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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Jun 26. 2019

오프로드

비행기 티켓이 없어 한국을 못가는 외노자의 애환



당신은 오프로드 당했습니다






'돌돌돌돌 - '


잠결에 들리는 트롤리 끄는 소리에 플메가 집에 왔음을 알아차렸다.


‘아 다니가 왔구나’


한 집에 사는 플랫메이트 얼굴도 못 보고 트롤리 끄는 소리와 방문을 잠그거나 여는 소리로 서로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곤 한다.  그녀의 생존 여부를 돌돌돌 소리로 확인하고 다시 잠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몇 시간 뒤 비행이라.






6월 들어 부쩍 여기저기 아프고 불편하다고 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처음엔 무시했는데 이것저것 검색하며 온갖 안 좋은 정보만 접하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야간근무만 9년 한 여성의 몸 상태'라던가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들의 뇌세포 감소'라든지 전부 내 얘기잖아! 그러다 바로 며칠 전에 일이 터졌다. 헬싱키 새벽 비행에서 돌아온 직후 피곤한 건지 배가 고픈 건지 구분조차 안 가는 상황에서 눈이라도 좀 붙이려고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왼쪽 가슴이 불편해서 도무지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요즘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6월 스케줄은 정말이지 고된 강행군이었다. 총 11군데, 122시간. 내 스케줄만 이런 게 아니라 승무원들의 평균 비행 스케줄이다.


잠 못 자고 피곤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던데 마치 몰래 저지른 일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꼬마 아이의 심장처럼 빠르고 약하게 뛰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불편하고 짜증 나고 무섭고. 하루 종일 미간을 찌푸린 채 저녁 비행을 기다렸다. 침대에도 누웠다가, 책상에도 앉아봤다가, 평소엔 잘 쳐다도 안 보는 거실 소파에도 널브러져 있어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말포이! 네 엄마는 항상 코에 똥을 달고 다니는 것 같더라’

나의 10대 시절을 책임진 해리포터에 이런 대사가 있다.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말포이의 엄마를 저격한 해리의 일격이다. 만약 해리가 내 표정을 봤더라면 똑같은 대사를 날려줬을 것이다.

내 표정이 바로 코밑에 똥 달린 표정이었거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 데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가려고 예약해 놓은 비행기에서 오프로드 당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불안감과 짜증이 겹쳐 말 그대로 최악의 상태였던 것이다. 외항사 승무원의 복지 중 최고봉이라고 알려진 비행기 티켓 무한 제공은 생각한 대로 ‘언제, 어디서나, 아무 때고’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통 ID90과 ID50으로 나뉘는 티켓 종류는 구매한다고 해서 예약 확정이 아니다. 보통 보딩 1시간 전에 일반 승객들 등록이 끝난 후 남은 자리를 예약 순이 아닌 사번 순으로 배부한다. 따라서 이제 막 조인한 주니어는 항상 꼴찌인 셈이다.


비행 편이 많으면 문제가 될 건 없다. 예를 들어 하루 4-5편이 있는 방콕이나 홍콩 비행의 경우 좌석 부족으로 인해 오프로드 당할 걱정 따윈 안 해도 된다. 하지만  한국행은 다르다. 도하-인천 노선은 하루에 단 한편뿐이다. 새벽 2시에 도하를 출발해서 오후 5시쯤 인천에 도착하는 유일무이 인천행 비행은 언제나 풀로드다. 따라서 한국인 크루들은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 ID90: 90프로 할인 티켓으로 스태프 본인 및 가족, 친구 사용 가능 

* ID50: 50프로 할인 티켓으로 스태프 본인 및 가족, 친구 사용 가능

* 스탠바이: 티켓을 구매하면 확정이 아니라 스탠바이 상태로 대기해야 한다

* 온로드: 보딩이 끝나기 1시간 전에 확정 상태로 변경이 되면 그제서야 티켓을 발권 받고 입국 심사장에 들어갈 수 있다. (여유 좌석이 많으면 2-3시간 전에도 온로드 상태 변경이 되기도 하지만 극히 드물다.)

* 오프로드: 좌석이 없어 비행기를 못 타는 경우. 티켓을 구매했어도 여유 좌석이 없으면 그날 아무 데도 못 간다. 100% 환불 처리는 안되지만 수수료 없이 다른 비행기 편이나 다른 날짜로 예약을 변경할 수 있다.

(날아간 멘탈은 보상 못 받음)






오프 때 한국을 왜가? 한국 음식 먹고 싶은 걸 그렇게 못 참아?


조이닝 이전에 온갖 망언을 일삼았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이, 한국 음식이 그리운 게 아니다. 사람이 그리운 거였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들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도하에 있어서 놓친 엄마의 생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생일 같은 건 어찌되도 괜찮다고 하시는데 도하에서 딸내미가 잘 살고 있는지, 맨날 어디 아프다고 찡찡대기만 하는 철없는 딸자식 때문에 시간만 나면 온갖 비타민과 건강식품을 검색하고 있을 엄마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꼭 한국에 가고 싶었다. 신청한 오프를 못 받아서 생일엔 못 갔지만 늦게라도 꽉 껴안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크루들은 편하게 1시간 전에 예매할 때 나 홀로 마음의 안정이라도 얻고자 3주 전부터 티켓을 구매해 놓고 매일 로드를 확인했다. 아니 어찌 된 영문인지 로드는 언제나 오버북킹으로 떴고 직원들이 쓸 수 있는 티켓조차도 마이너스였다. 아마도 이때부터였다. 오프로드의 기운을 느낀 게.


그렇게 6월 첫 주를 보냈다. 심장은 점점 빨라지고 미간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종이마냥 구겨지고 뭘 먹을 기분도 아닌 채 의자에 늘어져 있다가 마침 연락 온 동기와 급하게 만났다. 나의 이 답답함을 토로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 슬리퍼를 구겨 신고 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몇 시간 후 비행이 있는 그녀와 나에게 딱 3시간이 허용되었다. 바로 위아래층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확히 한 달하고 2주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있었다.



‘너 얼굴살이 쏙 빠졌어!!’

‘언니는 왜 그래! 얼굴에 스트레스라고 써있는데?’


그때부터 온갖 하소연을 그녀에게 털어놓았고 만만치않게 쌓여있던 그녀의 이야기 역시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비행이 힘든 건 사실이다. 이 일을 하다가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는 소리를 웃으며 하던 시니어의 얘기가 가슴으로 와닿는 요즘이다. 세상에 힘든일 하나 없다는 어른들 말씀이 다 맞다. 돈 벌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으랴. 저마다 다 고충이 있겠지.

우리에게 힘든건 이곳에서의 삶이다. 이곳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존중하지만 모든 게 갖춰진 도시에서 자유롭게 살다 온 우리에게 도하는 답답하기만 한다.  



‘우리 다시 고등학생 된 것 같다. 그치?’


생수에 깔라만시를 타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쏟아내다 보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여전히 -3으로 남아있는 로드에 불안했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공항에 가서 기다리자는 생각에 우버를 불러 하마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등록한 스태프 명단을 보여주는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내 상태가 스탠바이에서 보딩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슬쩍 보니 나처럼 한국 비행을 기다리는 동료 크루들이 침울하게 앉아있는 게 보였다. 2시 출발 비행이 2시 15분으로 바뀌더니 2시 55분 출발인 다른 곳들의 비행 상태가 뜰 때까지 인천행은 요지부동이었다. 작게나마 희망이 생겼다. ‘혹시 다시 정리하고 크루들 태워가려고 지연되는 건가?’



'드르륵 –' 

'스태프 넘버 ****** offloaded'


오프로드당했다. 진동소리에 화들짝 놀라 확인해보니 '너 오프로드 당했음. 얼른 집에나 가라 메롱' 이란다.

눈물이 솟구쳤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수트케이스를 집어던지고 싶었다. 일말의 기대를 안고 달려온 공항에서 망연자실한 내 표정을 누군가 봤다면 분노로 가득 차 상당히 험악했을 것이다. 1시간을 멍하니 공항에 앉아있다가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을 끌어모아 우버를 불러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청승맞게 코를 훌쩍이며 울었다.  심야요금이라도 붙은 건지 올 때와 비교해 2배가 된 요금에 더 눈물이 나왔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참 서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빛 좋은 개살구인가.


누군가에겐 이런 고민조차 사치겠지. 나조차 외항사 승무원을 준비하면서 어떤 희생도 각오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지, 한동안 한국에 못 오는 건 희생이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했었지. 근데 내가 원한 건 그냥 사랑하는 가족과 늦은 시간 둘러앉아 맥주와 함께하는 작은 수다였는데 말이야.


결국 무리해서 다음날 한국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강릉 다녀오듯 도하에서 왕복 20시간인 곳을 딱 하룻밤 자고 다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지금 내표정은 어떤지 혹시 말포이 엄마같지나 않은지 확인하면서 생각한다. 지금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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