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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Jul 18. 2023

내가 요리하는 이유

화가 많은 여자

온몸이 떨렸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고 가슴을 내리치고 있었다. 호흡이 거칠어졌고 발작처럼 불규칙한 거친 숨을 토해냈다. 눈에서는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고 오른쪽 손톱날을 세워 왼손 엄지 부분을 꾹 눌러버렸다. 처음이었다. 내 몸을, 내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구박받은 어린아이처럼 방어 기제로 서러움이 밀려들었고 끅끅대며 참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눈물과 자기혐오를 짜냈다.

  

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     


차라리 미친 여자처럼 불같이 화를 내고 발산해 버리면 좋으련만 그래도 사회적 체면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꾹꾹 눌러서 다져버린다. 아마 다져진 단층이 솟아올라 목구멍을 뚫고 나온 모양인데 강력한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부숴버리든지 화산 폭발을 유도해 터뜨리든지 방법이 몇 개 없어 보인다.     

‘원인을 모르겠는데 그냥 화가 막 나.’

이유가 없는 화가 어디 있을까, 어딘가에 원인은 있다.

‘그때 생각만 하면 불끈불끈 치솟아’

어머니들이 하시는 말씀에 답이 있다. ‘그때’, ‘그 일’. 여전히 가슴에 사무치는 후회, 회한,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명치끝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9시 30분, 집을 나섰다. 오밀조밀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에 엉망으로 주차된 차량 사이를 조심스레 기어가다가 우회전하려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우 한 번, 두 번 재차 확인 후 핸들을 꺾었는데

‘빵!!!!!!!!!!’

기적소리가 들렸다.

명치에서 불끈 치솟은 커다란 주먹이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와 핸들을 세 차례 세차게 내려쳤다. 차마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할 순 없었고 손을 희생시켰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저 사람이 잘못한 일이지만 이리 화날 일은 아니다. 여전히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머리엔 화 구름이 잔뜩 꼈으며 내리친 주먹이 아직 욱신거렸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갑자기 명치가 콕콕 쑤시고, 가슴이 답답했다.      

내게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나... 이제 미치광이가 되어 가고 있는가 봐.

도대체 왜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아마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가 소용돌이치며 서로를 망가뜨리고 부수려 했던 게 아닐까. 도로시네 집을 덮쳐버린 최악의 토네이도가 내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선진 시민이야. 나는 교육을 받은 여성이야.’

소리를 지르거나, 손에 쥔 것을 내던질 수 없으니 스스로를 괴롭혔다. 모든 감정이 사그라들 때까지 손톱으로 손등을 꾹, 발바닥을 꾹, 눌렀다. 걷는데 발바닥이 아프길래 가시가 박혔나 살펴봤더니 손톱에 실핏줄이 터졌는지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화가 사라질까? 깊이 파인 손톱자국을 타고 분출된 화가 다시 내 안으로 흡수된다. 결국, 부정적인 감정은 돌고 돌아 내 안에 쌓였다.


그리고 무기력에 빠졌다. 모든 존재에 관심이 식어갔다. 봄, 찬란한 햇살이 창틀을 타고 스멀스멀 넘어왔지만 나는 감정 없이 식어버린 화 덩어리에 불과했다. 슬퍼졌다.     


분노의 다음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게 무기력이 찾아왔다. 한바탕 눈물투정이 가라앉았고 기운이 빠지며 무기력이 정신과 몸을 지배했다. 그냥 계속 누워만 있고 싶은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해서 뭐 하나, 먹어서 뭐 하나, 운동해서 뭐 하나. 낮과 밤은 무심하게 지나갔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연이은 11시 기상으로 들끓던 자기혐오마저 에너지를 갉아먹다가 자멸한 것인지 내 마음은 무(無)와 같았다. 이렇게 무소유를 실천하게 되다니 예상치 못한 오랜 염원의 도래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것인가.’

분명 입맛조차 증발했을 텐데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배가 고팠다.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텅 빈 집을 소심하게 채웠다. 홀린 듯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바닥에 끈적거렸다. 뭘 흘린 모양이다.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 제 몫을 열심히 주장하고 있는 부엌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냉장고도, 가스레인지도 시원찮고 기본적인 식재료도 없었지만 침대가 있는 방 안보다 훨씬 안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먹을만한 게 있을 리가 없지.’ 부엌 선반을 뒤져 이삿날 엄마가 가져온 누룽지를 꺼내 들었다. 역시 엄마들에겐 다 계획이 있다.


‘토드드드’

오래된 가스레인지는 한 번에 켜지는 법이 없다. 한 대접의 누룽지와 생수를 머금은 냄비는 켜질 듯 말 듯 약 올리는 화구를 깔고 앉아 멍청히 나를 바라봤다.

‘어쩌라고, 불이 안 올라오는 게 내 탓은 아니잖아.’

서너 번 시도했을까 갑자기 ‘화악’ 큰 불이 올라왔고 이내 냄비가 천천히 끓어올랐다. 보글거리는 기포와 아스라이 퍼지는 증기를 보며 수프를 끓이던 마녀의 심경에 이입되었다. ‘마녀는 정신 수양 중이었던 거야.’ 진공 상태와 다름없는 부엌에 서서 뜻밖의 위안을 얻었다.

‘이곳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나 요리를 해야겠어.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갑자기 입맛이 돌아 조미김을 2개나 꺼내와 냄비 가득하던 뜨거운 누룽지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마음속에서 세상에 대한 애정과 나 자신에 대한 뭉클함,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피어올랐고 갑작스러운 감정의 발현은 마찬가지로 갑자스러운 생에 대한 욕심으로 발전했다. 인류는 왜 요리를 하기 시작했을까? 수렵 및 채집이 주요 생존 수단이었던 시절, 보관의 용이를 이유로 불에 익혀먹기 시작했을 테지만, 세월을 거듭할수록 조리 방법은 화려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조리법은 다양한 목적을 충족시키며 성장해 왔다. 나를 위한 따뜻한 요리, 가족을 위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도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따뜻한 온기가 있는 요리를 차려서 스스로 위대한 사람인양 대접해야겠다.’

예를 들어 뜨끈하고 깊은 육수로 된장국을 끓여 자기혐오를 달랠 수 있다. 요리와 심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화가 난 상태로 요리를 하다 보면 완성작에선 분노로 가득한 맛만 느껴질 뿐이다. 따라서 요리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내 마음과 정신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일 아침 무엇을 만들고, 남은 재료를 활용해서 내일, 모레, 글피에는 무엇을 만들지 계획을 세우고, 일주일치 장 볼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태도는 내 삶을 정화한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 나를 가장 혐오하는 사람도 나.'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친절하고 자상해야 하며 연민을 갖고 가엽게 여겨야 한다. 요리를 섞듯 뒤섞인 감정이 섞이며 이를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부엌이라는 나만의 심리상담소 (라고 쓰고 고해성사소라고 읽는다)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실로 다양하다. 재료를 다듬고, 간을 맞추고, 휙휙 국자를 젓다가, 내게 스트레스를 안겨준 존재들을 마구 씹다가 ‘앗, 소금!’ 조미료 넣는 걸 잊어버리면 불같은 성정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낸 내 잘못을 속죄한다. 부엌에서 나는 2가지만 지키면 된다. 정직과 집중.


아침에 요리를 하면 그날 하루는 행복감이 유지될 것 같은 꿈에 젖는다. 착각으로 판명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행복한 기분을 떠올리면 분노의 색은 옅어지기도 한다.

‘바빠죽겠는데 찌개 끓일 시간이 있니? 게다가 바로 먹지도 않을 건데?’

화, 그러니까 요즘 내 인생 최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에. 예를 들면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이 있을 것이며 나 같은 경우는 요리를 택했다.

 

‘탁, 탁, 탁’
‘서걱서걱’
‘싹둑싹둑'


어렵고 복잡했던 감정과 소용돌이가 서서히 잦아든다. 개인적으로 재료 썰기는 요가, 냄비 젓기는 명상, 요리 간 보기는 낭송이라고 여긴다. 물론 당근 1개를 최단 시간 내에 다질 수 있다고 해서 내 주변을 둘러싼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테지만 난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다. 화, 스트레스, 불안, 무기력이 당근을 썰고, 요리 간을 맞추는 것 근사한 한 상과 무슨 상관이 있나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성과 감정이 긴밀한 유기 구조를 형성하는 공간에서 나는 위기에 대처한다. 만약 내가 아름답게 차려낸 식탁을 놓고 마주 보고 앉는 상대가 있으며 그의 얼굴에 경탄이 서리고 입꼬리가 올라간다면 일주일 치 화를 삭일 마법의 주스가 생성된다. 덕분에 내 영혼은 안정을 되찾고 내 지성은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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