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오드리 헵번부터 고딕 시크의 정수를 보여준 리카르도 티시까지
얼마 전, 지방시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 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패션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 그.
지방시와 그의 브랜드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지방시(1927-2018)는 1951년에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가 설립한 프랑스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이며 1998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패션 그룹인 LVMH에 소속되어 운영되고 있다.
<스타일 요약>
-초기 지방시는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와 세련된 재단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연령과 체형에 상관없이 어떤 여성에게든 잘 어울리고 매치하기 쉬워 큰 사랑을 받았다. 깔끔하고 깨끗한 실루엣에 집중했으며 모노톤의 색상이 주로 쓰였다.
-2000년대 들어서 수석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다크한 로맨티시즘을 필두로 내세우며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했다. 아방가르드한 그래픽 일러스트와 화려한 색상을 많이 사용했으며 별이나 십자가 일러스트가 그려진 아이템들을 히트시켰다. 과거의 엄격한 스타일에 관능적인 고딕 스타일을 불어넣었으며 지금까지도 셀레브리티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레드카펫과 스트릿 패션에서 종종 발견된다.
<시그니처 아이템>
그래픽 티셔츠
나이팅게일 백
강아지 일러스트 티셔츠
<영원한 브랜드의 뮤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은막의 요정 오드리 헵번이 무려 40년 동안 지방시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1954년, 지방시의 드레스를 입고 주연한 영화 <사브리나(Sabrina)>가 오스카 최고의 의상상을 수상하며 이후 헵번은 그와 손을 잡고 당대 패션 트렌드를 주도했다. 그녀는 이후 출연한 영화마다 지방시의 옷을 입었으며 이 둘은 영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콤비로 활약한다. 비슷한 스타와 디자이너의 결합으로는 카트린 드뇌브와 이브 생 로랑이 있다. 때로는 사랑스러운 말괄량이로 때로는 세련된 도시 여인으로 변신하였고 지방시 특유의 간결한 라인은 그녀의 가냘프고 곧은 몸매와 잘 어울렸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프닝 장면에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패션사에서 길이길이 회자될 정도.
1975년에는 향수 '렝테르디(L’interdit)'를 만들어 그녀에게 선물. 프랑스어로 '금지'라는 뜻의 이 향수는 오드리 헵번 외에는 그 누구도 쓸 수 없다는 의미를 지녔다.
<간략한 브랜드 역사>
-1951, 위베르 드 지방시가 Les Separables (Separates)라는 첫 컬렉션을 발표하며 브랜드 런칭. 신인 다자이너였기에 고급 원단을 구입하기엔 예산이 부족해 값싼 천으로 만든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발표한다. 스커트와 블라우스처럼 하나의 드레스가 아닌 단품을 발표한 것인데 오트 쿠튀르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고 화려한 원단과 패턴 대신 흰색 위주의 면을 대부분 사용한 것 역시 모험이었다. 그러나 베티나 블라우스라는 첫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며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1954, 오드리 헵번과 일을 하기 시작하며 첫 번째 셔츠 드레스 발표 (나중에는 색 드레스 sack dress로 발전한 아이템).
-1969년, 남성복 라인인 <젠틀맨 지방시> 런칭.
-1977, 자동차 링컨 마크 5 (출시되자마자 품절)와 힐튼 호텔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다.
-1995, 지방시 은퇴하다. 먼저 패션계의 기성복 유행에 환멸을 느끼고 은퇴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비슷한 행보. 발렌시아가의 절친이었던 그는 디자인에서도 비슷한 신념과 취향을 공유했다. 심플하고 우아한 라인, 그리고 완벽한 재단, 절제미. 오드리 헵번과 함께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10 가을 컬렉션에 리카르도 티시가 트랜스젠더 모델을 런웨이에 세우다.
<아이코닉했던 순간들>
- 오드리 헵번의 영화들
- 베티나 블라우스, 브랜드의 첫 베스트셀러이자, 남성복 와이셔츠로 쓰이던 값싼 흰색 면으로 만들어짐. 풍성한 러플이 달린 소매와 시크한 네크라인의 고급 블라우스.
-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케네디 가문 전체가 지방시를 입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 2015년, 칸예 웨스트와의 결혼식에서 지방시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킴 카다시안.
- 엠마 스톤이 2017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입은 드레스.
<수석 디자이너 변천사>
존 갈리아노 (1995-1996) -> 알렉산더 맥퀸 (1996-2001) -> 줄리안 맥도널드 (2001-2005) -> 리카르도 티시 (2005-2017) -> Clare Waight Keller (2017-)
<어록>
“The dress must follow the body of a woman, not the body following the shape of the dress.”
몸을 드레스의 모양에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드레스가 여성의 몸에 맞춰져야 한다. -위베르 드 지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