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모는 사주를 본다.

독일일상 에세이

by 소시지

나는 이모가 5명이다.

이모들에게 첫 조카였던 나는 꽤나 이쁨을 받았다.

어릴 적 이모들이 주던 사랑의 온기는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따스했다.

그중 내가 가장 의지했던 사람은 막내 이모였다.

7살 차이가 나는 이모는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방 안에서 녹턴을 연주하고 있는 이모를 보고 있자면

저녁노을이 들어오는 방안의 아늑한 햇살보다 더 빛나 보였다.

내가 피아노를 오랜 시간 동안 배우기 시작한 계기였다.

질풍노도 이상의 힘든 사춘기를 겪던 고등학교 때에도,

대적하기 힘든 엄마와 싸우고 맘이 너덜 해져서 갈 수 있던 유일한 피신처도 이모네 집이었다.

심리학과를 나온 이모는 나에게는 정말 멋진 카운슬러였다.

그런 이모를 나는 많이도 따랐다.


내가 성인이 되어 해외에 나가있는 기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인생에 접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마음속의 이모는 늘 나의 이모였다.

이모는 나름 좋은 학교를 나왔으나, 사회생활의 적응이 힘들었던 것 같다.

대기업에 취업을 했지만, 수습기간을 버티지 못해 나왔고,

첫사랑에는 실패를 했으며, 그 상실을 견디지 못해

결국은 수녀가 되겠다며 수녀원에 들어갔지만 버티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나와 조금은 이상한 종교에 빠져 명상원에 다니더니,

결국 경제활동은 전혀 못하던 이모는

늦게나마 아빠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이모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고,

이모는 자신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마음속의 이모는 늘 나의 이모였고, 틈틈이 우리는 연락을 하며 살았다.


나는 첫아이를 갖게 되어 인도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고

이모의 둘째와 내 둘째가 나이가 같아,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면서

우리는 다시 꽤 가까운 사이가 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삶이 할퀴어놓은 듯한 이모의 예민함은 종종 나를 불편하게 했다.

물론 연년생으로 그야말로 있던 정신도 놓을 것 같던 내 삶도 녹록지는 않았기에

난 그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40대가 다 되어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고 난 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나는

이모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모는 심리학전공이었지만,

돌아 돌아 결국 사람을 공부하고 싶다며 명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서로가 삶에서 겪은 부분을 나누며 ,

나의 삶이 왜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었는지 명리학적으로 풀어줄 때는 꽤 수긍되는 면도 있었다.

서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리학적으로 듣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이모가 명리학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이유를

난 감히 삶에 대한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사회의 일원으로 소통하려 했던 그녀의 방식이

쉽지 않았기에 사람사이에 소속되기 위해 자신을 위해 택한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모가 한 달간 가족과 함께 파리에 머물게 되었다고 했다.

생각 같아서는 잠깐이라도 가보고 싶었으나,

부활절과 노동절로 나름 성수기 인지라, 독일에서 파리 비행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아쉬움을 통화로 대신하고자 했다.


통화에서 이모는 여행에 대한 설렘이 아닌,

이 가족여행이 얼마나 지긋지긋 한 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 여행을 다니는 것 자체가 얼마나 에너지 소모이며

원하지도 않는 곳에 끌려다니는 것이 너무너무 싫다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해외에 대한 환상이란 전혀 없다며, 사람이 너무 많아 면역력이 떨어져

지금 감기기운도 있다고 했다.

거기서 난 대화를 멈추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노파심에 통화는 나중에 하자고 했더니

괜찮다며 통화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삐걱거리던 대화는 내가 생각지도 않는 방향으로

계속 흘러갔다.

이모말에 의하면 명리학적으로 내 사주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사주였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가혹한 사주니까

너무 열심히 살려고 하지 말라고,

잠시 인성이 들어와서 네가 뭔가 될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명리학적인 관점에서 남편에 대한 평가도 가혹했다.

본인이 가는 길이 녹록지 않을 거라며, 그걸 견뎌야 열매가 맺을 텐데

남들도 다 떨어져 나가는 그 길을 갈 수 있겠냐며 희망 따위는 접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혼의 성장을 강조했다.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이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영혼이나 철학도 중요한 삶의 일부다.

그렇지만 고전 철학자들도 다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이 아니었느냐,

아이가 둘이나 있는 우리 부부로써는 현실적인 삶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을 때

그다음 조금 더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아니겠느냐

이모는 집도 두 채에 물려받은 상가가 있어 어느 정도 그런 불안한 부분들이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그런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아니겠느냐고

그렇지 않다고 했다. 상가에서 나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수리비로 다 나간다고 했다.

대화의 마무리될 즈음 나의 기분은 처참했다.


통화가 끝나자 나는 너무 멍해졌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흔들리고 있었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주를 공부한 사람이 풀어주는 내 미래를 듣고

맘이 아프고 슬펐다.

그러다 문득, 이게 무슨 상황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모에게 사주를 물어봤던 걸까?

이 실망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불안이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모가 주는 희망적인 말에

기대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다시 중심이 잡힌다.

그리고 달라진 관계도 보이기 시작한다.


어릴 적 의지하던,

아름다운 햇살에서 피아노를 치며

내게 삶의 지침을 주던 그 이모는 이제 없다.


우리 사이는 희석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에, 서로연결되었던 실은 닳아 버렸다.

관계는 변한다.


내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이모의 명리학적 풀이처럼 누구에게 기댈 수 없는 외로운 삶을

나의 세월을 버티며 알고 있던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면 되었다.

그럼에도 담담히 나아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새싹이 돋아나는 이 계절에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불현듯 밖을 보게 되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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