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 반에 이브가 전학을 왔다.

독일일상 에세이

by 소시지


첫째 아들 반에 새로운 친구가 아들네 반으로 전반을 왔다.

그 친구의 이름이 이브 다


아들의 남자아이들 분위기를 살짝 소개하자면

베랏파 헨드릭 파 그리고 안드리파로 나뉜다.

그 반의 공식 불리(bully)로 반 분위기를 흐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베랏과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는 베랏파.

헨드릭 파는 소위 모범생들이고 숙제도 잘해오는 친구들인데 대부분이 독일아이들이다.

세 번째 안드리 파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들 두 명 정도인데

상황에 의해 오게 된 아이들인지라 그래도 나름 적응 잘하면서 지낸다.

성격들도 꽤나 유쾌하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헨드릭 파와 안드리파를 왔다 갔다 하며 지내고 있다.


베랏의 명성은 자자한데,

우리 아들에게 ‘칭챙총’이라고 놀리는 건 기본

툭하면 시비를 걸어오고, 거슬리게 책상을 툭툭치고 물건을 뺏는 등,

초반에는 이 아이 때문에 아들이 정말 힘들어했다.

우리 아들에게만 특정하게 그러는 건 또 아니어서

베랏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여자아이는

정신적 휴식을 위해

3주간 숲 별장에 다녀온다고 했다고 한다.

워낙 여기저기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니고,

베랏이라는 아이의 불리(bully) 캐릭터가 공식화되자,

아들도 베랏과는 거리를 두고 신경을 덜 쓰게끔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브라는 친구가 처음 온날부터 아들은

또 다른 베랏이 온 것 같다며 반 분위기를 흐리는 이 친구를 좀 힘들어했다.

제2의 베랏이 왔구나 싶어 주목하고 있던 차

결국 아들과도 살짝 부딪힘이 있던 다혈질인 미카와

이브라는 친구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처음 사건은

아들과 미카가 농구를 하는 도중 이브라는 친구가 끼어들며 생겼다.

둘 사이에 말다툼이 몸싸움이 되어갔고,

그만하라고 말리던 아들을 이브가 한 대 때린 것이다.

볼을 한 대 맞았는데, 다행히 그다지 아프지가 않아서 참았고

본인은 폭력을 쓰지 않고 말싸움으로 끝이 났다고 했다.


그러다 두 번째 사건이 터졌다.

독일은 쉬는 시간이 길지만 교실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바깥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밖에서 일들이 좀 생기는 것 같았다.

아들이 미카와 농구를 하고 있었고,

함께 놀고 싶다고 온 이브를 거절했다고 했다.

맘이 좋지 않았던 이브가 계속해서 시비를 걸었고,

다혈질인 미카가 대응하자, 결국 이브가 폭력을 사용한 것이다.


미카가 교장실로 갔다.

독일은 폭력에 대한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공식화되면 담임선생님 학년 과장님 등이 모여

일에 연루된 친구들의 증언을 각각 듣는다.

아들도 같이 불려 가게 되었고

독일어가 아직은 대단히 유창하진 않지만,

나름 상황을 잘 정리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증인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지난번 맞았던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했다.

이브는 그날 아주 힘든 하루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독일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절대 절대 안 된다고 배운다.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선생님들도 이날만큼은

이브를 호되게 혼을 냈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 친절한 담임 선생님은 이브가 또 한 번

이런 폭력을 휘두르는 순간 담임선생님께 바로 보고해야 한다고

반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렀다고 했다.


폭력이 절대로 정당화되지 않고 담임 선생님도 아닌

교무실로 찾아가서 모든 일을 공론화하고

담임선생님과 때로는 부모님을 소환하며 함께 대처하는 것이

독일 학교의 방식이다.


둘째의 반 친구들 사이에서 채팅 문제로 아이들 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반 모임에서 공론화해서, 대책이 논의가 되었었고

문제를 일으킨 아이는 전학을 갔고

부모와의 1:1 개인 면담은 물론

상담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진행하면서, 정서적인 부분을 돌봐주는

밀착형 케어를 받으며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지켜본다.


이런 이유로, 베랏같은 불리가 있긴 하지만

적절한 대처를 믿고 학교를 보내게 되는 이유이다.

또한, 아들이 늘 하는 말은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좋은 이미지를 잘 쌓은 친구들일 수록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친구들의 편이 되어 함께 싸워주는 것을 봐왔다고 했다.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정신적인 영역을 고려해

2주간의 휴양이 허락된다는 이 부분도 사실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긴 했다.

내 영역을 내가 지키려는 노력이 인정이 된다는 것 처럼들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조마조마한 일들이 많을 것이고

한창 기싸움을 하는 나이대 인지라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겠지만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나의 수선스런 불안은

이제 독일에 온 지 3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아이가 울고 오진 않을까

아이가 상처받진 않았을까

자신의 맘을 표현하지 못해 얼마나 답답할까

알아듣지 못해 또한 얼마나 지루할까 등

가슴을 졸이고 졸이던 그러나 엄마로서

담담한 척해야 했던 3년이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아들에게

너무 잘하고 있고 기특하다는 맘이

나 스스로를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야 했고

어릴 적부터 자전거와 마라톤 축구로 다져진 독일 아이들과 차이가 나는 아이의 체력에

그저 꼴찌만 면해보자는 말로 아들을 다독거리며 온 3년이었다.

그사이 아들의 키는 20센티 정도가 더 자랐고

아이가 아니라 청소년으로 자라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앞으로의 미래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우리 부부는

그저 오늘을 살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독일어를 배우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학교에서 지식을 배워오는 아들이 딸이 그저 대견할 따름이다.


3년 전 아이들의 학교 배정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늦어서

이기관 저 기관으로 다니며 학교를 알아보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동네 학교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받아줄 수 있는지 물어보며

거절을 꿀꺽꿀꺽 받아먹던 때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정받은 큰 아이의 학교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이나 걸리는 낯선 곳이었다.

독일어도 모르는 아들이 멀미에 마스크에 토를 받아가며 다니던 때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작은 아이의 학교 비서실에 한국 커피를 사들고 부지런히도 드나들기 시작했다.

얼굴 도장을 찍으며 말 한마디 더 붙여가며 관계를 쌓으려 노력해

결국 교장선생님께 큰아이의 전학을 부탁했다.


그리고

독일어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걱정이 되어서

학교가 끝나면 무조건 아이들을 데리러 가서

우연히 마주치는 선생님께 아이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더 묻곤 했다.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식의 관계를 독일 사람들은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마음은 통한다는 본능으로 했던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했던 그저 또 한 번의 오르막이었다.


해외생활을 여러 번 하다 보면 그래프가 생긴다

처음엔 잔뜩 겁을 먹고 간 나라에서

기대보다 나쁘지 않은 상황에 마음의 상승 곡선이 생기다가

실체를 가까이 경험하면서 상승곡선은 바닥으로 치닫는다.

완전히 바닥을 치고 나면 그제야 적정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3년이 지난 지금이 적정한 수준의 세팅된 곡선이 아닌가 싶다.

작은 굴곡이야 있겠지만, 경험상 멀미 나는 곡선은 이제 덜할 것이다.

물론 안심하고 있을 때 뒤통수를 치는 게 인생인지라

넋 놓고 있진 않겠지…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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