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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 Oct 31. 2017

세기의 아이콘: 재클린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 (1)

아메리칸 글램을 상징하는 패션 아이콘, 팜므파탈

이 둘은 상반된 이미지와 성장과정, 명성을 가진 두 여성이다.


한 명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원을 전전하다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대스타로 성장한 여배우이자 섹스심볼,

다른 한 명은 미국 동부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엘리트 여성이자 미국 35대 퍼스트레이디.


그러나 이 둘에게는 공통점도 많은데,

둘 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이자, 탁월한 패션감각과 이미지 메이킹 스킬, 재치 있는 화술로 대중들과 남성들을 사로잡은 팜므파탈이다.


마릴린은 길거리를 나서면 남자라면 모두 넋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는 외모와 몸매, 표정, 걸음걸이, 목소리를 가졌고,

어렸을 때부터 방대한 독서량과 엄격한 자기관리로 포장된 재키(재클린의 애칭)는 상류층 남성들이 열광하는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를 가진 동시에 신비주의와 끝내주는 말발로 애를 태우는 여성이었다.


둘 다 다른 의미로 미국을 상징하는 아메리칸 글램의 대명사.

또 둘은 앤디 워홀의 팝 아트 뮤즈이기도 했고,  

미국 최고의 미남 대통령이었던 케네디 대통령과 사랑에 빠졌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미국이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꽃 피우는데 엄청난 기여를 한다.



출근길에 늘 지나치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도 여전히 마릴린의 기념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가 죽은 지 50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20세기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받는다. 영국의 한 대중지는 “지금도 그녀의 이미지는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있으며 매년 전 세계에서 1000만 달러어치씩 소비되고 있다”라고도 했다.

 

섹시함에 있어서 그 어떤 여배우가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까?

흔히들 아이돌들에게 섹시한 이미지는 최후의 보루로 남기는 컨셉인만큼 자극적이라 롱런하기에 독이 될 수 있어 수명이 짧다고 한다.

늘 섹시한 컨셉을 고수했던 마릴린은 어떻게 죽은 지 몇십 년이 지나서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완벽주의자였던 재클린 리 부비에는 남자도 최고만 고집했고 살면서 결혼을 2번 했는데

한 번은 미국의 대통령과, 다른 한 번은 당시 세계 최고의 억만장자와.

정치인의 아내였던 그녀는 정치 지도층 또한 배우나 가수 같은 대중문화인들처럼 유행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패션 리더였다. 그 어떤 패션 아이콘들보다 전략적으로 스타일을 창조했으며 미국 패션을 세계로 전파하는 영향력을 과시했다.

힐러리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 등 역대 영부인들의 롤모델로 지목되고 특히 힐러리 클린턴은 '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재키는 늘 내 롤모델이었다.'라고 밝힌다.

역시나 뛰어난 패션 감각과 지성미로 주목을 받던 미셸 오바마의 별명은 '블랙 재키'.


이미지 출처: mirror.co.uk

이번에 멜라니아 트럼프가 취임식 때 입은 랄프로렌의 하늘색 수트 역시 재키의 옷에서 영감을 받았단 평 등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많은 여성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는 외모가 뛰어나지도, 성격이 사교적이지도, 마릴린처럼 엄청난 성적 매력이 있지도 않았다는 것. 그녀의 어떤 매력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들이, 그것도 한 여자에게 정착할 생각이 없던 바람둥이들이 사로잡혔던 걸까?



미국의 1950-1960년대(특히 60년대)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처럼 문화적으로 엄청난 발전과 풍요를 누린 시대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주인공이 자기가 사랑하던 문학가들이 있던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한다.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내가 한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방문하고 싶은 시대가 바로 미국의 60년대이다.


정치/대외적으로는 2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과의 냉전시기였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고 트위기와 에디 세즈윅 같은 다양한 스타일 아이콘들이 등장하면서 패션사에서 디자이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가장 극혐하는 시기는 80년대).


할리우드는 황금기를 맞았고,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이 도래했으며,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 컬러 tv의 보급을 필두로 시작된 예술의 대중화,

인류 최초의 달 착륙,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영화산업과 대중문화의 번영을 상징한 마릴린 먼로와 미국의 꿈과 희망을 상징한 케네디 부부가 있었다.


이 둘의 인생을 교차/비교하면서 일대기 형식처럼, 때로는 분석글처럼 서술해 나가려고 한다.



먼저 둘의 유년시절.


1926년 출생한 마릴린 먼로의 어린 시절은 불행하기 짝이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의 가난한 가정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노마 진 모텐슨.

그녀의 엄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아빠의 존재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일찌감치 버려진 그녀는 7살 때 처음 성추행을 당했고 11살까지 여러 보육시설과 고아원을 전전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이후 엄마의 친구가 그녀의 후견인이 되어 입양하려고도 했으나 새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후 다른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는데 또다시 그 집 아들의 성폭행 시도.


이런 비극적인 사건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은 그녀에게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겨져 성인이 되고 유명 배우가 된 이후에도 말을 더듬고 약물 중독에 빠졌으며 수면장애, 애정결핍, 대인관계 장애 등을 겪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을 맡아줄 곳을 찾을 수 없었고 아직 미성년자였던 그녀에게는 2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첫 번째, 고아원으로 돌아가기 (그녀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두 번째, 결혼.


결국 단란한 가정을 원했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6개월 만에 중퇴하고 고작 16살의 나이에 잘 알지도 못하던 이웃인 제임스 도허티와 첫 결혼을 감행한다.

 


재키는 마릴린과는 반대로 동부의 부유한 집안의 첫째딸로 태어나 풍족하게 자랐고 어릴 적부터 유명 사립학교만 다닌 명문가 자제였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도 순탄치 않았는데,


재키가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바람 문제로 부모가 이혼한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미국이라지만 1940년대 부부의 이혼은 엄청난 가문의 수치였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였다.


가정이 파탄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큰 충격을 받은 재키는 우울증에 걸리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이때 혼자 방안에서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어린 시절 일화로도 짐작이 가겠지만, 재키는 힘든 시기가 있으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는 독서, 그림, 글쓰기 등의 개발을 하며 그 시간을 이겨낸다 (훗날에는 요가도 추가).


재키는 또한 어릴 때부터 취미가 승마였는데 승마는 그녀에게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승마는 불안정한 현실을 애써 잊게 해주는 정신적인 탈출구였으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꼿꼿한 자세와 평정심, 당당한 애티튜드를 갖추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재키는 불완전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바깥 세상과 차단된 책과 예술 속 세상이 마음의 안정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어릴 적부터 엄청난 학구열로 지적 능력을 키워나간다.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또 다른 부유한 남자 오친클로스와 재혼을 하고 재키는 새아버지의 집으로 이사한다. 궁전같은 대저택에서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자라왔지만 직계 자손이 아닌 그녀는 새아버지의 재산 상속에서 떨어진 위치에 있어 돈에 대한 걱정에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신의 안정을 찾아줄 부유한 남성들을 꿈꾸며 경제적 풍요와 부에 집착한다.


(반대로 마릴린은 돈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었다. 훗날 할리우드에 가서 엄청난 돈을 번 이후에도 기부를 하거나 별로 터치를 하지 않는다. 마릴린이 평생 동안 갈망했던 것은 정서적 안정과 지속적인 사랑을 주며 자신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재키는 남자의 기를 죽일 수 있으니 똑똑한 티를 내지 말라고 충고하는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는 미스 포터스라는 코네티컷의 명문 기숙학교로 진학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을 굳이 신경쓰지 않았고 시시한 남자보다는 책이 좋다며 학업과 독서, 승마에 매진했다.

동창의 말에 의하면 재키는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고 자기 방에서 책을 읽거나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고, 인기가 많았지만 천성적으로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또래에 비래 훨씬 똑똑했던 그녀는 전 과목 A 학점을 받는 학생이었고 연극부 활동을 하는 한편, 교지에 시와 만화를 기고했다.


전교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는 졸업앨범의 장래 희망란에 이런 목표를 적는다.

결코 평범한 가정주부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후 명문 여대인 바서에 입학한 재키는 1학년 때 처음 사교계에 진출을 하여 그 해의 데뷔탕트 (사교계에 데뷔하는 여성)로 뽑히며 상류층 내에서 주목받는 여성이 된다. 보통은 그보다 더 화려한 외모의 숙녀를 데뷔탕트로 선택하지만 한 칼럼니스트는 그녀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녀에게는 절제된 우아함이랄까,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부끄럼을 많이 타고 혼자 있는 것을 지극히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눈에 띈다.’


이 둘이 20대를 보낸 1950년대에는 사회가 여성에게 원하는 역할이 제한적일 때였다.

좋은 아내와 헌신적인 어머니, 그리고 만약 직업을 가진다면 교사나 간호사, 비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

그러나 이 둘은 당시 사회가 정한 이상적인 여성상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남편이 2차 대전에 참전한 후 마릴린은 돈을 벌기 위해 무기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한 사진작가의 눈에 띈다. 처음 모델료로 받은 돈은 단돈 5달러.

그의 권유로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가고 갈색이었던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다.

이때 그녀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카메라.

어린 시절부터 많은 영화를 보았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즐겨했던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길 원했다.

할리우드로 넘어온 마릴린은 이혼을 하고 연기 수업을 들었으며 오디션에 참가하고 닥치는 대로 사진작가들과 작업을 했다.

데뷔 초기 풋풋하고 앳된 얼굴의 마릴린

재키의 풍요로운 환경에 비해 마릴린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 마릴린 역시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외모.

마릴린의 외모와 몸매는 당시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모아둔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여성스러움의 극치를 자랑한다.


긴 속눈썹, 도톰하고 붉은 입술, 새하얀 피부결,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육감적인 다리, 거기에 염색한 화려한 금발머리는 그녀의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가진 것 없던 그녀에게 외모는 불우한 환경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티켓이었고 이때부터 그녀는 세상에 그녀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데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세기 폭스사의 임원이었던 벤 라이언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마침내 영화사 계약을 따내고 '마릴린 먼로'라는 예명도 탄생.


그러나 처음부터 그녀가 영화계에서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엑스트라나 단역 생활을 전전하며 하루에 1달러로 연명했지만 그녀는 단역이라도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 그러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녀는 단돈 50 달러를 받고 누드 사진을 찍게 된다.


그리고 열심히 인지도를 쌓아가던 그녀에게 첫 스캔들이 발생하는데!

과거 찍었던 누드 사진이 달력 사진으로 인쇄되어 팔리고 있었던 것. 그동안 쌓아온 그녀의 경력이 물거품이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녀는 왜 누드 화보를 찍었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한다.

Hunger(배고픔 때문에).


 그녀의 고백은 대중들의 동정심을 이끌어내며 화제가 되었고, 곧 <라이프>지 표지를 장식하고 영화 캐스팅으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불명예로 남을 뻔한 사건이 오히려 터닝포인트가 된 것.


처음에는 마릴린 먼로를 보고 단순히 아름다운 외모와 섹시한 몸매로 화제가 된 스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지 제조 스킬이 탁월하며 그녀의 말 한마디도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외모뿐만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선천적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표정과, 몸짓, 화술을 겸비했으며,

대단히 포토제닉 했던 그녀는 사진 한 장으로도 사람들을 압도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카메라는 그녀를 사랑했다.


영화 <나이아가라> 속 마릴린 먼로

그녀는 영화 <나이아가라>에서 첫 주연을 맡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다른 할리우드 여배우들과 달랐다.

요즘 여배우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77-88 사이즈의 글래머 체형인 그녀는 항상 허리와 골반을 강조한 의상, 그리고 하이힐로 자신의 타고난 관능적인 체형을 보란 듯이 과시했다. 살짝 헤퍼 보이는 미소는 덤. 특히 한쪽 하이힐 굽을 4분의 1 가량 깎아내고,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 특유의 먼로 워크를 개발하는데 이는 그녀의 몸매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녀는 하이힐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누가 하이힐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여성은 그에게 많은 걸 빚지고 있다."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아직까지도 그녀의 걸음걸이, 표정, 목소리를 따라 한다.


이렇게 섹시한 컨셉의 화보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뇌쇄적이고 요염하지만

(내리까는 듯한 눈과 나른한 표정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일상 사진을 보면 이렇게 해맑고 아이 같은 웃음을 가지고 있다.


살짝 헤퍼 보이는 눈빛과 전신에서 발산하는 성적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느낌을 풍기는 그녀의 양면성은 밤에는 요부, 낮에는 성녀로 변하는 여자를 꿈꾸는 남자들의 판타지를 그대로 충족시켜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육감적인 몸매로 남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하는가 하면 돌아서서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무장해제시키는 동시에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남자들의 이상형으로 흔히 언급되는 베이글녀, 청순글래머도 이런 남자들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고 그녀가 베이글녀의 시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섹시함과 순수함의 공존.

아까 말한 것처럼 수명이 짧은 섹시 컨셉을 롱런 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러한 양면성 덕분이다.


그녀가 대부분의 영화에서 보여준 다소 천박해 보이는 금발의 백치미 캐릭터는 다른 도도하고 콧대 높은 여배우들과 그녀를 차별화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녀를 필두로 시작된 '덤 블론드 (dumb blonde, 멍청한 금발)' 이미지는 당시 할리우드를 지배한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의 의상 또한 역시 타이트하게 몸매를 강조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녀의 굴곡있는 몸매를 보여주기 위해 천을 입은 상태에서 몸의 라인을 따라 꿰매 마무리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가 크게 움직일 때마다 옷이 터지기 일쑤.


다른 영화에 함께 출연한 할리우드의 황제 클라크 게이블은 그녀를 극찬했다.

“마릴린은 최고다. 그녀는 대단히 여성적이다. 그녀가 행하는 모든 것, 말하는 방식에서부터 그 멋진 몸매를 놀리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전부 색다르고, 야릇하고, 자극적이다. 그녀는 남자로 하여금 남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한편 재키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파리의 소르본 대학으로 1년 동안 교환학생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떠나기 전에 최대한 사전 지식을 많이 쌓아가기로 결정하고 역사책을 읽고, 3개 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태리어)를 익혔으며, 파리에서는 프랑스어로 이루어지는 프랑스 역사와 미술사, 사진, 외교학 등의 수업을 수강.


재키는 파리의 사회적, 문화적, 지적 생활 속에 흠뻑 젖어들었고 이때의 경험은 재키에게 평생 동안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동시에 정신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녀는 잘생긴 프랑스 남자들과 데이트를 했고 그들과 함께 수많은 무도회와 파티에 참석했다. 카페와 미술관에서 사색에 잠기는가 하면 발레, 오페라, 연극 공연도 적극적으로 관람했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유럽 방방곡곡을 여행했다.


그러면서도 공부는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고 독립성을 기르며 남자들은 머리가 좋은 여자보다 예쁜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드디어 떨쳐버린다. “내 평생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 없었다.”라고 기억할 만큼 발휘했던 고도의 집중력으로 소르본 대학에서 우등상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조지 워싱턴 대학으로 편입, 프랑스 문학을 전공해 학사학위를 받는다.


마릴린과 반대로 재키는 전형적인 미인의 얼굴이 아니었고 외모적, 신체적으로 컴플렉스가 많아서 어릴적부터 어머니의 못마땅한 눈초리를 받곤 했다. 오히려 재키의 여동생 리가 누가 봐도 예쁜 아이로 주목받았다면 재키는 똑똑한 아이로 더 인정을 받곤 했다.


그녀는 부스스한 갈색머리에 큰 머리와 넓은 미간, 까무잡잡한 피부, 빈약한 가슴에 각진 어깨를 가진 다소 보이시한 체형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완벽주의자인 성격으로 인해 틈틈이 물어뜯는 손톱, 그리고 여자치고는 너무 큰 손과 발을 가졌다.


그러나 그녀는 보그의 프리드 파리 공모전에서 패션 논문으로 1위를 수상했을 정도로 패션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비범하게 자신의 단점을 매력으로 바꾸는 방법을 공부하면서 터득해간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백악관 입성 이후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패션 아이템은 엄청난 유행을 타며 그 시대 미국에는 그녀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여성들로 넘쳐났다.


그녀가 유행시킨 아이템만 봐도,

넓은 미간을 가리기 위한 오버사이즈 선글라스 (자신의 얼굴크기와 미간에 맞는 선글라스를 못 찾겠다며 불평하다 찾아낸 아이템)

큰 얼굴을 커버하기 위한 부풀린 헤어 스타일과 필박스 모자

역시나 큰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두른 스카프

물어뜯은 손톱과 큰 손을 가리기 위한 긴 장갑


그녀는 굳이 가슴으로 자신의 여성미를 어필할 생각이 없었다. 컴플렉스였던 가슴을 드러내는 옷은 절대 입지 않고 대신 늘씬한 체형과 가녀린 어깨, 여리여리한 허리를 강조하는 코디를 선호했다.


한 잡지 창간인은 이렇게 말했다.

"재키와 오드리 헵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닮고 싶은 여성으로 꼽히는 한, 가슴이 작고 옷차림이 단정한 여학생들도 기죽지 않고 활발히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재키 덕분에 평소 유럽에 기가 눌려있던 미국 패션계는 물을 만났다 (하지만 사실 재키는 유럽 명품 브랜드 덕후였다고 한다).


마릴린이 선천적으로 남성들에게 주목을 받는 방법을 터득했다면 재키에게는 이것을 따로 가르쳐준 스승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

재키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재산을 줄곧 탕진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바람둥이였다. 잘생긴 외모와 스타일 감각, 호탕하고 매력적인 성격으로 재키의 어머니에게는 안타깝지만 안 넘어오는 여자가 없었다. 비록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그는 두 딸을, 그중에서도 특히 재키를 유달리 사랑했고 그녀에게 어릴 때부터 틈틈이 남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비밀에 대해서 강의했다.


“남자들은 모두 늑대니 절대로 쉽게 보여선 안된다."
"비밀스러움을 간직해라. 그럼 남자들은 그 신비스러움을 알아내기 위해 애가 탈 것이다."


또한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그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여성들만 골라 사귀었는데 재키는 그런 아버지가 만나는 여성들을 보면서 매력에 대한 감을 키운다.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뉴욕의 세련된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 종종 두 딸을 데리고 다녔다. 그는 타고난 외모보다 어떤 식으로 꾸미느냐가 중요하다고 딸에게 강조했다. 평범한 외모라도 옷과 스타일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외에도 그는 우아한 몸가짐과 파티 매너도 가르쳤는데,


사람들 속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두리번 거리지 말고 턱을 당당하게 들며 파티장 한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고.


대화 상대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이거나 적극적으로 나서면 안 되며,


절제된 애티튜드와 낮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를 통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겨야 된다.


또한 초대를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자리에서 참석 여부를 알려줄 필요는 없으며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한 뒤에 나타나면 효과가 더 크다는 것.


재키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보이면 아버지가 가르친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두 눈으로 상대방이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숨 막힐 정도로 열심히 이야기를 경청했고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버지는 남자들은 모두 늑대고 정복자 기질이 있으니 절대로 육체적으로 많은 걸 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실제로 사촌 데이비스가 기억하는 재키는 ‘내 여자로 만들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여자였다. 프린스턴, 하버드, 예일을 졸업한 친구들은 그를 만나면 한결같이 ‘네 사촌이라는 데뷔탕트 어떻게 된 거야? 왜 얼굴을 볼 수가 없어?’ 혹은 ‘올해의 여왕이라는 네 사촌에 대한 소문 정말이야? 진도를 1단계의 절반도 나갈 수 없다던데?’하고 물었다 ('워너비 재키' 본문 중).


재키는 이렇듯 아버지의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했고 학창 시절 남자들에게 인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데이트 신청은 대부분 거절한다. 절대로 평범한 주부가 되지 않기로 다짐했던 그녀에게 가장 관심없던 주제는 결혼, 특히 진부한 남자와의 결혼이었으며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녀에게 시시하게 여겨졌다.


재키는 원래 기자나 작가가 될 생각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기자로 일하던 그녀의 운명을 바꾸게 된 사건이 터진다. 한 작은 디너파티에서 당시 젊은 상원의원 후보였던 존 F. 케네디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그녀는 이미 월 가의 사업가 존 휴스테드와 약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23살에 만난 케네디는 약혼 사실을 잊어버리게 할만큼 매력적인 남자였다.

당시 34세였던 그는 하버드 출신에 너무나도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거기다 그녀처럼 책을 좋아했고 뛰어난 말솜씨와 유머감각을 자랑했으며 

그의 집안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케네디 역시 재키에게 호감을 보였는데,

재키는 그동안 케네디가 주로 사귀던 가슴 큰 금발 여성들과 전혀 달랐지만, 유혹하다가도 잡힐 듯 말듯 달아나는 그녀의 태도와, 문학과 배움에 대한 열정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둘은 애칭까지 잭과 재키. 재키는 자신처럼 문학과 역사를 사랑하고 의미 없는 파티보다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케네디가 자신의 짝임을 확신한다.


친구에게 ‘케네디하고 결혼할 수 만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들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케네디는 조만간 상원의원이 될 예정이었고, 결혼생활은 자신과 맞지 않으니 영원히 독신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누누이 비쳤다. 거기다 그는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슴 큰 금발 미녀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바람둥이였다.


재키는 결혼에 관심이 없는 그를 유혹하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아내가 되기 위해 철저한 작전을 펼친다.


-다음 편에 계속


<참고 문헌>

'워너비 재키', 티나 산티 플래허티 (이 글의 많은 부분은 이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아이콘의 탄생', 강민지

'Are you a Jackie, or a Marilyn?', Pamela Ke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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