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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일 큐레이터 Oct 31. 2017

세기의 아이콘: 재클린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 (2)

대스타로 성장한 마릴린과 영부인이 된 재키

*전편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재키와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존 F. 케네디는 아버지에게 재키를 소개한다.


케네디 가문의 수장인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는 금융계에 종사하면서 사업, 투자 등으로 엄청나게 재산을 불린 자산가.

아일랜드 이주민의 후손이었던 그는 가문에서 미국의 대통령을 배출하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상류층의 주류는 잉글랜드 출신 개신교 신자들이었고 아일랜드 출신 카톨릭 신자였던 그는 상류계로 진출하려다 매번 퇴짜를 맞았는데..


재키는 재력 면에서는 자신의 집안이 케네디 가에 비해 매우 딸리지만, 부비에 가문의 프랑스 조상들과, 상류계에 속한 새아버지 오친클로스 가의 연줄로 이루어진 자신의 인맥이 정계 진출을 꾀하는 케네디에게 값진 자산이 될 거란 계산을 한다.

미래의 시아버지에게 작전의 화살을 돌린 재키.


그의 앞에서 프랑스 귀족 출신 조상들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족보를 슬며시 과시한다 (나중에는 사실이 아닌 걸로 판명 나지만). 화려한 학벌과 사교계의 데뷔탕트로 뽑힌 경험, '프리 드 파리’ 수상 이력도 언급.

상대적으로 부족한 집안의 재력과 워싱턴 타임스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했던 볼품없는 경력은 숨기는 등 전략적으로 대화 소재를 짰다.


또한 케네디 가의 저택에서 이 둘은 클래식 음악과 문학작품 등 다양한 주제로 지칠 줄 모르는 대화를 나눴는데 그녀의 박학다식함 역시 조지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녀의 계획은 적중했고 조지프 케네디는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얼마 안 있어 그는 재키를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빨리 결혼하라고 아들을 재촉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존 케네디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청혼하는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때 마침 재키는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취재하러 영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케네디와 떨어지기 싫었던 그녀는 런던행을 망설인다.

청혼할 기색이 없는 케네디 때문에 풀이 죽어있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잠시 그와 거리를 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정말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케네디를 사랑한다면, 여기 앉아서 전화벨이 울리길 기다리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그 사람이 너에 대한 마음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거야."


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재키는 런던으로 떠난다. 미국에 남겨진 케네디는 그녀가 영국에서 쓴 기사를 읽었고, 재키는 그녀의 부재를 강조하기 위해 초대받은 여러 무도회의 분위기와 함께 동행했던 조건 좋은 남자들의 이름을 편지에 적어 보낸다.


그리고 케네디는 일주일도 안 돼서 국제 전화로 프로포즈를 한다.

전화로 프로포즈를 하다니 참 멋대가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여자에게 정착 못하는 독신주의자였던 그가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며, 이런 그의 평소 성격을 아는 친구들은 그의 약혼 소식을 전해 듣고 경악을 한다.


드디어 케네디를 붙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키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는데,

평소 정치 세계에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재키는 정치인과 결혼을 해도 괜찮은 건지 자신이 없었다.

또 케네디는 약혼을 발표하자마자 재키를 홀로 남겨두고 친구들과 함께 지중해로 몇 주 동안 요트 여행을 떠나 광란의 파티를 즐긴다.

거기다 결혼식 직전 재키에게 자신이 구제불능인 바람둥이임을 고백하는데 바람둥이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남자란 원래 그런 생물이라고 애써 합리화를 한다.    


둘의 결혼식은 수 백 명이 참석하고 교황까지 축사를 보낼 정도로 성대했지만 복잡한 심경의 그녀에게는 좋은 추억만은 아니었다. 심지어 함께 식장으로 입장해야 할 아버지는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당일 예식에 참석하지도 못한다.

재키는 이후 친하게 지내던 신부님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케네디가 자신과 결혼한 이유는 정치인에게는 아내가 필요했었기 때문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쓸쓸하게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녀는 결혼 후 아내로서 성심성의를 다했다. 짝짝이 양말을 신고 후줄근하게 국회로 출근하곤 했던 케네디는 결혼 이후 세련된 정장 차림으로, 막대 사탕으로 대충 때우던 점심 식단은 영양가 넘치는 도시락으로 바뀐다.


그녀의 내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남편의 선거 유세를 따라다니며 캠페인을 도왔는데 어릴 때부터 익힌 유창한 외국어 실력이 이때 발휘된다. 유럽 이민자 비율이 높은 주에서 외국어로 연설을 하면서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낸다 (텍사스에서는 스페인어, 루이지애나에서는 프랑스어). 외국어 실력은 그녀에게 막강한 무기가 되었고 이렇게 유권자들과 친밀감을 쌓으며 케네디의 지지율을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한다.


그리고 1960년, 케네디는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한다 (당시 43세).

케네디는 또한 라이벌 닉슨을 역사상 가장 근소한 투표차로 이겼는데 이렇게 승판을 뒤집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타고난 외모와 매력 덕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접전을 벌이던 상황에 당시 미국 최초로 TV로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화면에 비친 늙은 닉슨 대신 젊고 매력적인 케네디가 사람들의 표를 옮긴 것.


재키 역시 31세의 어린 나이에 백악관의 안주인이 되었다.


이때부터가 바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시기, “백악관 시절”.


그녀의 삶은 3 가지 시기로 구분이 되는데, 그녀의 패션 스타일 역시 시기에 따라 그때그때 변화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재키는 유럽 브랜드와 오트쿠튀르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는데 그녀의 낭비벽과 지나친 프랑스 브랜드 사랑이 알려지자 이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받기 시작한다. 그래서 전반적인 스타일에 미국적인 색채를 가미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영부인이 되자마자 자신이 무슨 일을 하건 우선은 외모로 평가받으리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어렸을 때부터 패션 잡지를 꾸준히 읽었고 역사를 공부한 그녀는 계산된 이미지의 힘을 알고 있었다.

대중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파악하고 사람들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쳐지고 싶은지를 정한 후 전략적으로 이미지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그녀의 스타일은 클래식, 심플함, 실용적이라는 3 단어로 압축된다.

깔끔하고 절제된 라인과 편안해 보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옷차림. 민소매 원피스와 투피스를 즐겨 입었으며

항상 새하얀 진주 목걸이를 겹겹이 착용한다.


대중들의 눈에 잘 띄는 핑크빛, 하늘색, 노란색 등의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색상을 선호했고 귀족적인 분위기와 승마로 다져진 꼿꼿한 자세는 여기에 우아한 분위기를 더했다.


 1편에서 소개했던 머리에 살짝 얹는 필박스 모자는 엄청난 유행을 일으킨 아이템으로 심지어 그녀가 실수로 모자를 찌그러트린 채로 썼을 때에는 이것마저 트렌드로 여겨져 너도나도 모자를 찌그려서 착용했을 정도.

승마복도 일상복으로 입으며 유행시킨다.


재키 스타일은 금세 미국 전역으로 번졌고 당시 수많은 여성들이 따라 했다. 지금까지 정치인 부인들의 패션이란 따분하고 칙칙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어서 젊고 스타일리시한 그녀의 스타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재키 스타일은 미국 패션, 영부인 패션의 표본이 되었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이전까지 유럽에 비해 문화적으로 덜 성숙한 미국의 이미지를 단번에 우아하게 바꿔놓았다.


그녀는 단순히 옷을 예쁘게 입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 TPO에 적절하게 입는 일명 '패션 외교'에 능했는데 대중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강한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색상을 선택하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발휘했다.

케네디와 함께 캐나다 순방을 나섰을 때 그녀는 빨간 모직 수트와 모자를 착용했다.

이는 캐나다 기마경찰대의 붉은 제복을 모방한 건데 기마경찰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캐나다 국민들에게 바치는 찬사였다.


그리고 곧 케네디를 따라 파리의 정상 회담에 따라가기로 결정했는데 그녀는 샤를 드골 장군과 만나는 걸 남편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과 드골 사이에서 친선 대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재키에게 주어진 임무.


케네디 부부가 파리 공항에 도착해 시내까지 자동차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그녀의 이름(남편이 아닌)을 연호해 케네디를 놀라게 한다. 미국의 영부인이 이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


드골 장군은 무뚝뚝한 인물이었지만 오찬 때 재키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유창한 프랑스어로 역사, 미술, 프랑스의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아 그의 넋을 빼놓았다. 그가 케네디에게 “영부인께서 웬만한 프랑스 여자보다 프랑스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시군요.”라고 말하자 케네디는 “웬만한 프랑스 남자들보다도 많이 알고 있죠.”라고 응수한다.


케네디는 재키의 가치를 깨닫고 이때부터 그녀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기자들을 위해 마련한 오찬 석상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재클린 케네디를 파리까지 모시고 온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 프랑스 언론도 케네디와 드골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보다 재키가 디너파티 때 무슨 옷을 입었는지를 앞다투어 신문 1면에 다뤘다.

인도와 파키스탄 순방길에는 강렬한 핑크색, 개나리색, 라벤더, 초록색 등 인도를 상징하는 색상을 선택했다. 인도의 문화와 역사, 예술의 여러 측면을 미리 공부해 준비한 의상으로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도 입고 나온다. 인도의 네루 총리도 금세 그녀의 팬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재키의 순방이 인도와 미국의 관계에 도움이 됐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디너파티와 같은 공식 행사마다 멋진 이브닝드레스 차림과 왕족 같은 자태로 찬사를 받았다.


재키는 이렇게 남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영화 잡지 표지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더 자주 오르는 인물이 되었고 일주일에 8,000통이 넘는 팬레터를 받았다.

케네디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고위 인사들은 케네디 대통령보다 그녀를 더 좋아했는데 그 당시 미국을 가장 위협하던 소련의 흐루시초프 총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대방을 긴장시키는 냉혹한 눈빛과 불같은 성격을 가진 그는 당시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린 터라 케네디는 그와의 회담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 부부와 마주한 흐루시초프 총리는 케네디와 악수하기 전 재키에게 윙크를 하면서 '영부인과 먼저 악수하고 싶다'는 소녀팬 같은 발언을 한다. 그리고 재키와 열띤 대화를 나누었는데 재키의 매력에 푹 빠진 소련 총리를 두고 연합뉴스가 ‘사납고 호전적인 공산주의 수장이, 봄이 되어 강변의 얼음이 녹는 걸 보고 감동하는 남학생처럼 변했다.’고 표현할 정도.

그는 그녀의 분홍색 드레스가 아름답다고 칭찬했고, 그가 우크라이나에 교사가 얼마나 많은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 재키는 그의 말을 자르고 특유의 장난기 어린 대담한 발언을 날린다.

 

"각하, 따분한 통계 자료들로 저를 지루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시겠죠?"

 

그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던 보좌진들은 이제 호통이 떨어지겠구나 싶어 잔뜩 긴장한 찰나, 흐루시초프는 말을 멈추고 너털 웃음을 터뜨린다.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한 시대의 유행을 이끌었지만 재키를 단순히 세상에서 가장 옷을 잘 입었던 여성으로 기억하는건 그녀의 다른 재능와 업적을 과소평가하는 일일 것이다.

그녀의 또다른 업적, 바로 백악관 복원 작업.

당시 백악관은 역사적인 미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하고 적적한 건물이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초라한 백악관의 내부에 실망한 그녀는 달라진 백악관을 꿈꾸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서의 옛 영광을 되찾은 백악관을.


“공식 행사가 치러지는 방들이 낡고 오래되어 일관성이나 논리가 전혀 없어 보였어요. 전 세계 국왕과 정치인들이 우리 대통령이 사는 곳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이 건물을 자랑스러운 공간으로 만들야 해요. 그러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 곳을 방문해 역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좀 더 나은 미국인이 되지 않을까요?”


재키는 국회도서관을 출입하며 백악관을 다룬 역사서와 자료를 열심히 연구하며 새로운 백악관의 청사진을 차근차근 머릿속에 그려나갔다. 어릴적부터 스케치를 하고 전 세계 유명 박물관을 관람한 경험이 이때 빛을 발했다. 그러나 방이 132개나 되는 백악관을 복원하는 것은 섣불리 시작할 수 없는 엄청난 작업이었고 정치적인 위험요소도 다분해 케네디는 처음에 이 계획에 반대했다.

그래서 재키는 쓸데없는 곳에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미디어 홍보 등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후원금을 모았다.

당시 모은 금액은 무려 2백만불.

전국 곳곳의 큐레이터와 수집가들도 적극 동참하고 학계의 협조가 뒤따랐다.

또한 그녀는 이전 대통령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백악관 물품들을 기부하길 부탁, 벤자민 프랭클린 초상화와 조지 워싱턴의 안락의자처럼 역사적인 상징성을 지닌 가구와 소품들을 돌려받는다.

탁월한 디자인 감각과 열정을 가진 재키는 모든 단계와 절차를 챙기는 과정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고 백악관이 사료에 입각해 정확히 복원될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총괄했다.


그녀의 열정적인 노력과 집념은 마침내 백악관을 웅장한 저택이자 미국의 새로운 유산으로 탈바꿈시켰다.

재키가 일구어낸 업적을 구경하러 수많은 국민들이 몰려들었다. TV 프로그램으로도 만들었는데 재키는 직접 카메라를 거느리고 이 방 저 방을 안내하면서 백악관이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미술품을 갖춘 진정한 박물관으로 어떻게 변모했는지 소개했다. 이것을 계기로 국민들의 자부심과, 백악관의 역사적 출발과 문화적인 유산에 대한 인식에 불을 지핀다.


아까 얘기했다시피 그녀가 영부인이 되기 전까지 미국은 거칠고 무식한 나라였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음악이나 미술, 문학, 요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뒤쳐졌다.


재키는 고전 문학 공부와 발레 공연 관람 등을 통해 꾸준히 키워온 미적 감각과 교양 지식,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바라보는 국내외의 시각을 혼자 힘으로 바꾸어놓다시피 했고 유럽의 왕실문화를 늘 부러워해온 미국인들에게 그녀는 '여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백악관 복원작업 이외에도 예술 분야를 꾸준히 후원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도 세계적인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국민들이 정치 유산뿐 아니라 자국의 문화에도 자부심을 갖길 바랬던 재키는 만찬 후에 선보이는 공연에 이름난 음악가들을 초빙, 백악관의 국빈 만찬 형식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이전의 행정부와 다르게 백악관에서 이루어진 모든 만찬은 고급스러운 음식과 아름다운 테이블 세팅, 그리고 미국의 최고의 음악들이 선보이는 공연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어머니를 통해 대저택을 꾸미고 관리하는 법과 우아하고 품위 있게 손님을 접대하는 방법을 배운 그녀는 국왕과 여왕과 수상 및 세계 대표를 백악관에 초대해 성대한 국빈 만찬을 준비할 때도 주눅들거나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주최한 만찬은 미국의 문화와 역사도 유럽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아름아운 음악이 흐르고 질좋은 와인이 구비된 백악관은 세계의 모든 명사들과 왕족들이 초대받길 원하는 연회장으로 변모했고 재키의 뛰어난 호스팅 능력은 미국의 대외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워싱턴 DC의 라파엣 스퀘어,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 철거를 막는 데에도 적극 참여했고, 이 건물들은 아직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남아있게 된다.



이제 마릴린 얘기로 돌아간다.


배우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던 마릴린은 코믹하면서도 풍자적인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미디어에서는 백치 이미지로 비치지만 그녀의 어록을 보면 그녀는 단순히 대본을 암기해 연기하는 배우 그 이상의 자질을 갖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거침없고 도전적인 어록을 한번 살펴보자.

 I love to do the things the censors won't pass.
나는 검열관이 통과시키지 않을 일들을 하고 싶다.

Sex is part of nature. I go along with nature.
섹스는 자연의 일부이다. 나는 자연에 순응한다.

The body is meant to be seen, not all covered up.
육체는 싸서 감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라고 있는 것이다.

If I’d observed all the rules, I’d never have got anywhere.
내가 만일 모든 규칙을 준수했더라면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1952년 어느 날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샤넬 넘버 5요.


잘 때 아무것도 안 입고 향수만 뿌리고 잔다는 이 발언은 보수적이었던 1950년 당시에는 상상도 못 할 발언이었고 어떤 광고 문구보다 강렬했던 이 한마디는 아직까지도 샤넬 넘버 5가 30초에 하나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데 톡톡한 공헌을 한다.


2013년에는 샤넬이 실제로 마릴린의 이 인터뷰 음성이 그대로 담긴 광고를 발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8UtWiYiZI

그녀의 나른하면서도 내추럴한 모습이 잘 드러나는 광고.


또 비슷한 발언을 하는데,

It’s not true that I had nothing on. I had the radio on.
내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라디오 소리를 입고 있었다.


발랄하고 백치미 넘치는 스크린 속 이미지는 그녀의 실제 모습과 달랐다고 한다.

그녀는 완벽주의자에 극심한 무대공포증이 있었고 촬영할 때마다 몇 시간이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스태프들이 위로를 해줘야 했다.

그녀의 절친 제인 러셀은 "마릴린은 수줍음이 많고 다정한 성격이다. 사람들이 흔히 그녀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녀는 매우 지적인 사람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녀의 천박하고 약간 모자라 보이는 이미지는 영화 속 캐릭터와 할리우드의 계산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 실제 그녀는 따뜻한 성품의 지적인 여성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배우라는 커리어는 그녀의 전부였다. 그녀는 뉴욕에서 연극 연출가인 리 스트래스버그(Lee Strasberg)에게 연기를 배웠는데 알 파치노, 말론 브란도, 더스틴 호프만 등의 당대 최고의 배우들도 그의 지도를 거쳤다. 훗날 스트래스버그는 마릴린을 그 중에서도 가장 재능많던 제자 중 한 명으로 꼽는다. 마릴린은 타고난 외모를 벗어나 연기력으로도 인정받는 여배우가 되고 싶었고, 독서를 통해 지적으로 좀더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어했다.

UCLA에서 문학과 예술감상을 전공하기도 한 그녀의 일상 사진들을 보면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은데 실제로 그녀는 재키 못지않은 독서광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섹스 심벌인 그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에 괴리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그녀가 남긴 이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몰입한 그녀의 열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If I play a stupid girl and ask a stupid question I’ve got to follow it through.
내가 멍청한 여자 역할을 맡아 멍청한 질문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끝까지 해내야 한다.


<나이아가라>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연이은 흥행으로 그녀는 할리우드 톱스타가 되었고 1955년 명성의 정점을 찍은 영화 <7년 만의 외출>을 만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20세기 가장 아이코닉한 장면이 등장한다. 수많은 모방과 패러디를 양산해냈고 누구나 단번에 알아보는 이 유명한 신.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스커트를 휘날리는 이 장면은 마릴린 먼로의 성적 매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이 아이보리 색의 홀터넥 드레스는 20세기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의상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2011년 무려 6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경매로 낙찰되었다. 이때 그녀가 신은 스틸레토 힐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로 페라가모는 이 장면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자 세계적인 야구선수인 디마지오가 이 장면을 정말 싫어했다는 비화가 있다.


이제 마릴린 먼로의 패션 스타일에 대해서 살펴볼 건데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레드 카펫에서나 영화 의상을 입을 땐 이렇게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할리우드 여신 스타일.

여기에 모피 코트나 다이아몬드를 더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힘을 좀 뺀 천진난만한 소녀스러움을 강조한 캐주얼한 의상으로 반전 매력.

폴카 도트나 리본 달린 사랑스러운 스타일의 나풀나풀한 원피스, 그리고 색감은 분홍색, 하늘색, 라임색 등 캘리포니아의 한가롭고 느긋한 라이프스타일이 느껴지는 파스텔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항상 한쪽 어깨끈이 떨어지도록 연출하는데 당장이라도 벗을 준비가 돼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겨 심한 노출 없이도 야한 느낌이 들게 한다.

할리우드에서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늘 하이힐을 착용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산책을 하거나 해변을 거닐 때는 맨발로 걸어 다니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그리고 촬영이 없는 날이면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안해 보이고 수수한 블랙 터틀넥을 입는다.


이렇게 다양한 매력을 뽐낸 마릴린은 재키처럼 패션 아이콘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관능과 순수함을 동시에 지닌 그녀의 스타일은 '먼로 스타일', '먼로 룩'으로 명명되면서 영화계는 물론 대중들의 패션과 패션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마릴린은 더 이상 생활비를 걱정하던 무명의 단역 배우가 아니었다.

1953, 1954년 '가장 돈 잘 버는 스타' 10인에 뽑히는 등 이제는 영화사와의 계약 협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는 대스타가 된 것. 그 이후 꾸준히 다작을 통해 할리우드의 전설로서 대중들의 마음 깊숙히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때 마릴린도 케네디를 만나게 된다.

케네디를 만난 마릴린은 재키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첫눈에 반한다.

케네디와 가까워지며 그녀는 이제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를 넘어 미국의 영부인으로의 신분상승을 꿈꾸게 된다.


1962년, 케네디의 생일파티 때 케네디와 대중들 앞에서 속살이 다 비치는 드레스를 입고 정말 야한 목소리로 해피버스데이 노래를 부르는데 대중들도 둘 사이에 흐르는 이 묘한 감정의 기류를 느꼈을 것이다.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 상황을 미리 예상이라도 했던건지 재키는 그 자리에 없었다.


케네디 또한 마릴린의 강렬한 성적 매력에 자석처럼 끌렸고 이 둘 사이에는 금지된 썸이 불타올랐다.


이 둘은 곧 뜨거운 밤을 보낸다.

마릴린은 케네디에게 완전히 빠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과 케네디와의 관계를 자랑했다고 한다.  


사랑에 눈이 먼 마릴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녀는 계속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마릴린은 백악관으로 전화를 걸어 재키를 바꿔달라고 한 후 "케네디와 하룻밤을 보냈으며 케네디가 자신에게 결혼을 약속했으므로 영부인의 자리는 이제 자신의 것"이라고 따박따박 전한다.

 

러나 재키는 차분하게 "그래, 마릴린. 너는 네 말대로 잭과 결혼할 거고 백악관에 들어와 영부인의 자리로 올라갈 거야. 그럼 난 여기서 나갈 테고, 너는 내가 겪었던 모든 문제를 떠안게 될 거야."라고 받아친다.


케네디는 결혼 이후에도 마릴린뿐만 아니라 마피아의 애인이나 백악관 인턴, 비서 등 다양한 여자들과 원나잇을 하는 둥 줄곧 위험한 바람을 피워왔는데 재키는 남편의 혼외정사 상대들을 다 알고 있었고 그중에서 마릴린 먼로를 가장 거슬려했다고 한다.

 

둘 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흠모한 것 같다.

마릴린 먼로는 재키의 지성미와 사회적 위치를,

평소 케네디와의 잠자리에 불만이 많았던 재키는 마릴린의 성적 매력을 질투했고 재키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마릴린을 카피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재클린은 남편의 스캔들이 터지면 남편의 명성이나 자신의 결혼생활이 모두 망가지고 대중의 조롱거리가 될 것을 우려했다.


이렇게 세 사람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마릴린은 갑자기 LA 자택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죽기 며칠 전부터 극심한 조울증과 불면증, 탈진에 시달렸던 그녀의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

공식적으로는 자살로 발표되었지만 정확한 사망 원인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고 케네디 가문에 의한 타살이란 설도 제기됐는데,

당시 고작 서른여섯의 나이.

자신을 짓누르던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성형수술 없이 아름답게 늙기를 원했던 마릴린은 결국 노년을 피해 젊어서 죽는 삶을 택했다.


비슷한 시기 재키는 출산 후 아기가 이틀도 안돼 사망하는 비극을 겪는다. 그녀는 두 아이 캐롤라인과 존의 출산 이외에도 이미 두 번의 유산을 통해 몸과 마음이 망가질 데로 망가진 상태였다. 아들 패트릭의 죽음에 재키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은 케네디는 난생처음으로 재키가 그토록 원했던 다정한 남편으로 바뀐다.

아내에게 더욱 신경을 쓰고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케네디는 재키가 보는 앞에서 암살당한다.


-다음 편에 계속


<참고 문헌>

'워너비 재키', 티나 산티 플래허티

'아이콘의 탄생', 강민지

'Are you a Jackie, or a Marilyn?', Pamela Ke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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