이에 넣고 온갖 채소와 고기를 다져 버무린 후 속을 가득 넣는 가격대비 괜찮은 빵이었다. 아침 기상과 가는 길이 고돼도 고로케 먹을 생각을 하면 반짝 바지런히 움직이던 날들이었다. 당시 고로케는 700원이었고 마을버스는 150원이었다.      

왜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고로케로 점심을 해결하고 2시간 정도 수업을 듣고 나면 다시 2시간 넘게 걸려 집으로 향했다.

 

언젠가 엄마한테 물어봤었다.

“엄마, 거기 고로케 기억해?”
“무슨 고로케?”
“아니, 우리 국악원 다닐 때 맨날 사 먹었잖아.”
“아, 고로케 먹었던가?”     


아메리카노를 쥔 손이 시렸다. 한파를 뚫고 집으로 돌아와 전자레인지에 고로케를 데웠다.

'엄마는 고로케를 좋아했던가?'

왜 그때 하필 고로케였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좋아해서 골랐던 걸까? 아니면 채소와 고기 그리고 탄수화물까지 한꺼번에 섭취할 수 있어서 였던가? 아니면 가격대비 양과 맛이 훌륭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이따가 엄마한테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부스럭거리며 고로케를 꺼냈는데 아쉬운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게 빵이야 고로케야. 속이 이렇게 적게 들었는데 700원이 넘는다고?!’

아니, 나 때는 말이야. 고로케에 게맛살이 마리야.

이제 고로케는 내 손바닥보다 작아졌고 가격은 2,000원이나 한다. 주말에 집에만 있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몰래 어겼으니 비밀값에 어릴 때 추억값을 더해서 맛있게 먹기로 한다.


짝꿍에게 가성비가 아주 훌륭한 20년 전 내방역 게살 고로케를 소개하면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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