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부장님 이야기

그냥 내 인도 이야기

by 영어하는 소시지


내가 인도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을때 이야기이다.

다니던 회사는 외국계 포워딩 회사였는데, 한국에서 인도로 오는 모 대기업의 부품을 제 날짜안에 통관해서 공장으로 갈수 있게 과정을 인도에서 서포팅 하는 업무였다. 내가 있던 인도의 첸나이라는 지역은 2010년 전후에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언제 어떻게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많았다. 따라서, 인도로 수입되는 모든 과정에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수입과정에서 늦어지기라도 하면, 납품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대기업의 공장라인이 멈춰버리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정돈되고 무엇이든지 빠르게 움직이도록 시스템이 최적화되어있는대기업이라는 커다란 몸집과 언제든 변수가 생기고 울퉁불퉁한 인도라는 나라와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하는 잡이었다.


정부장님은 내가 인도 주재원으로 나가기전에, 처음 와계셨던 1세대 주재원이셨다.


사람좋기도 유명하셨고, 인도 직원들과도 그야말로 겪없이 지내시던 분이셨다. 정부장님 관련된 신화는 여러개가 있는데, 그중 한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일단 한국에서 인도로 제품이 수입이 되면, 수입 통관을 거치는데 이 통관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는 상상못할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우선 첫번째는 서류에 작은 오류라도 있는경우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통관이지연되는 경우이다. 실질적으로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큰 실수가 아닌데도 통관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잘못 만나게 되면 이상한 이유로 통관을 지연시켜 골치가 아퍼질때가 있다.


두번째는 담당직원이 나오지 않는 경우인데, 그럴 경우 다른 직원이 백업을 해주는 시스템은 더더욱 되어있지 않아 그 담당 직원이 나올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컨테이너 같은 큰 물류 외에 특별한 경우 들어오는 작은 부품 박스 같은 경우에는 낙후된 인프라로 물류창고에서 보관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 박스를 찾느라 일이 지연되기도 한다. 그러면 무조건 물류창고로 달려가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찾을 확률이 떨어지는데 그나마 거기서 찾으면 행운이다.


또하나의 변수는 날씨이다. 몬순이라는 기간동안에는 정말로 많은 비가 내리는데, 그러면 도로도 유실이되어, 컨테이너가 제 시간안에 움직이지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뭐 이런 여러가지 다양한 사건사고중에서, 컨테이너 기사들이 파업이나 개인 사정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와중에 다른 운전 기사를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나마 찾은 기사가 익숙하지 않은 길을 헤메기라도 하면 공장으로 입고되는 시간이 지연되, 컨테이너 기사와 계속 전화를 하며 팔로우업해야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사건이 일어난 날 역시 몬순 기간에, 컨테이너 기사들의 파업까지 겹친 그야말로 최악의 날이었다.


트럭을 CFS(물류보관창고)에서 공장까지 운반해야하는 트럭 기사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연락을 넣었지만, 웃돈을 준다고 해도 구할수가 없었다고 한다. 에이치기업에서는 공장 라인이 설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라고 정말 그야말로 초 비상이 걸려서, 정부장님께 어떻게좀 살려달라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정부장님 인도 파트너사를 쪼다쪼다 못해 일이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을 보고 CFS (물류보관창고)로 달려가셨다.


절대로 안된다는 인도 직업들을 다 물리치시고 결국 직접 트럭을 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비포장길을 몇시간씩 달려 결국 공장으로 가셨다. 가는 도중 컨테이너 트럭을 몰고 있는 동양인이 있다는 신고가 경찰서에 들어가기도 했다며, 우리 파트너 인도직원 책임자(고삐)가 나에게 깔깔 웃으며 그때의 무용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정부장님이 우릴 살렸다며 엄지 척을 날린다.


나는 정부장님 후임으로 나간거여서, 함께 일한 기간이 많이 않다. 그래서 인도에서 함께 겪은 기간이 길진 않다. 그러나 정부장님에 대한 후일담들은 파트너 인도 직원들에게 마치 전설처럼 내려 오고 있었다.


인도 직원분들에게 참 친절하셨고,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하시는 멋진 아버지이셨다.

그럼에도 늘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셨고, 비겁하게 뒤에 숨지 않은 어른이셨고, 삼둥이의 아버지셨으며 자그맣고 이쁜 사모님과 금술이 좋으셨던 좋은 어른이셨다.


나이가 40후반이 되어간다.

독일은 겨울이 오며 어둠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찬란한 태양아래에서 겪은 일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20유로대신 20루피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신기한 일이다.

너무 힘들었던 시기여서 내가 스스로 떠올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 시간은 내가 지났던 가장 어두웠던 어둠도 다시 볼수 있게 해주는 법이지.

인도에서 똥물을 헤치고 다니던 나도

지독하게도 치열하게 살아냈던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도

소소한 글로 잔잔히 보듬을수 있게 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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